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19강(13:1-37)복음이 먼저 만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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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가복음 19강
말씀 | 마가복음 13:1-37
요절 | 마가복음 13:10
복음이 먼저 만국에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오늘 말씀은 역사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 세상 역사는 왕들, 대통령들이나 총리, 정치가들, 권세 잡은 사람들이 다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들이 일하는 배후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역사의 연구를 쓴 토인비 교수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역사가 굴러 가고 있음을 증거했습니다.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손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개입하시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파악하고 역사를 만드는 사람(History maker)으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때 그 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잊혀지고 마는 삶을 살게 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만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의 역사를 남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 역사는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까?
첫째, 세상은 종말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종말의 사건으로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이 성전 건물을 보고 놀라고 있는데 예수님은 이 큰 건물들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았지만 예수님은 썩어 있는 속을 보셨습니다. 성전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십니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성전의 지성소를 막고 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 마음 속에 들어와 거하십니다. 그래서 신자들의 몸이 성전이 됩니다. 말세에는 이런 신자들의 타락이 극심해집니다. 말세에 믿음이 있는 자를 보기가 어렵게 됩니다. 이름뿐인 신자들이 많아집니다. 말세에는 자기를 스스로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거짓 그리스도들이 많아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의 길에서 떠나게 됩니다.
왜 사람들이 미혹을 받습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말세에 난리와 난리의 소문, 전쟁 소식, 지진과 기근이 많아집니다. 사람들은 이런 재난 속에서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이때 두려운 마음으로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다가 거짓 그리스도들의 미혹에 넘어가게 됩니다. 최근에 자기를 참 아버지요 그리스도라고 부르던 문선명교주가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뉴스가 되었습니다. 이런 거짓 그리스도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분별하고 믿어야 합니다. 또 재난이 있다고 세상 끝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재난은 늘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재난의 강도가 높아갑니다. 재난의 빈도가 더 자주 일어나게 됩니다. 성경은 재난의 시작을 진통의 시작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산모는 산통이 시작되면 두렵지만 아이를 볼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해집니다. 그 아이가 남자일까 여자일까, 누구를 닮았을까, 장차 이 아이가 어찌 될까,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하는 소망으로 인해서 두려움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당하는 재난은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지만 그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져올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신부가 남편을 위해서 단장한 것 같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십니다. 그곳에는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심판을 통해서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재난 속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둘째, 멸망이 임박하면 적그리스도가 나타납니다. 14절을 보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멸망이 임박한 줄 알라고 했습니다. BC 168년 안티오쿠스가 성전 제단을 헐고 그곳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돼지 제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AD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는 성전을 보호하고자 했지만 로마군이 던진 불타는 나무토막으로 인해서 성전은 불타버렸습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것과 같은 달 같은 날, 태양력으로 하면 8월 30일 하나님의 심판의 불에 의해 완전히 타버렸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과 함께 110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1967년 엘톤 스산돌라베이는 사탄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사탄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이 너무 몰려들어 전부 수용할 수 없게 되어 회원권을 팔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1972년 6월 19일자 타임지는 잡신주의의 부흥이라는 주제와 사탄의 도래라는 부제를 표지에 내놓고 사탄 교회에 대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대신 사탄을 숭배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악이 더욱 창궐하게 됩니다. 악의 세력이 풀려나게 됩니다. 묻지마 살인 등 갈수록 사회는 흉악해지고 있습니다. 적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오는 이적을 행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전세계를 통치하고자 힘쓰게 됩니다.
17-19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지금 세계는 크고 작은 재난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갈등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20세기에 1,2차 세계 대전, 한국 동란, 이스라엘과 아랍 제국간의 전쟁, 중동전, 월남전, 걸프전, 중동의 혁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되었는데 민족간, 종교간, 부족간 분쟁은 심해지고 있습니다. 전쟁은 이제 국제전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지진의 발생 빈도는 이러합니다. 역사상 14세기에 137번의 지진, 15세기에는 174번, 16세기에는 253번, 20세기에는 2250번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20).” 신자들도 견디기 어려운 환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해서 그 날들을 감하셨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우리는 이런 재난의 때, 어떤 미혹들이 있습니까?
믿음으로 사는데 삶의 변화가 더디면 신앙생활에 회의가 들어옵니다. 구원파들은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되면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해 주셨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면서 구원의 확신을 누리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갓 태어난 아이가 지속적으로 영적인 성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나야 할 뿐만 아니라 영적인 성장을 해야 합니다. 이와 반대로 큰 믿음 교회는 성화를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이 영적인 변화가 없으면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신자들 중에 지옥 갈 사람이 많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칭의 교리를 무시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된 사람을 하나님은 그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갈수록 영적인 상태가 혼란스럽습니다. 미혹하는 자들의 논리는 갈수록 더욱 교묘해져갑니다. 미혹하는 자들은 신자들의 약점을 잘 알고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그러므로 재난의 때에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말씀을 그대로 믿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사탄의 시험 앞에 예수님이 말씀을 굳게 붙잡고 물리치셨던 것처럼 어려울 때 일수록 이적과 기사를 좇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영들을 분별해야 합니다.
셋째, 또 복음 전파에 힘을 써야 합니다. 제자들은 핍박을 받아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게 됩니다. 이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기회입니다. 우리는 평안한 때에 복음을 더욱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1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우리는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성경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신 사건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사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환난 가운데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자신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복음은 재난을 받을 때에 더욱 힘있게 그 능력을 발휘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어둡고 우울하고 낙담하게 하고 절망하게 만들지만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이 모든 문제 속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사방팔방으로 우겨 싸는 문제들을 차고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복음을 체험한 사람은 주님과 함께 삽니다. 모든 어려움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알고 있기에 여유를 가지고 문제들을 받아들입니다. 복음은 주일에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그 능력을 나타냅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은 아내의, 남편의, 자녀의, 양들의 문제 속에서 일하시는 주님을 봅니다. 이 세상 역사를 움직이시는 공의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지금 213개 국가 중에서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국가는 없습니다. 북한, 중국, 쿠바,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에도 복음이 들어가 있습니다. 또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족의 언어는 6850여개인데 그 중에서 성경이 번역되지 않은 언어는 2250여개입니다. 이 나라들을 위해서 2025년까지 성경 번역 작업이 시작되도록 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모든 종족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고 모든 나라에 복음이 증거되었다는 사실은 주님의 재림이 매우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영적인 어두움에 질식당하고 있습니다. 주일예배를 드리고 모임에도 열심히 참석하는데 복음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분위기를 따라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 속에 주님이 함께 하시고 자신을 돕고 계시고 훈련하시고 사랑하시는 사실을 알지 못하여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복음이 없이 도덕적인 신앙 생활, 복음이 없는 치료, 복음이 없는 이론적인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또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한데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또 복음을 알도록 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정말 복음을 아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온다고 해도 한 사람에게라도 더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면서도 강도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루살렘에 있던 초대 교회는 핍박을 받아 흩어졌지만 가는 곳마다 신자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북한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자 많은 신자들과 목회자들이 남한으로 내려와서 복음을 전했고 우리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영적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복음을 받은 어린 교회였지만 중국 산둥 성에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그런 선교 유전인자를 받은 우리는 열심히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종말적인 사건과 재림 사이는 교회가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는 시기입니다. 이방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오기 전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연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 오래 참으십니다. 한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천국에서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적극적인 자세는 복음을 알고 또 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그 주류는 구속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를 주도하는 사람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아무런 타이틀도 없이 복음을 전하지만 역사 창조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일이 어렵다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렵기 때문에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또 복음 역사에 헌신하는 분들은 우리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쓰임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겨버리시고 다른 사람을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미국에 이어 선교사 파송 2위 국가가 되게 하셨습니다. 런던 올림픽에서 5위를 하게 하시고 경제 규모는 10위의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지능지수는 세계 2위의 국가로 축복하셨습니다. 이렇게 잘 살고 똑똑하고 강하게 되었는데 국가의 행복지수는 178개국 중에서 102번째입니다. 삶의 질은 높아졌는데 행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행복해 지는 길은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서의 정체성을 굳게 붙잡고 복음을 알고 전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는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성령께서 우리에게 할 말을 주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 주사 담대히 또 지혜롭게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가장 깊게 성령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영적 전투의 최전방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지원과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우리 신자들은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복음을 전하고 나면 가장 행복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성경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면 천하를 얻은 것처럼 기쁩니다. 세상에서 가장 기쁨이 충만한 사람은 선교사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크리스천은 영적으로 가장 건강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배척하고 때로는 상처를 줍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 속에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미움을 받을 것이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인내가 믿음입니다.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 중심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고난의 의미를 새겨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 낙오됨이 없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환난 후에 우주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고 했습니다(24,25). 하늘의 천체들이 질서를 완전히 잃어버립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 사방에서 모으십니다. 예수님의 구원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때를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 같이 위에 말한 징조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속히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의 우주적인 대 변혁을 말하지 않더라도 하나님 나라에 가는 날이 하루하루 더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때를 알 수 없지만 하루 하루 더 가까이 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발자국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함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말은 잠을 자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잠을 자더라도 주인이 올 때 얼른 일어나서 주인을 맞이하면 됩니다. 즉 영적인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1-14).”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함으로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일용할 양식을 매일 먹는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고 교제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위기의식을 줍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를 일깨워줍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때를 따라서 양식을 맡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깨어 있는 생활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기도함으로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즉각 반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각자 맡은 바 일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이 깨어 있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이 오신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것은 깨어 있는 생활이 아닙니다.
주님이 언제 올는지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그가 홀연히 와서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새벽 기도 인도를 맡은 종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언제 양식 인도를 맡았는지를 모르고 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적인 안일로 인해 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말씀을 준비하다가 긴장이 되어 꿈에서 메시지를 잃어버리고 허둥대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말씀을 새벽까지 잘 준비해놓고 일어나지 못하여 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든 맡은 자들로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세상을 사랑함으로 영혼의 잠을 자는 사람들은 롯의 아내와 같이 갑자기 망하게 될 것입니다. 가을 학기를 맞이하여 주님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한 일에 열심을 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마가복음 13:1-37
요절 | 마가복음 13:10
복음이 먼저 만국에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오늘 말씀은 역사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 세상 역사는 왕들, 대통령들이나 총리, 정치가들, 권세 잡은 사람들이 다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들이 일하는 배후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역사의 연구를 쓴 토인비 교수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역사가 굴러 가고 있음을 증거했습니다.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손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개입하시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파악하고 역사를 만드는 사람(History maker)으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때 그 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잊혀지고 마는 삶을 살게 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만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의 역사를 남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 역사는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까?
첫째, 세상은 종말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종말의 사건으로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이 성전 건물을 보고 놀라고 있는데 예수님은 이 큰 건물들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았지만 예수님은 썩어 있는 속을 보셨습니다. 성전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십니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성전의 지성소를 막고 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 마음 속에 들어와 거하십니다. 그래서 신자들의 몸이 성전이 됩니다. 말세에는 이런 신자들의 타락이 극심해집니다. 말세에 믿음이 있는 자를 보기가 어렵게 됩니다. 이름뿐인 신자들이 많아집니다. 말세에는 자기를 스스로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거짓 그리스도들이 많아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의 길에서 떠나게 됩니다.
왜 사람들이 미혹을 받습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말세에 난리와 난리의 소문, 전쟁 소식, 지진과 기근이 많아집니다. 사람들은 이런 재난 속에서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이때 두려운 마음으로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다가 거짓 그리스도들의 미혹에 넘어가게 됩니다. 최근에 자기를 참 아버지요 그리스도라고 부르던 문선명교주가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뉴스가 되었습니다. 이런 거짓 그리스도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분별하고 믿어야 합니다. 또 재난이 있다고 세상 끝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재난은 늘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재난의 강도가 높아갑니다. 재난의 빈도가 더 자주 일어나게 됩니다. 성경은 재난의 시작을 진통의 시작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산모는 산통이 시작되면 두렵지만 아이를 볼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해집니다. 그 아이가 남자일까 여자일까, 누구를 닮았을까, 장차 이 아이가 어찌 될까,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하는 소망으로 인해서 두려움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당하는 재난은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지만 그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져올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신부가 남편을 위해서 단장한 것 같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십니다. 그곳에는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심판을 통해서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재난 속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둘째, 멸망이 임박하면 적그리스도가 나타납니다. 14절을 보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멸망이 임박한 줄 알라고 했습니다. BC 168년 안티오쿠스가 성전 제단을 헐고 그곳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돼지 제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AD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는 성전을 보호하고자 했지만 로마군이 던진 불타는 나무토막으로 인해서 성전은 불타버렸습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것과 같은 달 같은 날, 태양력으로 하면 8월 30일 하나님의 심판의 불에 의해 완전히 타버렸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과 함께 110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1967년 엘톤 스산돌라베이는 사탄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사탄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이 너무 몰려들어 전부 수용할 수 없게 되어 회원권을 팔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1972년 6월 19일자 타임지는 잡신주의의 부흥이라는 주제와 사탄의 도래라는 부제를 표지에 내놓고 사탄 교회에 대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대신 사탄을 숭배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악이 더욱 창궐하게 됩니다. 악의 세력이 풀려나게 됩니다. 묻지마 살인 등 갈수록 사회는 흉악해지고 있습니다. 적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오는 이적을 행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전세계를 통치하고자 힘쓰게 됩니다.
17-19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지금 세계는 크고 작은 재난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갈등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20세기에 1,2차 세계 대전, 한국 동란, 이스라엘과 아랍 제국간의 전쟁, 중동전, 월남전, 걸프전, 중동의 혁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되었는데 민족간, 종교간, 부족간 분쟁은 심해지고 있습니다. 전쟁은 이제 국제전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지진의 발생 빈도는 이러합니다. 역사상 14세기에 137번의 지진, 15세기에는 174번, 16세기에는 253번, 20세기에는 2250번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20).” 신자들도 견디기 어려운 환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해서 그 날들을 감하셨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우리는 이런 재난의 때, 어떤 미혹들이 있습니까?
믿음으로 사는데 삶의 변화가 더디면 신앙생활에 회의가 들어옵니다. 구원파들은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되면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해 주셨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면서 구원의 확신을 누리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갓 태어난 아이가 지속적으로 영적인 성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나야 할 뿐만 아니라 영적인 성장을 해야 합니다. 이와 반대로 큰 믿음 교회는 성화를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이 영적인 변화가 없으면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신자들 중에 지옥 갈 사람이 많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칭의 교리를 무시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된 사람을 하나님은 그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갈수록 영적인 상태가 혼란스럽습니다. 미혹하는 자들의 논리는 갈수록 더욱 교묘해져갑니다. 미혹하는 자들은 신자들의 약점을 잘 알고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그러므로 재난의 때에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말씀을 그대로 믿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사탄의 시험 앞에 예수님이 말씀을 굳게 붙잡고 물리치셨던 것처럼 어려울 때 일수록 이적과 기사를 좇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영들을 분별해야 합니다.
셋째, 또 복음 전파에 힘을 써야 합니다. 제자들은 핍박을 받아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게 됩니다. 이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기회입니다. 우리는 평안한 때에 복음을 더욱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1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우리는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성경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신 사건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사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환난 가운데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자신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복음은 재난을 받을 때에 더욱 힘있게 그 능력을 발휘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어둡고 우울하고 낙담하게 하고 절망하게 만들지만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이 모든 문제 속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사방팔방으로 우겨 싸는 문제들을 차고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복음을 체험한 사람은 주님과 함께 삽니다. 모든 어려움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알고 있기에 여유를 가지고 문제들을 받아들입니다. 복음은 주일에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그 능력을 나타냅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은 아내의, 남편의, 자녀의, 양들의 문제 속에서 일하시는 주님을 봅니다. 이 세상 역사를 움직이시는 공의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지금 213개 국가 중에서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국가는 없습니다. 북한, 중국, 쿠바,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에도 복음이 들어가 있습니다. 또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족의 언어는 6850여개인데 그 중에서 성경이 번역되지 않은 언어는 2250여개입니다. 이 나라들을 위해서 2025년까지 성경 번역 작업이 시작되도록 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모든 종족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고 모든 나라에 복음이 증거되었다는 사실은 주님의 재림이 매우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영적인 어두움에 질식당하고 있습니다. 주일예배를 드리고 모임에도 열심히 참석하는데 복음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분위기를 따라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 속에 주님이 함께 하시고 자신을 돕고 계시고 훈련하시고 사랑하시는 사실을 알지 못하여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복음이 없이 도덕적인 신앙 생활, 복음이 없는 치료, 복음이 없는 이론적인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또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한데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또 복음을 알도록 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정말 복음을 아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온다고 해도 한 사람에게라도 더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면서도 강도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루살렘에 있던 초대 교회는 핍박을 받아 흩어졌지만 가는 곳마다 신자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북한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자 많은 신자들과 목회자들이 남한으로 내려와서 복음을 전했고 우리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영적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복음을 받은 어린 교회였지만 중국 산둥 성에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그런 선교 유전인자를 받은 우리는 열심히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종말적인 사건과 재림 사이는 교회가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는 시기입니다. 이방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오기 전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연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 오래 참으십니다. 한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천국에서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적극적인 자세는 복음을 알고 또 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그 주류는 구속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를 주도하는 사람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아무런 타이틀도 없이 복음을 전하지만 역사 창조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일이 어렵다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렵기 때문에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또 복음 역사에 헌신하는 분들은 우리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쓰임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겨버리시고 다른 사람을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미국에 이어 선교사 파송 2위 국가가 되게 하셨습니다. 런던 올림픽에서 5위를 하게 하시고 경제 규모는 10위의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지능지수는 세계 2위의 국가로 축복하셨습니다. 이렇게 잘 살고 똑똑하고 강하게 되었는데 국가의 행복지수는 178개국 중에서 102번째입니다. 삶의 질은 높아졌는데 행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행복해 지는 길은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서의 정체성을 굳게 붙잡고 복음을 알고 전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는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성령께서 우리에게 할 말을 주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 주사 담대히 또 지혜롭게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가장 깊게 성령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영적 전투의 최전방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지원과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우리 신자들은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복음을 전하고 나면 가장 행복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성경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면 천하를 얻은 것처럼 기쁩니다. 세상에서 가장 기쁨이 충만한 사람은 선교사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크리스천은 영적으로 가장 건강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배척하고 때로는 상처를 줍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 속에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미움을 받을 것이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인내가 믿음입니다.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 중심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고난의 의미를 새겨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 낙오됨이 없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환난 후에 우주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고 했습니다(24,25). 하늘의 천체들이 질서를 완전히 잃어버립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 사방에서 모으십니다. 예수님의 구원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때를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 같이 위에 말한 징조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속히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의 우주적인 대 변혁을 말하지 않더라도 하나님 나라에 가는 날이 하루하루 더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때를 알 수 없지만 하루 하루 더 가까이 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발자국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함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말은 잠을 자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잠을 자더라도 주인이 올 때 얼른 일어나서 주인을 맞이하면 됩니다. 즉 영적인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1-14).”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함으로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일용할 양식을 매일 먹는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고 교제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위기의식을 줍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를 일깨워줍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때를 따라서 양식을 맡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깨어 있는 생활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기도함으로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즉각 반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각자 맡은 바 일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이 깨어 있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이 오신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것은 깨어 있는 생활이 아닙니다.
주님이 언제 올는지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그가 홀연히 와서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새벽 기도 인도를 맡은 종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언제 양식 인도를 맡았는지를 모르고 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적인 안일로 인해 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말씀을 준비하다가 긴장이 되어 꿈에서 메시지를 잃어버리고 허둥대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말씀을 새벽까지 잘 준비해놓고 일어나지 못하여 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든 맡은 자들로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세상을 사랑함으로 영혼의 잠을 자는 사람들은 롯의 아내와 같이 갑자기 망하게 될 것입니다. 가을 학기를 맞이하여 주님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한 일에 열심을 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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