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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히브리서 특강 제1강(히브리서 11:1-22) 삶을 위대하게 만드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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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861회 작성일 13-02-2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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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특강 제1강
삶을 위대하게 만드는 믿음

말씀 : 히브리서 11:1-22
요절 : 히브리서 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브리서가 쓰였을 당시, 크리스천들은 이방인인 로마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았고,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도 고통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런 양면적인 고난 속에서 어떤이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인내하며 천국에 대한 산 소망을 가졌던 반면, 일부는 멸시와 천대와 고난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해 다시 유대교로 되돌아갔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런 그들에게 끝까지 믿음으로 살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믿음장인 본문 말씀을 묵상할 때에 2가지 관점에서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둘째,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럼 믿음장의 첫페이지를 열어보겠습니다.
   
Ⅰ. 믿음이란 무엇인가?(1-3)
  본문에는 우리가 흠모하는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나옵니다. 그들의 훌륭한 삶과 풍성한 열매를 맺은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공통점은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1절을 보십시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여기서  믿음의 정의를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이 실상입니다. ‘실상’이란 ‘실체(the substance) 또는 확신(the assurance)’이란 뜻입니다. 믿음이란 바라는 것이 있는데, 그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확신이냐 하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그 일이 내앞에 턱∼하게 버티어 서있는 것처럼 보며 사는 확신입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실상을 보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이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보이는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존재함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을 증명하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매서웠습니다. 이 추운 날, 흩날리는 눈 꽃송이들을 바라보면, 저는 미국에 있는 딸 지은이가 생각납니다. 초롱초롱한 눈 망울과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에 저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하고 기도해 주던 여린 손마디가 제 가슴을 적셔옵니다. 이런 지은이가 비록 이곳엔 없지만, 카톡이나, google 행아웃으로 보고픈 마음을 대신합니다. 추운 겨울이 가고 때가 오면 지은이를 속히 만나고 싶습니다. 여기서 언어영역 문제를 드리겠습니다. 일번 문제, 제가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지은이와 재회하는 것. 이번 문제, 지은이와의 재회가 언제 이루어집니까? 답: 모름. 삼번 문제, 그러나 제가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께서 지은이와의 만남을 이루어주실 것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제게 믿음이 없다면, 그래서 지은이를 볼 수 없을 것 같다면 참으로 가슴 아플 것입니다. 때문에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과 같습니다.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바라는 것을 실제적인 것으로 여길 수가 있습니다. 미래에 희망하는 것을 현재적인 것으로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보증수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에 확연히 보이는 것을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돈인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교환할 수가 있고, 아직 보지 못한 미래의 소망을 현실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를 쓰고 돈을 벌고자 합니다.
  요즘 신문지상에서는 ‘중산층이 무너졌다’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 연봉 정보사이트의 직장인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입니다. 중산층이란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소유, 월 급여 500만원 이상, 2,000cc 이상의 중형차, 1억원 이상의 통장 예금액, 1년에 1회 이상의 해외여행 갈 수 있는 정도’라고 합니다. 중산층의 기준은 물질이 그 척도입니다. 그러나 미국 등 선진국의 중산층 기준은 우리와 전혀 다릅니다. 미국 공립학교 중산층의 기준입니다.  ‘자신의 주장에 떳떳할 것, 사회적인 약자를 도울 것, 부정과 불법에 저항할 것,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있을 것, 외국어 하나 정도 구사하여 폭넓은 세계 경험할 것’ 등입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돈과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좋습니다. 우리가 여하튼 기를 써서 돈을 많이 모아서 중산층이 되고 상위 5%내에 들었다고 합시다. 돈이 우리의 보증수표가 됩니까? 돈의 가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불에 탈 수도 있고, 부도가 나면 하루아침에 다 사라지는 것이 바로 돈인 것입니다. 저도 저의 욕심을 인하여 이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서 인생의 수업료를 톡톡히 치른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돈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상권력도 그렇고, 인간의 의지와 능력도 그렇고, 건강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 기초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달라지지 않습니다. 불에 타지 않고 도둑이 훔쳐갈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일방적인 선물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만을 소유하고 있기만 하면 하나님 나라의 모든 축복들을 실상으로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전 선교사님들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에서 ‘영혼 구원’이란 대 전제속에 헌신을 다하시는 고귀한 삶속에서 어려움을 당한 일들을 보았습니다. 짐바브웨의 윤수잔나 선교사님 가정에 강도 침입 사건, 온두라스의 강다윗 선교사님이 강도의 총을 맞은 사건, 탄자니아의 티모시선교사님, 정에스라 선교사님이 AK기관총을 든 강도 사건 등을 인하여 얼마나 놀랐습니까? 그러나 선교사님들은 생명을 덤으로 허락하신 뜻은 주님의 사역을 통해 생명구원역사를 더 열심히 섬기라는 주님의 부르심으로 영접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생명을 책임져주시는 하나님께 더욱 충성하겠다는 서약이기도 합니다. 이를 보면서 우리는 이 분들 마음속에 있는 믿음이란 어떤 믿음인가를 배우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죽어도 살리라’하는 부활의 믿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털고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선교역사를 감당하고 게십니다. 이러한 선교사님들이 살아있는 믿음을 통해 세계구원역사를 속히 이루실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증거’는 ‘divine approval, commend for’로서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학식이 있고 지위가 있고 돈이 있어야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 조건을 보지 않으십니다. 오직 믿음만을 인정하시고 칭찬하십니다.
  그러면 믿음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우리 믿음의 근본은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창조신앙에서 시작됩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어디서 왔습니까? 생명이 잉태되고 수정란이 분화되고 발달하여 비로소 숨을 쉬는 온전한 생명체가 탄생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창조 주권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자연 만물의 운행과 법칙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창조 하셨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산과 강과 바다와 나무와 풀과 꽃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창세기 1:1절은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들은 우리의 믿음의 기초가 되고 믿음의 뿌리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믿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믿을 수가 있습니다. 변화의 역사, 기적의 역사, 치료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를 믿을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을 수 있고, 하나님 나라를 믿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창조신앙에 기초하여 믿음을 나타낸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Ⅱ. 믿음을 나타낸 하나님의 사람들(4-7)
  말씀에 등장하는 세명의 인물들은 지독하게 현명할 수도, 지독하게 어리석을 수도 있습니다. 관전 포인트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여부를 한번 살펴볼까요?
  첫 번째 인물 아벨.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각각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아벨이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말씀합니까? 이는 아벨이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이 제사를 보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자신의 죄도 보고 계시고, 자신의 생각도 보고 계시고, 자신의 삶 전체를 다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서 감사의 제단을 쌓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피 흘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자기 의로 충만했기 때문에 제사라는 껍데기만 드렸지 회개와 믿음의 내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동생을 돌로 쳐 죽이는 엄청난 죄를 짓고야 말았습니다. 동생 아벨은 어린 양의 피를 흘려 헌신의 제사를 드렸건만 가인은 사랑하는 동생의 피를 흘려 저주의 단을 쌓았습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왜 가장 먼저 순교자 아벨을 소개하고 있을까요? 그만큼 아벨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고귀하고 순결하고 아름다운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그것을 위해서 순교의 피를 뿌릴 만큼, 나의 목숨과도 바꿀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숭고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도, 우리를 위해 예비한 하나님의 나라도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인물 에녹. 유다서를 보면 에녹이 살던 시대는 결코 호락호락한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심히 불경건한 시대로서 뭇 사람들이 주를 거스려 강퍅하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에녹은 무려 300년 동안이나 주님과 동행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투쟁을 하였습니다. 세상의 쾌락과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축복하시고 죽음의 쓴 잔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나라로 직행할 수 있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에녹이 이처럼 죄악 된 시대에도 타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6절 말씀을 보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에녹은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에녹은 일이 잘 풀릴 때나 안풀릴 때나, 인생의 순풍의 때나 역풍의 때나, 언제든지, 변함없이, 항상, 반드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또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상 주심을 믿었습니다. ‘상 주신다’는 뜻은 영어로 ‘reward’로서 ‘보상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께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시고, 어떤 모양으로든지 인생을 축복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에녹은 이런 믿음을 소유했을 때 살아있는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로 직행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 인물 노아. 7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는 앞으로 120년 후에 홍수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대로 믿고 산에 올라가서 잣나무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노아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미래를 대비할 수가 있었고, 정말 홍수심판이 왔을 때 그 가정을 구원하고 불신세상을 정죄하며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나온 세분의 인물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의 사람이다’는 점입니다. 아벨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에녹은 죄와 세상과 타협치 아니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또 한명의 믿음의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Ⅲ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8-22)
  8절부터 18절까지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 관한 내용입니다. 창12:1,2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자식이 한명도 없었기 때문에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이 창대케 되며, 복의 근원이 될리는 만무하였습니다. 하물며,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집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의지하여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실제적인 삶속에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습니다. ‘장막에 거한다’는 뜻은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없이 산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서 장막에 거하며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처럼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성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성’이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의 참된 소망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그의 영원한 안식처요 본향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이를 사모하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에 아름다운 한 성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은 시험 받을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약속을 받은자, 외아들인 이삭을 드렸습니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 것은 그의 믿음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도대체 어떤 믿음으로 이삭을 드린 것입니까? 19절을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얻게 된 믿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리실 줄로 믿는 믿음은 부활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로써 지난 40년간의 믿음 훈련을 최종 통과하였습니다. 마지막 믿음의 졸업시험에서 당당히 합격하고 믿음의 조상으로서 하나님께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8절 말씀과 같이 축복도 받았습니다. 오늘날을 보십시오. 믿는 사람들은 다 그의 자손들입니다.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이뤘고, 이름이 창대케 되었으며,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참된 순종이란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 사랑을 의심한다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순종이고, 순종은 또한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깊이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어떤 경우에나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사랑하는 독자라도 번제로 드릴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우리의 전 인생을 온전히 맡기고 의탁하는 것입니다.

  영화계에 가장 핫한 작품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7번방의 선물’의 내용을 보면,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빠인 류송룡은 좀 모자라고 가난하지만 청소부 직업과 정부보조금으로 살아가며 딸 예승이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사랑해도 너∼무 사랑합니다. 예승이는 아빠를 온전히 신뢰합니다. 예승이는 세일러문 가방을 갖고 싶어 하고 아빠와 같이 사러갔지만 경찰청장이 한 개 남은 세일러문 가방을 먼저 사서는 자기 딸에게 줘버립. 예승이 아빠는 딸이 갖고 싶어하는 세일러문 가방만을 생각하다가 어느날 청장 딸이 그 가방을 메고 가는 것을 보고 따라갔고 청장 딸은 얼음판에 미끄러져서 사고로 죽고맙니다. 허나 현장에 있었던 아빠는 살인자로 몰려 결국 감옥에 가게되고 감방장의 도움으로 감방안에서 딸을 만나게 되면서 아빠와 딸은 몰래 몰래 숨어서 사랑을 나누며 교도소 생활을 하게됩니다. 어느날 경찰청장이 아빠를 찾아와 ‘내가 죽였다’고 시인하면 예승이와 함께 살 수 있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 죽였다고 시인하고 사형을 언도받고 사형을 당하는 내용입니다. 아빠가 딸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승이가 아빠로부터 받은 사랑은 아빠의 생명을 내어주는 그런 사랑입니다. 저도 이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저는 말씀공부하기 전에는 예수님의 존재,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던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러나 말씀공부를 통해 예수님은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세상 만민의 죄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의 희생양이 되셨음을 알았습니다. 바로 나의 죄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회개하여 주님을 영접하였을 때 주님은 목자의 인생을 살도록 축복하실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길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내년 6월 30일에 공직생활을 마감합니다. 주위에서는 ‘뭐하며 살거냐’고 자주 묻습니다. 제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가신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부족하고 허물진 죄인을 밉다하지 아니하시고 82년부터 지금까지 31년 동안을 부족하지만 ‘믿는다’는 한가지 사실로 말미암아 한결같이 사랑해 주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사랑을 받는 예승이 입니까? 사회적 권위를 이용하는 경찰청장입니까? 선택은 바로 여러분의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죄지은 나를 위해 십자가 사랑을 배푸신 주님을 영접하는 것 이것이 믿음의 실상이요 증거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한가지의 사실이 바로 우리의 실제적인 믿음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전 인생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그런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임을 배웠습니다. 믿음은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믿음으로 사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도 배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아벨의 믿음, 에녹의 믿음, 노아의 믿음,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기 위해 지금부터 믿음의 돌직구를 던져봅시다. 일생동안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므로 믿음의 흔적 믿음의 발자취를 남기는 ‘믿음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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