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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13년 창세기 3강(창2:4-25) 에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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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621회 작성일 13-03-3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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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창세기 제 3 강 
말씀 | 창세기 2:4-25
요절 | 창세기 2:8
에덴동산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간 창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천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서 특별히 에덴동산을 창설하십니다. 에덴은 즐거움,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필요한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가 잘 알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에덴동산에는 풍성한 먹을 것과 부족함이 없는 자연 환경, 하나님의 말씀과 사명, 그리고 가정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함께 계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영적인 만족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첫째, 사람에게 생령을 주신 하나님(4-7) : 창세기 2장은 천지가 창조될 때에 인간의 창조에 대해 더욱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이 있기 전 땅의 상태는 비가 내리지 아니하였고, 들에는 초목이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1장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창조의 권능을 가지신 엘로힘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는 초월자로서의 권능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2장부터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오는데 이는 인격적이고 언약적인 하나님의 성품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과 눈 높이를 맞추시고 인간과 교제하고 관계성을 맺으시는 내재적인 속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해 놓으시고 멀리서 바라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갖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사정을 헤아리는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성육신하셔서 우리 죄인들을 만나주시고 우리의 죄를 담당해주신 예수님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말씀 묵상과 기도로 이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하는 은혜를 잘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해 늘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셨습니다. 즉 사람은 땅의 흙과 하나님께로부터 온 생기로 만들어졌습니다. 땅의 흙이란 고운 흙, 먼지, 티끌을 말합니다. 토기장이가 작품을 빚듯이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인간을 빚어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기계적으로 찍어 만든 상품이 아니라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이 빚으신 작품입니다. 상품과 작품의 차이와 같이 나란 존재는 전 우주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특별한 뜻과 목적을 가지고 빚어 만드신 최고의 작품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흙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는 모르지만 병이 들게 되면 자신의 연약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우리는 쉽게 지치고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단지 진흙덩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심으로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동물도 다 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인간만이 하나님이 친히 생기를 그 코에 직접 불어넣으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특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생령이란 생명의 호흡을 가진 ‘산 자’라는 뜻입니다. 생령이란 영원히 사는 존재, 곧 영혼을 가진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사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죄를 받아들임으로 하나님께 반역하면서부터 인간 안에 있던 하나님의 영이 떠났습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과 갈등이 시작된 것입니다. 육신은 있지만 인간 안에 있던 하나님의 영이 떠나 버린 것입니다. 남은 것은 인간의 육신뿐이기에 인간의 자아는 외롭고 고독하고 방황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상실한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린 배와 같습니다. 방향이 없고 목적도 없고 사는 이유도 모르고 그저 그렇게 동물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히 동물처럼 살 수도 없습니다. 자신이 동물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다가올 때 하나님의 영이 없는 인간은 극도로 불안해 집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의 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회복되는 길은 오직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인간은 태초에 창조되었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죄 가운데 고통하며 방황하던 인간은 구원을 받게 되고 하나님 나라를 맛보게 됩니다. 요일 5:12절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3:3절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맛보며 살아갑니다.

  둘째, 에덴동산(8-15) :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을 사랑하사 보기에 좋은 아름다운 나무들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어쩌다가 자연을 접하고 나무와 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고 상쾌해집니까? 하나님은 인간들이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고 창조주 하나님을 묵상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다양한 맛과 향기를 뿜어내는 형형색색의 수많은 과일과 야채를 풍성하게 준비해 주심으로 늘 먹는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해 먹어야 하나 걱정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손만 내밀면 싱싱하고 100% 유기농 천연과일과 야채들을 매일매일 마음껏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서 고민하며 식사 준비를 하는 사모님들이나 공동 생활하는 형제자매님들에게는 얼마나 꿈같은 이야기일까요? 그런데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다음에 하나님 나라에 가면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습니다. 첫째의 이름은 비손으로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었습니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으로서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입니다.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였습니다. 에덴동산은 아름다운 네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이 흐르는 곳에 생명의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나무도 무성하게 자라고 깨끗한 물 속에는 수 많은 물고기가 번식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고 있습니까? 에덴에 흐르는 강물은 수영을 하다가 먹어도 전혀 이상이 없는 깨끗한 물이었습니다. 정수기가 따로 필요 없었습니다. 물은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생명체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덴 사방에 네 강이 흐르게 하심으로 풍성한 물을 넘치도록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에덴동산에는 순금, 베델리엄, 호마노 등 온갖 다채로운 빛을 띤 보석들이 도처에 깔려 있어서 가는데 마다 반짝반짝 광채가 났습니다. 보통 자매들은 다이아 반지를 손에 끼워 보고 싶어 합니다. 가짜 보석이라도 몸에 장식해서 으스대고 광내고 싶어 합니다. 물론 우리 자매님들과 사모님들 중에는 그런 분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는 이런 것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이 다음에 하나님 나라에 가서 원 없이 보시기 바랍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에서 할 일을 지정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낙원은 사람이 빈둥거리며 한가로이 소일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에덴동산은 연구하고 가꾸고 동식물들을 돌보며 다스려야했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잘 관리하고 지켜야했습니다. 여기서 ‘경작하며’라는 동사는 히브리어로 ‘아바드’인데 이 단어에는 ‘섬기다’는 뜻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을 예배한다, 레위인들이 성막을 돌본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현재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마음으로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선악과(16,17) : 16,1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사람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은 자유입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를 임의로 먹으라는 것은 그 많은 나무의 열매를 다 먹으라는 허용명령입니다. 여기에는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 열매도 먹을 수 있는 자유까지 포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수많은 창의성이 꽃을 피우게 되었고 인류는 발전을 거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야 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과 같이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을 자신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노예로 만들지도 않으셨습니다.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심으로 자발적인 순종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유를 주시면서 또한 책임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명령을 통하여 창조주의 권위와 위엄과 능력을 선포하십니다.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 명령을 지킬 때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이 명령을 어길 때 반드시 죽게 됩니다. 이 세상은 3차원의 질서대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 인간, 만물이라는 엄격한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산은 산에, 바다는 바다에 있고 춘하추동이 질서있게 운행되어야 합니다. 바다가 산으로 가고, 산이 바다로 들어가고 또 바위들이 걸어 다닌다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됩니다. 가장 큰 우주의 신비가 질서에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말씀으로 명령하실 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질서입니다. 이 질서가 파괴될 때 인생의 행복도 파괴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에 순종할 때 하나님과 바른 질서 속에서 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이 계명을 어기는 것은 창조주의 주권과 권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어길 때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단절되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의 범죄행위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어기고, 인간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높이고자 하는데서 생깁니다. 선악과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존재임을 인식하게 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에 일견 부담이 되지만 실제적으로는 생명선이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볍게 생각할 때 그 사람은 죄악에 눈이 뜨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 중앙에 두심으로 이 나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인식하며 그 계명을 지킴으로 창조의 질서 가운데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잘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마음 중심에 어떤 계명의 말씀을 간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중심에, 삶의 중심에 모시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모두 이 복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18-25) : 여호와 하나님이 보실 때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했습니다. 불쌍하다는 말은 ‘쌍이 없기 때문’이라는 조크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서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생각하셨습니다. 아담이 자기가 먼저 짝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닙니다. 결혼은 나이가 들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자신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결혼에 대한 문제의식을 하나님이 먼저 가지시고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시고 인도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아담을 위해서 돕는 배필이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신 하나님께서 여자를 인도하셨습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이를 볼 때 여자는 남자에게서 나왔습니다. 또 남자는 여섯째 날 흙과 함께 지어졌기 때문에 동물적인 본성이 있지만 여자는 뼈로 만들어졌습니다. 창조의 최고 정점은 여자입니다. 머리뼈나 발뼈가 아니라 심장을 감싸는 갈비뼈로 만들어진 고상한 존재입니다. 여자는 남자와 동등한 관계입니다. 동시에 흙으로 만들어진 남자를 지탱해 주는 뼈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허물어지기 쉬운 남자를 받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상호보완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딘가 불안하고 나사가 빠진 것 같은 총각들이 결혼을 하면 안정감을 찾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하여 완성된 인격체가 됩니다. 또 여기서 우리는 결혼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결혼을 할 때 가정생활에 생기는 문제들도 더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즉 믿음으로 가정을 지키게 됩니다.

  배필을 맞이하는 아담의 기쁨이 어떠했습니까? 그는 하와를 보면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부부는 한 몸입니다. 육체적, 정신적인 연합을 이루어 복된 가정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라는 말은 부모를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는 부모로부터 독립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서로의 약점을 감당해 주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약점이 있지만 그 약점 때문에 아내가 있고 남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에게 또는 아내에게 약점을 발견할 때 바로 그 점 때문에 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리 먹을 것이 많이 있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있고 사명이 있어도 서로 돕고 사랑하며 마음을 열고 속삭일 수 있는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소천국입니다.

  두 인격이 하나가 되는 연합의 신비는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에 비유됩니다. 예수님은 신랑으로, 신자들은 신부로 표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온전히 희생하고 사랑하여 교회를 섬기고 돌보십니다. 신자들은 이 사랑에 감격하여 온 마음으로 충성하고 순종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희생적으로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함으로 가정의 평화를 가져오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 교회를 이루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그곳에서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듯이 교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사랑으로 키우는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작은 에덴동산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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