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3년 창세기 12강(17장) 여러 민족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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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창세기 제 12 강
말씀 | 창세기 17:1-27
요절 | 창세기 17:5
여러 민족의 아버지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오늘 말씀에 언약이라는 말이 13번 나옵니다. 이 언약은 12장에서 주신 것인데 다시 말씀하심으로 아브라함이 이 말씀을 마음과 살에 새기게 하십니다. 먼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리고 할례를 행하도록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행함으로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 인생에 두신 하나님의 소원, 사명을 따라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소시민으로 살기보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살도록 어떻게 도우십니까?
첫째, 아브람을 책망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아브람이 99세 때에 나타나셨습니다. 이스마엘을 낳고 13년 동안 공백기였습니다. 이 기간이 성경 기록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가 글을 쓰고 교정할 때 덜 중요한 부분이나 필요 없는 부분은 삭제해 버립니다. 13년 동안 아브람은 ‘잃어버린 삶’을 살았습니다. 그 동안 아브람은 이스마엘을 키우는 재미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이스마엘의 재롱을 보면서 박수를 치고, 일을 하다가 돌아와서 이스마엘의 웃음을 보면 모든 피곤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어버이 날에 학교에서 만들어온 카네이션을 달아줄 때면 행복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큰 민족도, 복의 근원이 되는 것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현실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차자 그에게 나타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오 돌들로도 아브람의 자손을 만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그는 이 말씀을 믿고 신앙생활을 출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기근을 만났을 때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책망하지 않고 바로 왕을 통해서 물질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서방 연합군에게 포로로 잡혀간 롯을 구원하기 위해서 추격전을 펼쳐서 구출해왔습니다. 이제는 물질문제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손해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산 지 10년 정도 지나서 사래의 요청으로 여종 하갈을 첩으로 들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때도 하나님은 그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책망하지 않고 감당해 주셨습니다. 그를 낳은 지 13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물질의 축복을 주시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도우실 수 있지만 사라를 통해서 아이를 얻을 수는 없다고 예단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그에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그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무슨 의미입니까? 완전하라는 말씀은 흠이 없이 되라, 거룩하라, 온전하라는 뜻입니다. 아브람이 믿음으로 살아왔지만 인간적인 것들을 버리고 완전히 변화되라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믿되 처음에 주신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심을 알지만 나의 인생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 같지가 않습니다. 내 일을 내 힘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의 인생에 해결되지 않은 죄로 인해서 두려움이 있고 슬픔이 있는데 그것을 간직하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학생 양을 얻고 열매를 맺기 원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 무양목자로서 사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냥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더 이상 기도도 하지 않고 내 가정을 잘 돌보고 아이나 잘 키우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23:19)”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불신을 회개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어야겠습니다. 매일 말씀 앞에 회개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 앞에 완전한 자로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어 주신 하나님.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십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이름은 그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아브람은 고상한 아버지입니다. 그는 이스마엘로 인해서 고상한 아버지로 만족하며 살고자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적당히 고상하게 사는 삶입니다. 자기만족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은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되니 부담이 없어 좋습니다. 자신과 가족만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되든지 신경을 쓰지 않으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갈수록 골치 아프게 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 뿐인 인생을 정말 가치 있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아브람이 옛 사람을 버리고 새롭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과거의 방식대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갈등을 느끼는 것은 이전의 내 스타일대로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에게 돈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능력이 없습니까? 하나님께 사람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돈이나 능력이나 방법이 아닙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딱딱하고 형식적인 것을 버리고 초심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라고 하십니다. 세계를 책임지고 큰 스케일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한 사람의 아버지 노릇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마음을 넓혀야 하고 더 큰 섬김과 희생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는 복의 근원에서 보다 발전된 의미입니다. 나와 가족에게만 관심 갖고 거기에 매어서 살지 말고 이웃과 여러 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관심의 폭을 넓히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줄을 넓게 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안목을 갖고 살라는 것입니다.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서 수많은 왕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좁은 가슴을 찢어 넓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81:10에서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케일을 키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크게 키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것은 그가 한 가정의 아버지 아브람으로 머물게 하심이 아닙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 곧 아브라함으로 쓰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사람을 언약의 백성이요 복의 근원으로 삼으사 천하 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하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탄생되어질 많은 왕들, 여러 민족들이 있습니다. 한 가정으로 시작된 역사가 두 세대만 지나도 30,40명씩 모입니다. 우리는 나의 당대만 보지 말고 후손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역사의식을 가지고 길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왕 같은 제사장들을 탄생시키는 믿음의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후손들 가운데 영적인 거목들이 많이 탄생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결단의 순간들」이라는 책에는 스기하라 치우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기하라 치우네는 일본의 전통적인 사무라이 가문에서 태어나 1930년대 러시아와 가까운 리투아니아 총영사가 되었습니다. 1940년 7월말 어느 아침 그는 인생의 큰 반전을 맞이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그의 집 밖에 모여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고 두려움에 가득 찬 유대인들로 폴란드에서 게슈타포의 손아귀를 가까스로 빠져나와 목숨을 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일본 비자를 원했습니다. 일본 비자만 있으면 다른 나라로 도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중앙정부의 인가를 받기 위해 동경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세 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계속 거절당했고 마지막에는 그런 요청 자체를 그만두라는 명령을 들었습니다. 스기하라는 고민했습니다. 전도 유망한 그가 비자 발급을 거부함으로써 평탄하게 꿈을 성취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생명을 구할 것인가? 사무라이 가문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약자를 보호하라고 배운 데다 청년 때 예수님을 영접한 그는 명령에 불복하기로 결정하고 비자를 작성했습니다. 스기하라는 거의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으며 비자를 만들었습니다. 이 일로 영사관 문을 닫으라는 명령을 받고 베를린으로 호출 받아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그는 기차를 따라 달려오는 피난민들의 손에 비자를 만들어 건네주었습니다. 단 28일, 그가 비자를 만드는 데 매진한 순간이었습니다. 짧다면 짧은 그 시간, 스기하라는 무려 6천 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는 얼마 안 되어 일본 외교계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남은 생을 전구를 팔며 가난하게 보냈습니다. 훗날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선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는 꿈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올바른 일을 하라고 요구하셨을 때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개인의 목표나 물질적 성공,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등을 우선순위에 두라고 말합니다. 편안한 삶을 보장해 줄 뿐만 아니라 자기만족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의미있는 일은 하나님과 그의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7절에서 아브라함에게 그와 그의 대대 후손 사이에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축복은 계승됩니다. 저주는 삼사대에서 그치지만 축복은 천대에 이르게 하십니다. 출애굽기 20:6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이 자녀들에게도 이어지고 있습니까?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믿음의 유산을 이어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들려줄 믿음의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8절에서는 영원한 기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영원한 기업은 아브람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면 믿는 자들이 받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땅은 천국까지 이르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백성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백성은 복이 있습니다. 아브람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부터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살아나고 하나님을 만나면 영적 잠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할례는 남자 생식기의 포피를 베는 것입니다. 할례는 살을 잘라내는 것으로서 회개하고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과거의 죄악된 생활을 청산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구별된 삶을 살겠다는 결단의 표시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정화의 개념이 있습니다. 즉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죄의 부패성을 잘라내고 아픔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정결한 삶을 살겠다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할례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고 거룩하게 살겠다는 결단의 표시입니다. 또한 이제는 죄악된 씨를 낳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낳고 키울 것에 대한 소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실 할례는 육신이 아닌 마음에 해야만 합니다(신10:16, 렘4:4, 겔44:7, 롬2:29).
이것이 신약시대에 와서는 세례의 의미로 발전합니다. 골2:11,12절은 말씀합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세례는 옛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믿음의 생활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고 순종적인 언약관계로 들어가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표입니다. 이스라엘이 430년 동안 애굽 생활을 하면서 애굽인에게 동화되지 않고 한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할례 받은 자의 긍지 때문입니다. 이 선민의 긍지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헤브라이즘을 낳게 했습니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은 인간 문화문명의 양대 조류입니다. 선민의 긍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선민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고초와 멸시, 추방과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왕은 겁쟁이였습니다. 그러나 할례받은 자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삼상 31:4). 사울뿐만 아니라 백성들은 할례받은 자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 애쓰며 목숨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할례는 언약의 징표요 선민의 표식입니다.
셋째,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어 주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 사래도 사라로 바꾸어 주십니다. 사래는 나의 공주, 여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사라는 열국의 어미라는 뜻입니다. 사래가 공주 같은 대접만 받으려고 해서는 여러 민족을 품을 수 없습니다. 공주 같이 사랑만 받고자 하면 남편을 병들이게 됩니다. 아브람만 하나님의 언약을 영접하고 스케일이 커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래도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복을 주어 아들을 낳게 하실 것입니다.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십니다.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어 주심으로 가정에서 진정한 동역이 이루어지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 교회가 한 마음으로 동역을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실제로 복음 역사는 사모님들이 감당합니다. 사모님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목자님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그리고 입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을 새로 지어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태어날 아기의 이름까지도 지어주셨습니다. 그 언약의 확실함을 보증하기 위해서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웃음이라는 뜻의 이삭으로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가족 전체의 이름을 바꾸어 주심으로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관철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현실의 어려움이 어떠하든지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에 대한 아브라함의 말도 들으셨습니다. 그에게도 복을 주어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가 열 두령을 낳아 큰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이삭과 세우십니다. 이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복음의 진리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은 정한 때에 이삭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왜 빨리 언약의 씨 이삭을 주시지 않는가 답답한 생각이 듭니다. 이왕 줄 것이면 빨리 주는 것이 좋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정하신 때에 이삭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요한복음에는 이 사상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요 2:4, 7:8, 14:29, 16:32, 17:1, 19:27). 이 사상을 깊이 영접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쉽게 ‘이삭’을 주시지 않는다고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정한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어떤 때는 끝내 주시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 즉 이삭보다 하나님 자신을 주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는 하나님께서 정한 때에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있는 것도 빼앗아 가시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선하시다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영접했다는 표시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십삼 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함이 여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날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고집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자기생각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게 순종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는 결단의 순간에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진짜 할례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음에 새기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가 껍데기 믿음, 형식적인 믿음, 종교적인 믿음을 끊어버리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약속을 믿고 신뢰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서 결단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자기 생각을 부인하고, 죄악 된 습관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분명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런 작지만 분명한 결단이 있을 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좁은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창세기 17:1-27
요절 | 창세기 17:5
여러 민족의 아버지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오늘 말씀에 언약이라는 말이 13번 나옵니다. 이 언약은 12장에서 주신 것인데 다시 말씀하심으로 아브라함이 이 말씀을 마음과 살에 새기게 하십니다. 먼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리고 할례를 행하도록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행함으로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 인생에 두신 하나님의 소원, 사명을 따라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소시민으로 살기보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살도록 어떻게 도우십니까?
첫째, 아브람을 책망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아브람이 99세 때에 나타나셨습니다. 이스마엘을 낳고 13년 동안 공백기였습니다. 이 기간이 성경 기록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가 글을 쓰고 교정할 때 덜 중요한 부분이나 필요 없는 부분은 삭제해 버립니다. 13년 동안 아브람은 ‘잃어버린 삶’을 살았습니다. 그 동안 아브람은 이스마엘을 키우는 재미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이스마엘의 재롱을 보면서 박수를 치고, 일을 하다가 돌아와서 이스마엘의 웃음을 보면 모든 피곤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어버이 날에 학교에서 만들어온 카네이션을 달아줄 때면 행복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큰 민족도, 복의 근원이 되는 것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현실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차자 그에게 나타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오 돌들로도 아브람의 자손을 만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그는 이 말씀을 믿고 신앙생활을 출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기근을 만났을 때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책망하지 않고 바로 왕을 통해서 물질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서방 연합군에게 포로로 잡혀간 롯을 구원하기 위해서 추격전을 펼쳐서 구출해왔습니다. 이제는 물질문제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손해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산 지 10년 정도 지나서 사래의 요청으로 여종 하갈을 첩으로 들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때도 하나님은 그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책망하지 않고 감당해 주셨습니다. 그를 낳은 지 13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물질의 축복을 주시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도우실 수 있지만 사라를 통해서 아이를 얻을 수는 없다고 예단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그에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그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무슨 의미입니까? 완전하라는 말씀은 흠이 없이 되라, 거룩하라, 온전하라는 뜻입니다. 아브람이 믿음으로 살아왔지만 인간적인 것들을 버리고 완전히 변화되라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믿되 처음에 주신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심을 알지만 나의 인생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 같지가 않습니다. 내 일을 내 힘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의 인생에 해결되지 않은 죄로 인해서 두려움이 있고 슬픔이 있는데 그것을 간직하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학생 양을 얻고 열매를 맺기 원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 무양목자로서 사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냥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더 이상 기도도 하지 않고 내 가정을 잘 돌보고 아이나 잘 키우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23:19)”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불신을 회개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어야겠습니다. 매일 말씀 앞에 회개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 앞에 완전한 자로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어 주신 하나님.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십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이름은 그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아브람은 고상한 아버지입니다. 그는 이스마엘로 인해서 고상한 아버지로 만족하며 살고자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적당히 고상하게 사는 삶입니다. 자기만족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은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되니 부담이 없어 좋습니다. 자신과 가족만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되든지 신경을 쓰지 않으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갈수록 골치 아프게 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 뿐인 인생을 정말 가치 있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아브람이 옛 사람을 버리고 새롭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과거의 방식대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갈등을 느끼는 것은 이전의 내 스타일대로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에게 돈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능력이 없습니까? 하나님께 사람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돈이나 능력이나 방법이 아닙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딱딱하고 형식적인 것을 버리고 초심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라고 하십니다. 세계를 책임지고 큰 스케일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한 사람의 아버지 노릇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마음을 넓혀야 하고 더 큰 섬김과 희생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는 복의 근원에서 보다 발전된 의미입니다. 나와 가족에게만 관심 갖고 거기에 매어서 살지 말고 이웃과 여러 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관심의 폭을 넓히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줄을 넓게 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안목을 갖고 살라는 것입니다.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서 수많은 왕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좁은 가슴을 찢어 넓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81:10에서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케일을 키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크게 키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것은 그가 한 가정의 아버지 아브람으로 머물게 하심이 아닙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 곧 아브라함으로 쓰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사람을 언약의 백성이요 복의 근원으로 삼으사 천하 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하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탄생되어질 많은 왕들, 여러 민족들이 있습니다. 한 가정으로 시작된 역사가 두 세대만 지나도 30,40명씩 모입니다. 우리는 나의 당대만 보지 말고 후손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역사의식을 가지고 길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왕 같은 제사장들을 탄생시키는 믿음의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후손들 가운데 영적인 거목들이 많이 탄생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결단의 순간들」이라는 책에는 스기하라 치우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기하라 치우네는 일본의 전통적인 사무라이 가문에서 태어나 1930년대 러시아와 가까운 리투아니아 총영사가 되었습니다. 1940년 7월말 어느 아침 그는 인생의 큰 반전을 맞이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그의 집 밖에 모여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고 두려움에 가득 찬 유대인들로 폴란드에서 게슈타포의 손아귀를 가까스로 빠져나와 목숨을 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일본 비자를 원했습니다. 일본 비자만 있으면 다른 나라로 도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중앙정부의 인가를 받기 위해 동경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세 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계속 거절당했고 마지막에는 그런 요청 자체를 그만두라는 명령을 들었습니다. 스기하라는 고민했습니다. 전도 유망한 그가 비자 발급을 거부함으로써 평탄하게 꿈을 성취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생명을 구할 것인가? 사무라이 가문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약자를 보호하라고 배운 데다 청년 때 예수님을 영접한 그는 명령에 불복하기로 결정하고 비자를 작성했습니다. 스기하라는 거의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으며 비자를 만들었습니다. 이 일로 영사관 문을 닫으라는 명령을 받고 베를린으로 호출 받아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그는 기차를 따라 달려오는 피난민들의 손에 비자를 만들어 건네주었습니다. 단 28일, 그가 비자를 만드는 데 매진한 순간이었습니다. 짧다면 짧은 그 시간, 스기하라는 무려 6천 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는 얼마 안 되어 일본 외교계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남은 생을 전구를 팔며 가난하게 보냈습니다. 훗날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선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는 꿈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올바른 일을 하라고 요구하셨을 때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개인의 목표나 물질적 성공,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등을 우선순위에 두라고 말합니다. 편안한 삶을 보장해 줄 뿐만 아니라 자기만족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의미있는 일은 하나님과 그의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7절에서 아브라함에게 그와 그의 대대 후손 사이에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축복은 계승됩니다. 저주는 삼사대에서 그치지만 축복은 천대에 이르게 하십니다. 출애굽기 20:6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이 자녀들에게도 이어지고 있습니까?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믿음의 유산을 이어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들려줄 믿음의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8절에서는 영원한 기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영원한 기업은 아브람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면 믿는 자들이 받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땅은 천국까지 이르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백성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백성은 복이 있습니다. 아브람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부터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살아나고 하나님을 만나면 영적 잠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할례는 남자 생식기의 포피를 베는 것입니다. 할례는 살을 잘라내는 것으로서 회개하고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과거의 죄악된 생활을 청산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구별된 삶을 살겠다는 결단의 표시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정화의 개념이 있습니다. 즉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죄의 부패성을 잘라내고 아픔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정결한 삶을 살겠다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할례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고 거룩하게 살겠다는 결단의 표시입니다. 또한 이제는 죄악된 씨를 낳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낳고 키울 것에 대한 소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실 할례는 육신이 아닌 마음에 해야만 합니다(신10:16, 렘4:4, 겔44:7, 롬2:29).
이것이 신약시대에 와서는 세례의 의미로 발전합니다. 골2:11,12절은 말씀합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세례는 옛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믿음의 생활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고 순종적인 언약관계로 들어가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표입니다. 이스라엘이 430년 동안 애굽 생활을 하면서 애굽인에게 동화되지 않고 한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할례 받은 자의 긍지 때문입니다. 이 선민의 긍지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헤브라이즘을 낳게 했습니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은 인간 문화문명의 양대 조류입니다. 선민의 긍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선민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고초와 멸시, 추방과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왕은 겁쟁이였습니다. 그러나 할례받은 자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삼상 31:4). 사울뿐만 아니라 백성들은 할례받은 자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 애쓰며 목숨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할례는 언약의 징표요 선민의 표식입니다.
셋째,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어 주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 사래도 사라로 바꾸어 주십니다. 사래는 나의 공주, 여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사라는 열국의 어미라는 뜻입니다. 사래가 공주 같은 대접만 받으려고 해서는 여러 민족을 품을 수 없습니다. 공주 같이 사랑만 받고자 하면 남편을 병들이게 됩니다. 아브람만 하나님의 언약을 영접하고 스케일이 커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래도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복을 주어 아들을 낳게 하실 것입니다.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십니다.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어 주심으로 가정에서 진정한 동역이 이루어지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 교회가 한 마음으로 동역을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실제로 복음 역사는 사모님들이 감당합니다. 사모님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목자님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그리고 입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을 새로 지어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태어날 아기의 이름까지도 지어주셨습니다. 그 언약의 확실함을 보증하기 위해서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웃음이라는 뜻의 이삭으로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가족 전체의 이름을 바꾸어 주심으로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관철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현실의 어려움이 어떠하든지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에 대한 아브라함의 말도 들으셨습니다. 그에게도 복을 주어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가 열 두령을 낳아 큰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이삭과 세우십니다. 이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복음의 진리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은 정한 때에 이삭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왜 빨리 언약의 씨 이삭을 주시지 않는가 답답한 생각이 듭니다. 이왕 줄 것이면 빨리 주는 것이 좋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정하신 때에 이삭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요한복음에는 이 사상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요 2:4, 7:8, 14:29, 16:32, 17:1, 19:27). 이 사상을 깊이 영접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쉽게 ‘이삭’을 주시지 않는다고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정한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어떤 때는 끝내 주시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 즉 이삭보다 하나님 자신을 주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는 하나님께서 정한 때에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있는 것도 빼앗아 가시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선하시다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영접했다는 표시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십삼 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함이 여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날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고집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자기생각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게 순종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는 결단의 순간에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진짜 할례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음에 새기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가 껍데기 믿음, 형식적인 믿음, 종교적인 믿음을 끊어버리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약속을 믿고 신뢰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서 결단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자기 생각을 부인하고, 죄악 된 습관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분명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런 작지만 분명한 결단이 있을 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좁은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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