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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13년 창세기 11강(15,16장)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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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553회 작성일 13-06-0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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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창세기 제 11 강  
말씀 | 창세기 15:1-16:16
요절 | 창세기 15:5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은 신앙생활을 한지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믿음 생활을 잘 해왔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는 기다리다 지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큰 비전을 갖도록 도우시며 믿음을 심으십니다. 자식 한 명이 아니라 하늘의 뭇 별과 같은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도우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기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믿음을 굳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15장) : 아브람이 중동 연합군을 물리치고 난 후 적들의 보복 공격이 두려웠습니다. 자신은 나이를 먹어 힘이 없고, 일개 부족에 불과한데 언제든지 적들이 동맹하여 쳐들어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두려웠습니다. 두려움은 미래의 문을 닫게 만듭니다. 사람은 미래가 보장될 때 소망이 생기고 꿈이 있으며 생기가 돕니다. 미래의 문이 닫힌 사람은 절망합니다. 왜 아브람이 이렇게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는 말씀을 믿고 출발했지만 아직 자식이 없습니다. 아브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 찾아왔습니다. 불안이 찾아오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인간적인 생각을 합니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생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믿음에서 현실로 돌아옵니다. 아브람의 인간적인 생각은 양자를 삼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람이 두려워하고 인간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였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방패라는 히브리어 마겐의 어원은 “종주국 왕”, “위대한 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종주가 되셔서 그를 친히 보호하고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300용사라는 영화에 보면 적군이 화살을 비 오듯이 시커멓게 쏟아 부어도 방패로 막을 때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생명을 보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나에게 두신 뜻을 이루기까지 데려가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아브람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이사야 41:10절에서도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b).” 면접시험을 당하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돈이 없거나 직장이 없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악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방패가 되십니다.

  또 하나님이 그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십니다. 상급이란 히브리어로 사카르인데 용병의 보수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특별히 군사들의 노략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적인 손해의식에 빠져 있는 아브람에게 친히 자신이 그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를 잡기 원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이 상급이 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상급이란 임금, 대금을 말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보상이 되어 주실 뿐만 아니라 아브람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보상을 해 주십니다. 사실 아브람은 지금 그의 후손들이 많은 것을 보고 놀라자빠질 지경일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갈3:7).” 우리도 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자들에게 준 냉수 한 그릇 까지도 보상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손해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무언가를 잡았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안전과 안정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것들은 다 일시적입니다.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안정문제와 상급은 과거나 지금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면서도 당장 어려움을 당하면 이런 문제가 더 크게 부각이 됩니다. 아브람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쏟아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말씀만 하시지 말고 약속한 자녀를 주셔야 되지 않느냐고 따졌습니다. 이웃 사람들과 이방인들도 결혼하자마자 아이들을 둘씩 셋씩 펑펑 잘 낳는데 나는 무엇입니까?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녀를 주시지 않으니 자신도 다 생각이 있다면서 속마음을 내비쳤습니다. 그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씨를 주지 아니하셨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마음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헛꿈을 꾸게 하시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람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4,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타협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세보라고 하십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하늘의 별은 육안으로 3000-3500개가 보이고 우리가 볼 수 없는 별까지 다 합하면 한 은하계에 1000억개의 별이 있고 그런 은하계가 1000억개 있다고 합니다. 아브람은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감동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별들을 만드시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못할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물 교육을 통해서 아브람의 마음에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과 다른 표현을 쓰면서 처음에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도록 돕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뭇 별을 보여주신 것은 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11:40).”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4).” 우리가 문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믿음이 생기고 비전이 생깁니다.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당장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만들 수 있지만 그의 마음에 믿음을 심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에게 필요하던 것들이 채워지면 자족하고 자기가 언제 그런 것들을 그렇게 애타게 구했느냐는 듯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섭니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의 마음과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른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은 간사합니다. 아브람은 이스마엘을 낳자 그에게 빠져서 13년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다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식 문제가 급하지만 그 마음에 믿음을 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또 그가 믿음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갖도록 많은 애를 쓰고 계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인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인격적 관계성 속에서 자라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아브람에게 뭇별에 대한 비전을 주셨습니까? 그가 믿음으로 살다가 낙심했을 때입니다. 사람이 끝났다고 할 때 하나님은 다시 시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밤새 수고했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을 때 사람 낚는 어부의 비전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예루살렘에 간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꿈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후 네가 로마에 가서 네 증인이 되어야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할 때, 하나님은 비전을 보여 주시고 새롭게 일하게 하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과 비전입니다.

  왜 하나님은 현실 문제를 빨리 해결해 주시지 않고 이렇게 약속과 비전만 주시는 것일까요? 뒤에 보면 아브람이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 까지 이르도록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부활의 능력을 믿도록 까지 인도하십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도록 도우십니다. 메시야는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야 하십니다. 이를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이 갖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이끌어 가시고 이 말씀을 주신 후 15년을 더 기다리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자 하시기 때문에 후손들이 보고 배우도록 믿음의 모델을 만들고 계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느 수준으로까지 자라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 부활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구체적이면서 놀랍게 큽니다. 우리의 좁은 마음으로는 다 헤아리거나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내 생각에 갇혀서 하나님을 제한하기 쉽습니다. 현실을 중시하다보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꿈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꿈을 꾸고 비전을 갖는 것이 허황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꿈이 있어야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방향이 생기고 목표가 생깁니다. 어렵다고 해서 현실에 매달리게 되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이 꿈이 없으면 방자해 집니다. 되는 대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세계에 대해서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가 되는 꿈을 갖도록 도우셨습니다. 우리는 성서 한국, 세계 선교라는 꿈을 가지고 캠퍼스 복음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나뿐만 아니라 후배들, 자녀들이 그 꿈을 갖고 사명을 감당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이번 수양회에 각 가정 교회별로 한 명 이상의 홍대 양을 여름 수양회에 초청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전도하고 초청 역사를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람은 자기 생각이 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의란 바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행함으로 옳다 인정함을 받는 것이 의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입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기초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믿음의 비밀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의롭게 됩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아브람은 오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는 오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녀 문제를 말씀해 주시고 나서 이제는 땅 문제를 약속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아브람에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며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횃불 언약을 맺으시고 그 중간을 쪼갠 삼년 된 제물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에게 그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사백 년 동안 괴롭힘을 당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손들이 차지하게 될 땅의 범위까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600년 뒤에 일어날 일까지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인식은 매우 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의 당대만 바라보지 말고 멀리 600년 앞을 내다보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당대에 모든 열매를 거두려고 하지 말고 멀리 내다보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독일에 있는 쾰른 대성당을 보면 600년에 걸쳐서 건축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이런 안목을 가지고 섬길 때 조급하지 아니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잘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도 당장에 일대일 양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전도는 교회 성장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하다보니 교회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둘째, 서자도 축복하시는 하나님(16장) : 16장은 사래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가나안 땅에 거한 지 10년이 다 되어도 출산하지 못하자 그에게 있는 애굽 여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첩으로 주었습니다. 사래는 폐경이 되어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을 굳혔습니다. 당시에 첩으로 하여금 아이를 낳게 하고 본부인이 양자로 들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듣고 하갈을 취하였습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하갈을 취하여 아이를 낳아도 아브람의 몸에서 낳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의 희망사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나름대로 말씀을 해석하고 시도하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갈이 임신하자 그의 여주인을 멸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갈이 사래의 말을 듣지 않고 심부름을 시켜도 태교를 해야 한다면서 거드름을 피우고 사래 앞에서 나오는 배를 더 내밀며 과시하고 사래를 무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사래는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사래는 자기가 일을 벌려놓고 아브람에게 바가지를 박박 긁었습니다.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5).” 아브람은 사래에게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습니다. 하갈은 도망을 쳤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믿음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나름대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고 일을 만들고 나서 일이 잘못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고 믿어야 합니다. 아브람은 일을 벌려놓고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갈이 배가 부른 상태로 집을 나갔으니 아브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는 사래가 이렇게 까지 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한편 사래가 무섭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브람은 가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문제는 내가 일으켜 놓고 해결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람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하갈은 아브람이 애굽 왕에게 받은 종이었습니다. 하갈은 종으로서 고생하며 살다가 첩이 되었는데 이제 여주인에게 학대를 받고 집을 나와 버렸습니다. 하갈의 마음은 상할 대로 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하갈을 도왔습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의 사자는 하갈이 자기를 돌아보도록 도왔습니다. 하갈은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디서 왔는지는 아는데 사실 갈 곳이 없습니다. 곤경에 처한 하갈, 막막한 가운데 그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왔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하나님께서는 가정의 질서를 바로 잡아주셨습니다. 그리고 하갈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이스마엘은 이슬람의 조상이 됩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하갈의 고통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손이 번성하되 들나귀와 같이 길들여지지 않은 성질을 갖게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친다는 것은 호전적인 성품을, 또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친다는 것은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하며 불화와 반목 가운데 살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는 지금 중동에 있는 아랍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하갈은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보시고 곤경에 처한 하갈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고통과 외로움, 막막함 가운데 처한 가련한 여인을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회복해 주시는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봐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도 사랑하십니다. 버림받은 자라도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정하면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원수도 사랑하십니다. 이스마엘이 실수로 태어난 자녀이고 서자이지만 그도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하갈의 하나님도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당장 눈앞의 현실만 보고 절망할 때에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고 뭇별의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먼 미래를 바라보도록 도우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만 현실의 아픔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말씀으로 찾아 오사 위로해 주시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비전을 품고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인생을 전체적으로 보고 나의 자손 천대까지 복 주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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