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012년 막 14강(9:30-50) 첫째가 되려면
페이지 정보

본문
2012년 봄 마가복음 14강
말씀 | 마가복음 9:30-50
요절 | 마가복음 9:35
첫째가 되려면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누가 크냐고 다투는 것을 아셨습니다. 제자들은 고난 없는 영광을 바라며 높아지려고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진정으로 위대한 삶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서 탁월했던 지도자들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전요한 목자님은 “다 UBF를 떠날지라도 나는 끝까지 남아서 UBF를 지키겠다.”고 말씀하셨던 분입니다. 그는 결국 한국 대표가 되었고 세계 총재의 직분을 맡아서 이를 훌륭하게 마치셨습니다. 그는 학생 시절 신발장 정리를 하고 어려운 형제들을 심방하여 권면하고 회복시키는 일을 도맡아서 했다고 합니다. 대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말도 어눌하고 의사의 길을 가고자 하는 그를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배사라 선교사님은 겸손하고 심정이 있는 그를 한국 대표로 세우셨습니다. 그는 전국 UBF의 주일 예배가 650명대 일 때 이를 맡아서 10000명의 주일 예배로 성장을 시키는데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교회와 선교 단체를 포함하여 선교사 파송 1위를 하도록 리더십을 발휘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을 불러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뭇 사람의 끝이 된다는 것은 맨 뒤에 남아서 책임을 진다는 뜻이 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은 상황이 어려우면 자기가 살기 위해서 먼저 치고 나갑니다. 상황 파악을 빨리 하고 손해가 될 만하면 짐을 싼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충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공동체와 함께 남아서 끝까지 책임을 지고 가는 사람이 동료들의 인정을 받고 첫째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마음에 공동체는 자기의 분신과 같습니다. 자기 한 몸을 희생해서라도 주의 몸 된 교회를 살리고자 합니다. 사람이 앞에 서면 문제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맨 끝에 서서 보게 되면 문제가 잘 보입니다. 그러니 뭇 사람의 끝이 되는 사람이 해결사가 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의 성품은 무엇입니까?
첫째, 겸손. 뭇 사람의 끝이 된다는 것은 가장 겸손한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온유합니다. 민수기 12:3절에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300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 하여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광야 생활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과 원망을 수없이 하여 그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대적할 때마다 그는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는 이들을 일생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육했습니다. 여러 모양의 사람들을 품고 감당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온유해야 합니다.
이렇게 온유하던 모세가 신광야 므리바에서 물이 없다고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했는데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이 나오게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민 20:24). 지도자가 화를 내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지도자가 한번 기분 좋게 화를 내고 그 직분을 그만두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미국 의회에서는 의원이 토론을 하다가 화를 내면 절대로 의원직을 계속할 수 없다고 합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자기 통제가 되지 않는 사람이 최고 지도자의 위치에 있게 되면 위기의 순간에 감정대로 일을 처리하여 공동체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화가 난다고 이혼해 버리고, 화가 난다고 직장을 그만 두어 버리고, 화가 난다고 죽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지도자로서 공동체를 이끌 수 없습니다.
뭇 사람의 끝이 되는 사람은 화가 나도 묵묵히 감당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뿐만 아니라 인간의 죄성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화가 날 때 이를 잘 참으면 화가 변하여 복이 됩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유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더 배리 선교사님은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함께 UBF를 설립하시고 개척 역사를 열심히 섬기셨습니다. 그러자 리더들이 서게 되고 그들이 모든 일들을 감당하였습니다. 자신은 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는 한 동안 자신의 존재의미를 느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있으나 없는 듯이 살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셨습니다.
둘째, 섬김. 예수님은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뭇 사람을 섬기는 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을 말합니다. 지도자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는 시끄럽고 끊임없이 섬기고 감당해주어야 합니다. 당장 유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린 아이 같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길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멀리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면 내 주위에 있는 어린 아이들,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주 가까이 계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섬김에 대해서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영광과 특권을 버리시고 이 땅에 낮아져 오셨습니다. 그리고 일생 죄인들을 사랑하사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최후로 자기의 목숨까지도 십자가 위에서 버리심으로 우리를 죄로부터 속량해주셨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짐인 죄의 짐을 벗겨주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가장 희생적인 사랑의 모범입니다. 지도자에게 권력이 주어지고 특권이 주어지는 것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섬기라고 주는 것입니다. 사람을 섬기는 것의 기본 마음가짐은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노래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아무 유익도 없다고 강조합니다. 사람은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맛본 사람은 다른 사람을 희생적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의 마음에 부어집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 양화진 선교사 묘지가 있다면 광주에는 양림동 선교사 묘지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22명의 선교사 묘가 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서서평선교사(Elisabeth J. Shepping, 1880-1934)입니다. 서서평선교사는 1912년 32살 처녀 간호사로 한국에 와서 22년 동안 독신으로 선교했습니다. 당시 전남의 인구가 220만이었는데 굶주리는 인구가 88만명, 거지 숫자가 11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서서평선교사는 일 년에 100일 정도를 주로 말을 타고 다니면서 전남북, 제주도를 다니면서 병자들을 돕고,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녀의 일기장에 보면 “한 달에 약 500명의 여인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대부분 병들고, 소박맞고 쫓겨나고, 다른 고통으로 앓고 있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에 여인들은 이름도 없어서, ‘큰년이’ ‘작은년이’ ‘개똥어멈’ 그랬습니다. 그처럼 버려지고 천대받은 여인들에게 이름을 일일이 지어주고,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일학교를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배사라 선교사님이 그 이일학교의 교장을 지내셨습니다. 특히 서서평선교사는 나병환자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들을 헌신적으로 도왔습니다. 죽은 나환자의 자녀들을 양아들, 딸로 삼아서 14명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소박맞고 오갈 데 없는 미망인 38명도 함께 데리고 살았습니다. 푸른 눈의 서양선교사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된장국을 먹으며, 병자들을 돌보고 있는 모습이 그녀의 평소 모습이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헌신적으로 병든 자들을 섬기다가, 53세의 나이에 장염과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죽을 때 유언은 자신의 시신을 해부용 연구 자료로 삼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심지어는 자신의 시신까지 다 조선의 양떼들에게 내어주고 하나님 나라로 갔습니다. 그녀의 장례식은 광주시민장으로 치렀는데, 수많은 나병환자들과 광주의 걸인들이 “어머니” “어머니”하고 울부짖으며 그 뒤를 따랐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유품을 정리하면서 보았더니 그녀의 침대 밑에 이런 좌우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Not success, But service(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셋째, 절제력. 뭇 사람의 끝이 되는 사람은 절제력이 뛰어납니다. 탁월한 지도자들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이들의 뛰어난 절제력입니다. 자기 통제, 자기 훈련이 매우 잘 되어 있습니다. 그 만큼 자기 부인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절제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마음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후반부에서 지도자가 죄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43-47).” 지도자의 작은 죄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지도자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보고 있는 수많은 눈들을 의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살피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혼자 있을 때 더욱 그리해야 합니다.
뭇 사람의 끝이 되는 사람은 절제력이 뛰어나다고 했는데 이는 죄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가 되면 유혹이 많습니다. 성공했을 때 이를 자기 영광으로 돌리고자 하는 유혹이 있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영광을 가로채어 자기 것으로 선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뭇 사람의 끝이 되는 사람은 공을 부하들에게, 동료들에게 돌릴 수 있습니다. 뭇 사람의 끝에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떠받듭니다. 그러니 원수가 별로 없습니다. 사람들은 앞에 선 사람을 공격하지, 끝에 있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물론 끝에 있는 사람을 무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뭇 사람의 끝이 된 사람은 사람들의 무시에 결코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또 그런 무시를 하찮게 여기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더 큰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서 무시를 받았지만 결국 그는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는 청년 시절 거룩하게 살고자 몸부림치다가 보디발 여사의 모함으로 2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지만 거기서 충성스럽게 일하여 간수장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고관들을 섬기다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뭇 사람의 끝이 되었기 때문에 총리가 되어서도 원수를 갚지 아니하고 백성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섬길 수 있었습니다.
지도자에게 따르는 유혹 중에 가장 큰 것이 정욕의 유혹입니다. 지도자가 조심해야 할 것이 돈과 여자와 명예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성들은 자기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사람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항상 뭇 여성들의 유혹의 대상입니다. 사르코지 프랑스 전 총리, 클린턴 미국 전대통령, 등등 정욕으로 인해서 인생을 망친 지도자들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탐욕으로 인해서 대통령의 측근들이 옷을 벗고 있습니다. 또 망신을 당하고 있습니다. 탐욕을 제어하는 것은 절제력입니다. 지금 중국의 지도자들이 돈에 대한 탐욕으로 인해서 부패가 극심합니다. 탐욕의 노예가 된 지도자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저는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에 살면서 선풍기로 여름을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고난에 동참하였습니다. 근검절약하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절제가 뛰어난 대통령이었습니다.
넷째, 포용력. 39,4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하심으로 제자들의 포용의 폭을 넓혀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은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삼각형은 올라갈수록 좁아지고 내려갈수록 넓어집니다. 이와 같이 뭇 사람의 끝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이 넓습니다. 마음이 넓고 포용력이 있을 때 다른 교회, 단체의 사람들도 영접하고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영접할 뿐만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일하는 다른 사람들도 다 영접하는 마음이 넓은 지도자가 되도록 말씀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가 겸손한 사람, 섬기는 사람, 절제의 사람, 포용력이 있는 사람들이 되어 이 시대를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 | 마가복음 9:30-50
요절 | 마가복음 9:35
첫째가 되려면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누가 크냐고 다투는 것을 아셨습니다. 제자들은 고난 없는 영광을 바라며 높아지려고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진정으로 위대한 삶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서 탁월했던 지도자들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전요한 목자님은 “다 UBF를 떠날지라도 나는 끝까지 남아서 UBF를 지키겠다.”고 말씀하셨던 분입니다. 그는 결국 한국 대표가 되었고 세계 총재의 직분을 맡아서 이를 훌륭하게 마치셨습니다. 그는 학생 시절 신발장 정리를 하고 어려운 형제들을 심방하여 권면하고 회복시키는 일을 도맡아서 했다고 합니다. 대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말도 어눌하고 의사의 길을 가고자 하는 그를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배사라 선교사님은 겸손하고 심정이 있는 그를 한국 대표로 세우셨습니다. 그는 전국 UBF의 주일 예배가 650명대 일 때 이를 맡아서 10000명의 주일 예배로 성장을 시키는데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교회와 선교 단체를 포함하여 선교사 파송 1위를 하도록 리더십을 발휘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을 불러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뭇 사람의 끝이 된다는 것은 맨 뒤에 남아서 책임을 진다는 뜻이 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은 상황이 어려우면 자기가 살기 위해서 먼저 치고 나갑니다. 상황 파악을 빨리 하고 손해가 될 만하면 짐을 싼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충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공동체와 함께 남아서 끝까지 책임을 지고 가는 사람이 동료들의 인정을 받고 첫째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마음에 공동체는 자기의 분신과 같습니다. 자기 한 몸을 희생해서라도 주의 몸 된 교회를 살리고자 합니다. 사람이 앞에 서면 문제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맨 끝에 서서 보게 되면 문제가 잘 보입니다. 그러니 뭇 사람의 끝이 되는 사람이 해결사가 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의 성품은 무엇입니까?
첫째, 겸손. 뭇 사람의 끝이 된다는 것은 가장 겸손한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온유합니다. 민수기 12:3절에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300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 하여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광야 생활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과 원망을 수없이 하여 그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대적할 때마다 그는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는 이들을 일생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육했습니다. 여러 모양의 사람들을 품고 감당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온유해야 합니다.
이렇게 온유하던 모세가 신광야 므리바에서 물이 없다고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했는데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이 나오게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민 20:24). 지도자가 화를 내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지도자가 한번 기분 좋게 화를 내고 그 직분을 그만두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미국 의회에서는 의원이 토론을 하다가 화를 내면 절대로 의원직을 계속할 수 없다고 합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자기 통제가 되지 않는 사람이 최고 지도자의 위치에 있게 되면 위기의 순간에 감정대로 일을 처리하여 공동체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화가 난다고 이혼해 버리고, 화가 난다고 직장을 그만 두어 버리고, 화가 난다고 죽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지도자로서 공동체를 이끌 수 없습니다.
뭇 사람의 끝이 되는 사람은 화가 나도 묵묵히 감당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뿐만 아니라 인간의 죄성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화가 날 때 이를 잘 참으면 화가 변하여 복이 됩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유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더 배리 선교사님은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함께 UBF를 설립하시고 개척 역사를 열심히 섬기셨습니다. 그러자 리더들이 서게 되고 그들이 모든 일들을 감당하였습니다. 자신은 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는 한 동안 자신의 존재의미를 느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있으나 없는 듯이 살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셨습니다.
둘째, 섬김. 예수님은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뭇 사람을 섬기는 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을 말합니다. 지도자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는 시끄럽고 끊임없이 섬기고 감당해주어야 합니다. 당장 유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린 아이 같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길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멀리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면 내 주위에 있는 어린 아이들,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주 가까이 계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섬김에 대해서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영광과 특권을 버리시고 이 땅에 낮아져 오셨습니다. 그리고 일생 죄인들을 사랑하사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최후로 자기의 목숨까지도 십자가 위에서 버리심으로 우리를 죄로부터 속량해주셨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짐인 죄의 짐을 벗겨주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가장 희생적인 사랑의 모범입니다. 지도자에게 권력이 주어지고 특권이 주어지는 것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섬기라고 주는 것입니다. 사람을 섬기는 것의 기본 마음가짐은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노래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아무 유익도 없다고 강조합니다. 사람은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맛본 사람은 다른 사람을 희생적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의 마음에 부어집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 양화진 선교사 묘지가 있다면 광주에는 양림동 선교사 묘지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22명의 선교사 묘가 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서서평선교사(Elisabeth J. Shepping, 1880-1934)입니다. 서서평선교사는 1912년 32살 처녀 간호사로 한국에 와서 22년 동안 독신으로 선교했습니다. 당시 전남의 인구가 220만이었는데 굶주리는 인구가 88만명, 거지 숫자가 11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서서평선교사는 일 년에 100일 정도를 주로 말을 타고 다니면서 전남북, 제주도를 다니면서 병자들을 돕고,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녀의 일기장에 보면 “한 달에 약 500명의 여인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대부분 병들고, 소박맞고 쫓겨나고, 다른 고통으로 앓고 있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에 여인들은 이름도 없어서, ‘큰년이’ ‘작은년이’ ‘개똥어멈’ 그랬습니다. 그처럼 버려지고 천대받은 여인들에게 이름을 일일이 지어주고,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일학교를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배사라 선교사님이 그 이일학교의 교장을 지내셨습니다. 특히 서서평선교사는 나병환자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들을 헌신적으로 도왔습니다. 죽은 나환자의 자녀들을 양아들, 딸로 삼아서 14명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소박맞고 오갈 데 없는 미망인 38명도 함께 데리고 살았습니다. 푸른 눈의 서양선교사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된장국을 먹으며, 병자들을 돌보고 있는 모습이 그녀의 평소 모습이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헌신적으로 병든 자들을 섬기다가, 53세의 나이에 장염과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죽을 때 유언은 자신의 시신을 해부용 연구 자료로 삼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심지어는 자신의 시신까지 다 조선의 양떼들에게 내어주고 하나님 나라로 갔습니다. 그녀의 장례식은 광주시민장으로 치렀는데, 수많은 나병환자들과 광주의 걸인들이 “어머니” “어머니”하고 울부짖으며 그 뒤를 따랐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유품을 정리하면서 보았더니 그녀의 침대 밑에 이런 좌우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Not success, But service(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셋째, 절제력. 뭇 사람의 끝이 되는 사람은 절제력이 뛰어납니다. 탁월한 지도자들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이들의 뛰어난 절제력입니다. 자기 통제, 자기 훈련이 매우 잘 되어 있습니다. 그 만큼 자기 부인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절제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마음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후반부에서 지도자가 죄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43-47).” 지도자의 작은 죄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지도자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보고 있는 수많은 눈들을 의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살피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혼자 있을 때 더욱 그리해야 합니다.
뭇 사람의 끝이 되는 사람은 절제력이 뛰어나다고 했는데 이는 죄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가 되면 유혹이 많습니다. 성공했을 때 이를 자기 영광으로 돌리고자 하는 유혹이 있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영광을 가로채어 자기 것으로 선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뭇 사람의 끝이 되는 사람은 공을 부하들에게, 동료들에게 돌릴 수 있습니다. 뭇 사람의 끝에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떠받듭니다. 그러니 원수가 별로 없습니다. 사람들은 앞에 선 사람을 공격하지, 끝에 있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물론 끝에 있는 사람을 무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뭇 사람의 끝이 된 사람은 사람들의 무시에 결코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또 그런 무시를 하찮게 여기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더 큰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서 무시를 받았지만 결국 그는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는 청년 시절 거룩하게 살고자 몸부림치다가 보디발 여사의 모함으로 2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지만 거기서 충성스럽게 일하여 간수장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고관들을 섬기다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뭇 사람의 끝이 되었기 때문에 총리가 되어서도 원수를 갚지 아니하고 백성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섬길 수 있었습니다.
지도자에게 따르는 유혹 중에 가장 큰 것이 정욕의 유혹입니다. 지도자가 조심해야 할 것이 돈과 여자와 명예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성들은 자기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사람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항상 뭇 여성들의 유혹의 대상입니다. 사르코지 프랑스 전 총리, 클린턴 미국 전대통령, 등등 정욕으로 인해서 인생을 망친 지도자들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탐욕으로 인해서 대통령의 측근들이 옷을 벗고 있습니다. 또 망신을 당하고 있습니다. 탐욕을 제어하는 것은 절제력입니다. 지금 중국의 지도자들이 돈에 대한 탐욕으로 인해서 부패가 극심합니다. 탐욕의 노예가 된 지도자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저는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에 살면서 선풍기로 여름을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고난에 동참하였습니다. 근검절약하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절제가 뛰어난 대통령이었습니다.
넷째, 포용력. 39,4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하심으로 제자들의 포용의 폭을 넓혀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은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삼각형은 올라갈수록 좁아지고 내려갈수록 넓어집니다. 이와 같이 뭇 사람의 끝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이 넓습니다. 마음이 넓고 포용력이 있을 때 다른 교회, 단체의 사람들도 영접하고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영접할 뿐만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일하는 다른 사람들도 다 영접하는 마음이 넓은 지도자가 되도록 말씀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가 겸손한 사람, 섬기는 사람, 절제의 사람, 포용력이 있는 사람들이 되어 이 시대를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첨부파일
-
data/message1/6aee60965b40e14d7fc44505c6dd9d05.hwp (0byte)
34회 다운로드 | DATE : 2012-07-15 14:00:1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