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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2013년 추수감사(시40편) 새 노래를 내 입에 두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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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453회 작성일 13-11-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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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추수감사절 특강
말씀 | 시편 40:1-17
요절 | 시편 40:3

 새 노래를 내 입에 두셨으니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추수감사주일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지신 것을 기억하고 새 노래로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우리는 한 해 동안 허물과 실수를 많이 해서 진흙탕 속에서 헤매었지만 주님은 이런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고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온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며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감사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의 은혜를 증거하며, 주께서 앞으로도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첫째,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대한 찬양(1-5).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기가 막힐 웅덩이는 소용돌이치는 웅덩이를 말하고, 수렁은 늪을 말합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는 바닥이 없는 수렁입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지면 몸부림을 칠수록 더 빠르게 가라앉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소름이 끼치는 무시무시한 웅덩이입니다. 이런 늪지대에 빠지면 자기 힘으로 스스로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마치 밑에서 무엇이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 엔게디 광야에서 피해 다닐 때 십년 이상 도망자로 살아야 했습니다(삼상24장). 그가 블레셋에 피신해 있는 동안 그의 사람들과 가족들이 아말렉 군대에게 사로잡혀 갔을 때 다윗은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삼상30장). 그런데 그들은 같은 피해자이면서 다윗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암논이 다말을 범했습니다. 그 이후 압살롬에게 배반을 받아서 쫓겨 다닌 상황도 기가 막힐 웅덩이였습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늪에 빠지면 움직이지 말고 무조건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나오는 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부르짖어도 금방 구원해 주시지 않습니다. 때로는 허공에 소리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듣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인내하면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순수하게 하시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성품으로 연단하셨습니다. 믿음은 기다리면서 쑥쑥 자라납니다. 인내 없이 이루어지는 값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택하여 크게 쓰고자 하실수록 강하게 훈련하시고 오래 동안 연단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단을 통해서 축복의 때에 교만해지지 않고 비천해져도 고상함을 유지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은 무엇입니까? 영적인 침체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회의와 불신과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삶이 허무하고 우울해집니다. 새벽기도도 하지 않고 성경공부와 주일 예배를 참석해도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자기세계 속으로 빠져들면서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이런 영혼의 밤을 맞이할 때 기가 막힐 웅덩이에 빠진 것 같습니다. 빚을 지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지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학생들이 게임 중독에 빠지는 것도 그러합니다. 한번 게임에 빠져들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해야 할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게임에만 몰두합니다. 그러다가 성적이 떨어지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게임으로 도피해버립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인생이 비참해집니다. 이때 세상 사람들은 주로 삶을 포기하거나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술을 마시거나 자기 인생을 함부로 살게 됩니다. 우리는 인간관계가 늪에 빠질 때도 있고, 막연한 장래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낄 때 마치 터진 웅덩이에 빠진 것 같습니다.

  영적인 침체에 빠질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해오던 일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잘 들리지 않아도 예배에 참석하고 말씀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새벽을 깨워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찬양하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면서 어려움 가운데서 기다리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어야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버텨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셨습니다. 일방적인 도우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발을 반석 위에 두셨습니다. 반석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과 대조되는 의미로 안전과 견고함을 상징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죄의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고 복잡한 문제로 부터 회생 불가능했는데 하나님이 끌어 올리셔서 구원해주셨습니다. 내 경험과 지혜,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도저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건만 하나님이 신기한 방법으로 해결해 주십니다. 나와 가정과 역사를 견고하게 하시고 든든히 서 가게 하심에 놀랍고 감사합니다.         

  이지선자매는 2000년 가을 교통사고를 당해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아름다운 대학 2년생이던 그녀가 까만 재가 되어 버린 몸으로 병원에 누워있었습니다. 그의 육체 탄 냄새가 얼마나 지독했던지 어머니조차도 가까이 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수술을 하고 온 몸을 소독해야 하는 시간은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피부 이식 수술을 받으면서 한번 맞으면 3시간을 지속하는 진통제를 하루 3번 맞으면 나머지 시간은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야했습니다. 너무나 오랜 시간을 수술을 받고 회복하기를 반복하면서 그녀의 삶은 기가 막힐 웅덩이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사랑하셔서 믿음을 주시고 연단을 받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회복되어 미국 콜롬비아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공부를 하고, 책을 펴내고, 간증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의 간증을 통해서 자살을 결심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새 인생을 출발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새 노래 곧 하나님께 올릴 찬송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새 노래는 구원의 은혜에 기초해서 새롭게 부르는 노래입니다. 새 노래는 새로운 마음으로 부르는 찬송입니다. 새로운 체험을 통해서, 새로운 경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전에도 주님의 은혜를 체험했지만 새롭게 발견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새로운 마음으로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사람은 과거에 부른 찬송으로는 부족합니다. 현재 체험한 은혜가 너무나 새롭고 깊고 높기 때문에 새로운 가사와 곡조를 만들어서 새로운 마음으로 찬송하게 됩니다. 작년에 체험한 은혜와 올해 내가 체험한 은혜는 또 다르고 전혀 새롭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같지만 나에게 적용되어지는 은혜는 항상 새롭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입술에 새 노래를 주십니다. 우리가 이번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새 노래를 불러야겠습니다. 흘러간 옛 노래만 부르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새로운 노래를 부르는 신앙은 날로 힘 있고 역동적이고 은혜가 넘칩니다. 내 마음이 새로워지면 찬송가의 의미가 새록새록 마음에 새겨집니다. 내가 부를 새 노래가 있습니까? 고통을 당하기 전과 고통에서 벗어난 다음에 부를 노래는 다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내가 새롭게 부르는 찬송을 통해서 주위 사람들이 어떤 은혜를 받게 될까요? 3b절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기가 막힐 정도로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보고 사람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경외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도 은혜를 받고 이제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는 내가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에 담아 두지만 말고, 새 노래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다른 사람도 감동을 받아서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믿음이 생깁니다. 우리가 소감을 통해서, 감사 시를 통해서, 찬양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함으로 다른 사람이 은혜를 받고 맹숭맹숭한 마음에 감격이 생기고 하나님께 대한 확신과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가 복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교만한 자는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를 자랑하는 자입니다.  거짓에 치우치는 자는 허탄한 우상에게 가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망한 점쟁이나 사주 관상, 돈과 권력을 가진 자, 인본적인 철학을 가진 자들에게 가서 의지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헛된 우상과 속임수, 인간적인 것들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주님이 행하신 기적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기적은 미러클(miralce)이 아니라 원더스(wonders)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기이한 일들, 신기한 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보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응답해 주사 놀라게 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 믿음의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평강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매일 매일 체험하면서 살아갑니다. 암에서 낫는 것도 은혜지만 암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도 기적입니다. 사고가 많고 문제 많은 세상에서  무사히 지내게 된 것이 기적이요, 축복입니다. 파란 가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은혜요 감사제목입니다. 우리 각자와 양들과 자녀들 가운데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 같은 역사들을 생각해 보고 적극적으로 감사합시다. 저도 매달, 매주일, 매일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혜가 많고 큼을 깨닫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생각은 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깊은 관심과 섬세한 계획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부딪칠 때 한 길 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생각이 단편적이고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셀 수 없이 많은 생각과 계획을 갖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내 생각과 계획보다 더 오묘하고 섬세하게 인도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

  둘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주님을 섬길 것을 결단함(6-10).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지만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십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NIV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Sacrifice and offering you did not desire, but my ears you have pierced;” 즉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고 주께서 뚫으신 나의 귀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종은 자신의 상전에게 평생 충성하기로 맹세할 때 귀를 뚫었습니다. 주인의 은혜와 사랑을 확신하고 자유인이 될 권리를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일생 종으로 살고자 결단을 하면 주인이 종의 귀를 문설주에 대고 뚫습니다. 어떤 사람이 귀를 뚫었다면 그것은 자기 상전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바쳤음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자발적인 순종이요 헌신임을 알았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를 사랑하여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말씀이 있을 때 주의 뜻을 행할 수 있습니다. 7,8절 말씀은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 이르러 현실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사 성육신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단번에 희생 제물로 드리심으로 그의 뜻을 이루시고 만민을 구원하셨습니다.

  의례적이고 외적인 겉치레 보다는 자세와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구원 받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취해야 할 자세가 무엇입니까? 추수감사절기를 의례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말씀을 하셨으니 귀를 열어서 말씀을 잘 듣고, 내게 주신 말씀을 마음에 받아 새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바입니다. 2절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내 발을 반석 위에 세우셨다고 했는데 우리가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 빠지지 않고 계속해서 반석 위에 서 있을 수 있는 비결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고 말씀에 순종하고자 결단했습니다.

  더 나아가 주의 하신 일을 증거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가 주의 공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감추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가 은혜를 받은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주님이 하신 일을 적극적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우리는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 사랑, 그의 성실을 적극적으로 선포하고 증거해야 합니다. 내가 체험한 주의 은혜, 기쁜 소식을 말하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롬11:14,15). 하나님께서 올 한 해 동안 우리 각자에게 베푸신 은혜를 찾아서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체험한 은혜를 증거하면 다른 사람들이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믿음을 갖게 되고 격려를 받습니다. 고난을 받은 사람만이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눈물을 흘린 사람만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상처가 회복된 사람만이 상처 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바 은혜를 전하므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앞으로도 은총을 베풀어 주시길 간구함(11-17). 그동안 감사 찬양하던 분위기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시인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지심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이런 고난이 지나 가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에 기초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의 은총을 베푸셔서 대적들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주님의 은혜를 많이 체험하고 수렁에서 빠져 나왔어도 현실 속에 어려움은 마지막 날까지 계속됩니다. 사탄은 호시탐탐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노리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연약하여 쉽게 죄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방심하거나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은혜 체험으로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는 항상 영적 전쟁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그는 간구합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아니고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나 자신의 의지와 열심대로만 살고자 하지 않고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고 주님의 보호를 간구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보호막을 거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항상 붙들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의 끈을 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매일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습니다(막1:35). 하물며 우리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새벽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영적 소원과 능력과 지혜와 영감을 덧입으셨습니다. 누가 보나 안 보나 변하지 않는 가치관과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과 교제하시며 동행하셨습니다.

  시인은 더 나아가 자신의 죄가 머리털보다 많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죄악이 자신을 덮친다고 말합니다. 사실 모든 고난과 낙심하게 하는 일들은 우리의 죄로부터 시작된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욥이나 사도 바울이나 예수님의 경우에 죄가 없는데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자발적으로 주와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체험했지만 완벽하게 살지 못합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허물과 죄가 있고 앞으로도 부족한 모습, 실망스러운 모습을 하나님께 보일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 인해서 낙심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 찬송이 되지만 자신의 허물을 보면 낙심이 됩니다. 주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과 나를 향한 주의 생각이 누구도 견줄 수 없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동시에 나의 죄는 머리털보다 많습니다. 그러나 나의 죄도 많지만 주님의 은혜가 더 크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고 낙심하지 않을 수 있고 절망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나 시작할 수 있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하나님을 찾는 자는 어떤 위기와 조롱하는 세력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시인의 결론적인 고백은 “하나님은 위대하시다”는 것입니다. 구원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은 항상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한해를 돌이켜 보면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나를 건지시고 기적을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새 노래로 찬양을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형식적인 감사제가 아니라 마음에 말씀을 새기고 순종하는 자세로 나아갑시다. 또한 현재 어려움, 가난함과 궁핍함을 인정하고 계속해서 주님의 은총을 구하며 기도하는 자세로 살아갑시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하고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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