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3년 창세기 7강(7:1-9:17) 하나님의 홍수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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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창세기 제 7 강
말씀 | 창세기 7:1-9:17
요절 | 창세기 7:23
하나님의 홍수 심판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오늘 말씀은 홍수 심판과 그 이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고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의 한 가운데서 노아를 기억하셨습니다. 노아를 기억하심으로 심판을 그치고 회복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것이 은혜의 시작이고 구원의 수단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내 인생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내가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정말 힘써야 할 한 가지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방주를 다 만들고 모든 것을 명령하신 대로 준행하자 그에게 이르셨습니다.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이제 홍수 심판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하나님 앞에 의로움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가 시대의 조류를 따라 죄악 되게 살지 않고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지라도 의롭게 살고자 애쓰는 모습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악인과 함께 벌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삶을 다 보고 계십니다. 내가 당하는 억울함을 다 아십니다. 내가 당하는 고통도 아시고 내 속에 있는 절망도 아십니다. 내 속에 있는 주님을 향한 믿음과 소원을 아십니다. 나의 현재 삶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보고 계시고 언젠가 보응해 주실 것을 믿고 묵묵히 방주를 짓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친히 갚아주신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살 수 있습니다. 그 동안 노아를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떡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하면서 비웃던 사람들, 너만 신앙생활을 하는 줄 아느냐면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라고 하던 사람들, 사람 앞에서 약삭빠르게 살던 사람들은 심판의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우직하게 믿음으로 의롭게 산 노아를 부러워하게 됩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마7:2425).”
노아의 사명은 씨를 보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음의 씨, 믿음의 사람들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보존하는 것은 제자 양성을 통해서 계속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람을 키우는 사역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노아는 아내와 자신의 세 자녀들이 믿음으로 방주를 짓고 며느리를 얻으며 방주에 들어가도록 도왔습니다. 우리도 나와 함께 있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가운데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야 합니다. 또한 젊은 대학생들이 믿음을 갖고 영적인 리더들로 자라도록 섬기는 일에 일대일 목자만이 아니라 온 교회가 동역하며 힘을 쏟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공동체를 보존해서 다음 시대에도 믿음의 역사가 이어지도록 합심해서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서로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날 방주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힘들고 피곤한 시대에 사람들이 이 방주 속에서 피난처를 얻고 그 인생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와 예수님을 배우고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시대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을 구원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합니다. 홍수가 땅에 있을 때 노아가 600세였습니다.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로 들어갔고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구원은 방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문이 열려 있을 때 방주로 들어가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이 방주로 들어간 후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였습니다. 이 칠 일 동안 노아는 열심히 사람들에게 방주로 들어오라고 소리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쨍쨍한 햇빛을 보라며 노아와 그 가족에게 미쳤다고 조롱을 했을 것입니다. 노아와 그 식구 8명이 방주에 들어가고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모든 암수가 들어가자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셨습니다. 노아는 한 사람이라도 구원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최후로 들어가자 하나님이 친히 문을 닫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문을 닫으시면 누구도 열 수 없습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 둘째 달 17일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습니다. 며칠만 집중 호우가 쏟아져도 물난리를 겪는데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지자 하수구가 막히고 물이 집 안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불어 일층이 차고 지붕을 덮쳤습니다. 사람들은 좀 더 높은 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피난을 갈 때 먹을 것 입을 것을 준비하느라 시간을 끌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쏟아지는 급류에 떠내려갔습니다.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되자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뒤뚱거리며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그 큰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습니다. 물이 더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다 잠겼습니다. 와우산에 올라갔던 사람들, 남산, 백두산을 포함해서 당시 가장 높다고 하는 산까지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안심하고 있던 사람들도 다 빠져죽었습니다. 아무리 수영을 잘하고 힘이 있는 사람도 150일을 버틸 수는 없었습니다. 부자들도 그 많은 재산으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어 죽었습니다. 권세자들의 권세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인간의 부와 명예와 권세 등 모든 것이 심판 앞에 다 쓸데가 없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렇게 크고 힘 있던 공룡도 다 이때 죽었습니다. 또한 이때 지각 변동이 엄청나게 일어났습니다. 현재 높은 산봉우리에서 해변에 있어야 할 물고기와 조개의 화석들을 발견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어떤 지역은 산이 가라앉아서 섬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구가 대 격변을 겪은 것은 각 민족의 역사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때 죽은 동물들이 석유로, 식물들이 석탄으로 재생되어 쓰임 받고 있습니다.
홍수 심판의 철저함에 대해서 21-24절이 증거합니다.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하나님의 심판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그의 심판은 엄정하십니다. 땅에서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셨지만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은 사람들에게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인내하면서 방주되신 그리스도 안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홍수가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별 말씀이 없으셨고 자취조차 감추셨습니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든 것을 삼킬 듯이 범람하는 파도뿐입니다. 우리도 심판을 받아 죽어간 사람들에 비해서 별로 나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절정으로서 창조하셨던 인류를 스스로 파괴해야 하는 괴로운 마음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벧후 3:9). 우리가 지옥에 대해서 더 많이 설교할수록 지옥 가는 사람이 적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듣기 싫지만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깊이 들어야 합니다. 심판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말씀을 배척하고 대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듣고 죄에서 돌아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할 자들은 구원하시고 버릴 자들은 버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불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 지금 지구 위에 있는 핵폭탄만 가지고도 이 지구를 몇 십번을 다 불태울 수 있다고 합니다. 심판의 불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벧후 3:7,10). 우리는 길게는 90년, 짧게는 60년을 살다가 죽음으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제 우리 각자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심판이 있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인생을 좀 더 진지하고 의미있게 살게 됩니다. 심판이 있다는 것을 믿을 때 의롭게 살게 됩니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곁에 있는 아내를 좀 더 사랑해주고 그의 말을 들어주고 섬기고 싶습니다. 곁에 있는 자녀들을 더 보듬어 주고 싶습니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동역자들과 마음을 열고 더 깊이 대화하고 섬기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행복했고 감사하다고 말하며 떠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국가에도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을 때 불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일을 반복하자 심판하사 2000년 동안 세계를 방황하게 하셨습니다. 역사상 수많은 제국들이 그들의 부도덕으로 인해서 멸망을 했습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할 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 노아를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엄중하게 행하시고 나서 어떤 은혜를 베푸십니까? 8장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신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심으로 모든 심판의 요소들이 물러가고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의인들을 기억하사 혹독한 심판의 날을 감하십니다.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바람을 불게 하시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을 닫으셨습니다. 백 오십 일 후에 물이 점점 줄어들고 일곱째 달 곧 그달 17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습니다. 아라랏 산은 원어로는 ‘아라랏 산들’입니다. 지금 이란, 터어키와 아르메니아 지역에 걸쳐 있는 큰 산 줄기입니다. 그 산들 중 한 곳에 방주가 머물렀습니다.
육백일 년 첫째달 초하루에 땅 위에서 물이 걷혔습니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습니다. 둘째 달 스무이렛 날에 땅이 말랐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기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방주에서 1년 10일을 살고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빨리 땅을 밟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렸습니다. 노아는 조급하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추측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살기 어려운 방주 안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기다림입니다. 기도하는 대로 즉시 응답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우리도 기다려야 하지만 하나님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물을 한꺼번에 뺄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물이 빠지는데 1년이 걸렸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기다렸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그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주셨던 축복의 말씀을 노아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노아로부터 새로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심판을 위한 심판은 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심판은 새로운 출발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으십니다. 마지막 심판도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하시고 우리가 홀연히 변화되어 그 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사는 새 출발이 될 것입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 짐승들이 나왔을 때 그들은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오래 전에 홍수가 난 지역에 봉사활동을 갔는데 방과 외양간에 진흙뻘이 가득 차서 그것을 걷어내는 일을 했습니다. 며칠 동안 내린 홍수로 인해 밭과 논이 다 쓸려나간 모습이 참으로 황량했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자기 집을 먼저 짓지 않고 예배를 먼저 드린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이런 태도는 청교도들에게 이어져 그들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내렸을 때 먼저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미국은 세계 최 강대국으로 부상하였고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하는 나라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임박한 심판 가운데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향기를 받으시고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판으로 인간의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공의로운 속성 때문에 그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악함에 대해서 심판하시지만 무조건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오래 참으십니다. 우리 죄를 없애실 수 있는 분은 갈보리 언덕에서 우리를 위해 피 흘리고 돌아가신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만이 죄를 없이해 줍니다. 노아는 제사를 드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죄를 위하여 영원한 속죄를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우리도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죄 사함이 있고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임하고 회복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않고자 하십니다.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함으로 인간을 안심케 하십니다. 노아 홍수 이전 세상은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홍수가 일어난 이후 겨울이 있게 되고 여름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도 이때 생겼습니다. 이 빙하로 말미암아 격렬한 폭풍이나 대기의 움직임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지구의 주거 환경이 몹시 어렵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북극 지방의 대부분이 거의 주거가 불가능한 환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반복되는 사계절을 볼 때 앞날을 예측하고 준비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지구는 다시 한 번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아주 이상적인 환경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낙원이 될 것입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고 꽃이 피어 향기가 넘치는 지상 낙원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홍수로 인해 파괴된 지구는 에덴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되찾아 우리의 변화된 몸이 살기에 합당한 환경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고 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9:1-3). 더위와 추위로 인해서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고단백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동물을 먹을 수 있게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질서를 다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기를 피째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살인을 금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 언약의 증거로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셨습니다. 비가 온 후에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걸린 것을 보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안심하게 될 것입니다. 홍수 심판을 당한 인간과 짐승들의 마음에 새겨진 트라우마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걸어놓으셨습니다. 구름은 우리의 삶 속에서 생기는 근심과 걱정, 불안과 두려움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구름 속에서 언약의 증거를 보여 주심으로 믿음으로 살도록 인도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 무지개가 노아와 가족들에게 평안을 주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셨던 사건이 근심과 걱정을 내게서 떠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증인이 되고 그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하고 모든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죄인들을 심판 하시는 가운데서도 심판 이후 새로운 일을 계획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의인들을 구분하여 따로 대하시며 보호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어떠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남은 인생을 정말 의미있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창세기 7:1-9:17
요절 | 창세기 7:23
하나님의 홍수 심판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오늘 말씀은 홍수 심판과 그 이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고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의 한 가운데서 노아를 기억하셨습니다. 노아를 기억하심으로 심판을 그치고 회복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것이 은혜의 시작이고 구원의 수단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내 인생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내가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정말 힘써야 할 한 가지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방주를 다 만들고 모든 것을 명령하신 대로 준행하자 그에게 이르셨습니다.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이제 홍수 심판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하나님 앞에 의로움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가 시대의 조류를 따라 죄악 되게 살지 않고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지라도 의롭게 살고자 애쓰는 모습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악인과 함께 벌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삶을 다 보고 계십니다. 내가 당하는 억울함을 다 아십니다. 내가 당하는 고통도 아시고 내 속에 있는 절망도 아십니다. 내 속에 있는 주님을 향한 믿음과 소원을 아십니다. 나의 현재 삶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보고 계시고 언젠가 보응해 주실 것을 믿고 묵묵히 방주를 짓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친히 갚아주신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살 수 있습니다. 그 동안 노아를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떡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하면서 비웃던 사람들, 너만 신앙생활을 하는 줄 아느냐면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라고 하던 사람들, 사람 앞에서 약삭빠르게 살던 사람들은 심판의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우직하게 믿음으로 의롭게 산 노아를 부러워하게 됩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마7:2425).”
노아의 사명은 씨를 보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음의 씨, 믿음의 사람들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보존하는 것은 제자 양성을 통해서 계속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람을 키우는 사역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노아는 아내와 자신의 세 자녀들이 믿음으로 방주를 짓고 며느리를 얻으며 방주에 들어가도록 도왔습니다. 우리도 나와 함께 있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가운데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야 합니다. 또한 젊은 대학생들이 믿음을 갖고 영적인 리더들로 자라도록 섬기는 일에 일대일 목자만이 아니라 온 교회가 동역하며 힘을 쏟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공동체를 보존해서 다음 시대에도 믿음의 역사가 이어지도록 합심해서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서로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날 방주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힘들고 피곤한 시대에 사람들이 이 방주 속에서 피난처를 얻고 그 인생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와 예수님을 배우고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시대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을 구원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합니다. 홍수가 땅에 있을 때 노아가 600세였습니다.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로 들어갔고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구원은 방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문이 열려 있을 때 방주로 들어가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이 방주로 들어간 후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였습니다. 이 칠 일 동안 노아는 열심히 사람들에게 방주로 들어오라고 소리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쨍쨍한 햇빛을 보라며 노아와 그 가족에게 미쳤다고 조롱을 했을 것입니다. 노아와 그 식구 8명이 방주에 들어가고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모든 암수가 들어가자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셨습니다. 노아는 한 사람이라도 구원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최후로 들어가자 하나님이 친히 문을 닫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문을 닫으시면 누구도 열 수 없습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 둘째 달 17일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습니다. 며칠만 집중 호우가 쏟아져도 물난리를 겪는데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지자 하수구가 막히고 물이 집 안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불어 일층이 차고 지붕을 덮쳤습니다. 사람들은 좀 더 높은 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피난을 갈 때 먹을 것 입을 것을 준비하느라 시간을 끌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쏟아지는 급류에 떠내려갔습니다.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되자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뒤뚱거리며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그 큰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습니다. 물이 더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다 잠겼습니다. 와우산에 올라갔던 사람들, 남산, 백두산을 포함해서 당시 가장 높다고 하는 산까지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안심하고 있던 사람들도 다 빠져죽었습니다. 아무리 수영을 잘하고 힘이 있는 사람도 150일을 버틸 수는 없었습니다. 부자들도 그 많은 재산으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어 죽었습니다. 권세자들의 권세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인간의 부와 명예와 권세 등 모든 것이 심판 앞에 다 쓸데가 없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렇게 크고 힘 있던 공룡도 다 이때 죽었습니다. 또한 이때 지각 변동이 엄청나게 일어났습니다. 현재 높은 산봉우리에서 해변에 있어야 할 물고기와 조개의 화석들을 발견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어떤 지역은 산이 가라앉아서 섬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구가 대 격변을 겪은 것은 각 민족의 역사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때 죽은 동물들이 석유로, 식물들이 석탄으로 재생되어 쓰임 받고 있습니다.
홍수 심판의 철저함에 대해서 21-24절이 증거합니다.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하나님의 심판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그의 심판은 엄정하십니다. 땅에서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셨지만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은 사람들에게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인내하면서 방주되신 그리스도 안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홍수가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별 말씀이 없으셨고 자취조차 감추셨습니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든 것을 삼킬 듯이 범람하는 파도뿐입니다. 우리도 심판을 받아 죽어간 사람들에 비해서 별로 나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절정으로서 창조하셨던 인류를 스스로 파괴해야 하는 괴로운 마음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벧후 3:9). 우리가 지옥에 대해서 더 많이 설교할수록 지옥 가는 사람이 적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듣기 싫지만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깊이 들어야 합니다. 심판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말씀을 배척하고 대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듣고 죄에서 돌아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할 자들은 구원하시고 버릴 자들은 버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불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 지금 지구 위에 있는 핵폭탄만 가지고도 이 지구를 몇 십번을 다 불태울 수 있다고 합니다. 심판의 불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벧후 3:7,10). 우리는 길게는 90년, 짧게는 60년을 살다가 죽음으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제 우리 각자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심판이 있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인생을 좀 더 진지하고 의미있게 살게 됩니다. 심판이 있다는 것을 믿을 때 의롭게 살게 됩니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곁에 있는 아내를 좀 더 사랑해주고 그의 말을 들어주고 섬기고 싶습니다. 곁에 있는 자녀들을 더 보듬어 주고 싶습니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동역자들과 마음을 열고 더 깊이 대화하고 섬기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행복했고 감사하다고 말하며 떠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국가에도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을 때 불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일을 반복하자 심판하사 2000년 동안 세계를 방황하게 하셨습니다. 역사상 수많은 제국들이 그들의 부도덕으로 인해서 멸망을 했습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할 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 노아를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엄중하게 행하시고 나서 어떤 은혜를 베푸십니까? 8장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신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심으로 모든 심판의 요소들이 물러가고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의인들을 기억하사 혹독한 심판의 날을 감하십니다.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바람을 불게 하시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을 닫으셨습니다. 백 오십 일 후에 물이 점점 줄어들고 일곱째 달 곧 그달 17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습니다. 아라랏 산은 원어로는 ‘아라랏 산들’입니다. 지금 이란, 터어키와 아르메니아 지역에 걸쳐 있는 큰 산 줄기입니다. 그 산들 중 한 곳에 방주가 머물렀습니다.
육백일 년 첫째달 초하루에 땅 위에서 물이 걷혔습니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습니다. 둘째 달 스무이렛 날에 땅이 말랐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기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방주에서 1년 10일을 살고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빨리 땅을 밟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렸습니다. 노아는 조급하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추측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살기 어려운 방주 안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기다림입니다. 기도하는 대로 즉시 응답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우리도 기다려야 하지만 하나님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물을 한꺼번에 뺄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물이 빠지는데 1년이 걸렸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기다렸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그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주셨던 축복의 말씀을 노아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노아로부터 새로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심판을 위한 심판은 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심판은 새로운 출발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으십니다. 마지막 심판도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하시고 우리가 홀연히 변화되어 그 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사는 새 출발이 될 것입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 짐승들이 나왔을 때 그들은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오래 전에 홍수가 난 지역에 봉사활동을 갔는데 방과 외양간에 진흙뻘이 가득 차서 그것을 걷어내는 일을 했습니다. 며칠 동안 내린 홍수로 인해 밭과 논이 다 쓸려나간 모습이 참으로 황량했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자기 집을 먼저 짓지 않고 예배를 먼저 드린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이런 태도는 청교도들에게 이어져 그들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내렸을 때 먼저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미국은 세계 최 강대국으로 부상하였고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하는 나라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임박한 심판 가운데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향기를 받으시고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판으로 인간의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공의로운 속성 때문에 그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악함에 대해서 심판하시지만 무조건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오래 참으십니다. 우리 죄를 없애실 수 있는 분은 갈보리 언덕에서 우리를 위해 피 흘리고 돌아가신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만이 죄를 없이해 줍니다. 노아는 제사를 드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죄를 위하여 영원한 속죄를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우리도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죄 사함이 있고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임하고 회복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않고자 하십니다.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함으로 인간을 안심케 하십니다. 노아 홍수 이전 세상은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홍수가 일어난 이후 겨울이 있게 되고 여름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도 이때 생겼습니다. 이 빙하로 말미암아 격렬한 폭풍이나 대기의 움직임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지구의 주거 환경이 몹시 어렵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북극 지방의 대부분이 거의 주거가 불가능한 환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반복되는 사계절을 볼 때 앞날을 예측하고 준비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지구는 다시 한 번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아주 이상적인 환경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낙원이 될 것입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고 꽃이 피어 향기가 넘치는 지상 낙원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홍수로 인해 파괴된 지구는 에덴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되찾아 우리의 변화된 몸이 살기에 합당한 환경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고 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9:1-3). 더위와 추위로 인해서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고단백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동물을 먹을 수 있게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질서를 다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기를 피째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살인을 금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 언약의 증거로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셨습니다. 비가 온 후에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걸린 것을 보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안심하게 될 것입니다. 홍수 심판을 당한 인간과 짐승들의 마음에 새겨진 트라우마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걸어놓으셨습니다. 구름은 우리의 삶 속에서 생기는 근심과 걱정, 불안과 두려움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구름 속에서 언약의 증거를 보여 주심으로 믿음으로 살도록 인도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 무지개가 노아와 가족들에게 평안을 주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셨던 사건이 근심과 걱정을 내게서 떠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증인이 되고 그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하고 모든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죄인들을 심판 하시는 가운데서도 심판 이후 새로운 일을 계획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의인들을 구분하여 따로 대하시며 보호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어떠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남은 인생을 정말 의미있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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