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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013년 겨울 로마서 14강(11:1-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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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12회 작성일 13-02-13 15:22

본문

2012년 로마서 14강
말씀 | 로마서 11:1-36
요절 |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여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미래에 될 일들을 보여 주시고 친히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600년 뒤에 그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것을 예언하시고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70년 만에 돌아올 것을 예언하셨고 그대로 성취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배척하고 멸망할 것을 예언하시고 주후 70년에 이루셨습니다. 이스라엘은 2000년을 방황하며 세계를 떠돌다가 1948년 나라를 회복하였고 뉴스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전개되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에 대한 경외심을 갖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를 다루면서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찬양합니다.

  첫째, 남은 자(1-12) : 바울은 앞에서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복음이 이방인에게 흘러간 것을 말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고 묻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자신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다면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앞장서고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 자신이 먼저 버림을 받고 죽어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택하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바울은 순수 이스라엘 사람인 자신이 구원 받았다는 것을 하나님이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다는 일차적인 근거로 들었습니다. “내가 있다.” 복음 역사가 어렵지만 그래도 내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역사에 남아 있는 한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이스라엘이 구원 역사에 쓰임 받기 위해 불타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복음역사를 섬기면서 남긴 양이 없을지라도 나 한 사람이 믿음을 지키고 남아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홍대 복음 역사에 박지성 형제가 있습니다. 그는 변화가 늦지만 이번 학생 수양회 이후 새벽 기도에 꾸준히 나오고 일용할 양식을 신실하게 먹습니다. 그를 볼 때 ‘일당 천’이 될 소망을 바라봅니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60:22).”

  엘리야 시대에 아합 왕과 이세벨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으로 나라를 가득 채웠습니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고발했습니다.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칠천 명을 남겨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구원 역사를 지키시고 이루어 가십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구하는 그것 즉 하나님의 의를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일부가 얻었습니다.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 신자들은 로마 정권에 의해서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도 네로 황제에 의해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 이후 250년 동안 불 같은 핍박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서 기독교는 국교로 공인되었고 교회는 전 유럽과 세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1965년 모택동에 의해서 기독교는 중국에서 박멸이 된 줄 알았습니다. 선교사들은 추방되고 교회는 문을 닫았습니다. 모택동의 아내 강청은 공식적으로 중국에서 기독교는 사라졌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40년 뒤 중국의 가정 교회는 모진 핍박 속에서 1억명 이상으로 성장했습니다. 지금 중국 공산당은 유화정책을 쓰면서 기독교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평양은 한때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정도로 교회의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교회에 대한 핍박이 강도 높게 이루어졌습니다. 1945-2006년 사이에 순교한 성도가 1만 6984명이나 되었고 북한의 교회는 전멸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40만 명이 있고 가정 교회가 부흥하고 있습니다. 지금 국경 근처에서 북한을 탈출하여 자유를 찾도록 돕는 사역을 하는 한 목사님의 보고입니다. “이 할아버지는 79세였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룩함과 경외함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저는 이야기를 나누기 전 한 마디 말을 던졌습니다. “왜 나오려고 하셔요?” “찬송이나 마음 놓고 한번 불러보고 싶어서…” 눈길을 피하려 땅 바닥에 시선을 두고 우물우물 쏟아 낸 말입니다. ‘왜 탈출하려는가’라는 질문에 노인은 겸손하게 답을 하셨습니다. “찬송 한번…” “언제 나오실 수… 있으셔요?” “빠를수록 좋지 않을까요?” 순간 내 머리 속에는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미 65명의 탈출자들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여서 비용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방법과 이동할 길목들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공안들을 어떻게 설득시켜야 할지, 그리고 어느 산을 넘어야 할지, 아이들도 있다지 않는가? 긴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운 이들을 도울 것뿐인데… 찬송 한 번 마음 놓고 불러보고 싶다는데 무슨 설명을 붙여야 할까? ‛도와 드리겠습니다’ 한 마디로 결론을 이끌려고 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말을 쏟아냈습니다. 순간 노인의 입속에서 흘러내리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그리고는 일어나 울타리 밖으로 걸어 나가고 계셨습니다. 한 10분이나 걸렸을까? 노인이 돌아오고 계셨습니다. 제 눈은 노인의 얼굴에 멈추었습니다. 그 거친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주먹을 쥐고는 몸을 곧게 세우셨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물었소이다. 저 미국에서 온 이목사가 우릴 돕겠다는데 따라 갈까요? 라고…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능력이 없어서 너희들을 북조선에 남겨두는지 아느냐?’고 하시는 군요.” 서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노인의 어깨가 들썩거렸습니다. “목사님, 매 맞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랍니다. 굶는 것도 하나님의 목적이랍니다. 혹시 기회가 주어지면 남조선으로 가서 찬송이라도 실컷 부르고 집에 가고자 했는데… 이 땅에 남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시니…” 숨소리가 거칠어지더니… “어서 가시라요! 경찰이 온다지 않소?” 재촉한 손길이 있어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드리고 “안녕히 계시라요.” 인사를 하자 그렇게 점잖았던 노인의 음성이 강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천국에서 만나자요!”

  우리는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겨두신 자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학생 복음 운동이 어려운 때에 이번 제주 학생연합수양회에 참석한 312명을 통해서 우리는 큰 위로와 소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개척 센터에서 몇 사람 중심으로 복음 역사를 섬기던 분들에게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내용의 인생소감을 들으면서 하나님을 배웠고 감동받았으며 또 믿음의 격려를 받았습니다. 서로가 ‘아, 다른 센터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동질감을 얻게 되었고 학생 복음 역사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남아 있는 학생 한 분 한 분이 매우 귀하고 이들을 통해서 영광을 드러내실 하나님께 대한 기대가 생겼습니다. 우리가 전도해서 구원에 이르는 사람이 많지 않은 시대이지만 이 캠퍼스에 하나님께서 친히 은혜로 택하신 자들이 있음을 믿고 이들을 찾아서 도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 나 한 사람이 남은 자로서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배척함으로 넘어지자 복음이 이방인에게 이르게 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구원에 이르자 은혜가 세상에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고 삶이 풍성해지자 이스라엘이 시기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완악한 죄인들이 어찌하든지 구원에 이르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 넘치는 사랑과 지혜로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 직분에 충성을 다 했습니다. 이는 골육 이스라엘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를 배워서 복음 사역에 적용했습니다. 그는 자기 골육의 엄청난 핍박에도 쇠하지 아니하고 낙담하지 아니했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스라엘 회복의 가망성(13-24) : 바울 사도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관계를 처음 익은 곡식 가루와 떡 덩이, 뿌리와 가지, 참 감람나무와 돌 감람나무 등 세 가지 비유로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이 있기 때문에 구원 받는 이방인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서 이방 신자들을 겸손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 교회에는 이방인들이 대다수였고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소수였습니다. 이방인 신자들이 함부로 유대인 크리스천들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믿지 아니함으로 꺾인 가지가 되었고 이방인들은 믿음으로 접붙임을 받게 되었으므로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접붙임을 받은 가지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믿지 아니한데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즉 우리의 고집스러운 불신과 교만을 회개하면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2013학번 양들도 구원 역사에 접붙이실 능력이 있으심을 믿고 우리가 힘써 복음 역사를 섬겨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처음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주님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것 같습니다. 싱글일 때는 결혼하신 목자님, 사모님들을 판단하기 쉽습니다. 왜 목자가 되어서 캠퍼스에도 오르지 않고 기도 모임에도 나오지 않는가? 왜 양을 돌보지 않는가? 판단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기르다보면 그것만으로도 벅차서 캠퍼스에 오르고 양들을 돌볼 힘이 없습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캠퍼스에 오르며 양들을 섬기기 위해서 자기 부인을 하고 복음 역사를 섬기신 선배 목자님들, 사모님들이 위대하게 보입니다. 선교사님들은 여기에다 어학 정복과 문화 충격을 극복하면서 다른 언어로 제자 양성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방 땅에서 다른 언어를 쓰면서 나그네로 사는 것은 항상 긴장이 된다고 합니다. 사명을 위해서 스트레스를 감당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사명인의 자리를 지키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살만하면 교만해지고 부요한 마음으로 넘어지기 쉽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잘 나갈 때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머물게 됩니다. 잘 나갈 때 교만해지면 하나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도 사라지고 자기가 잘 나서 잘 나가는 줄 착각하게 됩니다. 이때가 영적인 위기입니다. 하나님은 인자한 분이시지만 또한 엄위하신 분으로 우리가 교만할 때 언제든지 낮추시고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게 하시고 나중 된 자를 먼저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 늘 겸손한 마음과 경외심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

  셋째, 긍휼과 깊으신 하나님의 지혜(26-36) : 이스라엘은 결국 어떻게 됩니까?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게 되면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에 은혜를 베푸시고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26). 온 이스라엘이란 이스라엘 사람 대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을 것입니다(28,29). 하나님의 때에 이스라엘에 대대적인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대부분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돌아오는 때에 전 세계에 엄청난 영적인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야말로 예수님의 재림이 아주 가까운 때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인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하십니다.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해서만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의도, 어떤 선행도, 어떤 가능성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해 가는 과정입니다. 신앙이 자란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긍휼이 자라간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서 어떤 의를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곧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떤 의를 주장하는 순간 시험에 빠져 흔들리거나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불순종으로부터 시작된 온 인류의 불순종에 대해서 정죄하고 심판하기 전에 이 긍휼의 마음으로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결국 사람들이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무시하고 자기 의로 인해 교만하게 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알아갈 때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요구하기 시작하면 판단하고 비난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남에게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긍휼을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깊이 묵상하고 나서 구원의 경륜을 깨달은 바울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33-35절을 보십시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섭리는 인간이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신 일은 인간의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무한자가 유한자로 오신 것 자체가 신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또 어떻습니까?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완벽하게 조화되어 있습니다. 죽음 앞에 인간은 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떤 영웅호걸도 죽음을 이기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구원 역사를 시작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시며, 이방인을 포함해서 온 인류를 구원해 나가시는 역사 방법은 연구할수록 감탄을 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세상의 지혜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판단과 그의 길은 우리 인간들이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 역사를 섬기면서 봐도 한 영혼 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다 제각각이고 다양하며 놀랍고 신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1)”고 했습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누가 주님께 감히 조언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 먼저 드려서 주님이 갚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며 찬양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그 자신으로 시작하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 구원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되십니다. 그는 시작과 끝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다른 자에게, 자기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십니다. 구원 역사에 있어서 우리가 사람을 높이면 안 됩니다. 사람이 영광을 받고자 하고 하나님과 나누어 갖고자 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의 도구일 뿐입니다.

  놀라운 지혜와 섭리 가운데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과 은혜로 구원 역사를 이루십니다. 오직 긍휼로 우리를 이 시대 남은 자들로 택하시고 구원 얻게 하시고 복음 역사에 써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택하여 세우셨습니다. 이제 우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지금도 우리의 가정과 일가친척 속에 또 캠퍼스 가운데 은혜로 택하시고 부르시는 자들이 있음을 믿고 복음역사를 힘써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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