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13년 마니산 수양회(요14장) 길되신 예수님(김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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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한복음 13:36-14:14
요절|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안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길 되신 예수님
제가 시를 한 수 읊어보겠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엔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자신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이 시는 사실 시가 아니고 여러분도 잘 아시는 그룹 GOD가 발표한 4집 앨범 중 메인 타이틀 곡인 “길”이라는 곡의 가사 중 일부입니다. 1997년 IMF사태가 발발한 후 대한민국 전체가 휘청거리고 실업률은 최고조에 이르고, 직장인들은 실업에 / 젊은이들은 취업난에 근심과 걱정으로 허덕이고 있을 때 발표되어, 그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답답한 심정을 잘 대변하고 있었기에 이 곡의 인기는 상당 시간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근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근심 많은 것이 어디 제자들 뿐이겠습니까? 여러분은 근심이 없으십니까? 나는 아무런 근심도 염려도 없다..하시는 분 손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근심과 걱정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이런 명언이 있습니다. “걱정도 팔자다…”웃음이 나는 짧은 속담이지만 사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가만 보면 정말 나는 걱정하려고 태어난 팔자인 것처럼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걱정을 습관처럼 합니다. 그러한 근심은 사람을 시달리게 합니다. 또 사람을 못나게 만들고 하나님을 슬프시게 합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우리가 근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고, 진정한 길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두려움의 문제를 극복하며 승리하는 삶 살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장을 보면 예수님은 대대적인 환영 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 먼 헬라에서도 예수님의 명성을 듣고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한껏 부풀어올랐습니다. 새로운 왕국의 건설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있으면 제자들 차지가 될 헤롯 궁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그런데 13장부터 예수님이 이상해지셨습니다. 갑자기 수건을 두르시고 자기들의 발을 닦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심각하게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는 충격적인 예언을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13:36에서 ‘너희가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난 간다”며 서로 사랑하라고 간곡히 당부하시는 모습은, 마치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매달리는 어린 아들을 외갓집에 억지로 맡기고 수양회관으로 떠나야 하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그러자 자신감이 충만했던 제자들의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랑하는 아내와 Peter Jr. 까지 남겨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와 정든 배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훌쩍 예수님이 떠나 버리시면 우린 닭 좇던 개처럼 지붕만 쳐다보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기분은 마치 고시 2차까지 붙어 좋아했다가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사람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참담한 상황에서 과연 어느 누가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1a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는 영어성경으로 보면”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입니다. 근심이 내안에서 일어나는걸 허용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근심이 외부에서 오는 줄 알지만 실은 우리 안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과 염려의 90%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에게도 이런 세상의 염려의 문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면 내 인생은 누가 책임져주지? 세상에서 이거 이러다 왕따 되는 거 아냐? 내게 남는 게 뭐지?” / 물론 근심하고 싶어서 근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꿈이 무너지면서 믿었던 장래가 먹구름이 되어서 몰려오는데 과연 어느 누가 초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이런 제자들이 어떻게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첫째,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1b절,”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여기서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이 같다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모든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다만 능력이 많으신 인간 예수님을 의지했고, 그 예수님이 어디론가 가신다고 하니 고아가 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니 장래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신 말씀은, 이제부터는 눈에 보이는 인간 예수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항상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를 의지하고자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물질을 의지하고 명예와 부가 자신의 근심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 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 방향을 바꾸어 줄 수 있는 진정한 멘토를 만나면 인생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우리가 눈에 보이는 믿고 의지하는 것들이 불완전 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것들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불안한 것입니다.
요즘 국내 기업인 중 자산 보유액 1/2위를 다투고 있는 현대 기아 차 그룹의 정몽구 회장에 대한 일화입니다. 이분의 나이가 80세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런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젊은이 못지 않은 패기와 열정으로 아직도 회사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 젊음의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도 직접 보지는 못하고 들은 얘기인데 이분은 하루에 꼭 한 뿌리씩 싯가 1000만원에 이르는 심마니가 직접 캔 자연산 산삼을 드신다고 합니다(출근하시기 전 비서가 매일 이른 새벽 책상 앞에 갖다 놓는다고 합니다). 참 대단한 재력가이신 것 같습니다. 그 정도 재력이면 정말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TV에서 종종 보이는 모습은 예전과는 좀 다른 많이 초췌해진 모습입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일본 차와 중국 차의 시장에서의 거센 반격과 엔/달러 강세로 현대 차 그룹 주가가 얼마 전까지 반 토막이 났었습니다. 정몽구 회장의 주식 보유액이 거진 15조원이니 반 토막이면 7~8조원이 휴지조각이 된 것입니다. (1조원을 생각해보셨습니까? 1000만원이 만개 있으면 1조입니다. 감이 좀 잡히십니까?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그러니 이분의 속이 안 쓰릴래야 안 쓰릴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물질도 부귀영화도 결국 우리의 근심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한다?, 참 막연하고 어렵게 생각됩니다. 믿음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려움이 생기면 본성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을 더 붙잡으려 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인데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까?
그러나 이것은 생각보다는 훨씬 쉽습니다. 어려움이 생길 때 사람을 의지하려고 두리번거리지 말고, “내게는 아무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생각하며 눈 딱 감고 하나님을 믿고 도전해 보면 의외로 근심이 사라지고 담대해지는데, 그때 느끼는 자유로움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큰 힘이 됩니다. 사람이 떠나고 환경이 바뀌어도 그런 사람은 전혀 당황하거나 근심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환경을 믿고 의지하면서 근심하고 불안해하며 살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자립적이고 늠름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둘째,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2,3절을 봅시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이 보실 때 제자들이 근심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거처 때문이었습니다. ‘내 집 마련’이 그들의 꿈이었고, 세상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이 그들의 소원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늘 근심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안정된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안정된 삶을 추구할수록 우리 마음 속의 근심은 떠나지 않습니다. 세상 자체가 결코 안정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까지 부동산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부동산에 투자하면 안정된 삶, 안정된 재테크를 영위할 수 있으리라는 꿈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여기 저기서 “휴~ 죽것네”하는 한숨 소리만 커져가고 있습니다.
또한 청년 실업 100만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잠시 차트를 보시겠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실업률은 계속 증가 추세인데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고용률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취업하기 점점 힘들어 지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피터팬 증후군’이란 말을 아십니까? 이는 어른이 되기를 두려워하며 어린아이로 남아있고 싶어하는 심리상태를 의미하는데, 요즘의 취업난 속에 방향을 잡지 못하고 그냥 아예 취직을 포기하거나 부모님의 품 안에 있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근심과 염려 가운데 우리가 있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소극적이 되고 세상이 두렵고 자신감도 없어집니다.
또한 JBF 학생들에게는 학업과 친구문제가 큰 근심거리 입니다. 좋은 내신등급 좋은 성적을 내서 대학에 입학하고, 2세 목자로서 하나님께 영광이요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고 싶지만 생각처럼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난 안될 것이라는”막연한 두려움이 생깁니다.
우리가 이러한 근심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거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이 세상 거처에 대한 걱정과 욕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염려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할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거처’란 영어성경에는 ‘맨션’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맨션은 자동차가 다가가면 큰 대문이 열리고 그 문을 지나 차로 적어도 5분 정도는 더 가야 본채가 나오는 그런 큰 집니다. 잠시 화면을 보시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이런 맨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더좋은 거처를 마련하고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하늘 나라 영원한 거처를 약속하신 예수님이, 다 준비되면 데리러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이 어찌 모든 삶을 책임져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내게 어떤 장래문제가 있든지 날 위해 영원한 거처를 예비하신 주님, 그러기에 하늘나라 가기까지 나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선을 이루실 주님을 믿고 믿음으로 도전하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예수님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시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가시는 길이 어떤 길인지 몰랐습니다. 5절 “도마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님이 A를 예기하면 도마는 B라고 예기했습니다.예수님은 이런 도마를 끝까지 감당하시며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비밀을 말씀하십니다.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6)" 예수님은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방황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곧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라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I am the way."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자신이 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성인들이 인생의 참 길을 찾고자 몸부림쳤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구도자였지 결코 길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는 바로 그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의 길은 'a way'가 아니라 'the way'입니다. 정관사 ‘the’의 의미를 아시죠? 특정한 의미를 부여할 때 쓰이죠. 바로 ‘the way”는 유일한 길이란 뜻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자신을 the way 가 아니라 a way로 말씀하셨다면, 제자들을 강권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에 많고 많은 길 중에 하나라면 우리가 미쳤다고 자기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며 이 길을 갑니까? 안 갑니다. 바울도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며 놀겠다고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a way라면 / 여러 길중에 하나라면, 제가 평신도 일 하기도 빡빡한데 왜 이 더위에 더워죽겠는데 여기서 이러고 메시지를 감당해야 하겠습니까?(제가 지금 결코 불평하는건 아닙니다..오해는 하지 마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러나 BUT 예수님은 the way가 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좀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참고 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유일한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예수님을 유일한 길로 영접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럼 왜 예수님 만이 유일한 길이 되실 수 밖에 없습니까? 이는 바로 예수님만이 우리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생의 존재의미와 목적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부다 왕국의 왕자였으며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가 하루는 우연히 곡을 하며 지나가는 상여행렬을 보며 “도대체 산다는 것이 뭐지?”,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거지?” 하며 고뇌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그에겐 예쁜 아내도 맛있는 음식도 막강한 권세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모든 것을 버리고 29살의 나이에 출가하였습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인생의 목적지와 출발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유교의 창시자 공자는 “죽음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 제자에게 “네가 삶도 모르면서 어찌 죽음을 알고자 하는가” 하는 말로 대신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도 우리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시기 때문입니다. 요1:2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8:14절,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아무도 하나님에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 말하지 못했습니다. 보지 못했고 거기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비밀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거기에 계셨으며 저희를 아버지 집으로 인도하라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가 방황하지 않고 천국까지 확실하게 가도록 인도하는 길이 되십니다. 우리가 이 길 되신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예수님께서 길이시기 때문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았다면 하나님도 알았으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빌립이 답답하다는 듯이 예수님께 나와서 말했습니다. 8절“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빌립은 바로 옆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매일 보면서도 하나님을 보여달라 합니다. 그는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하나님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답답했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감이 안나고 마음에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실제로 보면 속이 시원할 거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빌립에게 말씀하십니다. 9절”예수께서 이루시되 /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은 빌립이 하나님을 알았고 보았다고 말씀하지만, 빌립은 전혀 그렇지를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빌립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확신하면 담대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얼굴빛을 보면 두려울게 없어집니다. 출애굽기 34장에서 하나님을 대면한 모세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으므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하나님의 영광된 얼굴 빛을 본 모세는 이스라엘을 광야 가운데서 이끌고 나아가는 영적 지도자로 크게 쓰임을 받습니다. 또한 이사야는 자신이 본 하나님의 형상을 6장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땅에 충만하도다,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나님의 얼굴빛을 본 이사야는 시대를 품는 영적 지도자로 크게 쓰임을 받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힘든 훈련도 감당하며 자신 있게 사명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많아도 이 믿음 때문에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빌립은 하나님을 알 수 없었고 실감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싶은데,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담대하게 가고 싶은데 확신이 안서니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했습니다. 이는 비단 빌립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까? / 바로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입니다. 요 1:14절은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그분의 얼굴을 보고 확신 가운데 승리하는 삶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말씀 가운데로 나오십시오. 우리가 말씀 가운데로 나아올 때 하나님께서 영광된 얼굴빛을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 가운데 의심과 두려움, 근심이 눈녹듯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12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 하나님의 영광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 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됩니다.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변화되어 한번에 삼천 명을 회개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까지도 불사하며 십자가에서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게 됩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용사로 변화 됩니다. 우리가 말씀 가운데로 나올 때 하나님께서 얼굴빛을 비추어 주시며 우리에게 새 힘을, 독수리처럼 날아 오르는 새 힘을 주십니다. 취업문제로 염려가 되십니까? 말씀 가운데로 나오십시요.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십니다. 물질 문제로 염려가 되십니까? 말씀 가운데로 나오십시요. 차고도 넘치도록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학업문제로 두렵습니까? 말씀 가운데로 나오십시요. 돋는 해 되시는 하나님께서, 샛별처럼 떠오르는 지혜로 승리를 주십니다. 영적으로 크게 쓰임받고 싶은데 믿음이 생기지 않으십니까? 말씀 가운데로 나아오십시요. 하나님께서 성령 충만케 하시며, 여러분을 고 이사무엘 목자님 보다 더 위대한 영적 지도자로 쓰실 것 입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요. 13, 14절”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행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유일한 길 되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기도하며 승리하는 인생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1978년 2월에 추운 한 겨울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태어날 당시 체중이 많이 모자라서 생명이 위험하여 인큐베이터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어렸을적엔 몸이 왜소하고 병을 많이 달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인지 어렸을적 남아있는 기억들은 어머니 손 잡고 병원 다니던 기억들이 대부분 입니다. 몸이 약하다 보니 매사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반장 한 번을 못해봤습니다. 소심하고 열등감이 많았습니다. 남 앞에서 뭔가를 하려면 얼굴이 빨게지고 부끄러워 항상 교실 구석에 앉아 있기를 잘하였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와 완전히 대조되는 아놀드슈왈츠제네거 형님을 보며 그분을 본받고자 모든 교과서의 앞면에 아놀드 형님의 상반신이 있는 사진을 도배하듯이 붙여 놓았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도 그다지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수능 당일 날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남들 다 평균 40점씩 떨어진 역대 가장 어려웠던 수능에서 저는 되려 40점이 올라 홍대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이것이 제게는 큰 열등감이 되었습니다. “난 이 학교에 올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학교 가는게 두려웠습니다. 학과 공부에도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재미를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다 첫해에 학사경고를 받고 크게 좌절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생활에서 저는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대학만 들어가면 인생의 길이 분명히 보일거 같았는데, 오히려 더 인생이 막막해지는 거 같았습니다. “남들은 사는게 그렇게 재밌어 보이는데 난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없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 만나러 ubf동아리 방에 왔다가 밥 한끼 얻어먹고 맘이 약했던 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모태신앙이었지만 거듭남이 없었던 저는 1998년 여름수양회에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목자로서의 삶을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요1: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말씀을 믿음으로 영접하고 목자로서의 삶을 결단하였습니다. 제가 생명의 빛 되시는 예수님을 온전히 만났을 때 왜 살아야 되는지 인생 목적이 분명해지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난 후 제 삶 가운데 모든 일에서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학업에 도전하여 승리하였습니다. 군 제대 후에는 평신도로서 방향을 잡고 취업준비를 하였습니다. 근데 취업이 정말 쉽지는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면접 연락이 오는 데는 없었지만 저는 믿음으로 100군데 이상 원서를 넣었습니다. 비록 남들처럼 스펙이 좋거나 머리가 좋지는 않았지만 위축되지 않고 믿음으로 도전하였습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에서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 믿음으로 구하고 도전할 때 두려움을 이길 수 있고 하나님께서 선으로 갚아주신다는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취업 후에는 곧바로 해외 차종 개발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 1년, 터키 8개월 그리고 러시아까지 유럽과 아시아를 누비며 현대자동차공장 무인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의 제 모습을 생각하면 그 누가 제가 이렇게 쓰임 받을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심지어 제 부모님도 “니가 이렇게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도 너 잘나서 그런 거 아니고, 다 엄마/아빠의 기도빨이니 하나님 잘 믿고 헌금 잘하라”고 늘상 저를 볼 때마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렇게 바꾸어놓으셨습니다. 항상 소심하고 겁많고 열등감으로 가득했던 제게 당신의 영광스러운 얼굴 보게 하시고, 진정한 인생길을 발견하게 하셨으며 믿음의 승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인도하실지 솔직히 궁금하기도 하고 기도가 되기도 합니다. 곧 있으면 진급도 해야 하고 회사에서는 점점 더 많은 아웃풋을 제게 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루게 다르게 무지막지하게 먹는 양이 많아지며 덩치가 커가는 아들 주열이를 보면 집안의 가장으로서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기도 합니다. 목자생활 15년이 넘어가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제자양성의 열매가 없는 제 모습을 보면 과연 내가 제자양성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깁니다. 하지만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 입니다. 제가 이를 믿기에 믿음으로 한발한발 내 디딜 수 있습니다. 길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시기에 이 길을 가는 우리에게는 근심과 걱정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시기에 소망과 확신이 넘칩니다. 예수님이 길이시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가 이시간 예수님을 내 인생의 유일한 길 the way로 영접하고 믿음의 삶을 살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요절|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안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길 되신 예수님
제가 시를 한 수 읊어보겠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엔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자신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이 시는 사실 시가 아니고 여러분도 잘 아시는 그룹 GOD가 발표한 4집 앨범 중 메인 타이틀 곡인 “길”이라는 곡의 가사 중 일부입니다. 1997년 IMF사태가 발발한 후 대한민국 전체가 휘청거리고 실업률은 최고조에 이르고, 직장인들은 실업에 / 젊은이들은 취업난에 근심과 걱정으로 허덕이고 있을 때 발표되어, 그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답답한 심정을 잘 대변하고 있었기에 이 곡의 인기는 상당 시간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근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근심 많은 것이 어디 제자들 뿐이겠습니까? 여러분은 근심이 없으십니까? 나는 아무런 근심도 염려도 없다..하시는 분 손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근심과 걱정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이런 명언이 있습니다. “걱정도 팔자다…”웃음이 나는 짧은 속담이지만 사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가만 보면 정말 나는 걱정하려고 태어난 팔자인 것처럼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걱정을 습관처럼 합니다. 그러한 근심은 사람을 시달리게 합니다. 또 사람을 못나게 만들고 하나님을 슬프시게 합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우리가 근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고, 진정한 길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두려움의 문제를 극복하며 승리하는 삶 살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장을 보면 예수님은 대대적인 환영 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 먼 헬라에서도 예수님의 명성을 듣고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한껏 부풀어올랐습니다. 새로운 왕국의 건설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있으면 제자들 차지가 될 헤롯 궁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그런데 13장부터 예수님이 이상해지셨습니다. 갑자기 수건을 두르시고 자기들의 발을 닦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심각하게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는 충격적인 예언을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13:36에서 ‘너희가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난 간다”며 서로 사랑하라고 간곡히 당부하시는 모습은, 마치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매달리는 어린 아들을 외갓집에 억지로 맡기고 수양회관으로 떠나야 하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그러자 자신감이 충만했던 제자들의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랑하는 아내와 Peter Jr. 까지 남겨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와 정든 배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훌쩍 예수님이 떠나 버리시면 우린 닭 좇던 개처럼 지붕만 쳐다보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기분은 마치 고시 2차까지 붙어 좋아했다가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사람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참담한 상황에서 과연 어느 누가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1a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는 영어성경으로 보면”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입니다. 근심이 내안에서 일어나는걸 허용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근심이 외부에서 오는 줄 알지만 실은 우리 안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과 염려의 90%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에게도 이런 세상의 염려의 문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면 내 인생은 누가 책임져주지? 세상에서 이거 이러다 왕따 되는 거 아냐? 내게 남는 게 뭐지?” / 물론 근심하고 싶어서 근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꿈이 무너지면서 믿었던 장래가 먹구름이 되어서 몰려오는데 과연 어느 누가 초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이런 제자들이 어떻게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첫째,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1b절,”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여기서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이 같다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모든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다만 능력이 많으신 인간 예수님을 의지했고, 그 예수님이 어디론가 가신다고 하니 고아가 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니 장래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신 말씀은, 이제부터는 눈에 보이는 인간 예수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항상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를 의지하고자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물질을 의지하고 명예와 부가 자신의 근심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 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 방향을 바꾸어 줄 수 있는 진정한 멘토를 만나면 인생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우리가 눈에 보이는 믿고 의지하는 것들이 불완전 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것들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불안한 것입니다.
요즘 국내 기업인 중 자산 보유액 1/2위를 다투고 있는 현대 기아 차 그룹의 정몽구 회장에 대한 일화입니다. 이분의 나이가 80세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런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젊은이 못지 않은 패기와 열정으로 아직도 회사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 젊음의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도 직접 보지는 못하고 들은 얘기인데 이분은 하루에 꼭 한 뿌리씩 싯가 1000만원에 이르는 심마니가 직접 캔 자연산 산삼을 드신다고 합니다(출근하시기 전 비서가 매일 이른 새벽 책상 앞에 갖다 놓는다고 합니다). 참 대단한 재력가이신 것 같습니다. 그 정도 재력이면 정말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TV에서 종종 보이는 모습은 예전과는 좀 다른 많이 초췌해진 모습입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일본 차와 중국 차의 시장에서의 거센 반격과 엔/달러 강세로 현대 차 그룹 주가가 얼마 전까지 반 토막이 났었습니다. 정몽구 회장의 주식 보유액이 거진 15조원이니 반 토막이면 7~8조원이 휴지조각이 된 것입니다. (1조원을 생각해보셨습니까? 1000만원이 만개 있으면 1조입니다. 감이 좀 잡히십니까?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그러니 이분의 속이 안 쓰릴래야 안 쓰릴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물질도 부귀영화도 결국 우리의 근심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한다?, 참 막연하고 어렵게 생각됩니다. 믿음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려움이 생기면 본성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을 더 붙잡으려 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인데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까?
그러나 이것은 생각보다는 훨씬 쉽습니다. 어려움이 생길 때 사람을 의지하려고 두리번거리지 말고, “내게는 아무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생각하며 눈 딱 감고 하나님을 믿고 도전해 보면 의외로 근심이 사라지고 담대해지는데, 그때 느끼는 자유로움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큰 힘이 됩니다. 사람이 떠나고 환경이 바뀌어도 그런 사람은 전혀 당황하거나 근심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환경을 믿고 의지하면서 근심하고 불안해하며 살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자립적이고 늠름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둘째,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2,3절을 봅시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이 보실 때 제자들이 근심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거처 때문이었습니다. ‘내 집 마련’이 그들의 꿈이었고, 세상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이 그들의 소원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늘 근심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안정된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안정된 삶을 추구할수록 우리 마음 속의 근심은 떠나지 않습니다. 세상 자체가 결코 안정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까지 부동산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부동산에 투자하면 안정된 삶, 안정된 재테크를 영위할 수 있으리라는 꿈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여기 저기서 “휴~ 죽것네”하는 한숨 소리만 커져가고 있습니다.
또한 청년 실업 100만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잠시 차트를 보시겠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실업률은 계속 증가 추세인데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고용률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취업하기 점점 힘들어 지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피터팬 증후군’이란 말을 아십니까? 이는 어른이 되기를 두려워하며 어린아이로 남아있고 싶어하는 심리상태를 의미하는데, 요즘의 취업난 속에 방향을 잡지 못하고 그냥 아예 취직을 포기하거나 부모님의 품 안에 있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근심과 염려 가운데 우리가 있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소극적이 되고 세상이 두렵고 자신감도 없어집니다.
또한 JBF 학생들에게는 학업과 친구문제가 큰 근심거리 입니다. 좋은 내신등급 좋은 성적을 내서 대학에 입학하고, 2세 목자로서 하나님께 영광이요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고 싶지만 생각처럼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난 안될 것이라는”막연한 두려움이 생깁니다.
우리가 이러한 근심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거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이 세상 거처에 대한 걱정과 욕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염려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할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거처’란 영어성경에는 ‘맨션’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맨션은 자동차가 다가가면 큰 대문이 열리고 그 문을 지나 차로 적어도 5분 정도는 더 가야 본채가 나오는 그런 큰 집니다. 잠시 화면을 보시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이런 맨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더좋은 거처를 마련하고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하늘 나라 영원한 거처를 약속하신 예수님이, 다 준비되면 데리러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이 어찌 모든 삶을 책임져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내게 어떤 장래문제가 있든지 날 위해 영원한 거처를 예비하신 주님, 그러기에 하늘나라 가기까지 나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선을 이루실 주님을 믿고 믿음으로 도전하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예수님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시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가시는 길이 어떤 길인지 몰랐습니다. 5절 “도마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님이 A를 예기하면 도마는 B라고 예기했습니다.예수님은 이런 도마를 끝까지 감당하시며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비밀을 말씀하십니다.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6)" 예수님은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방황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곧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라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I am the way."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자신이 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성인들이 인생의 참 길을 찾고자 몸부림쳤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구도자였지 결코 길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는 바로 그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의 길은 'a way'가 아니라 'the way'입니다. 정관사 ‘the’의 의미를 아시죠? 특정한 의미를 부여할 때 쓰이죠. 바로 ‘the way”는 유일한 길이란 뜻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자신을 the way 가 아니라 a way로 말씀하셨다면, 제자들을 강권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에 많고 많은 길 중에 하나라면 우리가 미쳤다고 자기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며 이 길을 갑니까? 안 갑니다. 바울도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며 놀겠다고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a way라면 / 여러 길중에 하나라면, 제가 평신도 일 하기도 빡빡한데 왜 이 더위에 더워죽겠는데 여기서 이러고 메시지를 감당해야 하겠습니까?(제가 지금 결코 불평하는건 아닙니다..오해는 하지 마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러나 BUT 예수님은 the way가 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좀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참고 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유일한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예수님을 유일한 길로 영접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럼 왜 예수님 만이 유일한 길이 되실 수 밖에 없습니까? 이는 바로 예수님만이 우리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생의 존재의미와 목적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부다 왕국의 왕자였으며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가 하루는 우연히 곡을 하며 지나가는 상여행렬을 보며 “도대체 산다는 것이 뭐지?”,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거지?” 하며 고뇌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그에겐 예쁜 아내도 맛있는 음식도 막강한 권세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모든 것을 버리고 29살의 나이에 출가하였습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인생의 목적지와 출발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유교의 창시자 공자는 “죽음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 제자에게 “네가 삶도 모르면서 어찌 죽음을 알고자 하는가” 하는 말로 대신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도 우리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시기 때문입니다. 요1:2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8:14절,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아무도 하나님에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 말하지 못했습니다. 보지 못했고 거기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비밀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거기에 계셨으며 저희를 아버지 집으로 인도하라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가 방황하지 않고 천국까지 확실하게 가도록 인도하는 길이 되십니다. 우리가 이 길 되신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예수님께서 길이시기 때문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았다면 하나님도 알았으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빌립이 답답하다는 듯이 예수님께 나와서 말했습니다. 8절“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빌립은 바로 옆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매일 보면서도 하나님을 보여달라 합니다. 그는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하나님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답답했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감이 안나고 마음에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실제로 보면 속이 시원할 거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빌립에게 말씀하십니다. 9절”예수께서 이루시되 /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은 빌립이 하나님을 알았고 보았다고 말씀하지만, 빌립은 전혀 그렇지를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빌립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확신하면 담대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얼굴빛을 보면 두려울게 없어집니다. 출애굽기 34장에서 하나님을 대면한 모세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으므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하나님의 영광된 얼굴 빛을 본 모세는 이스라엘을 광야 가운데서 이끌고 나아가는 영적 지도자로 크게 쓰임을 받습니다. 또한 이사야는 자신이 본 하나님의 형상을 6장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땅에 충만하도다,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나님의 얼굴빛을 본 이사야는 시대를 품는 영적 지도자로 크게 쓰임을 받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힘든 훈련도 감당하며 자신 있게 사명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많아도 이 믿음 때문에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빌립은 하나님을 알 수 없었고 실감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싶은데,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담대하게 가고 싶은데 확신이 안서니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했습니다. 이는 비단 빌립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까? / 바로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입니다. 요 1:14절은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그분의 얼굴을 보고 확신 가운데 승리하는 삶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말씀 가운데로 나오십시오. 우리가 말씀 가운데로 나아올 때 하나님께서 영광된 얼굴빛을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 가운데 의심과 두려움, 근심이 눈녹듯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12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 하나님의 영광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 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됩니다.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변화되어 한번에 삼천 명을 회개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까지도 불사하며 십자가에서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게 됩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용사로 변화 됩니다. 우리가 말씀 가운데로 나올 때 하나님께서 얼굴빛을 비추어 주시며 우리에게 새 힘을, 독수리처럼 날아 오르는 새 힘을 주십니다. 취업문제로 염려가 되십니까? 말씀 가운데로 나오십시요.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십니다. 물질 문제로 염려가 되십니까? 말씀 가운데로 나오십시요. 차고도 넘치도록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학업문제로 두렵습니까? 말씀 가운데로 나오십시요. 돋는 해 되시는 하나님께서, 샛별처럼 떠오르는 지혜로 승리를 주십니다. 영적으로 크게 쓰임받고 싶은데 믿음이 생기지 않으십니까? 말씀 가운데로 나아오십시요. 하나님께서 성령 충만케 하시며, 여러분을 고 이사무엘 목자님 보다 더 위대한 영적 지도자로 쓰실 것 입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요. 13, 14절”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행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유일한 길 되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기도하며 승리하는 인생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1978년 2월에 추운 한 겨울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태어날 당시 체중이 많이 모자라서 생명이 위험하여 인큐베이터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어렸을적엔 몸이 왜소하고 병을 많이 달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인지 어렸을적 남아있는 기억들은 어머니 손 잡고 병원 다니던 기억들이 대부분 입니다. 몸이 약하다 보니 매사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반장 한 번을 못해봤습니다. 소심하고 열등감이 많았습니다. 남 앞에서 뭔가를 하려면 얼굴이 빨게지고 부끄러워 항상 교실 구석에 앉아 있기를 잘하였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와 완전히 대조되는 아놀드슈왈츠제네거 형님을 보며 그분을 본받고자 모든 교과서의 앞면에 아놀드 형님의 상반신이 있는 사진을 도배하듯이 붙여 놓았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도 그다지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수능 당일 날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남들 다 평균 40점씩 떨어진 역대 가장 어려웠던 수능에서 저는 되려 40점이 올라 홍대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이것이 제게는 큰 열등감이 되었습니다. “난 이 학교에 올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학교 가는게 두려웠습니다. 학과 공부에도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재미를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다 첫해에 학사경고를 받고 크게 좌절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생활에서 저는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대학만 들어가면 인생의 길이 분명히 보일거 같았는데, 오히려 더 인생이 막막해지는 거 같았습니다. “남들은 사는게 그렇게 재밌어 보이는데 난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없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 만나러 ubf동아리 방에 왔다가 밥 한끼 얻어먹고 맘이 약했던 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모태신앙이었지만 거듭남이 없었던 저는 1998년 여름수양회에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목자로서의 삶을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요1: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말씀을 믿음으로 영접하고 목자로서의 삶을 결단하였습니다. 제가 생명의 빛 되시는 예수님을 온전히 만났을 때 왜 살아야 되는지 인생 목적이 분명해지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난 후 제 삶 가운데 모든 일에서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학업에 도전하여 승리하였습니다. 군 제대 후에는 평신도로서 방향을 잡고 취업준비를 하였습니다. 근데 취업이 정말 쉽지는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면접 연락이 오는 데는 없었지만 저는 믿음으로 100군데 이상 원서를 넣었습니다. 비록 남들처럼 스펙이 좋거나 머리가 좋지는 않았지만 위축되지 않고 믿음으로 도전하였습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에서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 믿음으로 구하고 도전할 때 두려움을 이길 수 있고 하나님께서 선으로 갚아주신다는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취업 후에는 곧바로 해외 차종 개발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 1년, 터키 8개월 그리고 러시아까지 유럽과 아시아를 누비며 현대자동차공장 무인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의 제 모습을 생각하면 그 누가 제가 이렇게 쓰임 받을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심지어 제 부모님도 “니가 이렇게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도 너 잘나서 그런 거 아니고, 다 엄마/아빠의 기도빨이니 하나님 잘 믿고 헌금 잘하라”고 늘상 저를 볼 때마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렇게 바꾸어놓으셨습니다. 항상 소심하고 겁많고 열등감으로 가득했던 제게 당신의 영광스러운 얼굴 보게 하시고, 진정한 인생길을 발견하게 하셨으며 믿음의 승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인도하실지 솔직히 궁금하기도 하고 기도가 되기도 합니다. 곧 있으면 진급도 해야 하고 회사에서는 점점 더 많은 아웃풋을 제게 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루게 다르게 무지막지하게 먹는 양이 많아지며 덩치가 커가는 아들 주열이를 보면 집안의 가장으로서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기도 합니다. 목자생활 15년이 넘어가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제자양성의 열매가 없는 제 모습을 보면 과연 내가 제자양성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깁니다. 하지만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 입니다. 제가 이를 믿기에 믿음으로 한발한발 내 디딜 수 있습니다. 길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시기에 이 길을 가는 우리에게는 근심과 걱정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시기에 소망과 확신이 넘칩니다. 예수님이 길이시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가 이시간 예수님을 내 인생의 유일한 길 the way로 영접하고 믿음의 삶을 살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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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다운로드 | DATE : 2013-08-11 07:5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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