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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2년 성탄 2강(눅2:1-20) 큰 기쁨의 좋은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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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774회 작성일 12-12-2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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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성탄 말씀 제 2 강
말씀 | 누가복음 2:1-20
요절 | 누가복음 2:10,11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성탄시즌에 백화점들은 세일을 하면서 엄청난 소비를 일으키고, 산타클로스가 나와서 선물을 주고, 연예인들의 화려한 공연이 계속됩니다. 이런 것들은 종교와 상업주의가 결합하여 위조된 기쁨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가이사 아구스도를 통한 “로마에 의한 평화”에 대비하여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을 통한 평화와 기쁨을 보여줍니다.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마음 깊이 새기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고 하였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주변 세계와 로마 제국 안에서 있었던 오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가져온 인물입니다. 로마 제국에서는 그를 구원자로 여기며 추앙했습니다. 당시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여 재산을 탈취하고 주민들을 노예로 끌고가서 국가의 경제를 유지했습니다. 주전 4년 경에는 갈릴리 북부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고 2천명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로마군의 중요한 정복 원칙 가운데 하나는 정복된 민족이 겁에 질리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식민지에서 세금을 거두어 자국민을 배부르게 하고 군대를 유지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반감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힘이 없는 백성들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구스도의 명령에 따라서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갔습니다. 마리아는 해산달이었기 때문에 배가 부른 몸으로 약 144Km의 거리를 걸어가야했습니다. 로마의 호적제도는 자신이 현재 거주하는 지역에서 인적사항만 기록하는 훨씬 더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이었지만 유대인들은 로마의 호적 제도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최소한의 민족적 자존심을 보여주고자 함이었습니다. 또 마리아는 임산부이기 때문에 호적하러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것이 알려져 정신적 압박을 받고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에 대한 배려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에 기초해서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구스도의 영을 쓰셔서 미가서 5:2절 말씀을 성취하십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마리아가 해산할 아기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입니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습니다. 이는 그가 영원한 하나님이심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자신의 뜻대로 운행하는 주관자이십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섭리를 달성하기 위해서 지상의 통치자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특히 그의 말씀을 성취하십니다. 아직 성취되지 않은 말씀은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역사에 귀히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있을 때 해산할 날이 차서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 마리아가 땀을 흘리며 해산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장소는 위생시설이 잘된 병원이나 따뜻한 방이 아니라 가축들이 사는 외양간이었습니다. 거친 풀과 한기가 느껴지는 곳에서 짐승들과 함께 예수님은 태어나셨습니다. 참으로 슬프고 비참한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사람들이 살기가 어렵다고 몸부림치는 백성들 한 가운데서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히 4:15). 우리와 같이 가난하고, 연약하고, 압제 받는 백성 가운데 태어나셨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이런 곳에 태어나셨습니까? 우리의 실패와 슬픔과 운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난한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처한 위치에 내려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무한자가 유한한 세계에 들어오신 것 자체가 신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다니!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겸손을 볼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아기는 누구와도 친구가 됩니다. 아기는 무력하지만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고 모두의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이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저는 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기 원합니다. 1970년에 마이애미 병원에 에드워다라는 17살난 소녀가 인슐린 쇼크로 입원을 했습니다. 그녀는 의식불명상태에 떨어지기 바로 전에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결코 나 홀로 두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 엄마 케이는 “암만. 내 너 홀로 두지 않기로 약속하마. 약속해.”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38년 동안 이 엄마는 거의 매일 24시간 그 딸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 아이와 함께 있으며 돌보았습니다. 그 딸의 금발머리는 희어졌고 얼굴은 주름살이 끼였습니다. 2008년에 그녀의 엄마는 38년 동안 돌보던 딸의 침대 옆자리에서 잠을 자는 듯이 죽었습니다. 마침내 에드워다도 59세의 나이인 올해 추수감사절 하루 전에 죽었습니다. 딸 곁을 떠나지 않겠다던 이 어머니의 약속과 그 약속을 지킨 희생적인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이번 성탄절에 우리는 아무 조건 없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천 년 전 아담의 타락 이후 창세기 3;15절에 약속된 여자의 후손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으로서의 영광과 권세와 특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다 비우셨습니다. 그는 일생 머리 둘 곳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고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기 목숨까지 주고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도 사람들은 “네가 만일 그리스도여든 너 자신을 구원하라”고 소리쳤지만 그는 자신을 온전히 버리셨습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그가 자기를 온전히 비우셨기에 온 인류를 얻고 죄인된 우리가 그에게 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자신을 계승할 아들을 하나 얻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믿음 생활을 십년을 했어도 자식이 없자 하나님께 불평을 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100세가 되어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라자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축복인 이삭을 주님께 드림으로 자기를 온전히 비웠습니다. 그는 이때 하나님께서 정말 그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성육신의 은혜를 증거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우리 선교사님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복음을 전함으로 구원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 나라의 선교사이십니다. 우리가 연말을 당하여 한 해를 돌아볼 때에 작은 무엇이라도 움켜쥐고자 하기보다 자기를 비우기를 원합니다. 자기를 비움으로 예수님으로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예수님으로 채워지면 그를 통해서 구원 역사가 일어납니다. 학생 구원 역사도 자기를 비우고 낮아져서 예수님으로 채울 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 모양으로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시간을 내게 됩니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나의 가치관, 권위주의, 요구하는 마음 등을 비우게 됩니다. 마음을 비울 때 자유롭게 되고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여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아이와 같은 심성을 갖게 되고 누구하고든지 친근해질 수 있습니다. 그때 영향력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이 귀한 복음을 당시 천대받던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주셨습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그들이 크게 무서워할 때 천사가 말했습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이번에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던 분들은 그의 당선으로 기뻐하였지만,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던 분들은 허탈하여 벽보를 찢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기쁨은 상대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모든 인류가 다 죄 아래 고통하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서 슬프고 정죄를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씻어주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바로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사실 자체가 기쁜 소식이며,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곧 복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우리의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새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붉은 죄를 씻으셔서 눈보다 희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실한 증거는 그리스도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백성들을 위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역할을 하십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아무리 잘해도 5년 후에 교체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사랑과 정의로 다스려주십니다. 그가 우리를 다스려 주실 때 우리는 참 자유를 누리게 되며 영혼의 만족과 평강을 맛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영국의 유명한 생물학자였던 라이알 라디슨은 꿀벌을 연구했습니다. 꿀벌 통 속에서 수많은 일벌들이 열심히 꿀을 모으는데, 여왕벌은 군주처럼 지배 통제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여왕벌은 몸을 나타내 보이지는 않지만 헤르몬이라는 화학물질을 계속 발산하는데 이 발산되는 헤르몬을 받지 못하는 꿀벌은 죽어버리고 헤르몬을 받아서 사는 벌들만이 꿀을 만들며 살아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안에 와 계신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또한 만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에게서 오는 ‘근원적 생명의 에너지’인 사랑의 헤르몬을 받고서 일하고 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심령의 지성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공부하는 것, 그 분의 계명인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리고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성탄에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 이 땅에서 머리 둘 곳 없이 사신 예수님,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시고 희생하신 예수님, 부활 승천하신 이후 성령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평화와 기쁨이 충만한 성탄절을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천사들은 구주의 표적이 무엇이라고 말해줍니까? 1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그리스도의 표적입니다. 구주의 표적은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궁전에서 금으로 만든 포대기에 싸인 아기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표적은 가장 낮고 비천한 모습입니다.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의 모습은 가장 연약한 모습이요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입니다. 이 예수님은 목자들처럼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을 소유할 때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만한 마음, 세상 것으로 가득한 마음을 품을 때 이 표적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구유에 뉘어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평화를 느끼지 않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늘도 감동하고 땅도 감동했습니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이 모습을 보고 찬송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영광과 신성이 그 안에 나타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또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는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간에 막혔던 장벽이 제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서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놓였으므로 불화하였는데 이제 하나님과 화해를 이룸으로 평강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또 그리스도의 역사로 말미암아 모든 죄악이 제거되어 사람들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셨고, 큰 기쁨의 좋은 소식되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기쁨이 되십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그 한 마리의 양 때문에 더 기뻐하십니다(마18:13). 우리는 서로 사랑할 때 기뻐할 수 있습니다(요15:10-12). 우리는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을 때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쁨의 근원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베들레헴에 가서 주께서 그들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았습니다. 그들이 이집 저집 탐색하여 찾던 끝에 강보로 싸여 구유에 누인 평강의 왕 아기 예수님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해주었습니다. 듣는 자들은 다 그들의 말을 듣고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했습니다. 목자들은 그들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이번 성탄절에 하나님으로서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찾아서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무엇을 붙잡고 채우고자 하기보다 자기를 비움으로 예수님으로 채움 받기를 기도합니다.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주님, 나에게 어떤 요구를 하기보다 나의 연약함, 나의 아픔과 슬픔, 나의 고난에 함께 해 주시는 주님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우리 가운데 있는 아픈 사람들, 상처 받은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슬픈 사람들을 찾아 이들과 함께 할 때 주님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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