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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13강(9:14-29)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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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43회 작성일 12-07-08 13:10

본문

2012년 마가복음 13강
말씀 | 마가복음 9:14-29
요절 | 마가복음 9:23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우리는 지금까지 마가복음 말씀을 통해서 여러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믿음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은 문제 해결 이전에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시고 믿음의 사람들로 훈련하시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 만큼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믿음을 가진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내려와 제자들을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변론은 논쟁 즉 말싸움입니다. 제자들의 영적인 무능력으로 말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문제 앞에서 영적인 능력이 없을 때 자기 변명하느라 말이 많아집니다. 그러다보면 말싸움을 하게 됩니다. 사탄과 싸워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사람과 싸우느라 에너지를 다 써 버립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무리 중 하나가 나와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습니다. 귀신이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져갑니다.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했습니다. 귀신들린 아들은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니 매우 답답했습니다. 보기는 하는데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답답하여 물에도 들어가고 불에도 들어갔습니다. 이는 귀신이 아이를 죽이려고 여러 모양으로 역사한 것이었습니다. 이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심정은 지옥 불 속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귀신들려 고통 하는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갔습니다. 하루 하루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아이가 어떻게 상하지 않았나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제자들은 이 아이를 놓고 서로 고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들은 이미 귀신도 쫓아내고 병도 고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아버지에게는 옆 자리에 편하게 앉아서 구경만 하시라고 말했습니다. 아홉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제자만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아홉 제자 중에서 한 명이 선택되었습니다. 그 제자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거룩한 폼을 잡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아 이 아이에게서 물러가라 명령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무리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갈 데가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가 나섰습니다. 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홉 제자가 합심해서 덤볐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어떠하냐고 물어보니 똑 같다고 말했습니다. 귀신은 나가지 않고 더 날뛰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이런 제자들을 보고 아이를 고치지도 못하면서 폼만 잡는다고 책망했습니다. 제자들은 “그럼 너희들이 고치면 될 거 아냐” 하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무리들도 뒤에서 편을 나누어 거들었습니다. 

  지난 번 전도 여행 때는 귀신을 능히 쫓아내고 영적인 승리를 했던 제자들이 이번에는 왜 이렇게 무능력해졌을까요? 우리는 오늘 본문 전후를 볼 때 지금 아홉 제자들의 내면 상태를 조금 파악해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제자들은 서열에 민감한 상태에 있었는데 예수님은 수제자만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 사이에 예수님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시고 어떻게 대하시는가에 촉각이 곤두세워져 있었습니다. 아홉 명은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만 편애하신다며 예수님께 은근히 섭섭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생각을 하느라 영적인 싸움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막혀서 기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믿음을 가질 수 없었고 불신에 빠져서 무기력한 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귀신은 이런  제자들을 비웃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하소연 앞에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여’ 하고 탄식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문제를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진단하셨습니다.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문제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하십니다. 모든 문제의 뿌리는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문제의 원인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문제의 근본 뿌리를 불신에서 찾으십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우리 각자가 이 시간 예수님의 책망의 음성 앞에 믿음 없음을 깊이 회개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아이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오자 귀신은 어떻게 했습니까? 20절을 보면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렸습니다.” 귀신은 이를 통해서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겁을 먹고 포기하도록 유도하고자 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와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불신을 심고자 했습니다. 귀신은 사람들에게 예수님도 별 수 없다는 생각을 심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역사를 이루고자 할 때 오히려 상태가 더 안 좋아질 수가 있습니다. 오래 기도해도 병이 낫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믿음이 없다고 판단하며 상처를 줍니다. 귀신이 더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의 정체를 폭로시키고 믿음의 눈으로 실체를 보고 싸우도록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을 살리고자 가실 때에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이로가 절대적인 믿음을 갖도록 도우셨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아이의 아버지를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그 아버지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어릴 때부터라고 대답했습니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궁금해서 물었다기보다 그 아버지에 대한 불쌍한 마음 때문에 위로와 관심을 표시했습니다. 주님은 그의 고통과 슬픔,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도우십니다. 주님은 열린 대화를 통해서 그가 자기의 고통을 말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무조건 고치고자 시도하기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귀신이 얼마나 오랜 세월 그 아이와 아버지를 괴롭히고 죽이고자했는지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의 아버지와 공감대를 형성하셨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과거를 돌아보면서 자기 연민에 빠졌습니다. 고통과 눈물과 한숨의 나날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감정이 북받쳐 소리질렀습니다.

  22b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아이의 아버지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면 좋고 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태도입니다. 아주 신사적인 태도입니다. 의사들에게는 이런 환자들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좋지 않은 태도입니다. 히브리서 11:6절에서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예수님께서는 상대적인 믿음이 아니라 절대적인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은 99%의 믿음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100%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절대 믿음, 절대 신뢰를 가지라고 하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생각, 상대적인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2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다시 물으십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주님은 이 아이를 고치기 전에 먼저 이 아이의 아버지에게 믿음을 갖도록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문제 해결보다 믿음을 심는데 더욱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시되 먼저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믿음의 투쟁을 하고 믿음의 사람이 되고자 애쓰기보다 빨리 내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에 빨리 응답해 주시기만을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성을 맺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어려운 문제들이 다 있습니다. 건강 문제, 물질문제, 인간 관계 문제, 제자 양성, 자녀 문제, 직장 문제, 장래 문제 등등 이 모든 문제 앞에 굴복당하지 않고 이 문제를 이길 수 있는 길은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려움을 이길  힘과 지혜와 방향을 줍니다.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일을 당할 때 이를 헤쳐 나가는 길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책망 앞에 아이의 아버지는 어떻게 했습니까? 계속 믿음을 못 갖는 자기 상황을 합리화하며 주저앉아 있었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아이의 아버지는 솔직하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자기의 불신을 회개하고 믿음을 갖고자 합니다. 그는 자기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는 믿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주님께 불가능이 없다는 사실을 말로 표현했습니다. 주님은 능히 고쳐주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도 자기의 불신을 고집하지 말고 믿음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 부족하다면, 믿음을 달라고 구하고, 믿음 없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9절에 보면 믿음은 은사입니다. 우리는 다른 눈에 보이는 은사들은 사모하지만 믿음의 은사에 대해서는 별로 사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냥 신앙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알아서 저절로 믿음이 생기겠지 안일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세월이 간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소원을 가지고 기도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주시도록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겠습니다. 그 아버지가 불신을 회개하고 믿었을 때 주님은 그를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예수님은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었습니다.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말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귀신에게 주님은 믿음으로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말 못하는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갔습니다. 귀신은 나가면서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끝까지 예수님께 저항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섰습니다. 예수님의 권세 있는 말씀 한 마디에 귀신은 꼼짝없이 나갔습니다. 누구도 어찌할 수 없어 보이던 강력한 귀신이 예수님의 이름 권세에 쫓겨나갔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귀신의 세력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울증과 정신분열, 각종 정신 질환으로 고통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귀신의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한두 번 기도한다고 해서 병이 금방 치료되고 귀신이 나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귀신도 어찌하든지 나가지 않고자 발버둥을 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쫓아내서 안 되었지만 아버지가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을 때 그 기도의 응답으로 주님이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이 조용히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28)?” 제자들은 자신들이 분명히 과거에는 쫓아냈는데 이번에는 쫓아내지 못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간단하게 귀신을 쫓아내신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29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믿음은 기도를 통해서 강화되고 현실화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이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과의 영적인 싸움이기에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늘 기도에 힘을 쓰셨습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십자가를 앞두시고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의 싸움을 하셨습니다. 그럴 때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사탄이 판치고 귀신이 날뛰는 세상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믿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고 우리의 믿음은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 질 때 사람에게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가 현재 믿음을 가지려면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로 방해합니다. 육체의 연약함을 통해서, 여러 분주한 일들을 통해서,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막습니다. 우리는 이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서 기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면 안 되겠습니다. 어찌하든지 기도의 시간을 내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겠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낸 능력의 근원이 기도에 있음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능력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데는 소홀합니다. 기도하고자 애쓰지 않습니다. 조금 기도해 보고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을 때 우리의 믿음은 자라지 않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이지리아 선교사님들은 아프리카 국제 수양회를 준비하고자 하는데 날짜가 겹치게 되었습니다. 본래 라고스 대학 기말고사가 8/13-20일까지로 학사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국제 수양회는 8/17-19일입니다. 그래서 이번 수양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하다가 피터박 선교사님의 기도 방향에 따라 그저 시험 일자를 2-3주 늦추어 주시도록 단순하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갑자기 그 나라 대통령 굳럭(Good Luck)을 통해 일을 하셨습니다. 대통령이 라고스 대학을 아비올라 대학이라고 이름을 바꾸겠다고 하루 아침에 선포를 한 것입니다. 아비올라는 그 나라의 민주인사로서 10여 년 전에 옥고를 치르다 죽은 사람입니다. 이로 인해 데모가 시작되고 경찰이 학교에 투입이 되어 기숙사의 학생들을 모두 귀가 시키고 수업이 중지 되었습니다. 3주후 그러니까 지난주 월요일부터 학교 이름은 바꾸지 못한 채 개강이 시작되어 학생들이 모두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시험 일자를 정확하게 3주간 늦추심으로 양들이 수양회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불신을 물리치고 믿음을 갖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기도에 매달려야겠습니다. 수양회를 앞두고 40일 새벽 기도와 곧 있을 저녁 기도 모임을 통해 합심해서 기도하므로 여름 수양회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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