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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13년 창세기 14강20,21장) 약속대로 이삭을 주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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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583회 작성일 13-06-23 14:39

본문

2013년 창세기 제 14 강
말씀 | 창세기 20:1-21:34
요절 | 창세기 21:1,2

약속대로 이삭을 주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사람들은 약속을 하지만 게을러서, 또는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해서 약속을 못 지킬 때가 있습니다. 아니면 능력이 없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믿어라 하지만 검증하라”는 구소련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자신이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의 약속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진실하고 성실하신 하나님과 그의 약속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가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신다는 것은 수천 년 동안 검증된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닮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실수가 많은 아브라함을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첫째, 아브라함의 반복되는 실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이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였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습니다. 사라는 나이가 89세인데 회춘을 한 사람같이 매우 건강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이런 경우는 피부 관리를 받았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현숙한 여인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름다운 아내를 둔 덕에 마음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24년 전에도 애굽에 내려갔을 때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하였다가 애굽 왕의 궁녀로 빼앗길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평소에 자기들이 정한 원칙대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서 이런 원칙을 세웠습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올무에 빠뜨립니다. 또 신앙생활을 하면 사람이 변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잘 변화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약점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감당해주셨습니까?

  시몬 베드로는 큰 소리를 잘 치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시며 약점을 감당해 주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시몬에서 반석이라는 베드로로 바꾸어 주시고 수제자로 삼으시고 초대교회 리더로 귀하게 쓰셨습니다. 그가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큰 소리를 쳤을 때에도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배반했을 때에 사랑의 눈길로 그를 바라보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사명을 버리고 갈릴리로 도망갔을 때에도 해변에까지 찾아가셔서 숯불에 떡과 고기를 구워주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시면서 사랑과 사명을 회복하여 주셨습니다. 그를 양무리의 목자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인내심을 가지고 감당하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셨습니다.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아비멜렉은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라며 반문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깨끗한 마음과 손으로 사라에게 손도 대지 아니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고 하시며 그는 선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아비멜렉은 사라를 돌려주고 은 천 개를 위자료로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양과 소와 종들을 주어 화해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의 태도 열지 못하고 있는데 남의 아내들의 태를 여는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는 잘 안 들으시는데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는 잘 들어주시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는 동기가 이기적일 때가 있고 남을 위한 기도는 순수하기 때문에 잘 들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아브라함의 마음이 섭섭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먼저 남을 축복하도록 하십니다. 그를 복의 근원으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께서 사라를 통해서 자녀를 갖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의 근원으로서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나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나보다 더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사랑하고 돕고자 하다보면 내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자들은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주위에 둘러선 5천명의 무리를 보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방향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도 먹을 것이 없는데 오천 명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찾아서 이것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오천 명을 먹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배부르게 먹고 열 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기문제에서 빠져 나오려면 하나님을 믿고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섬김과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사랑과 섬김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김으로 자기문제를 극복하고 복을 받는 은혜를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말씀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 21: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말씀하신 시기가 되자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25년 만에 성취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백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사 말씀하신 대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환경에 따라 말씀을 바꾸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대로 환경이 바뀝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우리가 선민으로서 아브라함처럼 어려움이 많으나 언약을 믿고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은 약속을 지키고 싶으나 연약하여 본의 아니게 약속을 저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권능이 크셔서 언약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인간들은 약속을 지키고 싶으나 간사하여 약속을 잊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실하셔서 말씀하신 언약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우리 믿음이 무엇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언약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또 하나님은 자신이 정하신 때에 말씀을 이루십니다. 우리 편에서는 기왕 주실 것 빨리 주시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목적하시는 것을 이루기까지, 환경이 갖추어지기까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여 정금같이 되기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최선의 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적극적으로 그에게 맞추는 것입니다.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훈련의 목적은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자체를 구하고 믿음으로 사는 성숙한 신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서 조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결코 부끄럽게 하지 아니하십니다. 믿는 자들에게서 수치를 제하여 주십니다.  사라는 기쁨이 충만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지 아니하십니다. 때로 우리에게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라는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서 실없이 웃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오는 웃음을 웃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믿는 자를 웃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에도 기쁨을 주시고 웃음을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자신을 영접한 자에게 상상할 수 없는 생의 환희와 기쁨과 인생의 의미를 안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독교를 믿으러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러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여러분에게 웃음과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 삶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의 친구셨고 병 든 자의 치료자이셨습니다. 소외된 사람, 과부, 세상에서 버림받은 귀신들린 사람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분을 만나면 중풍병자가 일어나고 앉은뱅이도 일어나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소경이 눈을 뜨고 문둥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가고 새로운 삶을 찾았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을 만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윤석재 형제가 경찰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자 안타깝고 아팠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필기시험을 턱걸이로 합격하고, 체력 시험을 통과하고, 면접시험도 무난히 치루었기 때문에 합격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합격이라는 소식을 접할 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여기에 무슨 뜻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석재 형제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고 계십니다. 합격을 하고 기뻐할 때 뿐 아니라 불합격하고 어려움에 처할 때에도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최선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석재 형제는 7번 떨어졌습니다. 이제 7전 8기를 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시고 힘을 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70일 후에 다시 시험이 있습니다. 그가 아브라함과 사라와 같이 믿음의 연단을 받은 후에 웃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관계가 파괴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심으시고 그 믿음에 기초해서 구원을 받도록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아니할지라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초해서 우리는 믿고 구원을 받습니다. 미국 돈에 "In God we trust"라는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모든 신뢰의 기초입니다. 금융거래, 상거래의 기초도 신뢰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사람을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비록 죄악되지만 그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악을 징계하시고 선을 장려하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믿음을 심으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인간관계의 시작은 누군가를 신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상대와의 만남을 가지려 할 때 이 사람은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기본적인 신뢰로 시작합니다. 누군가에게 믿음을 보낸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기에 내 자신이 상대를 신뢰해도 된다는 확신을 받지 못하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움, 공포로 다가옵니다.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친밀하지 못한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이 나에게 일으킬 행동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나의 신뢰를 배신하면 그 상처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두려워서 다가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뢰의 기초 위에 인간관계가 시작되고 견고하게 되어 갑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죄인들과 만남을 가질 때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희생적인 사랑을 가지고 나아갈 때 신뢰를 주고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자라게 됩니다. 우리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는 주는 성숙한 사람,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육신의 정을 끊게 하신 하나님.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대개 세 살에 젖을 뗀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쁜 생일잔치를 하고 나서 사라가 본즉 다 큰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놀리고 있었습니다. 이삭의 머리를 탁 때리고 웃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은 두려움에 떨면서 몸이 굳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이스마엘은 부모들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 이삭에게로 쏠리고 자신의 상속권도 이삭에게 돌아갈 것을 알자 그를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라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아브라함에게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고 말했습니다. 이 종의 아들은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일로 말미암아 매우 근심이 되었습니다. 이미 이스마엘을 14년 동안 키웠고 그도 자기의 아들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정을 생각할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또 이것은 윤리적으로 볼 때 잘못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갈을 첩으로 들여서 낳은 아들이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들 이삭을 제대로 키우려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마음에 있는 큰 근심을 아시고 방향을 주셨습니다.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은 분명하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방향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도 한 민족을 이루도록 축복하십니다. 언약의 계승은 인간적인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정과 욕심을 부인하고 순종했습니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물이 떨어졌습니다.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갈을 부르셨습니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내쫓은 것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주의를 우리의 삶에서 쫓아내야 하는 것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는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사는 복음주의를 억누르게 됩니다. 또한 인본주의는 인간을 신으로 생각하는 이념입니다. 인본주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대적합니다. 인본주의는 신앙을 파괴합니다. 인본주의도 종교인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보면 이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주의와 인본주의를 내쫓아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 신앙이 자라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는 삶이 약한 것 같지만 강합니다. 인간의 의지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해서 사는 삶이 영원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인정이 많고 인간성이 풍부합니다. 반면에 큰 일을 하기 위해 정을 끊는 아픔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성경적인 배경이 약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종교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인본주의를 해결할 때 믿음의 용사들로 자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을 위하여 하갈과 이스마엘을 돌봐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넷째, 주위 사람들과 화평하게 하시는 하나님.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도다(22).”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는 잘 조직된 국가를 통치하고 있는 왕이었고 아브라함은 일개 족장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아브라함에게 찾아와서 평화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때 아비멜렉의 종들이 그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비멜렉을 책망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갑을의 관계가 역전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두려워하던 아비멜렉을 책망할 정도로 아브라함의 위치가 높아졌습니다. 이 우물을 아브라함의 것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웠습니다. 아브라함은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고 자신이 이 우물 판 증거를 삼도록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 이름을 브엘세바(맹세의 우물)라고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예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들에게 웃음을 주십니다. 또한 주위 사람들과 화평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내 속에 있는 인본주의를 몰아내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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