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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13년 창세기9강(11:27-12:20) 너는 복이 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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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618회 작성일 13-05-1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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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창세기 제 9 강 
말씀 | 창세기 11:27-12:20
요절 | 창세기 12:2

너는 복이 될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플라톤은 그의 아카데미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고 썼습니다. 어느 기업이든지 직원을 뽑을 때 좀 더 나이가 젊고 실력이 있고 인격이 있는 사람을 가려서 채용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으로 쓸 사람을 뽑았는데 나이도 많고 자식도 없고 소망을 두기 어려운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세상에서 자녀도 없고 집도 없고 땅도 없이 늙어가는 한 소망 없는 사람, 아브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것은 구속사의 흐름에 큰 전환을 가져오는 사건입니다. 아브람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복을 받는 새 역사가 시작됩니다. 아브람과 같은 믿음을 가지면 우리도 동일한 복을 받고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무엇이며 그 복을 받고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2장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나타나 명령과 약속을 주셨습니다. 아브람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서 우상숭배가 만연한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환경이 필요합니다. 아버지와 친척들을 의지할 수 있는 환경을 떠나야 합니다. 사람을 믿고 의지하기보다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도록 고향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본주의, 상대주의, 물질주의, 우상숭배의 죄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자신을 종 삼고자 하는 게임, 죄의 세력에서 떠나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을 떠나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자라납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복은 무엇입니까? 첫째, 큰 민족.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2).” 자식 하나 없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큰 민족을 이루어 주겠다는 약속은 귀가 번쩍 뜨이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통이 크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에 실언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셨습니다. 지금 아브람의 자손은 세계 인구의 2/3입니다. 이스라엘과 아랍과 영적 자손인 크리스천 인구를 합하면 그렇게 됩니다. 또 큰 민족이라는 것은 자질 면에서 우수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의를 행하는 나라가 큰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출애굽기에서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을 오늘날로 하면 모든 백성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백성,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성경 선생의 나라,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서 한국, 세계 선교라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순종하도록 일해 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가운데 이런 큰 나라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위대한 이름.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창대하다는 말은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역사상 위대한 사람들에 대해서 많이 듣고 책에서 읽어왔습니다. 그들을 역할 모델로 삼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아브라함 링컨, 아브라함 카이퍼, 김아브라함 등등 수많은 분들이 그의 이름을 사모하여 쓰고 있습니다. 이름을 창대하게 한다는 말은 그 사람의 존재를 변화시킨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의 인격이 성숙하게 변화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범위가 클수록 위대함의 정도가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격의 성숙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아브람은 고상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의 소망은 아들 딸 하나씩만 나아서 아기하고 자기하고 아기자기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꿈은 소시민적이었습니다. 그는 작은 행복에 만족하면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넓혀서 세계를 품도록 하십니다. 그의 이름을 나중에는 열국의 아비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의 마음도 넓어지고 그가 추구하는 것도 바뀌어집니다. 물질적인 안정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으로, 자식 하나 품에 안는 꿈에서 중동의 연합군과 싸우는 장군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는 가운데서 의인 열 명만 있으면 그들을 구원해주시도록 간구하는 기도의 용사로 키우십니다. 또 600년 앞을 내다보면서 그 후손과 세계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선지자로 그를 키워주십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의 생각과 아브람의 생각은 너무나 큰 차이를 보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바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취직해서 아파트 한 채 구하고 자녀들을 낳고 소시민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를 불러서 캠퍼스에서 제자를 키우며 세계를 품고 섬기는 사명인으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큰 뜻을 품고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셋째, 복이 되게 하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은 아브람을 복의 근원으로 삼고자 하십니다. 이는 그를 복주시고 그 복을 누리고 복이 넘쳐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복을 나누어 주는 삶을 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복을 좋아합니다. 숟가락에도 복자를 넣어서 복을 먹고, 옷에도 복자를 넣어서 복을 입고, 베게에도 복자를 넣어서 복을 꿈꾸며 자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복은 오복이지만 여기서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즉 아브람의 후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심으로 복의 근원이 됩니다. 메시야가 아브람의 자손 가운데서 태어난다는 것은 매우 큰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요 유대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복을 받아도 죽어 멸망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죄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다윗도 왕이요 장군이요 시인이요 음악가요 요나단과 같은 친구와 네 아내가 있었지만 이것으로 행복하다고 하지 않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의 행복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7-8).”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지고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살아도 죄로 인해서 근심하고 고통한다면 그게 무슨 복입니까? 죄 사함을 받고 마음의 평안과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진정 복 받은 사람입니다. 사람의 죄를 사하는 길은 희생제물을 드려서 속함을 받는 것입니다. 흠 없고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죄 사함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복이 무엇입니까? 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습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변화됩니다. 죄로 인해 저주 받은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 되고, 세상을 복되게 합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고 싶어 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뿐만 아니라 나의 자녀, 나의 가족, 나의 친척, 내 이웃, 내 회사, 내 나라, 이웃 나라, 전 세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복을 나누어 주는 복의 저수지로 쓰기를 원하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그의 편이 되셔서 그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시고 그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인간이 저주를 받고 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대로 아브람을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서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바로 왕에게 아내 사래를 뺏기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아무 힘이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고 말하며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왕이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며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습니다. 즉 바로가 사래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에게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어린 아브람을 친히 보호해 주셨습니다. 또 그에게 필요한 물질도 풍족하게 채워주셨습니다. 아브람이 믿음이 어려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연약함과 실수를 감당해주셨습니다. 이 세상은 원인과 결과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내가 잘 해야 그 대가로 잘 사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의 법이 있습니다. 내가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이를 뒷감당을 해 주심으로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싸움을 할 때 죽기 살기로 싸우는 용감한 사람을 당해낼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용감한 사람도 지혜로 싸우는 장군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지략이 뛰어난 장군도 덕장 앞에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 부하들이 장군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 싸우면 도리가 없습니다. 군대는 사기를 먹고 산다고 합니다. 자기 부하들을 친자식과 같이 돌보는 덕장 앞에서 전략이 뛰어난 사람도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덕장 보다 운장이 더 뛰어나다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운이 따르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복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함께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편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내가 할 일을 하지 않고 대충 산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최선이 다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은혜가 있는 사람이 결국은 승리자가 되고 복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넷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간 아브람. 4절을 보십시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산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에는 붙잡은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불안감과 공포심을 벗어나기 위해서 막연히 믿는 심리적인 신앙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이런 분들은 믿음의 비밀과 생명력을 맛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믿음이 마치 아편처럼 역효과를 냅니다. 일시적인 감정의 폭발에서 시작한 믿음은 애니미즘, 샤머니즘(무당신앙)이라고 부릅니다. 무당신앙은 사람을 점점 공포에 빠뜨립니다. 믿음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받고 그 인도함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아브람의 생애를 살펴보면 중요한 때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그에게 찾아오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람은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아브람의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손에 잡히는 것도 없었지만 그는 말씀을 믿고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롯은 사람을 따라갔습니다. 롯은 개인 신앙이 없이 아브람을 따라가다가 그를 떠나게 되자 물질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는 신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친구 따라서 교회에 오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개인 신앙이 자라야 합니다. 믿음은 말씀을 먹고 자랍니다. 우리가 말씀을 먹고 자립적인 믿음의 사람이 돼야 합니다.

  아브람이 가려고 했던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그는 기근이 들어 애굽에 간 것 외에는 이 땅을 떠나지 않습니다.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이 주신 땅에 머물렀습니다. 아브람이 상수리 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이 믿음 생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을 중심으로 예배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깊어집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깊어집니다.

  다섯째, 아브람을 보호하신 하나님(10-20). 10절을 보십시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중동 지방의 기근이 심하게 들면 비가 오지 않아서 풀이 마르게 되고 양들이 죽어나갑니다. 결국 사람도 그곳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됩니다. 아브람이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왔지만 기근이 들어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도 고통이 있고 고난이 있습니다. 특히 물질 문제로 인해서 믿음이 시험을 받습니다. 이 기근에서 하나님이 자신과 가정을 보호하시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때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믿음이 어린 것입니다. 상식을 따라 먹을 것이 풍부한 애굽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 큰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아내 사래가 아리땁기 때문에 애굽 사람들이 그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을 것이라는 근심과 불신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미리 아내와 짜고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가 두려워한대로 애굽의 고관들이 사래의 미모를 칭찬하며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 바로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아브람에게는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물질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아내 사래를 빼앗긴 그는 방에서 혼자 고독하게 밤을 지내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 사래가 없으면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약속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브람이 불신에 빠져서 거짓말을 하고 두려움의 종이 되어 무기력하게 드러누워 꼼짝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바로의 집에 내린 재앙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바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징계하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 책망을 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아브람의 불신으로 인해서 바로가 애매하게 해를 입었습니다. 아브람이 자기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기 때문에 두려워하던  문제가 터졌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재앙을 불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람의 죄와 실수와 허물을 감당해 주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저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라고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바로를 징계하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애굽에도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대 최강대국인 애굽의 왕 바로도, 태양신이 아들로 숭배받던 바로도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되자 그는 더 이상 왕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물질 문제, 두려움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어린 믿음의 싹을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명령과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떠나야 할 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순종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생명의 열매를 주시고, 인격의 변화를 이루시며, 복 덩어리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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