누가복음 2012년 누가복음 45강(22:24-46) 아버지의 원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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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45강
본문 누가복음 22:24-46
요절 누가복음 22:42
아버지의 원대로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고난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는 일을 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십니다. 그의 기도는 치열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내가 연약함으로 인해서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배우기 원합니다.
첫째, 섬기는 삶입니다. 제자들은 마지막 만찬에서 누가 그를 팔 것인가에 관심을 갖다가 누가 크냐하는 문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말씀을 듣고 불안해졌습니다. 서로 자신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처럼 큰 자가 어떻게 배신할 수 있는가”라는 분위기로 넘어가더니 “감히 나를 배신자의 대열에 넣을 수 있는가? 난 완전히 다르다. 최고로 큰 자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새 언약’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새 나라가 임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새 나라가 임하면 새로운 질서가 잡혀야 하고 새로운 서열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사람이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소원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방향이 권력을 잡음으로 그렇게 되고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권력의 속성은 인정을 받고 섬김을 받고 다른 사람을 누르고 지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위로 갈수록 자리가 적어지기 때문에 경쟁과 다른 사람의 희생이 따릅니다. 그런 기초 위에 국회의원만 되도 200가지 특권이 따라옵니다. 그러니 공천을 받지 못한 어른들이 공개석상에서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립니다. 권력의 맛을 본 사람들은 그것을 놓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서로 누가 크냐고 다투는 제자들에게 세상과 다른 가치관을 가르쳐주십니다. 25-2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예수님의 제자는 큰 자일수록 겸손하고 섬기는 자와 같아야 합니다. 제일 높은 사람은 제일 낮은 사람처럼 처신해야 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위대한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는 섬김을 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주되신 예수님이 섬김의 도를 실천하셨다면 그의 제자들 역시 더 나은 지위보다 섬김을 추구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돌보고 섬기듯이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요구하지 않고 형제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돌아보는 삶을 살아갑니다. 섬김의 태도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진정한 위대함을 실현하게 합니다. 위대함은 섬김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누구나 위대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많이 희생하고 섬기는 사람이 위대한 것입니다. 그는 섬김의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섬길 때 오는 내적인 기쁨을 알아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섬기기 위해서 아낌없이 주고 희생합니다. 그러면서도 기쁨이 있습니다. 만족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위대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에 기초한 섬김의 영향력이 크고 넓은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위대한 사람은 남에 대한 배려심이 있습니다. 특히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있습니다. 타인을 존중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 즉 교회의 일원입니다. 교회는 섬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둘째,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은 사람들에게 상급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8-30).”고 약속해주십니다. 제자들은 그 동안 수많은 위험과 고통, 시련들을 예수님과 함께 겪어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겪을 것입니다. 그들은 기꺼이 종이 되고자 하였고 복음의 메시지를 나누며 예수님의 권세를 통해 사람들을 치유했습니다. 제자들이 못난 짓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깊은 애정과 소망을 두고 계십니다. 앞으로 복음 사역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확장시킬 동역자로 보고 귀히 여기십니다. 살아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난을 함께 한 동역자들이 참으로 귀하고 귀합니다. 고난을 함께 한 사람들에게서 진정한 동지애를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랬듯이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십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이후에도 하나님 나라 확장 역사는 제자들을 통해서 계속될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감독들이 되고 성경 저자들이 되며 선교사가 되어 세계 각 곳으로 나아갑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다 같이 그들에게 약속된 종말적인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 언약 백성의 열두 지파를 다스리는 보좌에 앉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권위가 현재는 우리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시대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죽어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 우리가 가는 길에 어려움이 있지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달려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영원한 상급을 받고 누리기를 바랍니다.
셋째, 믿음을 위해 기도함으로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가운데 시몬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사탄이 제자들을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제자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십니다. 베드로에게는 특별히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 하라는 부탁을 하십니다. 이렇게 함으로 그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겪게 될 시험에서 속히 나올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사탄은 제자 공동체를 파괴하여 흩어버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심각한 시련을 이기고 믿음 위에 서도록 기도하십니다. 불 같은 시험을 받을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시험도 이기고 유혹도 이기고 사탄도 이길 수 있습니다. 시련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문제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때 믿음이 강해집니다. 또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고난을 받을수록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더욱 강해집니다. 새벽 기도를 하던지, 혼자서 하던지 믿음의 기도를 드릴 때 일상적인 삶 속에서 기적을 체험합니다. 믿음만 안 떨어지면 어떤 것이 와도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 양들을 위해서, 동역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환경이나 조건의 개선보다도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자 베드로는 주책도 없이 큰 소리를 칩니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33).” 그의 마음은 주님과 함께 고난도 받고 죽음까지도 함께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고난이 현실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멀리도 아니고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고 예수님은 베드로에 대해 예언하십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고난과 시련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기도로 시험의 때를 이길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준비를 시키십니까? 이제는 예전처럼 사람들에게 환대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를 스스로 돌봐야 합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시고 죽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가운데 제자들에게 검을 준비하라고 하심으로 구약 말씀을 성취하고자 하십니다.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자신에게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흉악범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죄인과 같이 되시고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신해 형벌을 받으시고 흉악한 죄인들을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져야 할 십자가의 고난을 담당하기 위해서 기도하러 나가십니다. 그는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셔서 거기서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평소에도 기도에 힘을 쓰셨는데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고는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벌여야 하는 우리에게는 필수적입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 사탄의 간교한 유혹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체포되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을 보면서 믿음을 잃어버리게 하고 예수님을 대적하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이 약해지고 넘어지기 쉽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만사형통해야 하고, 하는 일마다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제자로 서기를 기대합니다. 몇 년 만에 큰 부흥을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난의 종으로 구속역사를 완성하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조금 수고했는데 열매를 맺지 못했다고 해서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보통 300명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 명 일대일 양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 서너 명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양이 없다고 힘들어 하면 안 됩니다. 또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사람들의 배척과 조롱을 받을 때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의 영향 아래서 살고 있고, 죄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미움의 대상입니다. 이런 고난을 견디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과의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하기 때문에 강한 영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의지나 노력만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고난을 감당하고 믿음을 갖게 하는 통로입니다. 믿음의 기도를 하는 사람은 세상을 이깁니다.
넷째,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42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십니다. 그 보다 친밀한 관계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십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이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 잔은 저주의 잔이요 고난의 잔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으시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저주를 받아서 죽었다고 몰아갔습니다. 그런데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는 말씀이 응하면서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인간이 고안해 낸 사형법 중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참혹한 것입니다. 이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예수님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그 자신이 죄인이 되셔서 사랑하는 아버지와 분리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통도 크지만 세상의 죄를 위하여 경험해야만 하는 하나님과의 완전한 분리가 더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인간을 버리실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대신 버리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죄인을 영접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감당하셔야만 합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기도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고 이에 순종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심으로써 고난의 잔을 마실 힘을 덧입으셨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한 능력을 얻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소원을 두고 일하십니다. 기도할 때 우리 마음에 기쁨이 있고 평강이 있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렵지만 자신의 뜻을 기쁨으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천사는 기도하는 예수님을 어떻게 돕습니까? 43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천사들은 하나님의 사자로 그의 명령을 수행하고 지상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서 파견되었습니다. 천사들이 우리의 영적 생활을 돕습니다. 천사가 돕자 예수님은 더욱 힘쓰고 애써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권면하십니다. 기도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기도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능력을 덧입는 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축복받는 통로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친교의 장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고난을 받기 싫어하고 또 힘들어 하는 우리가 어떻게 이 길을 갈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자 결심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고 결과적으로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2절을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분간하는 일이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길이 옳고 좋다는 것은 알지만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투쟁을 해야 합니다. 기도함으로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 앞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학생들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들을 준비를 시키십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제자 양성을 한다는 것이 고난입니다. 제자 양성이 생명을 살리는 길이고, 하나님이 주신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이 있지만 이 길을 가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예수님을 배우고 제자를 양성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키우는 일은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고 가장 보람 있는 일입니다. 또 이 일은 영원히 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지혜와 영적인 힘을 덧입고 제자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함으로 우리가 가야 할 사명의 길을 완주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간 기도의 사람 링컨 대통령에 대한 짧은 글을 소개하고 메시지를 마치겠습니다. 10세 어머니의 죽음, 20세 사랑하는 누나의 죽음, 23세 사업 실패, 24세 주의원 낙선, 25세 사업 실패, 27세 약혼자 죽음, 30세 의회 의장직 낙선, 32세 대통령 선거 위원 낙선, 36세 하원 의원 공천 탈락, 42세 사랑하는 다섯 살 난 아들 죽음, 47세 상원의원 낙선, 48세 부통령 낙선, 50세 상원의원 낙선, 53세 열 두살 아들의 죽음. 인생의 모든 시간들이 불행이 따라다닌 사람, 그의 이름은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링컨의 전기 작가는 그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링컨에게 위대한 사람이 될 만한 조건은 한 가지도 주시지 않으셨다. 다만 가난과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 만을 주셨을 뿐이다.”
링컨은 말했습니다. “사탄은 내가 실패할 때 마다 '이제 너는 끝장이다'라고 속삭였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실패할 때 마다 '이번 실패를 거울삼아 더 큰일에 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포기하고 좌절하기를 바라는 사단의 속삭임보다 뒤를 보지 말고 전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지요. 그리고 넘어진 자리에서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그는 거듭되는 실의와 불행을 통하여 겸손과 인내와 강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링컨은 성경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 부터 어머니의 기도소리에 친근해 있었던 링컨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기도하는 일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침이면 기도로 영혼의 호흡을 시작했으며 저녁이면 커튼을 닫듯이 기도로 하루의 일과를 마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야 말로 다른 어떤 일 보다 우선되는 일이며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도구라고 믿었고 그의 믿음대로 기도의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본문 누가복음 22:24-46
요절 누가복음 22:42
아버지의 원대로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고난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는 일을 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십니다. 그의 기도는 치열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내가 연약함으로 인해서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배우기 원합니다.
첫째, 섬기는 삶입니다. 제자들은 마지막 만찬에서 누가 그를 팔 것인가에 관심을 갖다가 누가 크냐하는 문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말씀을 듣고 불안해졌습니다. 서로 자신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처럼 큰 자가 어떻게 배신할 수 있는가”라는 분위기로 넘어가더니 “감히 나를 배신자의 대열에 넣을 수 있는가? 난 완전히 다르다. 최고로 큰 자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새 언약’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새 나라가 임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새 나라가 임하면 새로운 질서가 잡혀야 하고 새로운 서열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사람이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소원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방향이 권력을 잡음으로 그렇게 되고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권력의 속성은 인정을 받고 섬김을 받고 다른 사람을 누르고 지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위로 갈수록 자리가 적어지기 때문에 경쟁과 다른 사람의 희생이 따릅니다. 그런 기초 위에 국회의원만 되도 200가지 특권이 따라옵니다. 그러니 공천을 받지 못한 어른들이 공개석상에서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립니다. 권력의 맛을 본 사람들은 그것을 놓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서로 누가 크냐고 다투는 제자들에게 세상과 다른 가치관을 가르쳐주십니다. 25-2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예수님의 제자는 큰 자일수록 겸손하고 섬기는 자와 같아야 합니다. 제일 높은 사람은 제일 낮은 사람처럼 처신해야 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위대한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는 섬김을 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주되신 예수님이 섬김의 도를 실천하셨다면 그의 제자들 역시 더 나은 지위보다 섬김을 추구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돌보고 섬기듯이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요구하지 않고 형제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돌아보는 삶을 살아갑니다. 섬김의 태도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진정한 위대함을 실현하게 합니다. 위대함은 섬김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누구나 위대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많이 희생하고 섬기는 사람이 위대한 것입니다. 그는 섬김의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섬길 때 오는 내적인 기쁨을 알아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섬기기 위해서 아낌없이 주고 희생합니다. 그러면서도 기쁨이 있습니다. 만족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위대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에 기초한 섬김의 영향력이 크고 넓은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위대한 사람은 남에 대한 배려심이 있습니다. 특히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있습니다. 타인을 존중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 즉 교회의 일원입니다. 교회는 섬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둘째,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은 사람들에게 상급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8-30).”고 약속해주십니다. 제자들은 그 동안 수많은 위험과 고통, 시련들을 예수님과 함께 겪어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겪을 것입니다. 그들은 기꺼이 종이 되고자 하였고 복음의 메시지를 나누며 예수님의 권세를 통해 사람들을 치유했습니다. 제자들이 못난 짓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깊은 애정과 소망을 두고 계십니다. 앞으로 복음 사역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확장시킬 동역자로 보고 귀히 여기십니다. 살아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난을 함께 한 동역자들이 참으로 귀하고 귀합니다. 고난을 함께 한 사람들에게서 진정한 동지애를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랬듯이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십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이후에도 하나님 나라 확장 역사는 제자들을 통해서 계속될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감독들이 되고 성경 저자들이 되며 선교사가 되어 세계 각 곳으로 나아갑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다 같이 그들에게 약속된 종말적인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 언약 백성의 열두 지파를 다스리는 보좌에 앉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권위가 현재는 우리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시대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죽어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 우리가 가는 길에 어려움이 있지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달려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영원한 상급을 받고 누리기를 바랍니다.
셋째, 믿음을 위해 기도함으로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가운데 시몬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사탄이 제자들을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제자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십니다. 베드로에게는 특별히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 하라는 부탁을 하십니다. 이렇게 함으로 그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겪게 될 시험에서 속히 나올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사탄은 제자 공동체를 파괴하여 흩어버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심각한 시련을 이기고 믿음 위에 서도록 기도하십니다. 불 같은 시험을 받을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시험도 이기고 유혹도 이기고 사탄도 이길 수 있습니다. 시련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문제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때 믿음이 강해집니다. 또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고난을 받을수록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더욱 강해집니다. 새벽 기도를 하던지, 혼자서 하던지 믿음의 기도를 드릴 때 일상적인 삶 속에서 기적을 체험합니다. 믿음만 안 떨어지면 어떤 것이 와도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 양들을 위해서, 동역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환경이나 조건의 개선보다도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자 베드로는 주책도 없이 큰 소리를 칩니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33).” 그의 마음은 주님과 함께 고난도 받고 죽음까지도 함께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고난이 현실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멀리도 아니고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고 예수님은 베드로에 대해 예언하십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고난과 시련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기도로 시험의 때를 이길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준비를 시키십니까? 이제는 예전처럼 사람들에게 환대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를 스스로 돌봐야 합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시고 죽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가운데 제자들에게 검을 준비하라고 하심으로 구약 말씀을 성취하고자 하십니다.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자신에게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흉악범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죄인과 같이 되시고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신해 형벌을 받으시고 흉악한 죄인들을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져야 할 십자가의 고난을 담당하기 위해서 기도하러 나가십니다. 그는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셔서 거기서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평소에도 기도에 힘을 쓰셨는데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고는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벌여야 하는 우리에게는 필수적입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 사탄의 간교한 유혹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체포되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을 보면서 믿음을 잃어버리게 하고 예수님을 대적하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이 약해지고 넘어지기 쉽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만사형통해야 하고, 하는 일마다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제자로 서기를 기대합니다. 몇 년 만에 큰 부흥을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난의 종으로 구속역사를 완성하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조금 수고했는데 열매를 맺지 못했다고 해서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보통 300명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 명 일대일 양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 서너 명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양이 없다고 힘들어 하면 안 됩니다. 또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사람들의 배척과 조롱을 받을 때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의 영향 아래서 살고 있고, 죄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미움의 대상입니다. 이런 고난을 견디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과의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하기 때문에 강한 영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의지나 노력만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고난을 감당하고 믿음을 갖게 하는 통로입니다. 믿음의 기도를 하는 사람은 세상을 이깁니다.
넷째,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42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십니다. 그 보다 친밀한 관계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십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이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 잔은 저주의 잔이요 고난의 잔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으시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저주를 받아서 죽었다고 몰아갔습니다. 그런데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는 말씀이 응하면서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인간이 고안해 낸 사형법 중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참혹한 것입니다. 이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예수님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그 자신이 죄인이 되셔서 사랑하는 아버지와 분리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통도 크지만 세상의 죄를 위하여 경험해야만 하는 하나님과의 완전한 분리가 더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인간을 버리실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대신 버리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죄인을 영접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감당하셔야만 합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기도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고 이에 순종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심으로써 고난의 잔을 마실 힘을 덧입으셨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한 능력을 얻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소원을 두고 일하십니다. 기도할 때 우리 마음에 기쁨이 있고 평강이 있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렵지만 자신의 뜻을 기쁨으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천사는 기도하는 예수님을 어떻게 돕습니까? 43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천사들은 하나님의 사자로 그의 명령을 수행하고 지상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서 파견되었습니다. 천사들이 우리의 영적 생활을 돕습니다. 천사가 돕자 예수님은 더욱 힘쓰고 애써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권면하십니다. 기도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기도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능력을 덧입는 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축복받는 통로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친교의 장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고난을 받기 싫어하고 또 힘들어 하는 우리가 어떻게 이 길을 갈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자 결심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고 결과적으로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2절을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분간하는 일이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길이 옳고 좋다는 것은 알지만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투쟁을 해야 합니다. 기도함으로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 앞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학생들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들을 준비를 시키십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제자 양성을 한다는 것이 고난입니다. 제자 양성이 생명을 살리는 길이고, 하나님이 주신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이 있지만 이 길을 가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예수님을 배우고 제자를 양성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키우는 일은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고 가장 보람 있는 일입니다. 또 이 일은 영원히 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지혜와 영적인 힘을 덧입고 제자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함으로 우리가 가야 할 사명의 길을 완주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간 기도의 사람 링컨 대통령에 대한 짧은 글을 소개하고 메시지를 마치겠습니다. 10세 어머니의 죽음, 20세 사랑하는 누나의 죽음, 23세 사업 실패, 24세 주의원 낙선, 25세 사업 실패, 27세 약혼자 죽음, 30세 의회 의장직 낙선, 32세 대통령 선거 위원 낙선, 36세 하원 의원 공천 탈락, 42세 사랑하는 다섯 살 난 아들 죽음, 47세 상원의원 낙선, 48세 부통령 낙선, 50세 상원의원 낙선, 53세 열 두살 아들의 죽음. 인생의 모든 시간들이 불행이 따라다닌 사람, 그의 이름은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링컨의 전기 작가는 그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링컨에게 위대한 사람이 될 만한 조건은 한 가지도 주시지 않으셨다. 다만 가난과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 만을 주셨을 뿐이다.”
링컨은 말했습니다. “사탄은 내가 실패할 때 마다 '이제 너는 끝장이다'라고 속삭였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실패할 때 마다 '이번 실패를 거울삼아 더 큰일에 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포기하고 좌절하기를 바라는 사단의 속삭임보다 뒤를 보지 말고 전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지요. 그리고 넘어진 자리에서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그는 거듭되는 실의와 불행을 통하여 겸손과 인내와 강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링컨은 성경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 부터 어머니의 기도소리에 친근해 있었던 링컨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기도하는 일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침이면 기도로 영혼의 호흡을 시작했으며 저녁이면 커튼을 닫듯이 기도로 하루의 일과를 마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야 말로 다른 어떤 일 보다 우선되는 일이며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도구라고 믿었고 그의 믿음대로 기도의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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