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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13년 창세기27강(49,50) 많은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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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95회 작성일 13-12-0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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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창세기 27강
말씀 | 창세기 49,50장
요절 | 창세기 50:20

  많은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고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넬슨 만델라는 95세의 일기로 5일 운명했습니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었습니다.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정책에 맞서다 27년간 기나긴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는 1964년 4월 내란 혐의로 법정에 서서 최후 변론을 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상을 위해 나는 죽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그는 석방된 후 1994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과거에 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청문회에 나와 진실을 남김없이 고백하면 모든 죄를 용서하겠다는 대사면의 결정을 단행했습니다. 그 결과 무서운 인종차별정책의 나라를 모든 인종, 나아가 피해자와 가해자가 어울려 사는 화해의 나라로 바꾸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도 형들의 악행으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는 노예 생활, 감옥 생활을 하였지만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기근으로부터 많은 백성을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형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어 구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 인생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어 주는 분이십니다. 이 시간 우리의 인생을 선하게 인도하시는 섭리의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야곱이 열 두 아들을 축복하다.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이 후일에 당할 일을 일러주었습니다. 르우벤은 장남이요 능력이 뛰어난 인간적으로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끓는 물과 같이 항상 정욕과 욕망이 끓어 넘쳤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첩과 간통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장자의 모든 특권을 빼앗기고 망가진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로서 세겜에서 디나 사건 때 대 학살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들이 자기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습니다. 혈기를 부릴 때는 시원했지만 그로 인해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중에 제대로 된 기업을 얻지 못하고 흩어지게 됩니다.
 
  반면 유다는 가장 큰 축복을 받습니다. 그는 형제의 찬송이 될 것이고 원수의 목을 잡을 것입니다. 그 형제들이 그 앞에 절을 하게 됩니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 비유합니다. 사자는 동물의 왕으로서 힘과 권세를 상징합니다. 또한 규는 왕권을 상징하는데 이는 유다 지파가 왕이 될 것이며 그의 후손 가운데서 메시야가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른다는 말이 그 뜻입니다. 11,12절의 포도나무, 포도주, 우유는 물질적 축복을 상징합니다.

  유다는 왜 이처럼 축복을 받았을까요? 그가 형제들보다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유다는 동생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린 인신매매범이요 창녀를 찾아갔다가 본의 아니게 며느리와 불륜의 관계를 맺은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는 이제 책임성있는 사람이요 희생적인 사람이요 사랑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고, 그곳은 항구가 될 것이며 그 경계가 시돈까지 이를 것입니다. 잇사갈은 특별한 축복은 없고 다른 형제들에게 빌붙어 살게 될 것입니다. 단은 한 지파 구실을 톡톡히 하며 백성을 다스릴 것입니다. 17,18절을 보면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이 말씀을 볼 때 단지파는 열두 사도 가운데 가룟 유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사탄에게 이용당합니다. 야곱은 주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야곱은 그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기도합니다. 우리도 주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수고와 고생을 마치고 주님의 나라에 가게 되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구원의 그 날을 우리도 기다립니다.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지만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할 것입니다. 그는 남에게 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셀은 기름진 옥토를 차지하고 왕의 수랏상을 차리게 됩니다. 납달리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뛰노는 놓인 암사슴처럼 풍요를 누리게 됩니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처럼 자기 것을 확실히 챙기는 축복을 받습니다. 사울이 베냐민 출신이고 베냐민의 남자들은 용사들이었습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샘 곁에 있는 나무는 일년 내내 싱싱하고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그 가지가 담을 넘습니다. 요셉은 자기 지파를 뛰어 넘어서 다른 형제들을 다 구원하는 역사에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문에 복을 주신 것이 많아 은택이 다른 지파들에게도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요셉 지파는 어디를 가나 은혜를 베풀게 됩니다. 그들은 국경을 넘고, 미움과 증오, 원한의 담을 넘고, 무관심의 담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풀어 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 그들에게 넘치게 됩니다. 요셉은 하나님에게서 수많은 복을 받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은 그들의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여기서 분량은 축복받을 만한 그릇입니다. 즉 믿음의 분량, 회개의 분량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그릇, 마음의 그릇이 준비된 만큼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축복을 달라고만 기도하지 말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 발견을 하고 회개를 깊이 해야 합니다.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 속에 하나님은 복을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를 힘쓰며 그를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하도록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분량대로 채우시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분이십니다. 동시에 회개한 죄인들에게 큰 복을 주시는 은혜가 충만한 분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섭리를 믿은 요셉. 야곱은 자녀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선조들이 묻혀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고 부탁을 합니다. 야곱이 아들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죽자 그의 장례를 위해서 바로에게 부탁을 합니다. 의원들은 야곱의 시신 처리에 40일이 걸렸고 애굽 사람들은 70일 동안 검은 리본을 달고 국장으로 치루었습니다. 요셉은 바로 왕의 재가를 받아 가나안 땅에 아버지를 장사하고 돌아왔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의 죽음 후에 요셉이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들은 요셉에게 말을 전하였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요셉은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습니다.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라고 빌었습니다.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죄로 인해서 심판의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형들을 볼 때 요셉은 심히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자신은 이미 형들을 용서했고 끝난 일인데 형들이 과거에 매여서 여전히 괴로워하는 모습을 볼 때 불쌍히 여겨 울었습니다. 정죄감은 사람을 한 없이 연약하게 만드는 무서운 세력이 있습니다. 요셉은 이런 형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위로합니다.

  19-21절을 보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내가 어찌 하나님 위치에 서서 형들을 정죄하고 판단하겠습니까?” 요셉은 하나님이 선한 섭리와 주권을 가지고 형들의 악행을 쓰셔서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영광스럽게 하셨는데 자신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형들의 행동이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서 만민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선한 주권에 순종할 뿐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편에서 인생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전혀 상처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형들을 용서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셉의 주권신앙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 편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사람을 보는 주권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셔널, 파나소닉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사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세 가지 은혜를 주셨다. 첫째, 가난했기에 어릴 때부터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둘째, 몸이 약했기에 늘 운동에 힘써 건강할 수 있었고, 셋째,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기에 세상 사람들을 모두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언제나 배우는 자세를 가질 수 있었다.” ‘삶의 현장’은 글자 없는 책입니다. 로마서 8:28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하나님 편에서 보아야 합니다.

  요셉은 자신이 형들과 그의 자녀들까지 책임을 지고 기르겠다고 약속합니다. 요셉의 이 완전한 용서와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나게 합니다. 인간들은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십자가의 죽음으로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죄로 멸망할 온 세상의 영혼들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당신을 못 박고 조롱하는 자들을 위하여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 회개하는 자를 정죄치 않으시고 용서해주시며 위로해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를 흘리신 것이 바로 나의 죄를 위함임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예수님은 나의 죄를 사해주십니다. 용서의 위력은 놀랍습니다. 원수를 친구로 만들고 갈라진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나누어진 마음을 하나가 되게 합니다. 관용과 화해를 통해 과거의 미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요셉은 어떻게 형들을 완전히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요셉도 사람입니다. 형들의 악행으로 인해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는 첫 아들을 낳고 므낫세 즉 잊어버림이라고 지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내게 내 고난과 내 아버지 온 집의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형들의 악행을 다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다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랬을 때 그는 자신이 심판자의 위치에 서지 않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요셉과 늘 동행하시며 그가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평강이 있을 때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한 요셉은 형들도 용서하고 총리 자리에서 성공적으로 사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입힌 원수 같은 자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감정으로는 안 됩니다. 그 사람만 바라볼 때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값없이 용서하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사랑과 피의 능력이 내 마음에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다음으로 나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들을 하나님의 뜻과 섭리 편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에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는지를, 하나님이 이것을 통하여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시는지 하나님의 선한 뜻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2:10절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달을 때 원수에 대한 미움과 분노의 감정에서 벗어나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용서하고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사회를 복되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요셉은 애굽에 거주하며 110세를 살았고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습니다. 첫째 아들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 즉 손자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습니다. 그는 손주들을 돌보면서 평안한 노후를 보냈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형제들과 자손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24,25).” 요셉은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갔습니다. 그는 애굽에 살았지만 그의 진정한 소망이 하나님 나라에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3:19절에 보면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은 그의 유골을 가지고 나갑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으로 악을 선으로 이기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고난과 상처와 오해와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발견하고 연단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크고 귀하게 쓰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적 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용서하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긍휼히 여기사 남과 북, 여당과 야당, 한국과 일본 사이에 겪고 있는 갈등과 미움, 대립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가 세계에 대하여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쓰임 받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복을 잘 누릴 뿐만 아니라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계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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