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3년 창세기 18강(27장) 에서와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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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창세기 제 18 강
본문 | 창세기 27:1-45
요절 | 창세기 27:28,29
에서와 야곱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오늘 말씀은 믿음의 2대 조상 이삭에서 3대 조상이 되는 야곱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계승되는 중요한 순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삭의 실수, 리브가의 실수, 에서의 실수, 야곱의 실수가 나옵니다. 이들의 실수와 죄가 다 드러납니다. 조급함, 거짓, 망령됨, 속임수 등등. 하나님은 죄와 실수가 많은 인간들을 감당하시면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친히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도 죄와 실수를 많이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구속역사에 쓰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가 많은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구하고 사모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배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했습니다. 이삭의 나이 137세가 되었을 때이고 야곱과 에서는 77세였을 때입니다.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불러 자신이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자신을 위하여 사냥하여 그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먹게 하라고 합니다. 그는 별미를 먹고 죽기 전에 마음껏 그를 축복하리라고 말합니다. 이삭이 왜 에서를 축복하고자 할까요? 그가 장자이고 자신이 그를 편애하기 때문입니다. 의문이 드는 것은 에서가 헷 족속의 딸들과 결혼을 하여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를 축복하고자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뜻을 분명히 주셨는데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뜻을 관철시키고자 한다는 점입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이삭이 늙어서 육신의 눈뿐만 아니라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실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삭은 에서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25:23), 지극히 육신적이고 영적인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25:31-34), 중심이 없는 자인데 그에게(26:34,35) 하나님의 큰 축복을 물려주려고 했습니다. 이런 자를 믿음의 3대 조상으로 세우게 되면 우상을 숭배하는 여자를 따라 우상을 숭배하다가 후손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가문과 나라를 망치게 될 것입니다.
  이삭의 말을 들은 리브가는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갔을 때 야곱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도록 계략을 꾸밉니다.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리브가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서 영적인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권위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일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삭을 설득할 수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중동 지역에서 여자는 남편에게 절대 복종하는 문화가 깔려 있습니다. 아내가 성경공부를 하려고 하면 남편의 승낙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남편을 속이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야곱에게 계승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준비하였습니다.
  우리가 복음 역사를 섬길 때에도 결정해야 할 중요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결혼 역사, 계승 역사, 방향을 잡는 문제에 있어서 영적인 동역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도자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방향을 잡을 것이 아니라 최대한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고 객관적이고 영적인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동역자들도 자기주관적인 의도가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조언을 해야만 합니다. 리브가는 남편의 권위를 무너뜨리지 않고 세우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애를 썼습니다.
  리브가의 계획에 대해서 야곱은 두려워합니다.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자신은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가 자신을 만지실 때에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이면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이때 리브가는 자신의 결단력을 발휘하여 야곱을 돕습니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13).” 리브가의 행동은 목적은 바르지만 방법 면에서는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믿음으로 감당하고 책임을 지고자 하는 자세는 훌륭합니다. 한 중풍병자를 사랑하는 네 친구가 그를 치료하기 위해서 예수님께 데려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지붕을 부수고 새치기를 하여 그 친구를 예수님 발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도덕적인 문제를 따지기보다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남의 지붕을 부수었지만 책임지고 수리를 해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을 추진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원치 않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성숙한 자세로 앞뒤좌우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때를 놓치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야곱은 리브가의 말에 순종하여 염소를 끌어오고 리브가는 이삭이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집 안에 있는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갖다가 야곱에게 입히고 털로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혔습니다.
  복음역사를 섬기는데 있어서 사모님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남편이 영적인 판단을 하도록 기도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때로 아내는 야당이 되어서 건설적인 충고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루터의 아내 폰 보라는 루터가 종합병원과 같이 아픈 데가 많았지만 헌신적으로 도와서 동역을 했습니다. 수도원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잘 돌보았습니다. 또 루터가 영적 침체 가운데 있을 때는 소복을 입고 루터에게 충격을 주어서 침체에서 빠져나오게 하였습니다. 사모님들이 남편과 동역하고 자녀들을 돕는데 있어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리브가가 야곱을 편애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결단을 하고 저주를 감수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리브가는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여기는 것을 보았을 것이고, 에서의 결혼도 보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축복이 에서에게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리브가는 담대한 믿음으로 남편 이삭과 아들 야곱을 영적으로 잘 동역하여 영적인 계승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야곱은 별미와 떡을 받쳐 들고 아버지 야곱에게 나아가 내 아버지여 하고 부릅니다. 이삭이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고 묻자 그는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라고 대답합니다. 그가 자기의 정체성을 속이자 계속해서 세 번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이삭이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고 묻자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였다고 거짓말을 둘러댑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고 말합니다. 야곱이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말하며 분별하지 못하고 야곱을 축복하였습니다. 이삭이 하도 미심쩍어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고 묻자 그가 “그러하니이다”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을 한 야곱은 그에 합당한 징계를 받고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성취해 나가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연약함 가운데서도 자신의 뜻을 성취해 나가십니다.
  이삭은 야곱이 가져온 별미를 먹고 또 포도주를 마시고 그를 축복합니다. 27-29절을 보십시오.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야곱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의 향기가 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과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복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는 물질적 복입니다. 두 번째는 만민이 그를 섬기고 열국이 그에게 굴복할 것이라는 복입니다. 이는 야곱이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복의 근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강대한 나라, 영향력이 있는 나라, 리더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영적인 복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바라는 복입니다. 누구든지 야곱을 함부로 하고 해를 주는 사람은 하나님이 벌하시고 저주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을 선대하고 사랑하며 축복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축복하겠다는 것입니다. 그의 평생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항상 그를 따라다닐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야곱에게로 계승됨을 의미합니다. 비로소 아브라함과 이삭의 축복이 야곱에게 계승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둘째고, 이삭도 둘째고, 야곱고 둘째입니다. 둘째들이 하나님의 역사에서 계승자들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야곱은 에서와 같이 육신적이 않고 영적인 복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가 열망한 영적인 복은 당장 유익을 주는 물질적인 것이나 현실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복, 신령한 영적인 복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가 영적인 복에 대해 열망한 것은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신 하나님, 이삭에게 백 배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조상들을 축복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물줄기를 잡은 것입니다. 야곱이 평소에 영적인 축복을 귀히 여기는 믿음이 없었다면 저주 받을지도 모르는 모험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영적인 축복을 귀히 여기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축복을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1:12). 그러므로 영적인 축복은 양보하면 안 됩니다. 어찌하든지 쟁취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물질적인 축복은 귀히 여깁니다. 그러나 영적인 축복은 양보하고, 겸손한 체 하면서 사양합니다. 이런 자들은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들이요, 반드시 방성대곡할 날이 올 것입니다. 영적인 축복을 귀히 여기는 자만이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남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축복은 양보하더라도 영적인 축복을 붙잡을 때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야곱에게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그를 동역해준 어머니 리브가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자녀들과 양들을 부모와 같이 유모같이 잘 돌보아야 합니다. 자녀들과 양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계승하도록 옆에서 기도하고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분명한 복음적 가치관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로 키워야 합니다. 우리는 축복의 계승자, 축복의 전수자,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은 흘러가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우리의 후손들이 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고 야곱이 나가자 곧 그의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왔습니다.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말했습니다.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이삭이 의아한 듯이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합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이 말을 듣고 이삭이 심히 크게 떨었습니다. 그는 통제할 수 없는 떨림에 사로잡혔습니다. 이는 그의 강렬한 두려움과 놀람을 나타냅니다. 그는 알지 못하는 자를 축복했고 그 축복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삭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며 야곱이나 리브가의 행동에 대해서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야곱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도록 축복한 것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에서는 그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간청합니다. 이삭은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다고 말합니다. 에서는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그가 자신을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라고 고백합니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그의 복을 빼앗았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위해서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였느냐고 묻습니다.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뿐이냐고 따집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소리 높여 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두 번이나 야곱에게 당한 억울함과 미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영적인 명분을 소홀히 여기고 쉽게 팔아 버렸을 때 땅을 치며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12:17절에서는 에서가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 번씩이나 자신의 잘못을 알고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 탓만 하고 있습니다. 에서의 울음은 신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고 망령되게 팔아버리는 사람들이 나중에 예수님이 오셔서 심판하실 때에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예표인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 힘들지만 목자의 명분을 중요시 여기고 중심을 지킨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신앙생활이 힘들어도 십자가를 지고 목자의 명분을 감당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실리적으로 자기 유익을 따라 갔던 사람들은 나중에 억울하게 생각하여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누구 탓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각자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이삭은 에서의 장래를 예언합니다.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이 예언대로 후일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세계에서 가장 척박한 곳 중의 하나인 세일 산지를 그들의 거처지로 삼게 됩니다(32:3, 신2:5). 에서는 칼을 믿고 살게 됩니다. 그들은 가장 호전적인 민족이 되어 칼을 믿고 살면서 다른 사람을 해칩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고통을 줍니다. 칼을 믿고 사는 사람은 복의 근원이 되기 어렵고 오히려 화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에서에게 내린 축복은 축복이 아니라 잘 치장된 저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서는 왜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이런 삶을 살아야 했습니까? 거기에는 에서 자신의 책임이 있습니다. 에서는 가치관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는 한 그릇 단팥죽 때문에 장자의 권리를 동생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그는 결혼할 때도 믿음의 여인과 결혼하지 않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했습니다. 그는 영적인 것보다 육신적인 것을 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중심으로 선택하지 않고 자기 육신적 욕구를 따라 살았습니다. 장자의 권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생각하지 못하고 당장 배고픈 것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에서를 축복하실 수 없었습니다.
  이삭은 야곱이 축복을 받은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의 청을 받아들여 야곱을 에서에게서 보호하고 믿음의 결혼을 하도록 처갓집으로 보냅니다. 에서가 볼 때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그 아우 야곱을 죽이라고 결심하였음을 리브가가 알았습니다. 리브가는 에서의 분노가 풀리기 까지 몇 날 동안 그곳에 피신해 있으라고 했지만 그 몇 날이 이십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그 이후 만나보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리브가는 이삭을 주장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축복하는 믿음을 인정하고, 이삭의 마음을 움직여(46) 야곱을 축복하여 보내도록 동역하였습니(28:1-3). 결국 이삭은 믿음의 동역자 리브가의 도움을 받아 야곱을 축복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축복의 물줄기가 바로 흐르도록 섬기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다고 기록했습니다(히 11:20).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는 자와 경홀히 여기는 자의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크게 벌어집니다. 지금은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영적인 복을 사모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야곱은 이러한 축복을 사모하였고 비록 방법에 있어서 잘못 되었지만 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가치관이 있고 믿음이 있는 그를 택하사 아브라함의 축복의 물줄기를 이어가십니다. 복은 의를 추구하는 결과로 당연히 오는 것이지 복 자체는 추구할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날 세속주의의 영향으로 돈 사랑, 자기 사랑, 쾌락 사랑과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기복신앙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말씀을 공부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며, 많은 민족에게 꾸어 주고, 머리가 되고, 위에만 있게 하시는 복 받은 나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의 물줄기를 이어가는 구속 역사의 주인공들이 다 되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 창세기 27:1-45
요절 | 창세기 27:28,29
에서와 야곱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오늘 말씀은 믿음의 2대 조상 이삭에서 3대 조상이 되는 야곱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계승되는 중요한 순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삭의 실수, 리브가의 실수, 에서의 실수, 야곱의 실수가 나옵니다. 이들의 실수와 죄가 다 드러납니다. 조급함, 거짓, 망령됨, 속임수 등등. 하나님은 죄와 실수가 많은 인간들을 감당하시면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친히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도 죄와 실수를 많이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구속역사에 쓰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가 많은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구하고 사모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배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했습니다. 이삭의 나이 137세가 되었을 때이고 야곱과 에서는 77세였을 때입니다.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불러 자신이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자신을 위하여 사냥하여 그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먹게 하라고 합니다. 그는 별미를 먹고 죽기 전에 마음껏 그를 축복하리라고 말합니다. 이삭이 왜 에서를 축복하고자 할까요? 그가 장자이고 자신이 그를 편애하기 때문입니다. 의문이 드는 것은 에서가 헷 족속의 딸들과 결혼을 하여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를 축복하고자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뜻을 분명히 주셨는데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뜻을 관철시키고자 한다는 점입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이삭이 늙어서 육신의 눈뿐만 아니라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실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삭은 에서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25:23), 지극히 육신적이고 영적인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25:31-34), 중심이 없는 자인데 그에게(26:34,35) 하나님의 큰 축복을 물려주려고 했습니다. 이런 자를 믿음의 3대 조상으로 세우게 되면 우상을 숭배하는 여자를 따라 우상을 숭배하다가 후손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가문과 나라를 망치게 될 것입니다.
  이삭의 말을 들은 리브가는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갔을 때 야곱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도록 계략을 꾸밉니다.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리브가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서 영적인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권위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일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삭을 설득할 수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중동 지역에서 여자는 남편에게 절대 복종하는 문화가 깔려 있습니다. 아내가 성경공부를 하려고 하면 남편의 승낙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남편을 속이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야곱에게 계승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준비하였습니다.
  우리가 복음 역사를 섬길 때에도 결정해야 할 중요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결혼 역사, 계승 역사, 방향을 잡는 문제에 있어서 영적인 동역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도자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방향을 잡을 것이 아니라 최대한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고 객관적이고 영적인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동역자들도 자기주관적인 의도가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조언을 해야만 합니다. 리브가는 남편의 권위를 무너뜨리지 않고 세우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애를 썼습니다.
  리브가의 계획에 대해서 야곱은 두려워합니다.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자신은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가 자신을 만지실 때에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이면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이때 리브가는 자신의 결단력을 발휘하여 야곱을 돕습니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13).” 리브가의 행동은 목적은 바르지만 방법 면에서는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믿음으로 감당하고 책임을 지고자 하는 자세는 훌륭합니다. 한 중풍병자를 사랑하는 네 친구가 그를 치료하기 위해서 예수님께 데려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지붕을 부수고 새치기를 하여 그 친구를 예수님 발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도덕적인 문제를 따지기보다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남의 지붕을 부수었지만 책임지고 수리를 해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을 추진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원치 않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성숙한 자세로 앞뒤좌우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때를 놓치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야곱은 리브가의 말에 순종하여 염소를 끌어오고 리브가는 이삭이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집 안에 있는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갖다가 야곱에게 입히고 털로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혔습니다.
  복음역사를 섬기는데 있어서 사모님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남편이 영적인 판단을 하도록 기도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때로 아내는 야당이 되어서 건설적인 충고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루터의 아내 폰 보라는 루터가 종합병원과 같이 아픈 데가 많았지만 헌신적으로 도와서 동역을 했습니다. 수도원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잘 돌보았습니다. 또 루터가 영적 침체 가운데 있을 때는 소복을 입고 루터에게 충격을 주어서 침체에서 빠져나오게 하였습니다. 사모님들이 남편과 동역하고 자녀들을 돕는데 있어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리브가가 야곱을 편애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결단을 하고 저주를 감수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리브가는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여기는 것을 보았을 것이고, 에서의 결혼도 보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축복이 에서에게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리브가는 담대한 믿음으로 남편 이삭과 아들 야곱을 영적으로 잘 동역하여 영적인 계승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야곱은 별미와 떡을 받쳐 들고 아버지 야곱에게 나아가 내 아버지여 하고 부릅니다. 이삭이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고 묻자 그는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라고 대답합니다. 그가 자기의 정체성을 속이자 계속해서 세 번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이삭이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고 묻자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였다고 거짓말을 둘러댑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고 말합니다. 야곱이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말하며 분별하지 못하고 야곱을 축복하였습니다. 이삭이 하도 미심쩍어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고 묻자 그가 “그러하니이다”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을 한 야곱은 그에 합당한 징계를 받고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성취해 나가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연약함 가운데서도 자신의 뜻을 성취해 나가십니다.
  이삭은 야곱이 가져온 별미를 먹고 또 포도주를 마시고 그를 축복합니다. 27-29절을 보십시오.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야곱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의 향기가 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과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복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는 물질적 복입니다. 두 번째는 만민이 그를 섬기고 열국이 그에게 굴복할 것이라는 복입니다. 이는 야곱이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복의 근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강대한 나라, 영향력이 있는 나라, 리더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영적인 복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바라는 복입니다. 누구든지 야곱을 함부로 하고 해를 주는 사람은 하나님이 벌하시고 저주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을 선대하고 사랑하며 축복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축복하겠다는 것입니다. 그의 평생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항상 그를 따라다닐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야곱에게로 계승됨을 의미합니다. 비로소 아브라함과 이삭의 축복이 야곱에게 계승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둘째고, 이삭도 둘째고, 야곱고 둘째입니다. 둘째들이 하나님의 역사에서 계승자들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야곱은 에서와 같이 육신적이 않고 영적인 복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가 열망한 영적인 복은 당장 유익을 주는 물질적인 것이나 현실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복, 신령한 영적인 복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가 영적인 복에 대해 열망한 것은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신 하나님, 이삭에게 백 배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조상들을 축복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물줄기를 잡은 것입니다. 야곱이 평소에 영적인 축복을 귀히 여기는 믿음이 없었다면 저주 받을지도 모르는 모험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영적인 축복을 귀히 여기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축복을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1:12). 그러므로 영적인 축복은 양보하면 안 됩니다. 어찌하든지 쟁취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물질적인 축복은 귀히 여깁니다. 그러나 영적인 축복은 양보하고, 겸손한 체 하면서 사양합니다. 이런 자들은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들이요, 반드시 방성대곡할 날이 올 것입니다. 영적인 축복을 귀히 여기는 자만이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남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축복은 양보하더라도 영적인 축복을 붙잡을 때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야곱에게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그를 동역해준 어머니 리브가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자녀들과 양들을 부모와 같이 유모같이 잘 돌보아야 합니다. 자녀들과 양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계승하도록 옆에서 기도하고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분명한 복음적 가치관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로 키워야 합니다. 우리는 축복의 계승자, 축복의 전수자,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은 흘러가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우리의 후손들이 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고 야곱이 나가자 곧 그의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왔습니다.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말했습니다.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이삭이 의아한 듯이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합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이 말을 듣고 이삭이 심히 크게 떨었습니다. 그는 통제할 수 없는 떨림에 사로잡혔습니다. 이는 그의 강렬한 두려움과 놀람을 나타냅니다. 그는 알지 못하는 자를 축복했고 그 축복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삭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며 야곱이나 리브가의 행동에 대해서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야곱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도록 축복한 것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에서는 그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간청합니다. 이삭은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다고 말합니다. 에서는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그가 자신을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라고 고백합니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그의 복을 빼앗았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위해서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였느냐고 묻습니다.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뿐이냐고 따집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소리 높여 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두 번이나 야곱에게 당한 억울함과 미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영적인 명분을 소홀히 여기고 쉽게 팔아 버렸을 때 땅을 치며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12:17절에서는 에서가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 번씩이나 자신의 잘못을 알고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 탓만 하고 있습니다. 에서의 울음은 신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고 망령되게 팔아버리는 사람들이 나중에 예수님이 오셔서 심판하실 때에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예표인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 힘들지만 목자의 명분을 중요시 여기고 중심을 지킨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신앙생활이 힘들어도 십자가를 지고 목자의 명분을 감당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실리적으로 자기 유익을 따라 갔던 사람들은 나중에 억울하게 생각하여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누구 탓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각자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이삭은 에서의 장래를 예언합니다.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이 예언대로 후일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세계에서 가장 척박한 곳 중의 하나인 세일 산지를 그들의 거처지로 삼게 됩니다(32:3, 신2:5). 에서는 칼을 믿고 살게 됩니다. 그들은 가장 호전적인 민족이 되어 칼을 믿고 살면서 다른 사람을 해칩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고통을 줍니다. 칼을 믿고 사는 사람은 복의 근원이 되기 어렵고 오히려 화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에서에게 내린 축복은 축복이 아니라 잘 치장된 저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서는 왜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이런 삶을 살아야 했습니까? 거기에는 에서 자신의 책임이 있습니다. 에서는 가치관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는 한 그릇 단팥죽 때문에 장자의 권리를 동생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그는 결혼할 때도 믿음의 여인과 결혼하지 않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했습니다. 그는 영적인 것보다 육신적인 것을 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중심으로 선택하지 않고 자기 육신적 욕구를 따라 살았습니다. 장자의 권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생각하지 못하고 당장 배고픈 것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에서를 축복하실 수 없었습니다.
  이삭은 야곱이 축복을 받은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의 청을 받아들여 야곱을 에서에게서 보호하고 믿음의 결혼을 하도록 처갓집으로 보냅니다. 에서가 볼 때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그 아우 야곱을 죽이라고 결심하였음을 리브가가 알았습니다. 리브가는 에서의 분노가 풀리기 까지 몇 날 동안 그곳에 피신해 있으라고 했지만 그 몇 날이 이십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그 이후 만나보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리브가는 이삭을 주장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축복하는 믿음을 인정하고, 이삭의 마음을 움직여(46) 야곱을 축복하여 보내도록 동역하였습니(28:1-3). 결국 이삭은 믿음의 동역자 리브가의 도움을 받아 야곱을 축복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축복의 물줄기가 바로 흐르도록 섬기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다고 기록했습니다(히 11:20).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는 자와 경홀히 여기는 자의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크게 벌어집니다. 지금은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영적인 복을 사모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야곱은 이러한 축복을 사모하였고 비록 방법에 있어서 잘못 되었지만 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가치관이 있고 믿음이 있는 그를 택하사 아브라함의 축복의 물줄기를 이어가십니다. 복은 의를 추구하는 결과로 당연히 오는 것이지 복 자체는 추구할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날 세속주의의 영향으로 돈 사랑, 자기 사랑, 쾌락 사랑과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기복신앙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말씀을 공부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며, 많은 민족에게 꾸어 주고, 머리가 되고, 위에만 있게 하시는 복 받은 나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의 물줄기를 이어가는 구속 역사의 주인공들이 다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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