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2년 성탄 1강(눅1:5-25)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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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성탄 1 강
말씀 | 누가복음 1:5-25
요절 | 누가복음 1:17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오늘 말씀은 어두운 시대를 비춘 등불과 같은 삶을 산 사가랴와 엘리사벳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어려울 때에도 마음을 오로지 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대로 행한 대장부, 여장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당면한 어려움에 굴복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아이가 없는 가운데서도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 앞에 가장 위대한 아들 요한을 주심으로 축복하셨습니다.
헤롯 왕 때에 사가랴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헤롯 왕은 처음에는 통치를 잘 했는데 말년에 포악하게 바뀌었습니다. 그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10명의 부인 중 2명을 죽이고 3명의 아들과 처남, 처조부를 살해했습니다. 나중에는 베들레헴의 2살 아래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는 로마의 비호 아래 대제사장의 임명과 폐위에 까지 간여하여 그 타락이 극에 달했습니다. 또한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명분은 하나님의 종들인데 성경 공부도 하지 않고, 성경을 가르치지도 않고 세상 조류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 시기는 정치,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희망이 없는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그 때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였습니다. 사가랴는 제사장 일뿐만 아니라 엘리사벳도 대제사장 아론 가문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 바른 자들,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지키는 자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깊은 경외심을 가지고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중에도 많은 분들이 삶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변함없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사가랴 부부가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기 위해서 먼저 말씀을 깊이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의 구석구석을 다 공부하고 전체를 꿰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시간만 나면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기에는 뉴스도 있습니다. 야구에 대한 소식도 있습니다. K팝 가수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드라마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보와 교육적인 것과 즐길 것들을 스마트 폰을 통해서 접할 수 있으니 시간만 나면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마트 폰은 결국 사람을 거기에 중독이 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자세히 알고 보면 스마트 폰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산만합니다. 한 가지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가정 교회에서 말씀을 깊이 공부했습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나누는 시간이 그들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살 길을 찾았고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직하고 단순하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늙어가는데 자식 하나 없었습니다. 옆집 불신자는 아들 둘, 딸 셋을 쑥쑥 잘 낳는데 믿음이 좋다는 자신들은 딸 하나 없었습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자식은 하나님의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살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을 때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을 갖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에 대해서 불신이 생기기 쉽습니다. 좋은 때가 오기까지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마음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우리도 가정 교회에서 말씀을 공부하고 가끔 전도를 하는데 양이 생기기 않으면 말씀공부해서 무엇하나, 전도해서 무엇하나, 다 쓸데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어옵니다. 나중에는 그런데 드리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여 말씀 공부를 한 두 번씩 빠지기 시작합니다. 소감 쓰는 시간도 귀찮게 생각합니다. 그 시간에 영어를 더 공부하면 유창하게 영어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 시간에 좀 더 일하면 부자가 될 것 같습니다. 그 시간에 아이들하고 함께 보내면 훌륭한 사람으로 키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을 자기중심, 세상중심으로 드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말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 이삭과 리브가 가정의 이야기를 공부했습니다. 자신의 가정에 자녀 문제가 있었지만 아브라함과 같이 첩을 얻지 아니하고 이삭과 같이 줄기차게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자체를 기쁨으로, 상급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공의를 행하는 것이 그들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자기들이 하는 일이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자식이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준행하는 데서 기쁨을 찾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이 그들이 사는 힘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 힘으로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양심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서는 분명히 ‘아니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었을 때 그들의 마음은 담대했습니다.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볼 때 대장부요 여장부였습니다.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았습니다. 분향을 하는 것은 제비뽑기로 했습니다. 이는 일생 한번 할까 말까 한 귀한 직분이었습니다. 그 일에 사가랴가 제비뽑기를 해서 당첨이 되었습니다. 그가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때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섰습니다. 사가랴가 보고 무서워하니 천사가 말했습니다.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사가랴는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아들을 주시도록 끈질기게 기도해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계속 듣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응답은 속히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기간이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는 고통이었지만 인간적인 꿈이 깨어지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할 내면성을 기르는 시간이었습니다. 자녀가 없으니 그들은 시간이 누구보다 많았습니다. 그 시간에 말씀 연구를 더 깊이하고 말씀을 준행하기 위해서 힘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더욱 헌신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모든 사람들의 본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말씀 중심적인 삶은 장차 태어날 아이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위한 한 알의 썩는 밀알처럼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롬 8:28). 때가 되자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정확한 시간에 그의 기도에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어날 아기의 이름까지 지어주셨습니다. 그 아이는 어떤 인물이 됩니까? 14-16절을 보십시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준행한 엘리사벳이 잉태하자 그 아이는 모태로부터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 아이의 탄생은 사가랴와 엘리사벳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여자가 난 자 중에서 그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요한은 위대할 것입니다. 또 그는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않는 성결하고 거룩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많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할 수 있었을까요? 17절을 보십시오.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이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위한 특심과 기도의 능력입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 시대에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습니다. 아합 왕은 아내 이세벨의 영향으로 온갖 우상을 들여와서 섬기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물질적인 풍요와 쾌락을 약속하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가까이 나아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이 말에 백성이 한마디 말로도 대답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송아지 둘을 가져오게 하고 각자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각자의 신의 이름을 부르자고 했습니다.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했습니다. “그 말이 옳도다.” 바알 선지자들이 먼저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그가 이렇게 기도하매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했습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엘리야가 그들에게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말하매 곧 잡았습니다.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였습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그는 엘리야와 같이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광야에서 말씀 연구와 기도에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때가 되자 이 세례 요한은 백성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자기에게 나아오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세례 요한은 엘리야와 같은 기적을 행하지 아니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병 고침이나 귀신을 쫓아내거나 특별한 은사를 발휘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성결한 삶을 살고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그의 메시지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를 볼 때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외적인 영광이나 복지보다 죄문제를 해결받기 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는 본래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받는 것인데 요한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파격적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하면서 백성들의 마음을 예수님께 돌이켰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되어가면서 사람들이 물질적인 풍요와 세상적인 즐거움에 빠져서 영적인 소원을 많이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하면 20년 전에 비해서 복음에 대한 수용력이 팍 떨어졌습니다. 이들을 하나님께 돌이키기 위해서 우리들이 사랑과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사람을 돕다가 어려우면 남을 탓하거나 시대를 탓하기보다 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사랑이 부족하고 말씀의 능력, 기도의 능력이 부족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이 부족하면 남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또 내적인 힘이 부족하면 스스로 무너지거나 포기해 버립니다. 우리가 강해지기 위해서 먼저 자기의 내면을 돌아보고 성결하게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우물을 파다가 힘들다고 그만두면 이제까지의 수고가 헛되게 됩니다. 땅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갈수록 힘이 들지만 우물을 끝까지 파야 샘물이 터집니다. 우리가 말씀의 샘이 터질 때까지, 말씀에서 힘을 덧입을 때까지 말씀을 공부하고 준행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심정과 능력이 충만해져서 양들의 문제와 싸우고 섬길 수 있습니다. 담대한 마음으로 죄와 싸우고 끝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거스리고, 불순종하고, 교만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얻을 때 제자로 키우고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더라도 우리가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을 덧입고 이 시대의 등불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천사의 말에 대한 사가랴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그는 정작 기도의 응답이 오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찬양하기보다 자신을 바라봤습니다. 자신들이 아이를 잉태할 수 있는 나이를 넘어섰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사는 이런 그에게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벙어리가 되는 훈련을 주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 보낸 천사의 말을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라고 했습니다. 그가 이제까지 기도해왔고 말씀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때가 무르익어야 합니다. 때가 차면 그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생명을 얻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주권대로 이루어지는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으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계획보다 깊으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1-13).”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더라도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참아 기다리기를 소원합니다.
그는 벙어리가 되었지만 그 직무를 다하였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언약이란 뜻이고, 사가랴는 여호와께 기억됨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씀대로 사는 삶을 기억하시고 언약을 성취해 주셨습니다. 그 후에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있는 부끄러움을 없애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귀한 존재임을 일깨워주십니다. 이를 위해서 마음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치료해 주십니다. 사람들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시고 건강한 자아상을 갖게 하십니다.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부끄러움을 해결해 주십니다. 자녀가 없는 분은 자녀를 주심으로 부끄러움을 해결해 주십니다. 양이 없는 목자님들에게는 양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주심으로 준비시키고 때가 무르익으면 양을 보내어 주십니다. 물질 문제로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지금은 사가랴와 엘리사벳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우리에 양이 없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하나님 중심적인 믿음, 중심을 지키는 믿음, 하나님 앞에서 사는 믿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끄러움을 제하여 주실 것을 믿고 일대일 말씀 공부와 준행하는 일에 더욱 힘을 쓰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목자님들이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그 삶이야말로 이 시대를 밝히 비추는 등불임을 믿습니다. 우리 당대에 열매나 축복이 없으면 우리의 자녀들 시대에 더 크고 놀라운 열매를 주실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행하는 의인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누가복음 1:5-25
요절 | 누가복음 1:17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오늘 말씀은 어두운 시대를 비춘 등불과 같은 삶을 산 사가랴와 엘리사벳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어려울 때에도 마음을 오로지 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대로 행한 대장부, 여장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당면한 어려움에 굴복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아이가 없는 가운데서도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 앞에 가장 위대한 아들 요한을 주심으로 축복하셨습니다.
헤롯 왕 때에 사가랴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헤롯 왕은 처음에는 통치를 잘 했는데 말년에 포악하게 바뀌었습니다. 그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10명의 부인 중 2명을 죽이고 3명의 아들과 처남, 처조부를 살해했습니다. 나중에는 베들레헴의 2살 아래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는 로마의 비호 아래 대제사장의 임명과 폐위에 까지 간여하여 그 타락이 극에 달했습니다. 또한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명분은 하나님의 종들인데 성경 공부도 하지 않고, 성경을 가르치지도 않고 세상 조류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 시기는 정치,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희망이 없는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그 때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였습니다. 사가랴는 제사장 일뿐만 아니라 엘리사벳도 대제사장 아론 가문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 바른 자들,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지키는 자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깊은 경외심을 가지고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중에도 많은 분들이 삶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변함없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사가랴 부부가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기 위해서 먼저 말씀을 깊이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의 구석구석을 다 공부하고 전체를 꿰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시간만 나면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기에는 뉴스도 있습니다. 야구에 대한 소식도 있습니다. K팝 가수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드라마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보와 교육적인 것과 즐길 것들을 스마트 폰을 통해서 접할 수 있으니 시간만 나면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마트 폰은 결국 사람을 거기에 중독이 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자세히 알고 보면 스마트 폰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산만합니다. 한 가지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가정 교회에서 말씀을 깊이 공부했습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나누는 시간이 그들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살 길을 찾았고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직하고 단순하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늙어가는데 자식 하나 없었습니다. 옆집 불신자는 아들 둘, 딸 셋을 쑥쑥 잘 낳는데 믿음이 좋다는 자신들은 딸 하나 없었습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자식은 하나님의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살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을 때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을 갖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에 대해서 불신이 생기기 쉽습니다. 좋은 때가 오기까지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마음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우리도 가정 교회에서 말씀을 공부하고 가끔 전도를 하는데 양이 생기기 않으면 말씀공부해서 무엇하나, 전도해서 무엇하나, 다 쓸데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어옵니다. 나중에는 그런데 드리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여 말씀 공부를 한 두 번씩 빠지기 시작합니다. 소감 쓰는 시간도 귀찮게 생각합니다. 그 시간에 영어를 더 공부하면 유창하게 영어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 시간에 좀 더 일하면 부자가 될 것 같습니다. 그 시간에 아이들하고 함께 보내면 훌륭한 사람으로 키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을 자기중심, 세상중심으로 드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말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 이삭과 리브가 가정의 이야기를 공부했습니다. 자신의 가정에 자녀 문제가 있었지만 아브라함과 같이 첩을 얻지 아니하고 이삭과 같이 줄기차게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자체를 기쁨으로, 상급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공의를 행하는 것이 그들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자기들이 하는 일이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자식이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준행하는 데서 기쁨을 찾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이 그들이 사는 힘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 힘으로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양심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서는 분명히 ‘아니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었을 때 그들의 마음은 담대했습니다.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볼 때 대장부요 여장부였습니다.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았습니다. 분향을 하는 것은 제비뽑기로 했습니다. 이는 일생 한번 할까 말까 한 귀한 직분이었습니다. 그 일에 사가랴가 제비뽑기를 해서 당첨이 되었습니다. 그가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때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섰습니다. 사가랴가 보고 무서워하니 천사가 말했습니다.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사가랴는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아들을 주시도록 끈질기게 기도해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계속 듣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응답은 속히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기간이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는 고통이었지만 인간적인 꿈이 깨어지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할 내면성을 기르는 시간이었습니다. 자녀가 없으니 그들은 시간이 누구보다 많았습니다. 그 시간에 말씀 연구를 더 깊이하고 말씀을 준행하기 위해서 힘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더욱 헌신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모든 사람들의 본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말씀 중심적인 삶은 장차 태어날 아이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위한 한 알의 썩는 밀알처럼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롬 8:28). 때가 되자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정확한 시간에 그의 기도에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어날 아기의 이름까지 지어주셨습니다. 그 아이는 어떤 인물이 됩니까? 14-16절을 보십시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준행한 엘리사벳이 잉태하자 그 아이는 모태로부터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 아이의 탄생은 사가랴와 엘리사벳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여자가 난 자 중에서 그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요한은 위대할 것입니다. 또 그는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않는 성결하고 거룩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많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할 수 있었을까요? 17절을 보십시오.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이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위한 특심과 기도의 능력입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 시대에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습니다. 아합 왕은 아내 이세벨의 영향으로 온갖 우상을 들여와서 섬기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물질적인 풍요와 쾌락을 약속하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가까이 나아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이 말에 백성이 한마디 말로도 대답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송아지 둘을 가져오게 하고 각자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각자의 신의 이름을 부르자고 했습니다.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했습니다. “그 말이 옳도다.” 바알 선지자들이 먼저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그가 이렇게 기도하매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했습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엘리야가 그들에게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말하매 곧 잡았습니다.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였습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그는 엘리야와 같이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광야에서 말씀 연구와 기도에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때가 되자 이 세례 요한은 백성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자기에게 나아오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세례 요한은 엘리야와 같은 기적을 행하지 아니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병 고침이나 귀신을 쫓아내거나 특별한 은사를 발휘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성결한 삶을 살고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그의 메시지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를 볼 때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외적인 영광이나 복지보다 죄문제를 해결받기 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는 본래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받는 것인데 요한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파격적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하면서 백성들의 마음을 예수님께 돌이켰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되어가면서 사람들이 물질적인 풍요와 세상적인 즐거움에 빠져서 영적인 소원을 많이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하면 20년 전에 비해서 복음에 대한 수용력이 팍 떨어졌습니다. 이들을 하나님께 돌이키기 위해서 우리들이 사랑과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사람을 돕다가 어려우면 남을 탓하거나 시대를 탓하기보다 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사랑이 부족하고 말씀의 능력, 기도의 능력이 부족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이 부족하면 남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또 내적인 힘이 부족하면 스스로 무너지거나 포기해 버립니다. 우리가 강해지기 위해서 먼저 자기의 내면을 돌아보고 성결하게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우물을 파다가 힘들다고 그만두면 이제까지의 수고가 헛되게 됩니다. 땅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갈수록 힘이 들지만 우물을 끝까지 파야 샘물이 터집니다. 우리가 말씀의 샘이 터질 때까지, 말씀에서 힘을 덧입을 때까지 말씀을 공부하고 준행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심정과 능력이 충만해져서 양들의 문제와 싸우고 섬길 수 있습니다. 담대한 마음으로 죄와 싸우고 끝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거스리고, 불순종하고, 교만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얻을 때 제자로 키우고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더라도 우리가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을 덧입고 이 시대의 등불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천사의 말에 대한 사가랴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그는 정작 기도의 응답이 오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찬양하기보다 자신을 바라봤습니다. 자신들이 아이를 잉태할 수 있는 나이를 넘어섰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사는 이런 그에게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벙어리가 되는 훈련을 주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 보낸 천사의 말을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라고 했습니다. 그가 이제까지 기도해왔고 말씀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때가 무르익어야 합니다. 때가 차면 그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생명을 얻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주권대로 이루어지는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으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계획보다 깊으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1-13).”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더라도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참아 기다리기를 소원합니다.
그는 벙어리가 되었지만 그 직무를 다하였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언약이란 뜻이고, 사가랴는 여호와께 기억됨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씀대로 사는 삶을 기억하시고 언약을 성취해 주셨습니다. 그 후에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있는 부끄러움을 없애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귀한 존재임을 일깨워주십니다. 이를 위해서 마음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치료해 주십니다. 사람들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시고 건강한 자아상을 갖게 하십니다.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부끄러움을 해결해 주십니다. 자녀가 없는 분은 자녀를 주심으로 부끄러움을 해결해 주십니다. 양이 없는 목자님들에게는 양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주심으로 준비시키고 때가 무르익으면 양을 보내어 주십니다. 물질 문제로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지금은 사가랴와 엘리사벳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우리에 양이 없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하나님 중심적인 믿음, 중심을 지키는 믿음, 하나님 앞에서 사는 믿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끄러움을 제하여 주실 것을 믿고 일대일 말씀 공부와 준행하는 일에 더욱 힘을 쓰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목자님들이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그 삶이야말로 이 시대를 밝히 비추는 등불임을 믿습니다. 우리 당대에 열매나 축복이 없으면 우리의 자녀들 시대에 더 크고 놀라운 열매를 주실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행하는 의인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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