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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13년 여름수양회(요15장:권다니엘) 내 안에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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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563회 작성일 13-07-3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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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 수양회
말씀 | 요한복음 15:1-27
요절 | 요한복음 15:5
내 안에 거하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여러분,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요?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면어떤 사람은 성공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명예를 위해, 또 어떤 사람은 그저 밥 벌어 먹기 위해 산다는 등 가지각색의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답변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공통분모는 바로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벌고, 행복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행복하기 위해 성공을 하고자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프레임’이란 책으로도 유명한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의 행복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시간은 바로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할 때의 순간, 즉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합니다. 남녀관계, 부모와 자식관계, 친구관계, 직장동료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목자와 양과의 관계 등 우리는 그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관계를 떠나서는 어느 누구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좋은 관계가 되면 좋은 감정이 생깁니다. 사랑의 감정이 생기고 행복해집니다. 반대로 관계가 없거나 깨지면 서로 미워하는 감정이 생기고 불행해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관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지면 다 깨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회복되면 모든 관계가 다 회복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의 참 행복의 비결인 참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분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의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제1장. 내 안에 거하라(1-6)

요한복음 15장 말씀은 13장부터 진행되는 예수님의 다락방 비유의 연장선 상의 말씀으로서 제자들을 떠나시기전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던 지난 3년 간의 세월을 되돌아 볼 때 별로 남는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예수님과 관계를 맺은 것이 결코 허망한 것이 아니며,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인가를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가르쳐 주고자 하십니다.

 1절을 보십시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또 5절 처음 부분을 보십시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인간의 관계를 가르쳐 주시면서, 예수님 자신은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 그리고 하나님은 포도원의 농부라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예수님이 참 포도나무라는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포도원에는 포도나무가 있고, 그 가지에는 탐스럽고 맛있는 포도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가지는 열매를 달고 있을 뿐, 그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나무입니다. 나무는 가지에 수분과 양분을 공급합니다. 가지는 나무로부터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아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나무는 가지에게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예수님이 자신을 포도나무요 우리를 가지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1:4에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또 요한 14:6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무는 또한 가지에 달릴 열매의 좋고 나쁨을 결정합니다. (사진) 다같이 화면을 보시겠습니다.보시면 몇 가지 과일 종류 별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맛이 없는 열매들이 나와 있는데요, 배에 돌배가 있고, 감에는 땡감이 있고, 살구에는 개살구가 있듯이, 포도에는 들포도가 있습니다. 농부가 심지 않고 스스로 자라난 들포도는 모양도 좋지 않고 맛도 없어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가지가 들포도 나무에 붙어있으면 이 같은 들포도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십니다. 예수님에게 붙어있는 가지는 참 포도열매를 맺습니다. 탐스럽고 맛있는 열매를 맺습니다.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나쁜 열매든 좋은 열매든,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런데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 붙어있어야 참된 열매,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십시오. 2절 말씀을 장차 홍대 캠퍼스의영적인 거목이 될 노성균 형제님이 큰 소리로 읽어주시겠습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좀더 관찰해보면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무에 붙어 있다고 다 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무에 붙어 있어도 잎만 무성한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잎이 무성해서 열매를 맺을 것도 같은데, 막상 가 보면 가지에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교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10년, 20년 아무리 오래 다녔다 하더라도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으면 농부되신 아버지 하나님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가지를 치신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열매 맺는 가지는 어떻게 합니까? 바로 깨끗하게하십니다. 여기서 ‘깨끗하게 한다’는 말은 물로 씻는다‘는 뜻이 아니라전정작업인 가지치기,즉 잔가지나 웃자란 가지를 쳐내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가꾸는 농부이십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규모 있게 살기 보다 아무렇게나 살고 싶어합니다. 또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도 많습니다. 한 두 가지에 집중하기보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이런 본성을 그대로 두면 한없이 자라서 그 사람의 인생에는 곁가지가 많아지고 잎만 무성해 집니다. 물론 가지가 길고 잎이 많으니 화려하고 그럴듯하게는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사람이 본성대로 행하고 욕심대로 살아서는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가꾸는 농부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자 하십니다. 즉 가지치기를 해 주십니다.

그러면 인생들의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까? 예수님은 3절에서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깨끗하여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먼저 우리가 어떤 가지를 쳐내야 하며, 어떤 잎사귀를 솎아내야 하는가를 알게 해 줍니다. 또 그것을 잘라내고 솎아낼 수 있는 힘, 즉 결단력을 줍니다.

우리는 어떤 가지를 쳐내고 어떤 잎사귀를 솎아내야 하는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떻게 생각하면 욕심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람이 욕심이 있어야 그것이 삶의 동력이 되어 의욕도 생기고 발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나애리, 이 나쁜 기지배, 너를 꼭 이겨주고야 말겠어!’라는 대사로도 유명했던 달려라 하늬와 같이 미움이나 복수심 같은 것도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강한 의지력을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 필요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공부할 때 욕심에서 출발한 의욕이나 미움에서 비롯된 의지력은 순간적인 동기와 성취감은 줄지언정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고 진정한 열매를 맺을 수 없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좋게 여기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도 자신이 품고 있는 이상이 더 보람되고 가치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것보다 자신의 감성에 충실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사는 것이 더 진취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을 공부할 때 자신의 이상, 자신의 감정이나 인간적 사고 방식, 그리고 자신의 노력만으로 살고자 하는 자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열매를 맺는데 있어서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서 잘라내야 할 것을 알게 해 주시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우리로 열매 맺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되는 ’영적인 훈련’을 잘 감당할 때 죄의 유혹을 이기고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런데이러한 영적인 훈련에는 죄악이 드러나는 수치와 그것을 잘라내는 아픔이 따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너무 아파서 반발하고, 수치스러워서 도망쳐 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훈련은 우리를 열매 맺는 사람으로 가꾸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말씀 소감을 감당하다 보면 말씀 앞에서 우리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고 그것을 도려내야 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어떨 때는 소감 한 페이지 쓰는 것이 죽기보다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술을 할 때 고통이 따르지만, 그것을 잘 견뎌냈을 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듯이 비록 힘들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의 결단을 이룰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시고, 풍성한 열매맺는 삶으로 인도해주십니다.

제자들은 지난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열매가 없었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다.”고 깨우쳐주십니다. 그 3년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는 기간, 영적인 훈련의 기간이었습니다. 마치 포도원 농부가 3년 동안은 아무런 열매를 기대하지 않고 가지치기만 하듯이, 예수님은 3년 동안 그들을 말씀으로 가지치기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기도 하시고 실제적인 훈련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때로는 반발하기도 했지만 그 아픔을 잘 감당하면서 끝까지 예수님에게 붙어 있었습니다. 이윽고 예수님이 떠나셨을 때 그 모든 훈련은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셨고 그들을 인류의 목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3년은 결코 허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4,5) 우리 모두가 말씀으로 자기를 훈련하며 예수님 안에 거하고 끝까지 예수님에게 붙어있어풍성한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열매를 맺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동교센터 윤석재 형제님이 8절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첫째, 우리가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6절을 보면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를 사람들이 모아다가 불 속에 던져버리듯이, 열매 없는 인생은 하나님의 불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매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생 뭐 있나? 이 짧은 인생 뜨겁게 이 한 몸 불태우고 가면 되는거 아이가?’ 라며 그저 인생을 즐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지가 길고 잎사귀가 무성한 포도처럼, 멋있게 또는 남 보기에 그럴듯하게만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합니다(히 9:27).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심판하시되 그가 얼마나 화려하고 다양한 인생을 살았는가 보다도 그 열매를 보십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19절에서 “그의 열매로 그를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풍성히 맺을 때 농부가 기뻐하듯이 우리가 우리 인생의 풍성한 열매를 통해 농부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어야 하는 두번째 이유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표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 31-32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표시로 하나님 말씀이 그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13장 35절에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 또한 예수님의 제자임을 표시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8절 말씀과 같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표시하는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어느 학교 출신이다’, ‘내가 뭐하는 사람이다’라는 등등의 자신의 출신과 배경을 자랑합니다.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말씀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열매를 많이 맺음으로써 예수님의 제자됨을 자랑하는 저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열매 맺는 삶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다음과 같이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구원의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 4:36에서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라고 하신 그 열매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녀도 영혼의 구원이 없는 사람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지 열매가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둘째, 인격의 열매, 도덕의 열매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22,23에서 말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 본성이 변화되지 않고 어린 아이 때나 환갑 때나 그 인격이나 도덕성에 있어서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그를 열매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랑이 풍성해지고, 기쁨이 많아지고, 화평과 인내와 충성과 온유와 절제에 있어서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점점 더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도의 열매입니다.우리가 일생동안 살면서 그저 나 하나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열매 있는 삶이라고 하기 힘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UBF를 캠퍼스 대학생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번 수양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한 예수님의 말씀의 생명수를 공급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들고 다시금 캠퍼스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 안에 거하며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의 양식을 충만히 공급받을 때 비록 우리 자신은 연약하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능력으로 풍성한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2장. 내 사랑 안에 거하라(7-27)

우리는 위에서 예수님 안에 거할 때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 안에 잘 거할 수 있습니까?
첫째, 기도해야 합니다.뭐라구요? 네. 맞습니다. 7절 말씀을 우리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동교센터 임재성 형제님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7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분명하게 해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 안에 거하는 자는 예수님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예수님 말씀을 먹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예수님 말씀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내 안에 있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말은 기도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께서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혹시 잘못된 것을 구하면 어떡하지? 그런 기도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실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보면,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으면 개인의 욕심이나 이기심으로 구할 수 없게 되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기도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주님이 기뻐하고 원하시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이뤄 주십니다. 날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바로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가지인 우리가 생명되시는 예수님을 부르는 호흡과도 같은 것입니다. 호흡이 멈추면 생명이 끊어지듯이 기도를 멈추면 우리의 영적인 생명력이 고갈 됩니다. 어떤 사람은 굳이 기도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구할 것을 다 아시니까 알아서 들어주시겠지 라고 생각하고 기도를 게을리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 구할 것을 다 알고 계시지만, 그분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그분께 직접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부부 사이나 연인 사이에서도 서로가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상대방의 입술을 통해 직접 사랑 고백을 들을 때 행복함을 느끼고 그 사랑이 더욱 깊어지곤 합니다. 저와 동역자도 결혼 초반에는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사랑 표현을 잘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여보~ 알라뷰’, ‘여보~사랑해요~’ 라며 사랑표현을 자주 하면서 서로의 사랑이 더욱 깊어짐을 느끼곤 합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에 당신께서도 우리의 입술을 통해 당신께 직접 사랑 고백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새벽기도와 식사 기도, 자기 전 기도 등의 정기적인 기도생활을 비롯하여 수시로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과 끊임없이 기도를 통해 소통할 때,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풍성한 열매 맺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뭐라구요? 네.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10절을 우리 안양센터, 인천센터 목자님들께서 읽어 보시겠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사람 관계에서도 상대방의 말에 반응하고 따르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마음의 표현이듯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킬 때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이 사랑이고, 주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사랑이며, 주님 말씀대로 생각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의지입니다.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다는 말은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고,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다는 말은 그분의 말씀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내 안에 있으면 그분께서 살아 계시는 것이고, 예수님 말씀이 내 안에 죽어 있으면 그분께서 죽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 이상으로 예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방법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내 사랑 안에 있어라”, “내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은 모두 같은 뜻입니다. 우리가 그 분의 말씀을 힘써 지킴으로서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찐하게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편 사단은 늘 우리로 예수님의 사랑을 의심하도록 유혹합니다. 특히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사단은 “예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면 이런 어려움을 주실 리가 없잖아?”라고 속삭입니다. 또 얼른 열매가 생기지 않을 때, 사단은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면 열매를 주셔야 하는데, 왜 아무 열매가 없는거지?’라며 예수님의 사랑을 의심하도록 유혹합니다. 사단은 그렇게 해서 늘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떨어지게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13절을 봅시다.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같은 죄인들을 친구로 삼아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결코 예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믿고 끝까지 믿음의 중심을 지키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셋째, 우리가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택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16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가끔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택한 줄로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결단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하고, 자기의 의지로써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연약해서 의지가 꺾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역시 난 안돼’ 라고 자포자기하며 예수님에게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양을 쳐보면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택하시지 않고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택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택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열매를 맺기까지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사단은 우리의 약점이나 실수가 드러나면 “너는 이제 소망이 없다”고 속삭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서 떨어지게 만들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약점도 알고 실수할 것도 아시면서도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약점이 있으면 도와주시고, 실수가 있으면 감싸주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에게 붙어있기만 하면 됩니다.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고 중심만 잘 지키면 결국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넷째, 세상의 미움을 감당해야 합니다.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을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입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고 예수님 안에 거하기가 어렵습니다. 18-25절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신자를 미워하는 이유는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지 않고 예수님에게 속해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도 거하고 예수님에게도 거할 수는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세상에 거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예수님에게서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거하려면 세상의 미움 받을 것을 각오하고 믿음의 중심을 지켜야 합니다.
 저는 1979년 경기도 파주에서 이란성 쌍둥이 중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의 헌신적인 섬김으로 특별히 부족한 것 없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어머니께서는 당신께서 가난으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이 있으셨기에 너희는 꼭 공부를 잘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말씀을 지겹도록 늘어놓으셨습니다. 저는 이런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여 열심히 공부하였고,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었습니다. 시험성적이 발표될 때마다 제 이름이 맨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며 흐뭇해하였고, 친구들의 부러움과 선생님의 칭찬을 즐겼습니다. 저는 이처럼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인정받는 것을 행복의 최우선 조건으로 여기며 살아 왔고, 겉으로 보기에 전 아무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전 온갖 더러운 것들로 내면이 가득찬 자였습니다. 중학교 때 우연히 알게 된 자위행위는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한 때는 이러한 행동을 청소년기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 적도 있었으나 몰려오는 죄의식과 수치심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참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을 아직 만나지 못했던 저는 겉으로는 잎이 무성하고 열매를 많이 맺을 것 같은 모범생이었지만,속으로는 온갖 음란한 상상으로 가득찬 더러운 죄인이었습니다. 이러한 죄의 뿌리는 시간이 갈수록 저의 내면에 깊은 죄의식의 열매를맺어 갔습니다. 또한 저는 부모님의 깨어진 관계성으로부터 받았던 상처가 있었습니다. 타지에서 많이 생활하셨던 아버지께서는 오랜만에 집에 들어오실 때마다 술이 잔뜩 취해서 한밤 중에 들어와 술주정을 늘어놓으셨고, 어머니께서는 그런 아버지와 밤새도록 소리 지르고 다투시는 일이 매번 반복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두 분을 보면서 다른 집은 화목하게 다들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우리 집만 이럴까 라고 생각하며 가정환경을 비관하곤 하였고, 그럴 때마다 그런 어두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학업에 몰두 하였습니다.
1998년 3월 지금까지 참아왔던 저의 목마름에 대한 갈증을 대학에서 마음껏 풀어보리라는 벅찬 기대감을 가지고 연세대학교 사회과학계열에 입학하였습니다. 저는 공부는 지금까지 할만큼 했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원하는대로 생활하리라 결심하고 우울했던 집에서 뛰쳐나와 자취를 시작하였습니다. 관계에 목말랐던 저는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며 온갖 모임을 쫓아다니며 매일 같이 술을 마셨고,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남이 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그 동안 학업으로 인해 억눌러왔던 자매의 사랑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각종 미팅, 소개팅, 번개팅 등 온갖 종류의 팅을 통해 나만의 줄리엣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전 매번 만남 때마다 만족하지 못하였고 다음에는 좀더 괜찮은 자매가 나오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자매의 사랑을 찾아 쫓아다녔지만 저에게 남은 것은 채울 수 없는 목마름에 대한 깊은 허무감과 입대 전 평균 2.0이라는 초라한 성적표와 패배의식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부모님께서 크게 다투시고 이혼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저는 모든 골치 아픈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군입대를 결심하고 공군에 지원하였습니다. 입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1999년 9월, 자매의 사랑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고 있던 저는 미팅에서 만났던 한 홍대자매를 만나기 위해 홍대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세상의 우물을 찾아 해매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사 그곳 벤치에서 목자님을 만나게 해주시고 요한복음 4장 14절 말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말씀을 주심으로 영생수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깊은 허무감과 실패의식을 안고 도피처로 선택했던 2년 6개월 간의 군생활을
참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 한 분을 깊이 만날 수 있는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귀하게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아무도 의지할 데 없는 광야와도 같은 힘든 군생활 가운데, 제가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었고,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던 주일예배말씀과 목자님께서 보내주시는 신앙서적과 성경말씀이 담긴 편지를 통해 포도나무 예수님께 조금씩 가지를 뻗어갈 수 있었습니다. 2002년 제대 후 처음 참석한 여름수양회에서누가복음 23장 3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는 십자가에서의 예수님 말씀을 통해 제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저의 정욕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저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 안에 더욱 거하고자센터로 옮겨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1대1 말씀공부와 팀모임, 주일 말씀 등을 통해 생명의 근원되시는 포도나무 예수님이 주시는 참 생수의 단 맛을 맛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 생수는 놀라운 능력으로 저를 변화시켰고,많은 열매를 맺게 해주셨습니다. 입대 전 항상 바닥의 성적을 밑돌던 제가 제대 후 계속해서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술을 그렇게 좋아하던 제가 술을 끊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관계성 또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최악의 실업난이라고 하던 2005년 여름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가고 싶어하던 CJ 인사팀에 믿음으로 합격시켜 주셨습니다. 저는 이처럼 저에게 많은 열매를 맺게 해주신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을 캠퍼스 양들에게도전해주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2005년 목자의 삶을 결단하였습니다. 저를 참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께 접붙여 주시사 많은 열매를 맺게 해주시고, 이 시대 말씀의 은혜를 나눠주는 목자로 사용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처럼 저는 예수님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더 많은 열매를 맺기를 원하셨기에 저에게 남아 있는 죄의 잔가지들을 남김 없이 쳐내고자 하셨습니다. 친구들과의 관계성과 사람들로부터의 인정, 성공하고자 하는 욕심 등 많은 가지들을 쳐냈지만, 한 가지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결혼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인생을 통해 경험해왔기에 끝까지 예수님께 붙어 있기로 결단하고 저의 욕심과 방향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내려놓고 결혼 방향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의 배우자에 대한 기도제목들이 모두 응답된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마음씨가 예쁘고 귀여운 에스더 목자와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축복해주셨습니다. 깊은 죄의식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죄의 열매만을 맺다가 결국은 지옥불에 던져질 쓸모없는불쏘시개 운명과도 같았던 저를 참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께 접붙여 주시고,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찬양 합니다. 지금까지 구원의 열매, 인격과 도덕의 열매 등 많은 열매를 맺어 왔지만, 하나님 안에서 더욱 많은 열매를 맺고자 이제는 제자양성과 전도의 열매에 도전함으로서 저의 믿음이 더욱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 최근 나태해졌던 저의 영적기본생활을 회개하고, 말씀과 기도에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맡겨주신 성균 형제님 한 분을 제가 사랑과 말씀으로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성균 형제님에게 꾸준히 말씀의 양분을 공급함으로서성균 형제님이 홍대 캠퍼스의 영적인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예수님을 모르는 홍대 캠퍼스 양들에게도 참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 역사에 도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제가 풍성한 열매를 맺고, 이를 통해 농부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농부요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 이십니다.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아 살 수가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그 과정에서 농부되신하나님께서가지치기하는 아픔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아픔을 견디고 끝까지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사명의 땅에 돌아가서도 참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 안에 거하며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풍성한 믿음의 열매, 승리의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요절 말씀 읽고 기도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15장 5절 말씀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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