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10강(7:1-23) 마음을 깨끗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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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봄 마가복음 제 10 강
말씀|마가복음 7:1-23
요절|마가복음 7:20
마음을 깨끗하게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우리는 위생상 손 씻기 운동을 한참 했습니다. 손만 잘 씻어도 질병의 80%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손으로 눈을 비비거나 귀를 쑤시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만 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눈병과 귀 가려움증을 막을 수 있습니다. 손을 씻고 그릇을 깨끗이 씻는 일에 열심이 있지만 여기에 그친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 힘을 쏟도록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첫째, 율법의 전통을 형식적으로 지키기보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서기관 중 몇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고 비난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달걀만한 분량의 물로 팔꿈치에서 손 끝 까지 물을 흘러내리는 정결의식을 하고 식사를 했습니다. 제자들은 식사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빴습니다. 그들은 먹는 것이 손 씻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양 무리를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다보니 손을 씻지 못하고 음식을 먹는 제자들을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바리새인들은 정죄하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이사야의 예언을 들어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헛되이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손은 열심히 씻었지만 마음은 씻지 않았습니다.
또 그들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알면서도 고르반이라는 유전으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재산을 드린 경우 부모님을 섬기지 못했다 할지라도 양해해 주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성전 봉사 때문에 부모님을 섬기지 못하는 것에 관한 말씀을 근거로 이것을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확대 적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이 전통을 악용하여 부모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고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다시 불러 너희는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고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리를 떠나 예수님과 제자들이 집으로 들어갔는데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물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쉽게 말하는데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외식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좋은데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아도 깨닫지 못하면 좋은 마음 밭이 될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깨달아야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깨닫는다는 말은 이해하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에게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고 물으셨을 때는 너희가 이렇게 우둔하냐는 뜻입니다.
왜 무리나 제자들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었을까요? 그들은 고정관념을 깬다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전통을 깬다는 것이 두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아, 옛날에는 이렇게 안했는데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이럴 때 사람들은 전통에 갇혀서 더 이상 새로운 일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르간이 교회에 도입된 것을 보면 이렇습니다. 1703년에 북미 한 교회에 오르간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청교도들의 반대가 심하여 67년간 보급되지 않다가 1770년에 이르러서야 북미 대륙에 보급되었습니다. 그래서 팰리컨이라는 신학자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전통은 죽은 이들의 살아 있는 신앙이지만, 전통주의는 살아 있는 이들의 죽은 신앙이다.” 전통에는 소중한 믿음의 유산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섣부르고 오만한 생각으로 전통을 깨뜨리고자 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전통을 절대시하고 그 외의 것은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 태도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후손들은 전통을 지킬 때는 항상 “왜 그런 것을 하는가?” 그 정신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배들은 전통을 절대시 하는 생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과감하게 새로운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잠 28:5절에는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말씀을 받고 깨달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마음이 깨끗해집니다(요15:3). 성경 공부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둘째, 악한 생각을 순간순간 회개해야 합니다. 식물은 밖에서 위로 들어갔다가 소장 대장을 거쳐서 뒤로 나갑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더럽게 하지 못합니다. 식물은 정한 것, 부정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음식은 다 깨끗합니다. 레위기에 부정한 음식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건강을 위한 것이고 거룩한 백성이 추구해야 할 방향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4:20절에 보면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됩니다. 핵심은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물론 배설물도 냄새가 나고 더럽습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더 더럽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여기서 세 가지가 음란과 관계된 것입니다. 음란, 간음, 음탕입니다. 음란은 모든 성적 무질서를 말합니다. 간음은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배우자와 성관계를 갖는 것으로 서로를 더럽히고 가정과 사회를 더럽히는 행위입니다. 음탕은 모든 사람들이 갖는 성적 본능을 자제함이 없이 노출시키는 공개적이고도 부끄럼을 모르는 성범죄를 말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면 음란한 마음을 갖도록 유혹하는 것이 화면마다 깔려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음란을 죄로 인식하는 감각이 퇴화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법정에서도 이제는 간음을 죄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캐나다에서는 동성 결혼은 물론이고 그런 행위가 죄가 아니라고 학교에서 가르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죄를 죄로 여기기 않고 옳다고 권장하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선을 악하다 하고 악을 선하다고 하는 무법천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도둑질, 탐욕은 물질에 관한 욕심입니다. 살인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악독은 고되고 아프게 하는 요인이 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속임, 질투, 비방, 교만 등도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교만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질투는 악의적인 비웃음과 빈정거림으로 응시하거나 부러워하면서 시기하는 것입니다. 비방은 신성모독적인 욕설과 험담을 말합니다. 욕설과 험담이 우리의 입뿐만 아니라 마음을 더럽게 합니다. 그 인격을 더럽게 합니다. 나꼼수들의 비방하는 말을 들어보면 역겨움을 느낍니다. 귀를 더럽히고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더럽힙니다. ‘우매하다’는 것은 도덕적 판단력이 결여된 사람의 어리석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일을 하다가 손에 더러운 것이 묻으면 얼른 물로 씻습니다. 식탁 위에 더러운 음식물이 놓여 있다거나 쓰레기가 있으면 음식을 먹기 전에 다 치웁니다. 역겨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위에 말한 죄악들이 우리 마음을 더럽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역겨움을 느낍니까? 아니면 무감각하여 함부로 말을 하고 행동을 합니까?
로마서 1:21절에서는 이런 죄의 뿌리가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마음이 죄의 뿌리입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감사해야 합니다. 때마다 말씀을 주시는 것으로 인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들로 인해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합니다. 감사하지 아니할 때 슬금슬금 마음에 불평과 원망이 들어옵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각종 죄악으로 마음이 더러워집니다. 예레미야 17:9절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라고 했습니다. 샘이 그 물을 솟구쳐냄 같이 우리 마음에서 그 악을 쏟아냅니다(렘6:7). 그러므로 마음을 가만히 두면 안 됩니다. 가만히 두면 가시떨기 밭과 같이 자연스럽게 세상 염려, 재물의 유혹, 음란, 기타 욕심이 들어와서 우리 마음을 더럽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양식과 소감을 통해서 매일매일 마음을 씻고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야 합니다. 특히 청년들은 그 행실이 더러워지기 쉽습니다. 청년들은 어떻게 심령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시편 119:9절을 보면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청년들이 때마다 더러운 행실을 드러내어 회개하고 주님의 말씀을 붙들 때 새벽 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먼지가 쌓인 방과 같이, 꽉 막힌 하수구와 같이, 변비에 걸린 사람과 같이 됩니다. 이런 우리에게 사도 요한은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신앙경륜이 쌓일수록 죄를 자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회개를 해도 피상적인 것만 하기보다 용기를 내어 회개하는 생활을 할 때 우리가 죄로부터 멀어지고 심령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여러 개가 생기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물로 뱃속이 시원하게 됩니다.
셋째, 예수님의 피로 마음을 깨끗이 씻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나의 죄를 위한 것임을 믿을 때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히브리서 9:13-14절은 말씀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나의 죄를 위해 흘리신 것을 믿을 때 그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우리는 죄사함을 받습니다. 더러운 죄가 마음에서 깨끗이 씻김을 받을 때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마음이 죄로 인해 더러우면 답답하고 정죄감으로 위축되고 두렵습니다. 또 알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씻김을 받으면 마음이 담대해집니다. 위로부터 오는 평강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 마음에 거룩한 소원을 일으키고 죄에 대해서는 싫어 멀리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일으키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넷째, 적극적으로 자신을 의의 무기로 드리는 생활을 할 때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6:13,14절은 말씀합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학생들 중에는 사모님들이나 목자님들을 동역하여 함께 전도함으로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의의 무기로 드림으로 허무와 정욕을 이기고 조금씩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거룩과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외적이고 의식적인 경건 생활을 하게 되면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처음에는 아름답고 힘있게 출발하지만 나중에는 정신을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남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진심과 순수한 열정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부드러운 마음,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과의 연합을 통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도행전 2:38절은 말씀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주셔서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말씀|마가복음 7:1-23
요절|마가복음 7:20
마음을 깨끗하게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우리는 위생상 손 씻기 운동을 한참 했습니다. 손만 잘 씻어도 질병의 80%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손으로 눈을 비비거나 귀를 쑤시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만 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눈병과 귀 가려움증을 막을 수 있습니다. 손을 씻고 그릇을 깨끗이 씻는 일에 열심이 있지만 여기에 그친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 힘을 쏟도록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첫째, 율법의 전통을 형식적으로 지키기보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서기관 중 몇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고 비난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달걀만한 분량의 물로 팔꿈치에서 손 끝 까지 물을 흘러내리는 정결의식을 하고 식사를 했습니다. 제자들은 식사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빴습니다. 그들은 먹는 것이 손 씻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양 무리를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다보니 손을 씻지 못하고 음식을 먹는 제자들을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바리새인들은 정죄하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이사야의 예언을 들어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헛되이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손은 열심히 씻었지만 마음은 씻지 않았습니다.
또 그들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알면서도 고르반이라는 유전으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재산을 드린 경우 부모님을 섬기지 못했다 할지라도 양해해 주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성전 봉사 때문에 부모님을 섬기지 못하는 것에 관한 말씀을 근거로 이것을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확대 적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이 전통을 악용하여 부모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고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다시 불러 너희는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고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리를 떠나 예수님과 제자들이 집으로 들어갔는데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물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쉽게 말하는데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외식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좋은데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아도 깨닫지 못하면 좋은 마음 밭이 될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깨달아야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깨닫는다는 말은 이해하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에게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고 물으셨을 때는 너희가 이렇게 우둔하냐는 뜻입니다.
왜 무리나 제자들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었을까요? 그들은 고정관념을 깬다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전통을 깬다는 것이 두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아, 옛날에는 이렇게 안했는데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이럴 때 사람들은 전통에 갇혀서 더 이상 새로운 일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르간이 교회에 도입된 것을 보면 이렇습니다. 1703년에 북미 한 교회에 오르간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청교도들의 반대가 심하여 67년간 보급되지 않다가 1770년에 이르러서야 북미 대륙에 보급되었습니다. 그래서 팰리컨이라는 신학자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전통은 죽은 이들의 살아 있는 신앙이지만, 전통주의는 살아 있는 이들의 죽은 신앙이다.” 전통에는 소중한 믿음의 유산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섣부르고 오만한 생각으로 전통을 깨뜨리고자 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전통을 절대시하고 그 외의 것은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 태도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후손들은 전통을 지킬 때는 항상 “왜 그런 것을 하는가?” 그 정신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배들은 전통을 절대시 하는 생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과감하게 새로운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잠 28:5절에는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말씀을 받고 깨달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마음이 깨끗해집니다(요15:3). 성경 공부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둘째, 악한 생각을 순간순간 회개해야 합니다. 식물은 밖에서 위로 들어갔다가 소장 대장을 거쳐서 뒤로 나갑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더럽게 하지 못합니다. 식물은 정한 것, 부정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음식은 다 깨끗합니다. 레위기에 부정한 음식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건강을 위한 것이고 거룩한 백성이 추구해야 할 방향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4:20절에 보면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됩니다. 핵심은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물론 배설물도 냄새가 나고 더럽습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더 더럽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여기서 세 가지가 음란과 관계된 것입니다. 음란, 간음, 음탕입니다. 음란은 모든 성적 무질서를 말합니다. 간음은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배우자와 성관계를 갖는 것으로 서로를 더럽히고 가정과 사회를 더럽히는 행위입니다. 음탕은 모든 사람들이 갖는 성적 본능을 자제함이 없이 노출시키는 공개적이고도 부끄럼을 모르는 성범죄를 말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면 음란한 마음을 갖도록 유혹하는 것이 화면마다 깔려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음란을 죄로 인식하는 감각이 퇴화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법정에서도 이제는 간음을 죄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캐나다에서는 동성 결혼은 물론이고 그런 행위가 죄가 아니라고 학교에서 가르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죄를 죄로 여기기 않고 옳다고 권장하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선을 악하다 하고 악을 선하다고 하는 무법천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도둑질, 탐욕은 물질에 관한 욕심입니다. 살인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악독은 고되고 아프게 하는 요인이 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속임, 질투, 비방, 교만 등도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교만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질투는 악의적인 비웃음과 빈정거림으로 응시하거나 부러워하면서 시기하는 것입니다. 비방은 신성모독적인 욕설과 험담을 말합니다. 욕설과 험담이 우리의 입뿐만 아니라 마음을 더럽게 합니다. 그 인격을 더럽게 합니다. 나꼼수들의 비방하는 말을 들어보면 역겨움을 느낍니다. 귀를 더럽히고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더럽힙니다. ‘우매하다’는 것은 도덕적 판단력이 결여된 사람의 어리석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일을 하다가 손에 더러운 것이 묻으면 얼른 물로 씻습니다. 식탁 위에 더러운 음식물이 놓여 있다거나 쓰레기가 있으면 음식을 먹기 전에 다 치웁니다. 역겨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위에 말한 죄악들이 우리 마음을 더럽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역겨움을 느낍니까? 아니면 무감각하여 함부로 말을 하고 행동을 합니까?
로마서 1:21절에서는 이런 죄의 뿌리가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마음이 죄의 뿌리입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감사해야 합니다. 때마다 말씀을 주시는 것으로 인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들로 인해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합니다. 감사하지 아니할 때 슬금슬금 마음에 불평과 원망이 들어옵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각종 죄악으로 마음이 더러워집니다. 예레미야 17:9절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라고 했습니다. 샘이 그 물을 솟구쳐냄 같이 우리 마음에서 그 악을 쏟아냅니다(렘6:7). 그러므로 마음을 가만히 두면 안 됩니다. 가만히 두면 가시떨기 밭과 같이 자연스럽게 세상 염려, 재물의 유혹, 음란, 기타 욕심이 들어와서 우리 마음을 더럽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양식과 소감을 통해서 매일매일 마음을 씻고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야 합니다. 특히 청년들은 그 행실이 더러워지기 쉽습니다. 청년들은 어떻게 심령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시편 119:9절을 보면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청년들이 때마다 더러운 행실을 드러내어 회개하고 주님의 말씀을 붙들 때 새벽 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먼지가 쌓인 방과 같이, 꽉 막힌 하수구와 같이, 변비에 걸린 사람과 같이 됩니다. 이런 우리에게 사도 요한은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신앙경륜이 쌓일수록 죄를 자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회개를 해도 피상적인 것만 하기보다 용기를 내어 회개하는 생활을 할 때 우리가 죄로부터 멀어지고 심령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여러 개가 생기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물로 뱃속이 시원하게 됩니다.
셋째, 예수님의 피로 마음을 깨끗이 씻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나의 죄를 위한 것임을 믿을 때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히브리서 9:13-14절은 말씀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나의 죄를 위해 흘리신 것을 믿을 때 그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우리는 죄사함을 받습니다. 더러운 죄가 마음에서 깨끗이 씻김을 받을 때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마음이 죄로 인해 더러우면 답답하고 정죄감으로 위축되고 두렵습니다. 또 알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씻김을 받으면 마음이 담대해집니다. 위로부터 오는 평강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 마음에 거룩한 소원을 일으키고 죄에 대해서는 싫어 멀리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일으키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넷째, 적극적으로 자신을 의의 무기로 드리는 생활을 할 때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6:13,14절은 말씀합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학생들 중에는 사모님들이나 목자님들을 동역하여 함께 전도함으로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의의 무기로 드림으로 허무와 정욕을 이기고 조금씩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거룩과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외적이고 의식적인 경건 생활을 하게 되면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처음에는 아름답고 힘있게 출발하지만 나중에는 정신을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남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진심과 순수한 열정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부드러운 마음,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과의 연합을 통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도행전 2:38절은 말씀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주셔서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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