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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15강(10:17-31) 영생을 얻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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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13회 작성일 12-07-22 14:30

본문

2012년 마가복음 제 15 강
말씀 | 마가복음 10:17-31
요절 | 마가복음 10:21
 영생을 얻으려면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인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허무함을 느낍니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고 죽음으로 인해서 남는 것이 없게 된다는 사실에 부딪치게 됩니다. 삶의 공허 속에서 쾌락과 타협하기도 하고, 하나님 앞에 자기를 돌아보면서 영생을 얻고자 합니다. 진시황은 영생을 얻고자 신하들을 보내어 불로초를 찾아오도록 했지만 돌아온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찾아서 자기가 먹고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도 찾지 못해서 그냥 돌아가면 목숨이 날아갈 것이 두려워 돌아오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진시황은 57세에 죽었습니다. 중국인들은 현세와 내세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황릉에 인형들로 어마어마한 지하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솔로몬도 왕으로서 모든 부와 존귀를 누렸습니다. 사업을 크게 하고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과 수목을 심었습니다. 남녀 노비를 사기도 하고 종들을 낳기도 하고 그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소와 양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습니다. 은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자기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기쁨조들을 많이 두었습니다. 그가 이같이 창성하여 그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였고 지혜도 여전하였습니다. 무엇이든지 그 눈이 원하는 것을 그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그 마음에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모든 수고를 기뻐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가 생각해 본즉 그 손으로 한 모든 일과 그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 무익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왕들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심지어 어린 아이들도 인생의 허무함을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허무함으로 인해서 태어나면서부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인생을 조소하기도 하고, 괴로워서 생각하지 않고 그냥 즐기기도 합니다. 이 땅에서 헛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영생은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청년은 부자였고 관원이었고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사람인데 부와 권세를 소유했고 진지한 자세로 영생을 추구하는 것을 볼 때 혼기를 맞이한 딸 가진 아줌마들은 당장 사위를 삼고 싶었을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이 청년은 길에서 다급하게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는 세상에서 성공을 했지만 심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는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속을 썩이며 재물을 모았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고생고생했는데 돈을 모으게 되니 이제는 지키는 것이 더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그는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다보니 바르게 쓰는 기쁨을 몰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영생을 선한 일의 대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사람들은 선한 일을 많이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선한 일을 통해서 나의 죄를 상쇄시키면 이름도 남고 영생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내가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가? 과학적인 발전을 통해서 인류에 봉사하자는 목표를 정했습니다. 그것도 나의 이기적인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어떤 선을 행해야 하느냐는 청년의 질문에 무엇이라 답변을 하셨습니까? 18,1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죄인이고 의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이 계명들에 대한 해석을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입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죄입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내는 것도 죄입니다. 논문 표절도 죄이고, 불법 소프트웨어를 쓰는 것도 죄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계명들을 대충 생각해보아도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아도 죄인데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얼마다 시커먼 죄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으로서 가장 깨끗하다고 하는 속죄하는 대제사장의 모습을 보고도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마포 옷을 입고 아름다운 대제사장 복장을 벗어야 할 더러운 옷이라고 하십니다(스가랴 3:1-4).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될 때 슬퍼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구원자를 갈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서 이런 자세를 기대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태도가 무엇입니까? 그는 당당하게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율법을 지키고 선하게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보시고 사랑스러우셨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를 도우십니다. 21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는 상대적인 선을 말했다면 예수님은 절대적인 선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 잘했다고 말하는 그에게 부족한 한 가지를 지적하셨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하늘에서 보화가 그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와서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지하게 영생을 얻는 길을 물은 그에게 인격적으로 적절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지키면 영생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는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하나님의 선 곧 절대 선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적 선을 내세우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인간의 선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청년이 선을 행했다고 했을 때 다른 사람에 비교해서 조금 나을 뿐이지, 절대 선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을 실천하라고 할 때 그는 자신의 무력함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선한 행위로 영생을 얻으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입니다. 십계명은 우리 행동의 지침이요, 삶의 방향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계명에 순종하는 자는 살리라는 구약의 가르침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겔33:15).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정말 정확히 지키면 그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도 바울의 절규대로 계명을 다 지킬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2-24).”라고 고백합니다.

  루터도 “만일 계명을 지킨 것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신일 것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과 죄의식을 느끼며 죄인인 자신으로 인해 절망했습니다. 정말 계명을 지키고자 하면 다 지킬 수 없는 죄악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구원의 길을 찾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대개 의지가 연약한 것, 건강이 좋지 않은 것, 시간이 없는 것 등을 나에게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의지가 연약해서 주님을 더욱 믿게 됩니다. 죄에 반복해서 넘어지는 연약한 자신으로 인해서 주님을 붙들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으니 몸으로 뛰기보다 기도하는 일에 더욱 힘쓰고 동역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단점이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장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영생을 얻는데 방해가 된 것은 많은 재물이었습니다. 많은 재물은 보통 사람들이 일생 누려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부자가 되면 하나님께 복 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를 많이 소유한 그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믿고 의지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이 저희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람의 관점이 달랐습니다.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을 믿는 데 방해가 되는 분이 있습니다. 에너지가 넘쳐서 행동이 앞서다보니 겸손히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이 방해가 되지는 않습니까? 그런 분은 에너지를 다스려야 합니다. 나의 장점이 예수님을 믿는데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부요함이 영생을 얻는데 방해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단점을 능히 감당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주님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는 인격이시기에 기다리며 버려둘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의 보화를 누릴 수 있는 전제는 세상의 보화를 팔 수 있는 믿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 청년에게 있어서 그가 결코 포기할 수 없고 팔 수 없다고 여긴 세상의 보화는 재물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장래에 대한 어떤 꿈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헛된 자존심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결혼에 대한 꿈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만 아는 반복되는 죄악된 습관으로 인해서 영생을 누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살고자 하고 영적인 소망도 갖고 있지만, 이것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여기는 개인적인 보화가 있습니다. 그것을 움켜쥐고 있는 한 그 사람의 내면은 늘 근심하며 스피릿 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영적인 생명과 하늘의 평강과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세상 보화는 움켜잡고 긁어모을 때 얻을 수 있지만 하늘의 보화는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시간을 드릴 때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열심히 나누어 줄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고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 받고자 힘을 썼습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 중에 주님을 믿고 따르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버리고 주님을 따름으로 영생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영생을 얻는 길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의 본질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많은 재물이 있었습니다. 그가 가진 재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고 사랑을 실천했다면 기쁨이 충만하고 만족했을 것입니다. 영생을 누렸을 것입니다. 하늘 보화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큰 힘이 되어야 할 재물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그로 하여금 재물을 팔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하늘 보화보다 세상의 보화를 택했습니다.
 
  세상 재물보다 귀한 것은 하늘 보화입니다. 하늘 보화를 얻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궁극적으로 영생을 얻는 길은 예수님을 따르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버리고 그를 따르는 것입니다. 세상 재물을 버려도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시고 영생 얻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15,16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5: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영생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하시고 말씀을 듣는 귀를 열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지만 그는 세상의 보화를 선택했습니다.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람이 거듭나야 믿을 수 있습니다. 믿음에 나의 선행을 더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내가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대신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그를 믿고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력으로 또는 선행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예수님은 그에게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는 그가 선을 행할 수 없음을 깨닫고 오직 예수님을 믿고 따르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첫 번째 목적입니다.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이라야 진정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아직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믿지도 못하고 선을 행하지도 못합니다. 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도록 말씀으로 도우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의지했고 영생보다 재물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행해야 할 줄을 알지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도다(23).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5).” 제자들이 놀라 서로 말했습니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7).” 구원은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부자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재물에 대한 소망을 버리고 믿음을 갖게 됩니다. 구원 역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에 대해서 탐심이 많고 그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가난한 자는 부자보다 버리기가 훨씬 쉬울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이 복음을 쉽게 영접하고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부자들 중에 세상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천국으로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영생을 얻은 것으로 착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들은 죽음 앞에 절망하고 지옥의 고통을 영원히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을 버린 사람의 복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백배의 복을 받고 영생을 누립니다. 물론 그에게 핍박도 따릅니다. 그러나 영생의 기쁨은 그런 핍박을 능가합니다. 우리 중에도 세상에 있는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분들은 풍성한 생명을 누립니다.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풍요하고 기쁨이 있습니다. 삶이 힘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배와 그물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가 누린 행복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베드로후서 1:3,4절을 보면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10,11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영생의 복은 미래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현재 하나님이 주십니다. 백배나 주십니다. 주님께 드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베푸는 삶이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더 넘치도록 주십니다. 이런 복을 누리며 사는 분들이 진정한 크리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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