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2년 누가복음 44강(22:1-23) 새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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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누가복음 제44강
본문 누가복음 22:1-23
요절 누가복음 22:20
새 언약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연약함과 이기심으로 인해서 약속을 해 놓고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아담과는 행위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아담은 이 언약을 지키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죄와 저주와 죽음의 선고를 받고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창3:15절에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 메시야를 보내사 인간을 구원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죄가 번성하여 노아 때에 홍수로 심판 하신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5).” 그리고 600년 후의 일을 말씀하시면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고 율례를 가르치셨습니다. 백성들은 그 말씀을 다 준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소를 잡아 번제와 화목제로 드리고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 24:8).”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언약을 지키지 못하자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새 언약을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 백성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피로써 그 백성과 새 언약을 맺으십니다. 기독교는 언약의 종교입니다. 그 만큼 약속을 중요시 여깁니다. 언약은 신뢰에 기초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이루어진 믿음으로 인해서 언약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이 시간 새 언약에 대해서 생각하며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유월절이 다가오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궁리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죄를 속하고 사람을 살려야 할 유월절에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일 것을 의논했습니다. 열 두 사도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뜻을 앞세운 사람입니다. 그는 말씀을 수없이 들었지만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무력하게 잡히실 것을 알고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말씀을 붙잡기보다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사탄의 똘마니가 되었습니다. 사탄이 들어가자 유다는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자기 스승의 동선을 알려주고 체포를 모의했습니다. 그들은 가룟 유다에게 돈을 주기로 언약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님을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았습니다. 사람이 돈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보다 자기의 생각을 앞세우고 주장하면 사탄에게 이용당하기 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삼킬 자를 찾아 우는 사자와 같이 이리저리 먹잇감을 찾고 있습니다.
드디어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 날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어 유월절을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 유월절에는 전 세계에서 100만 명 이상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기 때문에 방을 빌리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큰 다락방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은 유월절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유월절 만찬은 발효하지 않은 빵, 쓴 나물, 포도주, 그 밖의 다른 음식도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어린 양을 사서 준비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를 미리, 그리고 은밀하게 준비해 두셨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이 ‘007’ 작전처럼 보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때가 이르기 전에 미리 체포되는 것을 막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또 자신의 위치가 알려지면 사람들이 몰려와서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갖기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유월절의 어린 양이 되어야 함을 알리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포도주가 든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하시고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마신 포도주와 제자들이 마신 포도주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잔과 우리들의 잔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고난의 잔을 마십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는 잔은 예수님이 이루신 희생제물을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유월절 식사에서는 네 번에 걸쳐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성취되는 시기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미래의 회복을 위해 이 잔을 보류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이 기념 의식을 완성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는 찬송과 기쁨, 승리 속에서 축배를 들게 될 것입니다. 그 축제는 기쁘고 풍성할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에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면서 온전한 사랑을 누리며 하나 됨이 있을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떡을 떼어 먹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 떡이 자기의 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은 이 떡을 먹으면서 이제부터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준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성도들이 생명을 얻는 십자가를 뜻합니다. 즉 인류를 대신한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말합니다. 떡을 먹는 것은 구세주와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한 성도들이 받을 영적인 자양분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떡을 먹음으로 배가 불러 만족을 누리고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와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나의 죽음이 됩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의식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십니다. 유월절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것이라면 주님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죄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만찬이라고 부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성만찬에서 우리가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죄를 짓고 나서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피 흘림 즉 생명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죄 지은 사람이 제사장에게 희생제사를 드릴 짐승을 가져오면 그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여 죄를 고백하게 하심으로 죄의 전가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짐승을 죽여 피를 뿌림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 그 자체는 죄를 없애주지 못하기 때문에 짐승의 희생제사는 날마다 해마다 반복했습니다. 짐승의 피는 구원자로 오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셔서 짐승의 피 대신 죄없고 흠없는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죄사함의 기능을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피로써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즉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히 9:13-14).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이 새 언약을 통해서 오직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갑니다.
‘옛 언약’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그 피를 보고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겠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언약을 믿고 그대로 했을 때 그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언약을 믿고 그대로 한 사람은 살았고, 안 믿고 안 한 사람은 죽었습니다. 애굽의 장자와 짐승과 가축들의 첫 새끼 까지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장자들과 짐승과 가축의 첫 새끼까지 다 살았습니다. 똑 같은 이치가 적용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언약을 믿고 그대로 하면 영생을 얻습니다. 출애굽을 한 것처럼 죄의 형벌로부터 해방됩니다. 이 언약을 영접하면 새 언약의 효력이 임하게 됩니다. 영접하지 않으면 이 효력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을 때 그 핵심은 바로 이 새 언약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의 핵심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이 새 언약을 믿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의 언약, 유월절의 언약을 유대인만의 출애굽, 유대인과의 언약으로 그치지 않고 온 인류의 출애굽, 온 인류의 언약으로 끌어 올려주셨습니다.
새 언약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죄를 범하였을 때 이를 씻음 받는 방법에 대해서 사도 요한이 한 말씀을 기억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지은 죄를 고백할 때 주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많은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 나의 죄를 진실되게 회개하면 실타래 풀리듯이 일이 잘 풀려나갑니다. 회개하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회개할 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 속에서 죄사함에 대한 확신과 예수님과 하나됨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느끼건 느끼지 않건 상관없이 복음은 예수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기 때문에 효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다음날 또 떡을 달라고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6:53-58).”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의 죽으심이 나를 위한 죽음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예수님과의 연합이요 친밀한 교제를 가능하게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임재를 누리며 영적 교제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현재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그의 인도하심을 받고 위로를 받습니다.
살을 먹고 피를 흘리는 것은 예수님의 완전한 자기희생입니다. 그 희생은 절대적인 사랑에 기초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죄 사함은 값싼 것이 아닙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희생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많은 죄를 짓습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자신에게 질문하면 죄인 중의 괴수와 같습니다.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더럽고 누추하고 속물적이고 정욕적인 자신으로 인해서 절망이 됩니다. 나 자신을 주장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지만 나의 실제 삶은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나의 의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예수님이 이루신 은혜의 사역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죄의식을 심고 위축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자랑하면서 담대하게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1-37).” 하나님께서 나를 깨끗하게 하셨으니 믿음으로 이를 누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저주에서, 죄의 결박에서,심판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정죄와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배신할 자가 그의 열두 제자들 가운데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21-2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예수님의 피의 언약을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사탄이 들어가면 포도주를 마시고 빵을 먹으면서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을 믿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새 언약을 영접한다는 것은 주님의 은혜요 복입니다. 과거 유월절의 연속선 위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를 보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을 때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하게 됩니다. 현재적으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죄사함을 받은 기쁨과 확신과 능력을 덧입고 이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성결한 삶과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는 원천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믿음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음으로 믿음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된 형제자매들입니다. 우리의 공동체 속에서 성도 간의 친교가 깊고 풍성하게 이루어집니다. 미래적으로 볼 때 새 언약은 부활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소망 가운데 살게 합니다. 우리의 소망에 관한 비전을 다시 되새기게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질 어린 양의 잔치는 주님과 우리와 나누는 사랑의 친교를 생생하게 합니다. 우리가 이 새 언약의 은혜 속에서 강해져서 주님 오시는 날까지 복음을 힘써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것이 된 이 위대한 구원을 찬양합니다.
본문 누가복음 22:1-23
요절 누가복음 22:20
새 언약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연약함과 이기심으로 인해서 약속을 해 놓고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아담과는 행위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아담은 이 언약을 지키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죄와 저주와 죽음의 선고를 받고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창3:15절에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 메시야를 보내사 인간을 구원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죄가 번성하여 노아 때에 홍수로 심판 하신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5).” 그리고 600년 후의 일을 말씀하시면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고 율례를 가르치셨습니다. 백성들은 그 말씀을 다 준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소를 잡아 번제와 화목제로 드리고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 24:8).”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언약을 지키지 못하자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새 언약을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 백성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피로써 그 백성과 새 언약을 맺으십니다. 기독교는 언약의 종교입니다. 그 만큼 약속을 중요시 여깁니다. 언약은 신뢰에 기초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이루어진 믿음으로 인해서 언약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이 시간 새 언약에 대해서 생각하며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유월절이 다가오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궁리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죄를 속하고 사람을 살려야 할 유월절에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일 것을 의논했습니다. 열 두 사도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뜻을 앞세운 사람입니다. 그는 말씀을 수없이 들었지만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무력하게 잡히실 것을 알고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말씀을 붙잡기보다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사탄의 똘마니가 되었습니다. 사탄이 들어가자 유다는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자기 스승의 동선을 알려주고 체포를 모의했습니다. 그들은 가룟 유다에게 돈을 주기로 언약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님을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았습니다. 사람이 돈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보다 자기의 생각을 앞세우고 주장하면 사탄에게 이용당하기 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삼킬 자를 찾아 우는 사자와 같이 이리저리 먹잇감을 찾고 있습니다.
드디어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 날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어 유월절을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 유월절에는 전 세계에서 100만 명 이상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기 때문에 방을 빌리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큰 다락방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은 유월절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유월절 만찬은 발효하지 않은 빵, 쓴 나물, 포도주, 그 밖의 다른 음식도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어린 양을 사서 준비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를 미리, 그리고 은밀하게 준비해 두셨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이 ‘007’ 작전처럼 보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때가 이르기 전에 미리 체포되는 것을 막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또 자신의 위치가 알려지면 사람들이 몰려와서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갖기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유월절의 어린 양이 되어야 함을 알리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포도주가 든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하시고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마신 포도주와 제자들이 마신 포도주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잔과 우리들의 잔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고난의 잔을 마십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는 잔은 예수님이 이루신 희생제물을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유월절 식사에서는 네 번에 걸쳐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성취되는 시기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미래의 회복을 위해 이 잔을 보류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이 기념 의식을 완성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는 찬송과 기쁨, 승리 속에서 축배를 들게 될 것입니다. 그 축제는 기쁘고 풍성할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에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면서 온전한 사랑을 누리며 하나 됨이 있을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떡을 떼어 먹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 떡이 자기의 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은 이 떡을 먹으면서 이제부터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준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성도들이 생명을 얻는 십자가를 뜻합니다. 즉 인류를 대신한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말합니다. 떡을 먹는 것은 구세주와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한 성도들이 받을 영적인 자양분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떡을 먹음으로 배가 불러 만족을 누리고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와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나의 죽음이 됩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의식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십니다. 유월절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것이라면 주님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죄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만찬이라고 부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성만찬에서 우리가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죄를 짓고 나서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피 흘림 즉 생명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죄 지은 사람이 제사장에게 희생제사를 드릴 짐승을 가져오면 그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여 죄를 고백하게 하심으로 죄의 전가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짐승을 죽여 피를 뿌림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 그 자체는 죄를 없애주지 못하기 때문에 짐승의 희생제사는 날마다 해마다 반복했습니다. 짐승의 피는 구원자로 오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셔서 짐승의 피 대신 죄없고 흠없는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죄사함의 기능을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피로써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즉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히 9:13-14).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이 새 언약을 통해서 오직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갑니다.
‘옛 언약’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그 피를 보고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겠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언약을 믿고 그대로 했을 때 그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언약을 믿고 그대로 한 사람은 살았고, 안 믿고 안 한 사람은 죽었습니다. 애굽의 장자와 짐승과 가축들의 첫 새끼 까지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장자들과 짐승과 가축의 첫 새끼까지 다 살았습니다. 똑 같은 이치가 적용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언약을 믿고 그대로 하면 영생을 얻습니다. 출애굽을 한 것처럼 죄의 형벌로부터 해방됩니다. 이 언약을 영접하면 새 언약의 효력이 임하게 됩니다. 영접하지 않으면 이 효력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을 때 그 핵심은 바로 이 새 언약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의 핵심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이 새 언약을 믿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의 언약, 유월절의 언약을 유대인만의 출애굽, 유대인과의 언약으로 그치지 않고 온 인류의 출애굽, 온 인류의 언약으로 끌어 올려주셨습니다.
새 언약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죄를 범하였을 때 이를 씻음 받는 방법에 대해서 사도 요한이 한 말씀을 기억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지은 죄를 고백할 때 주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많은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 나의 죄를 진실되게 회개하면 실타래 풀리듯이 일이 잘 풀려나갑니다. 회개하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회개할 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 속에서 죄사함에 대한 확신과 예수님과 하나됨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느끼건 느끼지 않건 상관없이 복음은 예수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기 때문에 효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다음날 또 떡을 달라고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6:53-58).”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의 죽으심이 나를 위한 죽음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예수님과의 연합이요 친밀한 교제를 가능하게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임재를 누리며 영적 교제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현재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그의 인도하심을 받고 위로를 받습니다.
살을 먹고 피를 흘리는 것은 예수님의 완전한 자기희생입니다. 그 희생은 절대적인 사랑에 기초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죄 사함은 값싼 것이 아닙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희생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많은 죄를 짓습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자신에게 질문하면 죄인 중의 괴수와 같습니다.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더럽고 누추하고 속물적이고 정욕적인 자신으로 인해서 절망이 됩니다. 나 자신을 주장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지만 나의 실제 삶은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나의 의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예수님이 이루신 은혜의 사역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죄의식을 심고 위축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자랑하면서 담대하게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1-37).” 하나님께서 나를 깨끗하게 하셨으니 믿음으로 이를 누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저주에서, 죄의 결박에서,심판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정죄와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배신할 자가 그의 열두 제자들 가운데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21-2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예수님의 피의 언약을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사탄이 들어가면 포도주를 마시고 빵을 먹으면서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을 믿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새 언약을 영접한다는 것은 주님의 은혜요 복입니다. 과거 유월절의 연속선 위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를 보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을 때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하게 됩니다. 현재적으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죄사함을 받은 기쁨과 확신과 능력을 덧입고 이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성결한 삶과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는 원천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믿음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음으로 믿음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된 형제자매들입니다. 우리의 공동체 속에서 성도 간의 친교가 깊고 풍성하게 이루어집니다. 미래적으로 볼 때 새 언약은 부활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소망 가운데 살게 합니다. 우리의 소망에 관한 비전을 다시 되새기게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질 어린 양의 잔치는 주님과 우리와 나누는 사랑의 친교를 생생하게 합니다. 우리가 이 새 언약의 은혜 속에서 강해져서 주님 오시는 날까지 복음을 힘써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것이 된 이 위대한 구원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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