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3년 성탄2강(2:1-12) 아기께 경배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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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성탄 말씀 제 2 강
말씀 | 마태복음 2:1-12
요절 | 마태복음 2:11
아기께 경배하세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인하여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알려졌습니다. 마태는 최초의 경배자로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던 그들이 참된 경배의 대상을 찾아 구도자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먼 길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처럼 우리도 예수님께 온전한 경배를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때는 헤롯 왕 때였습니다. 헤롯 왕은 북한의 김정은과 같이 공포정치를 했습니다. 그는 얼만 전에 자기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부패와 역모 혐의로 처형하고 그를 따르던 엘리트들을 잔인하게 숙청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몸을 사리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헤롯 왕은 이두매 혈통으로 정통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약점을 커버하고자 유대 하스몬 왕가의 딸 마리암메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헤롯 성전이라 불리는 예루살렘 성전을 화려하게 지어 유대인의 환심을 사고자 했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통치를 할 때 몹시 교활했고, 권력욕이 강하고 잔인한 폭군이었습니다. 그는 10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사랑하던 아내 마리암메와 처남들을 왕권을 위협한다는 사소한 의심으로 죽였습니다. 그리고 세 명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탄생 후에 베들레헴에서 두 살 아래의 남자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다 하였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로마의 식민지가 된 것도 힘든 데, 왕까지 이런 폭군이니 그 고통이 어떠했을까요? 또한 이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대부분 타락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은 미래의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채 현실을 도피했습니다. 이때는 절망적인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이렇게 어두운 시대 가장 밝은 빛으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유대인은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을 때 금시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지만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동방박사들은 누구일까요? 또 그들은 어떻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고 찾아왔을까요? 그들은 메데 바사에서 온 박사들이든지, 아니면 바벨론 지역에서 온 천문학자들입니다. 지금의 이란이나 이라크 지역에서 왔습니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별이 인간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연구했고 철학, 수학, 종교, 수사학 여러 학문을 섭렵했습니다. 왕의 자문관 역할을 하는 귀족계급이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을 두루두루 섭렵했지만 거기에 인생의 해답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연구한 학문과 소유한 부와 명예가 참 기쁨과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박사들은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을 통해 유대에서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을 바벨론 박사들의 어른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단2:48). 특히 이들은 민수기 24:17절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에서 한 별에 주목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별은 메시아를 상징하는 표현인데, 그들은 언젠가 메시아의 별이 등장할 것을 믿고 열심히 하늘을 관찰했습니다. 드디어 그 별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징조를 알려주던 하늘의 별로 메시아 탄생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때 그들은 별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서 여행 준비를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평생 모은 재산을 투자해서 유대인의 왕을 만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해답인 예수님을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고 설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드릴 최고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만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수천 킬로미터 이상이나 되는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이니까 당연히 예루살렘에서 태어나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는 화려하고 큰 예루살렘의 왕궁이 아니라 작은 마을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지만 시간이 좀 지나 한 집에서 머물러 있었습니다.
박사들이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하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했습니다. 헤롯 왕은 나이가 70살인데도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고 하자 속이 시끄러웠습니다. 곧 죽을 사람이 권력에 대한 욕심은 한이 없이 컸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메시야에 대해 마음이 없었습니다. 죄의 낙을 누리고 먹고 사는데 마음이 다 가 있어서 메시야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영적인 것에 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동방박사들과 아주 대조적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도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의 화려한 것들에 마음을 다 빼앗겨서 죄 속에 빠져 지냅니다.
헤롯 왕은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즉시 모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 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머리로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님께 가 있지 않았습니다. 메시야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가장 먼저 달려가서 확인해보고 경배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들은 헤롯 왕에게 대답만 잘하고 그것으로 끝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죽은 신앙이었습니다.
미가 선지자의 예언에 의하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다스리는 자이자 목자이십니다. 즉 왕이시되 목자로서 다스리십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를 희생하여 양들의 생명을 살리고 풍성하게 합니다. 양들을 사랑으로 품고 섬깁니다. 목자는 양들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되 선한목자로서 사랑과 평화로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은 섬김의 왕이십니다. 그의 섬김을 통해서 꺼져가는 심지와 같이 연약한 자들이 살아나고 상한 자들이 회복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진리의 왕이신 예수님을 알고 그의 다스림을 받을 때 진정한 자유를 느끼고 참된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 삶의 왕이요 목자로 모시게 된 우리 모두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박사들은 헤롯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집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동방에서 인도하던 별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별은 박사들을 인도하여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습니다. 그 별은 하나님께서 박사들을 위해 주신 계시의 수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소원을 가진 사람들을 계시를 통해 예수님께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성경과 성령을 통해서, 또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박사들은 잠깐 자기 생각에 기초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했을 때 별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다시 별을 보았을 때 그들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이 말씀은 그들이 극도의 큰 기쁨으로 기뻐했다는 뜻입니다. 박사들의 기쁨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오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을 경배하는 자만이 맛볼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만날 때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을 보고 찬양을 할 때 기쁜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때로 생각지 못한 어려움들을 당하고 죄에 넘어져서 예수님의 별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면 이 기쁨을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크리스와 예배를 의미하는 마스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즉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예배하는 날입니다. 이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회복하는 날입니다.
박사들은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경배’란 땅에 엎드려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이는 상대방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행위입니다. 경배란 상대방을 가장 귀한 분으로 영접하고 마음 첫 자리에 모시는 행위입니다. 경배란 엎드려 절하는 외적 표현뿐만 아니라, 경외심과 겸손의 내적 표현까지 포함합니다. 보통 아기였다면 그를 안아주고 “까궁 까꿍”하며 인사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박사들은 예수님께 온 몸과 마음으로 엎드려 경배하며 사랑과 존경을 표했고, 마음 첫 자리에 모셨습니다. 예수님은 아기로 오셨지만 우리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왕이십니다. 이사야 9:6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다 바쳐 경배드리고자 하는 소원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않는 삶을 살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어 섬기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마음을 쏟아 부어 경배할 대상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마음과 몸을 바쳤습니다. 그 결과 다섯 남자와 결혼을 하고 여섯째 남자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마음은 만족이 없고 항상 목이 말랐습니다. 그러다가 사마리아 수가 성, 우물 곁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근본 문제가 예배할 대상을 알지 못했던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의 대상을 찾은 그녀는 더 이상 목마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했습니다.
우상은 헛된 존재, 허무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숭배에 빠져서 지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안개와 같이 잠깐 있다가 사라져야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자기 숭배에 빠질 때 자기를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여 종노릇하게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기스타를 경배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서 선물을 하고 그의 사진을 모으고 돈을 쓰고 여러 모양으로 사랑과 관심을 표현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을 경배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른들은 돈을 경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고 돈을 전능한 존재로 여깁니다. 돈을 챙길 수만 있다면 어떤 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또 사람들은 세상 지위를 경배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것들은 다 썩고 쇠할 것으로 진정한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경배 후에 박사들은 보배합을 열어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예물에는 마음이 담겨 있고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 무엇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드리기 위해 그 먼 길을 왔습니다. 당시 왕을 만날 때는 예물을 준비하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박사들이 준비한 세 가지 예물은 당시 최고로 값비싼 보물들이었습니다. 박사들이 드린 황금은 왕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왕되신 예수님께 변치 않는 충성을 하겠다는 의미로 황금을 드렸습니다. 유향은 하나님께 향기를 드리는 예물로서 기도를 상징하고 제사장직을 의미합니다. 몰약은 시체에 바르는 것으로 선지자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암시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인류의 죄를 위해서 죽으실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그들의 구원자로 영접하였습니다. 이 예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린 그들의 마음에는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우리가 이번 성탄에 나를 위해 이 땅에 낮아져 오신 예수님을 새롭게 영접하고 경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과 생명으로 충만한 성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 대한 신앙과 사랑의 표현으로 우리의 물질과 마음을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올해 이 예수님께 드리는 성탄 보배합은 필리핀의 수해를 당한 사람들을 위해서, 북한에서 고통하는 동족들을 위해서 사용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 온전한 감사와 찬송과 경배를 드립니다.
말씀 | 마태복음 2:1-12
요절 | 마태복음 2:11
아기께 경배하세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인하여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알려졌습니다. 마태는 최초의 경배자로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던 그들이 참된 경배의 대상을 찾아 구도자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먼 길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처럼 우리도 예수님께 온전한 경배를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때는 헤롯 왕 때였습니다. 헤롯 왕은 북한의 김정은과 같이 공포정치를 했습니다. 그는 얼만 전에 자기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부패와 역모 혐의로 처형하고 그를 따르던 엘리트들을 잔인하게 숙청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몸을 사리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헤롯 왕은 이두매 혈통으로 정통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약점을 커버하고자 유대 하스몬 왕가의 딸 마리암메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헤롯 성전이라 불리는 예루살렘 성전을 화려하게 지어 유대인의 환심을 사고자 했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통치를 할 때 몹시 교활했고, 권력욕이 강하고 잔인한 폭군이었습니다. 그는 10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사랑하던 아내 마리암메와 처남들을 왕권을 위협한다는 사소한 의심으로 죽였습니다. 그리고 세 명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탄생 후에 베들레헴에서 두 살 아래의 남자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다 하였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로마의 식민지가 된 것도 힘든 데, 왕까지 이런 폭군이니 그 고통이 어떠했을까요? 또한 이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대부분 타락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은 미래의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채 현실을 도피했습니다. 이때는 절망적인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이렇게 어두운 시대 가장 밝은 빛으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유대인은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을 때 금시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지만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동방박사들은 누구일까요? 또 그들은 어떻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고 찾아왔을까요? 그들은 메데 바사에서 온 박사들이든지, 아니면 바벨론 지역에서 온 천문학자들입니다. 지금의 이란이나 이라크 지역에서 왔습니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별이 인간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연구했고 철학, 수학, 종교, 수사학 여러 학문을 섭렵했습니다. 왕의 자문관 역할을 하는 귀족계급이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을 두루두루 섭렵했지만 거기에 인생의 해답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연구한 학문과 소유한 부와 명예가 참 기쁨과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박사들은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을 통해 유대에서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을 바벨론 박사들의 어른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단2:48). 특히 이들은 민수기 24:17절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에서 한 별에 주목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별은 메시아를 상징하는 표현인데, 그들은 언젠가 메시아의 별이 등장할 것을 믿고 열심히 하늘을 관찰했습니다. 드디어 그 별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징조를 알려주던 하늘의 별로 메시아 탄생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때 그들은 별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서 여행 준비를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평생 모은 재산을 투자해서 유대인의 왕을 만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해답인 예수님을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고 설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드릴 최고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만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수천 킬로미터 이상이나 되는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이니까 당연히 예루살렘에서 태어나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는 화려하고 큰 예루살렘의 왕궁이 아니라 작은 마을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지만 시간이 좀 지나 한 집에서 머물러 있었습니다.
박사들이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하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했습니다. 헤롯 왕은 나이가 70살인데도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고 하자 속이 시끄러웠습니다. 곧 죽을 사람이 권력에 대한 욕심은 한이 없이 컸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메시야에 대해 마음이 없었습니다. 죄의 낙을 누리고 먹고 사는데 마음이 다 가 있어서 메시야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영적인 것에 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동방박사들과 아주 대조적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도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의 화려한 것들에 마음을 다 빼앗겨서 죄 속에 빠져 지냅니다.
헤롯 왕은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즉시 모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 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머리로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님께 가 있지 않았습니다. 메시야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가장 먼저 달려가서 확인해보고 경배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들은 헤롯 왕에게 대답만 잘하고 그것으로 끝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죽은 신앙이었습니다.
미가 선지자의 예언에 의하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다스리는 자이자 목자이십니다. 즉 왕이시되 목자로서 다스리십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를 희생하여 양들의 생명을 살리고 풍성하게 합니다. 양들을 사랑으로 품고 섬깁니다. 목자는 양들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되 선한목자로서 사랑과 평화로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은 섬김의 왕이십니다. 그의 섬김을 통해서 꺼져가는 심지와 같이 연약한 자들이 살아나고 상한 자들이 회복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진리의 왕이신 예수님을 알고 그의 다스림을 받을 때 진정한 자유를 느끼고 참된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 삶의 왕이요 목자로 모시게 된 우리 모두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박사들은 헤롯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집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동방에서 인도하던 별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별은 박사들을 인도하여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습니다. 그 별은 하나님께서 박사들을 위해 주신 계시의 수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소원을 가진 사람들을 계시를 통해 예수님께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성경과 성령을 통해서, 또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박사들은 잠깐 자기 생각에 기초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했을 때 별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다시 별을 보았을 때 그들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이 말씀은 그들이 극도의 큰 기쁨으로 기뻐했다는 뜻입니다. 박사들의 기쁨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오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을 경배하는 자만이 맛볼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만날 때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을 보고 찬양을 할 때 기쁜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때로 생각지 못한 어려움들을 당하고 죄에 넘어져서 예수님의 별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면 이 기쁨을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크리스와 예배를 의미하는 마스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즉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예배하는 날입니다. 이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회복하는 날입니다.
박사들은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경배’란 땅에 엎드려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이는 상대방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행위입니다. 경배란 상대방을 가장 귀한 분으로 영접하고 마음 첫 자리에 모시는 행위입니다. 경배란 엎드려 절하는 외적 표현뿐만 아니라, 경외심과 겸손의 내적 표현까지 포함합니다. 보통 아기였다면 그를 안아주고 “까궁 까꿍”하며 인사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박사들은 예수님께 온 몸과 마음으로 엎드려 경배하며 사랑과 존경을 표했고, 마음 첫 자리에 모셨습니다. 예수님은 아기로 오셨지만 우리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왕이십니다. 이사야 9:6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다 바쳐 경배드리고자 하는 소원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않는 삶을 살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어 섬기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마음을 쏟아 부어 경배할 대상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마음과 몸을 바쳤습니다. 그 결과 다섯 남자와 결혼을 하고 여섯째 남자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마음은 만족이 없고 항상 목이 말랐습니다. 그러다가 사마리아 수가 성, 우물 곁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근본 문제가 예배할 대상을 알지 못했던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의 대상을 찾은 그녀는 더 이상 목마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했습니다.
우상은 헛된 존재, 허무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숭배에 빠져서 지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안개와 같이 잠깐 있다가 사라져야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자기 숭배에 빠질 때 자기를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여 종노릇하게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기스타를 경배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서 선물을 하고 그의 사진을 모으고 돈을 쓰고 여러 모양으로 사랑과 관심을 표현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을 경배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른들은 돈을 경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고 돈을 전능한 존재로 여깁니다. 돈을 챙길 수만 있다면 어떤 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또 사람들은 세상 지위를 경배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것들은 다 썩고 쇠할 것으로 진정한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경배 후에 박사들은 보배합을 열어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예물에는 마음이 담겨 있고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 무엇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드리기 위해 그 먼 길을 왔습니다. 당시 왕을 만날 때는 예물을 준비하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박사들이 준비한 세 가지 예물은 당시 최고로 값비싼 보물들이었습니다. 박사들이 드린 황금은 왕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왕되신 예수님께 변치 않는 충성을 하겠다는 의미로 황금을 드렸습니다. 유향은 하나님께 향기를 드리는 예물로서 기도를 상징하고 제사장직을 의미합니다. 몰약은 시체에 바르는 것으로 선지자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암시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인류의 죄를 위해서 죽으실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그들의 구원자로 영접하였습니다. 이 예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린 그들의 마음에는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우리가 이번 성탄에 나를 위해 이 땅에 낮아져 오신 예수님을 새롭게 영접하고 경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과 생명으로 충만한 성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 대한 신앙과 사랑의 표현으로 우리의 물질과 마음을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올해 이 예수님께 드리는 성탄 보배합은 필리핀의 수해를 당한 사람들을 위해서, 북한에서 고통하는 동족들을 위해서 사용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 온전한 감사와 찬송과 경배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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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다운로드 | DATE : 2013-12-22 22: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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