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13년 겨울 학생연합수양회 특강(안요셉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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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제주 학생 연합 수양회 특강
안요셉 선교사
예수를 바라보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 3:14-15)
아름다운 제주도에 와서 갑자기 뱀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올해는 뱀띠 해 이기에 뱀 이야기를 하는게 아닙니다. 하여튼 올레마을을 걸어실 때 혹시도 모르니 뱀은 조심하고 볼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에 나오는 뱀은 각 의과대학의 상징인 치료의 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달린뱀, 곳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위에 뱀을 든 것 같이, 예수님도 갈보리 언덕 십자가 나무위에 높이 달렸습니다. 하나님은 뱀에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보면 살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물린 자가 그 뱀을 보면 모두 살려 주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하늘과 땅 사이 나무에 높이 달린 예수를 바라보는 자, 즉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여 주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고뇌하는 지성인 니고데모에게 주신 귀한 말씀입니다. 본문을 둘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민수기 21:4-9 에 나와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했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하매.”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시고 입히시며, 보호하심을 그동안 수없이 보고도 하나님의 구원과 또 훈련주심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방 원망을 했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백성들이 자신들의 범죄를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이 뱀들이 그들에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얼마나 간단한 방법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은 아주 쉽고 누구나 할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놋뱀을 쳐다보라!” Look the bronze snake! “그러면 살리라” “and you will live!”였습니다. 놋뱀은 이미 장대위에 높이 달려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뱀에 물린 자가 단순히 놋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살게 되었습니다. 왜 살았읍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었기에 이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를 살리신 것입니다. 곧 “말씀순종!” “구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님을 또 볼수 있습니다. 자 좀 상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하자 독사, 코브라, 방울뱀, 불뱀들이 갑자기 사방에서 우글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천막 밑으로 위로 막 몰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물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다급한 사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엄마! 저기 뱀봐! 어디? 저기 저기! 아니 여기, 또 저어기… 막 몰려오네! 처음에는 달아났겠지요! 우선 피하고 봐야지요! 그러나 곧 사방에서 몰려오는 불뱀들을 인해 물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달아나다가 이제는 막대기나 칼로 뱀과 싸우기 시작합니다. 제가 검도가 3단 입니다. 이런 때를 위해 좀 배워 두었지요. 아마 저는 기합소리도 요란하게….이야압!!!“사방 적살검법” (즉 4개 방향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하나하나 물리치는 검법) 을 활용하며 용감무쌍하게 사방의 뱀들을 하나하나 물리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매님들의 탄성을 자아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새 한두 군데는 이미 물려 버렸습니다. 태권도, 발차기 등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뱀들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고자 온갖 몸부림을 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 모두는 다른 사람을 돌볼 여유가 없습니다. 모두가 모두를 공격해오는 수많은 불뱀들 앞에서 혼비백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안 물린 자가 없이 거의 모두 물리게 됩니다. 그리고 모두 죽음의 신음을 하면서 살아날 길을 찾습니다.
약이 어디 있나? 사막이니 약이 어디 있습니까? 광야에 병원이 어디 있습니까? 의사도 약사도 같이 물렸으니 남을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 이때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놋뱀을 바라보라! 장대위에 달린 불뱀을 쳐다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뱀을 쳐다보는 자마다 살리라! 하셨다. 어린아이들은 그 말에 단순히, 어디 놋뱀이 있어?? 아! 저기로 구나하고, 놋뱀을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뱀의 독에서 씻은 듯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보세요! 쳐다보세요! 저기 저 뱀을! 쳐다보면 살아요!!! 살아 남은 자들이 외칩니다. “놋뱀을 쳐다보라! 그러면 살리라!! 누구든지 그 말을 듣고 믿고 높이 달린 놋뱀을 쳐다 본 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모두 다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쳐다본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미친 소리하고들 하고 있네. 뱀에 물려 죽게 되었는데, 무엇 놋뱀을 쳐다보면 낫는다고! 그게 될 말이야! 좀 이성적으로 이치에 맞게 과학적으로 이야기해야지! 나는 뱀 해독제가필요해!! 하면서 절대로 놋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관심이 없습니다. 놋뱀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것도,, 또 눈앞에 보여도, 쳐다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놋뱀을 쳐다보러 가는 자들을 비웃고, 무시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때를 놓쳐 죽어가고 맙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모세를 통해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놋뱀을 만들라, 물린 자마다 쳐다보면 살리라! Look at the snake! You will live!”
2.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예수님은 놋뱀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구원으로 이야기를 옯깁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놋뱀과 예수님은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아담이 뱀에게 속아서 죽임을 당한 것이 인류의 죄의 시작입니다. 즉 모든 인류는 뱀에게 물려 죽어가는 광야의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죄에 물린 인류는 너나 할것 없이, 니고데모같이 모든 부귀영화 권세를 다 가졌다 할지라도 예외 없이 죽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뱀에 물린 것 즉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 뱀 즉 죄에 물린 인류에게 해결책이 무엇이겠읍니까? 창세기 3:15에 하나님께서 뱀에게 언도를 내리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것은 뱀에게는 무서운 심판의 말씀이요, 아담과 하와와 앞으로 올 모든 인류에게는 희망과 약속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즉 여자의 후손가운데서 메시아가 오셔서 뱀의 머리를 쳐부숨으로 인류를 그 죄와 죽음에서 건지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모세의 놋뱀과 인자의 들림을 니코데모에게 이야기 하신이유가 무엇입니까? 니고데모와 영적인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니고데모 같은 자를 살리는 방법은 바로, 지적인 이야기도, 꾸지람도, 설명도 아니요,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임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유일하게 니고데모가 구원을 받을 길은 뱀에 물린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께서 높이 드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하고 계신 예수님은 곧 자기 자신이 나무에 높이 달려야만 또 높이 달리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를 바라보아야만 온 세상죄인과 니고데모 같은 지성인들이 살아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죄에 물려 죽어가는 온 인류를 살리시려고, 그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죄 지은 자마다 저주를 받을 자입니다. 그래서 죄지은 우리는 모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우리대신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셨습니다. 그리고 갈보리 높은 언덕 위, 온 이스라엘이 다 쳐다 볼 수 있는 곳에 예수를 달아매었습니다. 즉 온 인류가 쳐다 볼 수 있도록 하늘과 땅 사이에 높이 매달으셨습니다. 그리고 죄의 독뱀에 물린 자마다 예수님을 쳐다보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예수를 바라보면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지성인들에게도 똑 같이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불뱀은 바로 온 사방팔방에서 몰려오는 무서운 죄의 유혹과 같습니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똑같이 달려듭니다. 대학생들, 평신도 선교사, 스텝목자들이라고 봐주는것 없습니다. 미국사람, 한국사람, 아프리카 멕시코인 구별이 없습니다. 인터넷, 셀폰, 개인 이메일, 신문, 방송, TV 잡지등 아무데서고 튀어나와 닥치는 대로 뭅니다. 안 물리려 노력해도 되지 않습니다. 이뱀에서 살아나기 위해 철학, 교육, 과학, 심리학, 온갖 종교, 미신들이 나와서 치료해 보겠다고 하나 소용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과 같이, 놋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높이 들라, 물린 자마다 쳐다보면 살리라! 했듯 높이 달리신 예수님을 쳐다보는 것이 유일무이, 유효한 처방약입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믿은 모태신앙인입니다. 이 ‘모태’라는 말은 “아무것도 못한다고”해 서“못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도 잘나오고, 반장에 우등생에 소위 잘나가던 KS 마크를 달고 다녔기에 제가 죄인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2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심각한 인생문제에 부닥쳤습니다. 아 인생이란 무엇인가? 저렇게 하루아침에 죽으면 모든 게 끝장 인것을.. 우리 어머님은.. 아니 나는 도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 나는 무엇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나? 또 사춘기가 되면서, 온갖 정욕과 죄에 시달리며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아니 빨리 이 세상을 떠나 버리는게 최선이야! 하면서 니힐리즘에 빠져 헤메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나를 따라 선교사가 성경을 가르치는 모임에 나갔는데, 거기서 나는 큰 죄인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지은 죄는 별로 없지만, 제 마음으로 지은 죄가 너무너무 많았습니다. 사춘기의 모든 정욕의 죄, 시기, 미움, 살인, 죄란 죄는 제 속에서 모두 짓고도 겉으로는 최고 모범생처럼 위선하며 교회에 다녀온 모태신앙인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죄의 뱀에 물려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는 저의 본래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잠시 기쁜뒤 또 도로아미타불로 슬프고, 의미 없고, 죽고 싶고, 거저 괴로워 죽지못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죄의 뱀에 물린데서 저를 살려보려고 무진 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착하게 살아보려 하면 할수록 더 죄만 많아지는 것이 마치 수갑에서 손을 빼려면 뺄수록 더 조여지는 원리와 같았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온갖 철학 책을 뒤져보며, 노력해도 헛수고 였습니다. 저는 이제 죄인괴수였었기에 제일 겁나는 것이 예수님이 구름타고 언제든지 심판하러온다는 말씀 이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사고로 죽어버리면 지옥에 떨어져 버릴 것이 틀림없어 죽을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어느 저녁 저는 나의 이 주홍같이 붉은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길거리를 하염없이 헤메며 죄에서 벗어날 길을 찾으며 투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정은 다가오는데 해결책은 그 어디서고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예수십자가에 달리심은 바로 너의 죄를 위해서였다 하는 생각이 번갯불처럼 스쳐갔습니다. 아니 그럴 수가? 저는 어릴 때 부터 수없이 불렀던 찬송가 속에서, 또 설교 말씀 속에서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은 들었는데 이것이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것은 한 번도 생각하지도, 믿지도 않고 지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눈물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의죄를 위해서임을 영접하고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예수사랑하심 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권세 많도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고난 받았네 나를 구원하실이 예수밖에 없네…
예수를 보라! 제가 이 예수를 보니 저의 모든 죄가 깨끗이 사해 진 것입니다.
그러나 죄사함 받은 것과 사명인이 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사명은 20세 되던해 1966년 Mother Barry 선교사님이 서울에 올라왔을 시 저의 서울법대 2학년때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은 믿는데 저는 그것에 그냥 머물러 은혜를 물처럼 흘리며 사는데 그쳤습니다. 그때 종로 5가 길가는 저의 눈에 “와서 보라 배사라“ Come and see, Sarah Barry’s English Bible study” Free, 공짜로 영어를 그것도성경을 본토인에게 배울수 있는 기회라니!!저는 매일 한번도 빠지지 않고 아침 8-9 학교수업직전에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한 일년쯤하자 저도 모르게 캠퍼스에 뛰쳐나가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안드레가 형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가서보자! 하던 것과, 사마리아여인이 동네로 돌아가 “와서 보라, 저가 메시아가 아닌가!” 하던 그 감격이 저에게 약동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또 사명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고민은 대학 3학년 때부터 심각하게 되어갔습니다. 저는 말씀을 통해, 세계선교하려면 외무고시를 보아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때 저희서울법대생들은 고등고시와 동기중 약 20 여명이 외무고시를 목숨내놓고 공부하려고 도서관 좋은 좌석을 새벽부터 맡아놓고, 잠시도 궁둥이를 뜨지않고 하루 종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어찌든지 고시에 합격해야, 믿는 자의 체면도 서고, 목자가 합격해야 양들도 예수를 잘믿을 것인데 하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당시는 초창기라서 매일 저녁 5.30 부터약 1시간 이상 센터에서 리더 모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공부가 한창 잘되려고 할 때쯤 자리를 뜨고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보면 옆좌석에 앉은 친구는 그동안 약 30-40 페이지의 법서진도를 나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30-40 페이지이면, 한 주일에 200 페이지를 손해 보는 것입니다. 머리가 비슷비슷한 법대 수재들 틈에서 한주에 200 페이지…한 달이면 책 4번을 읽을 시간을 잃게 되면, 일년에 48권을 못 읽는 것이 되고, 결국 많이 책을 읽고 보는 자가 고시에 합격하는데 저는 불합격이 불보듯 뻔한 계산이 나왔습니다. 휴!!! 이를 어쩐담!!! 저는 고시 합격이냐 불합격이냐? 이에 따라 저의 인생이 낙오냐 성공이냐?가 좌우되는 기로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때 죄의 뱀은 날름거리는 혀를 내보이며, 계속 유비에프 리더 모임에 나가면 반드시 망하리라고 주둥이를 놀려댔습니다. 그 말이 진짜처럼 들려서 등에 땀이 주루룩 났습니다.
이 고시 뱀이 나를 물어 죽이려는 구나! 아니 저는 이미 물려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입니다. 모세가 놋뱀을 든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저에게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이 저의 귀를 때렸습니다. 예수를 바라본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그때 저에게 주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니!!!” 뱀은 저에게 먼저 고시? 먼저고시! 아니면 죽어! 하고 말하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먼저 그의 나라, 먼저 그의 의!! 그러면 살리라 하고 외쳤습니다. 이 뱀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사이에서, 마침내 저는 “죽으면 죽으리라! 망해도 예수님과 함께 망하자! 그리하면 살리라!!! 하는 믿음의 소리를 따라 매일 오후 5시 경 용감히 일어나 말씀과 기도가 있는 센터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정말 망할 것만 같은 심정이 수없이 들었지만 대학 3학년, 4학년 고시가 가까워 오는 때일수록 마태 6:33 말씀을 수없이 외치며 먼저 예수님을 바라보자하였습니다.
드디어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당시 전국에서 1,000 여명이 외무고시 시험을 쳤는데, 17명이 합격했습니다. 그 중에는 현재 UN의 반 사무총장도 외무고시 3기입니다. 저희 법대 20여명 동기 중에서는 2명이 합격했습니다. 합격자는 바로 저와 저의 양 윤지준 형제 였습니다. 아멘,
예수님과 함께 망하려 하면 절대로 망하지 않고 오히려 승리를 주심을 절실하게 체험하는 승리의 학창시절이었습니다. 아멘.
이렇게 예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순간순간 승리한 지난 47년간 유비에프목자생활과 세계선교 이야기를 하자면 최소한 47시간은 걸릴것 같아 여기서 이만 그쳐야 하겠습니다. 또 기회가 주어지면,애인이냐 예수님이냐? 하나님 축복이냐, 하나님이냐?
장가가서 장인어른이 사준 집에 들어가느냐, 목자로 살기위해 집을 포기하느냐? 외무부 직장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여 외무부를 사표 낼 수 있느냐 마느냐? 아내와 자식 뒤로 하고 예수님 때문에 북한 외교관처럼 오해 받으면서 혼자 해외 생활을 할수 있겠느냐 ? 나의 영광과 체면이냐 오직 예수님영광이냐, 이제 은퇴냐 아니면 과거 50년을 준비운동으로 치고 다시 시작이냐 등등 그때마다, 예수님 먼저 찾고 쳐다보는 가운데 승리주신 이야기들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한마디: Look! Jesus! 바라보자! 예수!
안요셉 선교사
예수를 바라보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 3:14-15)
아름다운 제주도에 와서 갑자기 뱀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올해는 뱀띠 해 이기에 뱀 이야기를 하는게 아닙니다. 하여튼 올레마을을 걸어실 때 혹시도 모르니 뱀은 조심하고 볼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에 나오는 뱀은 각 의과대학의 상징인 치료의 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달린뱀, 곳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위에 뱀을 든 것 같이, 예수님도 갈보리 언덕 십자가 나무위에 높이 달렸습니다. 하나님은 뱀에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보면 살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물린 자가 그 뱀을 보면 모두 살려 주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하늘과 땅 사이 나무에 높이 달린 예수를 바라보는 자, 즉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여 주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고뇌하는 지성인 니고데모에게 주신 귀한 말씀입니다. 본문을 둘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민수기 21:4-9 에 나와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했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하매.”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시고 입히시며, 보호하심을 그동안 수없이 보고도 하나님의 구원과 또 훈련주심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방 원망을 했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백성들이 자신들의 범죄를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이 뱀들이 그들에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얼마나 간단한 방법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은 아주 쉽고 누구나 할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놋뱀을 쳐다보라!” Look the bronze snake! “그러면 살리라” “and you will live!”였습니다. 놋뱀은 이미 장대위에 높이 달려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뱀에 물린 자가 단순히 놋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살게 되었습니다. 왜 살았읍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었기에 이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를 살리신 것입니다. 곧 “말씀순종!” “구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님을 또 볼수 있습니다. 자 좀 상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하자 독사, 코브라, 방울뱀, 불뱀들이 갑자기 사방에서 우글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천막 밑으로 위로 막 몰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물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다급한 사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엄마! 저기 뱀봐! 어디? 저기 저기! 아니 여기, 또 저어기… 막 몰려오네! 처음에는 달아났겠지요! 우선 피하고 봐야지요! 그러나 곧 사방에서 몰려오는 불뱀들을 인해 물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달아나다가 이제는 막대기나 칼로 뱀과 싸우기 시작합니다. 제가 검도가 3단 입니다. 이런 때를 위해 좀 배워 두었지요. 아마 저는 기합소리도 요란하게….이야압!!!“사방 적살검법” (즉 4개 방향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하나하나 물리치는 검법) 을 활용하며 용감무쌍하게 사방의 뱀들을 하나하나 물리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매님들의 탄성을 자아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새 한두 군데는 이미 물려 버렸습니다. 태권도, 발차기 등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뱀들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고자 온갖 몸부림을 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 모두는 다른 사람을 돌볼 여유가 없습니다. 모두가 모두를 공격해오는 수많은 불뱀들 앞에서 혼비백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안 물린 자가 없이 거의 모두 물리게 됩니다. 그리고 모두 죽음의 신음을 하면서 살아날 길을 찾습니다.
약이 어디 있나? 사막이니 약이 어디 있습니까? 광야에 병원이 어디 있습니까? 의사도 약사도 같이 물렸으니 남을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 이때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놋뱀을 바라보라! 장대위에 달린 불뱀을 쳐다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뱀을 쳐다보는 자마다 살리라! 하셨다. 어린아이들은 그 말에 단순히, 어디 놋뱀이 있어?? 아! 저기로 구나하고, 놋뱀을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뱀의 독에서 씻은 듯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보세요! 쳐다보세요! 저기 저 뱀을! 쳐다보면 살아요!!! 살아 남은 자들이 외칩니다. “놋뱀을 쳐다보라! 그러면 살리라!! 누구든지 그 말을 듣고 믿고 높이 달린 놋뱀을 쳐다 본 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모두 다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쳐다본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미친 소리하고들 하고 있네. 뱀에 물려 죽게 되었는데, 무엇 놋뱀을 쳐다보면 낫는다고! 그게 될 말이야! 좀 이성적으로 이치에 맞게 과학적으로 이야기해야지! 나는 뱀 해독제가필요해!! 하면서 절대로 놋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관심이 없습니다. 놋뱀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것도,, 또 눈앞에 보여도, 쳐다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놋뱀을 쳐다보러 가는 자들을 비웃고, 무시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때를 놓쳐 죽어가고 맙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모세를 통해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놋뱀을 만들라, 물린 자마다 쳐다보면 살리라! Look at the snake! You will live!”
2.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예수님은 놋뱀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구원으로 이야기를 옯깁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놋뱀과 예수님은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아담이 뱀에게 속아서 죽임을 당한 것이 인류의 죄의 시작입니다. 즉 모든 인류는 뱀에게 물려 죽어가는 광야의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죄에 물린 인류는 너나 할것 없이, 니고데모같이 모든 부귀영화 권세를 다 가졌다 할지라도 예외 없이 죽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뱀에 물린 것 즉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 뱀 즉 죄에 물린 인류에게 해결책이 무엇이겠읍니까? 창세기 3:15에 하나님께서 뱀에게 언도를 내리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것은 뱀에게는 무서운 심판의 말씀이요, 아담과 하와와 앞으로 올 모든 인류에게는 희망과 약속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즉 여자의 후손가운데서 메시아가 오셔서 뱀의 머리를 쳐부숨으로 인류를 그 죄와 죽음에서 건지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모세의 놋뱀과 인자의 들림을 니코데모에게 이야기 하신이유가 무엇입니까? 니고데모와 영적인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니고데모 같은 자를 살리는 방법은 바로, 지적인 이야기도, 꾸지람도, 설명도 아니요,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임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유일하게 니고데모가 구원을 받을 길은 뱀에 물린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께서 높이 드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하고 계신 예수님은 곧 자기 자신이 나무에 높이 달려야만 또 높이 달리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를 바라보아야만 온 세상죄인과 니고데모 같은 지성인들이 살아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죄에 물려 죽어가는 온 인류를 살리시려고, 그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죄 지은 자마다 저주를 받을 자입니다. 그래서 죄지은 우리는 모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우리대신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셨습니다. 그리고 갈보리 높은 언덕 위, 온 이스라엘이 다 쳐다 볼 수 있는 곳에 예수를 달아매었습니다. 즉 온 인류가 쳐다 볼 수 있도록 하늘과 땅 사이에 높이 매달으셨습니다. 그리고 죄의 독뱀에 물린 자마다 예수님을 쳐다보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예수를 바라보면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지성인들에게도 똑 같이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불뱀은 바로 온 사방팔방에서 몰려오는 무서운 죄의 유혹과 같습니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똑같이 달려듭니다. 대학생들, 평신도 선교사, 스텝목자들이라고 봐주는것 없습니다. 미국사람, 한국사람, 아프리카 멕시코인 구별이 없습니다. 인터넷, 셀폰, 개인 이메일, 신문, 방송, TV 잡지등 아무데서고 튀어나와 닥치는 대로 뭅니다. 안 물리려 노력해도 되지 않습니다. 이뱀에서 살아나기 위해 철학, 교육, 과학, 심리학, 온갖 종교, 미신들이 나와서 치료해 보겠다고 하나 소용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과 같이, 놋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높이 들라, 물린 자마다 쳐다보면 살리라! 했듯 높이 달리신 예수님을 쳐다보는 것이 유일무이, 유효한 처방약입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믿은 모태신앙인입니다. 이 ‘모태’라는 말은 “아무것도 못한다고”해 서“못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도 잘나오고, 반장에 우등생에 소위 잘나가던 KS 마크를 달고 다녔기에 제가 죄인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2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심각한 인생문제에 부닥쳤습니다. 아 인생이란 무엇인가? 저렇게 하루아침에 죽으면 모든 게 끝장 인것을.. 우리 어머님은.. 아니 나는 도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 나는 무엇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나? 또 사춘기가 되면서, 온갖 정욕과 죄에 시달리며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아니 빨리 이 세상을 떠나 버리는게 최선이야! 하면서 니힐리즘에 빠져 헤메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나를 따라 선교사가 성경을 가르치는 모임에 나갔는데, 거기서 나는 큰 죄인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지은 죄는 별로 없지만, 제 마음으로 지은 죄가 너무너무 많았습니다. 사춘기의 모든 정욕의 죄, 시기, 미움, 살인, 죄란 죄는 제 속에서 모두 짓고도 겉으로는 최고 모범생처럼 위선하며 교회에 다녀온 모태신앙인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죄의 뱀에 물려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는 저의 본래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잠시 기쁜뒤 또 도로아미타불로 슬프고, 의미 없고, 죽고 싶고, 거저 괴로워 죽지못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죄의 뱀에 물린데서 저를 살려보려고 무진 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착하게 살아보려 하면 할수록 더 죄만 많아지는 것이 마치 수갑에서 손을 빼려면 뺄수록 더 조여지는 원리와 같았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온갖 철학 책을 뒤져보며, 노력해도 헛수고 였습니다. 저는 이제 죄인괴수였었기에 제일 겁나는 것이 예수님이 구름타고 언제든지 심판하러온다는 말씀 이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사고로 죽어버리면 지옥에 떨어져 버릴 것이 틀림없어 죽을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어느 저녁 저는 나의 이 주홍같이 붉은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길거리를 하염없이 헤메며 죄에서 벗어날 길을 찾으며 투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정은 다가오는데 해결책은 그 어디서고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예수십자가에 달리심은 바로 너의 죄를 위해서였다 하는 생각이 번갯불처럼 스쳐갔습니다. 아니 그럴 수가? 저는 어릴 때 부터 수없이 불렀던 찬송가 속에서, 또 설교 말씀 속에서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은 들었는데 이것이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것은 한 번도 생각하지도, 믿지도 않고 지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눈물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의죄를 위해서임을 영접하고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예수사랑하심 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권세 많도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고난 받았네 나를 구원하실이 예수밖에 없네…
예수를 보라! 제가 이 예수를 보니 저의 모든 죄가 깨끗이 사해 진 것입니다.
그러나 죄사함 받은 것과 사명인이 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사명은 20세 되던해 1966년 Mother Barry 선교사님이 서울에 올라왔을 시 저의 서울법대 2학년때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은 믿는데 저는 그것에 그냥 머물러 은혜를 물처럼 흘리며 사는데 그쳤습니다. 그때 종로 5가 길가는 저의 눈에 “와서 보라 배사라“ Come and see, Sarah Barry’s English Bible study” Free, 공짜로 영어를 그것도성경을 본토인에게 배울수 있는 기회라니!!저는 매일 한번도 빠지지 않고 아침 8-9 학교수업직전에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한 일년쯤하자 저도 모르게 캠퍼스에 뛰쳐나가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안드레가 형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가서보자! 하던 것과, 사마리아여인이 동네로 돌아가 “와서 보라, 저가 메시아가 아닌가!” 하던 그 감격이 저에게 약동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또 사명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고민은 대학 3학년 때부터 심각하게 되어갔습니다. 저는 말씀을 통해, 세계선교하려면 외무고시를 보아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때 저희서울법대생들은 고등고시와 동기중 약 20 여명이 외무고시를 목숨내놓고 공부하려고 도서관 좋은 좌석을 새벽부터 맡아놓고, 잠시도 궁둥이를 뜨지않고 하루 종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어찌든지 고시에 합격해야, 믿는 자의 체면도 서고, 목자가 합격해야 양들도 예수를 잘믿을 것인데 하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당시는 초창기라서 매일 저녁 5.30 부터약 1시간 이상 센터에서 리더 모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공부가 한창 잘되려고 할 때쯤 자리를 뜨고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보면 옆좌석에 앉은 친구는 그동안 약 30-40 페이지의 법서진도를 나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30-40 페이지이면, 한 주일에 200 페이지를 손해 보는 것입니다. 머리가 비슷비슷한 법대 수재들 틈에서 한주에 200 페이지…한 달이면 책 4번을 읽을 시간을 잃게 되면, 일년에 48권을 못 읽는 것이 되고, 결국 많이 책을 읽고 보는 자가 고시에 합격하는데 저는 불합격이 불보듯 뻔한 계산이 나왔습니다. 휴!!! 이를 어쩐담!!! 저는 고시 합격이냐 불합격이냐? 이에 따라 저의 인생이 낙오냐 성공이냐?가 좌우되는 기로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때 죄의 뱀은 날름거리는 혀를 내보이며, 계속 유비에프 리더 모임에 나가면 반드시 망하리라고 주둥이를 놀려댔습니다. 그 말이 진짜처럼 들려서 등에 땀이 주루룩 났습니다.
이 고시 뱀이 나를 물어 죽이려는 구나! 아니 저는 이미 물려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입니다. 모세가 놋뱀을 든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저에게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이 저의 귀를 때렸습니다. 예수를 바라본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그때 저에게 주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니!!!” 뱀은 저에게 먼저 고시? 먼저고시! 아니면 죽어! 하고 말하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먼저 그의 나라, 먼저 그의 의!! 그러면 살리라 하고 외쳤습니다. 이 뱀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사이에서, 마침내 저는 “죽으면 죽으리라! 망해도 예수님과 함께 망하자! 그리하면 살리라!!! 하는 믿음의 소리를 따라 매일 오후 5시 경 용감히 일어나 말씀과 기도가 있는 센터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정말 망할 것만 같은 심정이 수없이 들었지만 대학 3학년, 4학년 고시가 가까워 오는 때일수록 마태 6:33 말씀을 수없이 외치며 먼저 예수님을 바라보자하였습니다.
드디어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당시 전국에서 1,000 여명이 외무고시 시험을 쳤는데, 17명이 합격했습니다. 그 중에는 현재 UN의 반 사무총장도 외무고시 3기입니다. 저희 법대 20여명 동기 중에서는 2명이 합격했습니다. 합격자는 바로 저와 저의 양 윤지준 형제 였습니다. 아멘,
예수님과 함께 망하려 하면 절대로 망하지 않고 오히려 승리를 주심을 절실하게 체험하는 승리의 학창시절이었습니다. 아멘.
이렇게 예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순간순간 승리한 지난 47년간 유비에프목자생활과 세계선교 이야기를 하자면 최소한 47시간은 걸릴것 같아 여기서 이만 그쳐야 하겠습니다. 또 기회가 주어지면,애인이냐 예수님이냐? 하나님 축복이냐, 하나님이냐?
장가가서 장인어른이 사준 집에 들어가느냐, 목자로 살기위해 집을 포기하느냐? 외무부 직장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여 외무부를 사표 낼 수 있느냐 마느냐? 아내와 자식 뒤로 하고 예수님 때문에 북한 외교관처럼 오해 받으면서 혼자 해외 생활을 할수 있겠느냐 ? 나의 영광과 체면이냐 오직 예수님영광이냐, 이제 은퇴냐 아니면 과거 50년을 준비운동으로 치고 다시 시작이냐 등등 그때마다, 예수님 먼저 찾고 쳐다보는 가운데 승리주신 이야기들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한마디: Look! Jesus! 바라보자!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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