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3년 창세기 23강(37-38장) 꿈꾸는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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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창세기 제 23 강
말씀 | 창세기 37:1-38:30
요절 | 창세기 37:9
꿈꾸는 요셉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청년은 꿈을 꾸고 늙은 사람은 추억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꿈을 꾸는 사람들은 항상 배우고 자신을 훈련하며 성장합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간절한 마음의 소원이 표현된 것입니다. 소원이 강렬할수록 성취도 잘 됩니다. 창세기에는 꿈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복의 근원이요 열국의 아비가 되는 꿈을 주셨습니다. 그는 하늘의 뭇별을 보면서 자손들이 번성할 것을 꿈꾸었습니다. 야곱은 사닥다리 꿈을 꾸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나그네 인생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요셉은 지도자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막내였지만 형들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지도자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꿈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꿈이 없는 사람에게 꿈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 이삭이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습니다. 저자는 야곱의 족보를 이야기 하면서 요셉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요셉은 야곱의 말년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함께 놀았습니다. 그들과는 나이 차이가 비슷하고 르우벤과 시므온과는 나이 차이가 너무 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부지, 형들이 양을 두 마리 팔아가지고 노래방에 가서 다 써버렸데요. 아부지, 형들이 양은 들판에 버려두고 술 마시고 게임방 갔어요.”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을 해서 인정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는 한편으로 순수하고 의로운 생각이 강했습니다. 야곱이 노년에 사랑하는 라헬에게서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편애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채색 옷은 소매가 길게 늘어진 것으로서 귀족의 아들들이 입었다고 합니다. 장자에게 입힌 옷이기도 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요셉에게는 노스페이스 파카에, 나이키 운동화를 사주었다면 다른 아이들에게는 중국산 짝퉁 옷과 짝퉁 운동화를 사주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이 고자질하는 것도 힘든데 채색 옷을 입히니 달려들어 확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여 그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형들이 요셉을 더욱 미워하게 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루는 요셉이 꿈을 꾸고 형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형님들 글쎄 말야.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고 있었는데 내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지 뭐야”라며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는데 형들은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라구요.”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 야곱도 그를 꾸짖고 말했습니다.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습니다.
사실 요셉이 꿈을 꾼 것은 그가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지도자와 지배자는 다릅니다. 지도자는 남을 돕고 이끌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에 반해서 지배자는 자기 욕심과 영광을 위해서 임의로 권세를 부리고 학대를 합니다. 요셉은 나중에 총리가 되어 자기 백성들을 기근에서 구원하고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기까지 번성하도록 섬기는 일을 합니다. 요셉이 어머니도 없이 컸지만 꿈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현실을 잘 극복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양 떼를 칠 때였습니다. 세겜은 야곱의 아들들이 집단 학살과 약탈을 하고 두려워 떠났던 곳입니다. 그들이 거기서 양을 치는 것을 안 야곱은 불안하였습니다. 세겜 족속들과 주변 부족들이 보복을 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아곱은 요셉에게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 보고 돌아와 자신에게 말하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요셉이 헤브론 골짜기에서 세겜으로 갔는데 형들을 만나지 못하고 방황하였습니다. 그는 이틀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형들을 찾지 못했다고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사람의 도움으로 다시 도단까지 갔습니다. 헤브론에서 도단까지는 125Km나 됩니다. 요셉은 충성스럽게 도단까지 가서 형들을 만났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은 큰일에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작은 일이라도 누가 보나 안 보나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럽게 감당하였습니다.
요셉을 멀리서 보고 형들은 그를 죽이기로 음모를 꾸몄습니다. “야, 저기 꿈꾸는 놈이 온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는 게 어때. 좋은 생각이지. 야 기발한 생각이다.” 그들은 요셉을 죽이면 꿈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꿈은 핍박을 하고 사람을 죽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꿈꾸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꿈을 꾸려고 일어나지 말고 잠을 많이 자야 할까요? 사도행전 2:17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성령충만 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요셉이 꿈을 꾼 것은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D.L. 무디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복음을 외쳤습니다. 한번은 그가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 가서 설교했을 때 많은 대학생들이 감동을 받고 예수님께 헌신했습니다. 그중의 7명의 청년은 귀족의 자녀들로서 촉망받는 대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버리고 중국 선교사로 나아갔습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는 구두 수선공으로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불타는 세계 선교의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방에 세계 지도를 붙여놓고 기도하며 언어를 공부했습니다. 그는 세계 선교 앞에서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유명한 말을 해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십시오.” 그는 일생 인도 선교를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꿈은 고난을 먹고 자랍니다. 고난을 통해서 꿈은 실현을 향해 다가갑니다.
르우벤은 동생들의 말을 듣고 요셉을 구원하려고 그의 생명을 해치지 말자, 피를 흘리지 말라고 합니다.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그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합니다. 르우벤은 나중에 요셉을 구출하여 아버지에게 돌리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 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져버렸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애원을 했습니다. “형들 왜 이래, 이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아아악~. 쿵!”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다행히 그 속에 물이 없었습니다. 물이 있었다면 요셉의 생명은 더 위험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요셉이 싸온 도시락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보니 한 상단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슨 유익이 있겠냐.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들이 미디안 상인에게 은 이십에 요셉을 팔자 그들은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습니다.
요셉은 졸지에 귀공자에서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의 꿈은 더 멀어져 가는 것 같았습니다. 요셉이 꿈을 가졌을 때 그의 현실은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는 꿈을 가진 자의 연단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낮은 자의 위치로 굴러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 경쟁자를 실력으로 제압하거나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반대로 가장 낮은 자의 위치로 굴러 떨어져서 몸소 고난과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그래야만 죄성을 가진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두 가지 필수적인 요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깊은 죄성을 가진 인간에 대한 이해입니다.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요셉은 고난의 풀무 속에서 연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속에서 요셉은 죄인들을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구원자요 목자로 성장해갔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것이 꿈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지름길이었습니다.
꿈을 이루는 것은 고난을 통해서 되어 집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신묘막측 합니다.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의 꿈을 어떻게 이루셨습니까? 바닷가에 나아가 전도하시고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며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섬기는 종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을 제자 훈련을 하고 섬기는 삶을 사시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서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인류 구원의 꿈을 이루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섬기는 생활과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꿈을 완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처음에 이방 나라에 나아가서 밑바닥 일을 해야 합니다. 식당에서 접시 닦기, 잔디 깎기, 청소 등을 합니다. 선교사로 나와서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생각하지만 그런 일들을 하면서 그 사회의 밑바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어를 익히고 공부를 합니다. 또 캠퍼스에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일대일을 하다보면 언어구사가 빠르게 성장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제자들을 얻어 나가다보면 가정 교회가 이루어지고 그것이 교회로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도 말씀을 받고 꿈을 가졌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간 훈련을 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성경 선생의 나라로 삼으시고 세계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복주기 위함입니다. 이 비전은 신약에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8-19)” 열 두 제자들은 갈릴리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신 제자 양성을 통한 세계 선교의 비전을 주셨을 때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열국의 아비, 열국의 어미로 쓰임 받는 꿈입니다. 일생 열두 명의 제자를 세우는 제자 양성가로 쓰임 받는 꿈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로 사는 꿈입니다. 캠퍼스 목자로 쓰임 받는 꿈입니다. 선교사로 쓰임 받는 꿈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꿈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꿈입니다. 우리는 성서한국 세계 선교의 꿈을 가졌습니다. 캠퍼스 제자 양성을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강같이 흐르는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이런 꿈들은 우리가 학생들을 사랑하여 말씀을 전하고 일대일로 제자 훈련을 시키는 가운데 성취되어 갑니다. 우리가 사랑의 공동체를 잘 이루어 나가는 꿈을 꾸고 있지만 이를 성취하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연약함과 죄로 인해서 좌절을 경험합니다. 인생의 여러 가지 시련과 시험을 당하면서 꿈이 시들어갑니다.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하기 때문에 꿈을 붙잡지 못하고 놓쳐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다시 기억하고 마음에 품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 꿈을 이루어주십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맡은 바 일들에 충성해 나가면 반드시 그 꿈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다 못 이루면 우리의 자녀들을 통해서, 또 그 자녀들을 통해서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실의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을 말씀을 꼭 붙잡고 살아야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꿈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옵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비전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 비전이 나의 삶 가운데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며 현재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들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창세기 37:1-38:30
요절 | 창세기 37:9
꿈꾸는 요셉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청년은 꿈을 꾸고 늙은 사람은 추억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꿈을 꾸는 사람들은 항상 배우고 자신을 훈련하며 성장합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간절한 마음의 소원이 표현된 것입니다. 소원이 강렬할수록 성취도 잘 됩니다. 창세기에는 꿈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복의 근원이요 열국의 아비가 되는 꿈을 주셨습니다. 그는 하늘의 뭇별을 보면서 자손들이 번성할 것을 꿈꾸었습니다. 야곱은 사닥다리 꿈을 꾸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나그네 인생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요셉은 지도자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막내였지만 형들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지도자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꿈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꿈이 없는 사람에게 꿈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 이삭이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습니다. 저자는 야곱의 족보를 이야기 하면서 요셉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요셉은 야곱의 말년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함께 놀았습니다. 그들과는 나이 차이가 비슷하고 르우벤과 시므온과는 나이 차이가 너무 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부지, 형들이 양을 두 마리 팔아가지고 노래방에 가서 다 써버렸데요. 아부지, 형들이 양은 들판에 버려두고 술 마시고 게임방 갔어요.”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을 해서 인정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는 한편으로 순수하고 의로운 생각이 강했습니다. 야곱이 노년에 사랑하는 라헬에게서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편애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채색 옷은 소매가 길게 늘어진 것으로서 귀족의 아들들이 입었다고 합니다. 장자에게 입힌 옷이기도 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요셉에게는 노스페이스 파카에, 나이키 운동화를 사주었다면 다른 아이들에게는 중국산 짝퉁 옷과 짝퉁 운동화를 사주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이 고자질하는 것도 힘든데 채색 옷을 입히니 달려들어 확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여 그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형들이 요셉을 더욱 미워하게 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루는 요셉이 꿈을 꾸고 형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형님들 글쎄 말야.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고 있었는데 내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지 뭐야”라며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는데 형들은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라구요.”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 야곱도 그를 꾸짖고 말했습니다.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습니다.
사실 요셉이 꿈을 꾼 것은 그가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지도자와 지배자는 다릅니다. 지도자는 남을 돕고 이끌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에 반해서 지배자는 자기 욕심과 영광을 위해서 임의로 권세를 부리고 학대를 합니다. 요셉은 나중에 총리가 되어 자기 백성들을 기근에서 구원하고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기까지 번성하도록 섬기는 일을 합니다. 요셉이 어머니도 없이 컸지만 꿈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현실을 잘 극복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양 떼를 칠 때였습니다. 세겜은 야곱의 아들들이 집단 학살과 약탈을 하고 두려워 떠났던 곳입니다. 그들이 거기서 양을 치는 것을 안 야곱은 불안하였습니다. 세겜 족속들과 주변 부족들이 보복을 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아곱은 요셉에게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 보고 돌아와 자신에게 말하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요셉이 헤브론 골짜기에서 세겜으로 갔는데 형들을 만나지 못하고 방황하였습니다. 그는 이틀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형들을 찾지 못했다고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사람의 도움으로 다시 도단까지 갔습니다. 헤브론에서 도단까지는 125Km나 됩니다. 요셉은 충성스럽게 도단까지 가서 형들을 만났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은 큰일에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작은 일이라도 누가 보나 안 보나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럽게 감당하였습니다.
요셉을 멀리서 보고 형들은 그를 죽이기로 음모를 꾸몄습니다. “야, 저기 꿈꾸는 놈이 온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는 게 어때. 좋은 생각이지. 야 기발한 생각이다.” 그들은 요셉을 죽이면 꿈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꿈은 핍박을 하고 사람을 죽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꿈꾸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꿈을 꾸려고 일어나지 말고 잠을 많이 자야 할까요? 사도행전 2:17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성령충만 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요셉이 꿈을 꾼 것은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D.L. 무디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복음을 외쳤습니다. 한번은 그가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 가서 설교했을 때 많은 대학생들이 감동을 받고 예수님께 헌신했습니다. 그중의 7명의 청년은 귀족의 자녀들로서 촉망받는 대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버리고 중국 선교사로 나아갔습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는 구두 수선공으로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불타는 세계 선교의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방에 세계 지도를 붙여놓고 기도하며 언어를 공부했습니다. 그는 세계 선교 앞에서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유명한 말을 해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십시오.” 그는 일생 인도 선교를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꿈은 고난을 먹고 자랍니다. 고난을 통해서 꿈은 실현을 향해 다가갑니다.
르우벤은 동생들의 말을 듣고 요셉을 구원하려고 그의 생명을 해치지 말자, 피를 흘리지 말라고 합니다.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그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합니다. 르우벤은 나중에 요셉을 구출하여 아버지에게 돌리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 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져버렸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애원을 했습니다. “형들 왜 이래, 이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아아악~. 쿵!”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다행히 그 속에 물이 없었습니다. 물이 있었다면 요셉의 생명은 더 위험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요셉이 싸온 도시락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보니 한 상단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슨 유익이 있겠냐.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들이 미디안 상인에게 은 이십에 요셉을 팔자 그들은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습니다.
요셉은 졸지에 귀공자에서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의 꿈은 더 멀어져 가는 것 같았습니다. 요셉이 꿈을 가졌을 때 그의 현실은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는 꿈을 가진 자의 연단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낮은 자의 위치로 굴러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 경쟁자를 실력으로 제압하거나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반대로 가장 낮은 자의 위치로 굴러 떨어져서 몸소 고난과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그래야만 죄성을 가진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두 가지 필수적인 요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깊은 죄성을 가진 인간에 대한 이해입니다.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요셉은 고난의 풀무 속에서 연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속에서 요셉은 죄인들을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구원자요 목자로 성장해갔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것이 꿈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지름길이었습니다.
꿈을 이루는 것은 고난을 통해서 되어 집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신묘막측 합니다.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의 꿈을 어떻게 이루셨습니까? 바닷가에 나아가 전도하시고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며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섬기는 종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을 제자 훈련을 하고 섬기는 삶을 사시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서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인류 구원의 꿈을 이루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섬기는 생활과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꿈을 완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처음에 이방 나라에 나아가서 밑바닥 일을 해야 합니다. 식당에서 접시 닦기, 잔디 깎기, 청소 등을 합니다. 선교사로 나와서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생각하지만 그런 일들을 하면서 그 사회의 밑바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어를 익히고 공부를 합니다. 또 캠퍼스에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일대일을 하다보면 언어구사가 빠르게 성장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제자들을 얻어 나가다보면 가정 교회가 이루어지고 그것이 교회로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도 말씀을 받고 꿈을 가졌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간 훈련을 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성경 선생의 나라로 삼으시고 세계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복주기 위함입니다. 이 비전은 신약에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8-19)” 열 두 제자들은 갈릴리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신 제자 양성을 통한 세계 선교의 비전을 주셨을 때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열국의 아비, 열국의 어미로 쓰임 받는 꿈입니다. 일생 열두 명의 제자를 세우는 제자 양성가로 쓰임 받는 꿈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로 사는 꿈입니다. 캠퍼스 목자로 쓰임 받는 꿈입니다. 선교사로 쓰임 받는 꿈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꿈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꿈입니다. 우리는 성서한국 세계 선교의 꿈을 가졌습니다. 캠퍼스 제자 양성을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강같이 흐르는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이런 꿈들은 우리가 학생들을 사랑하여 말씀을 전하고 일대일로 제자 훈련을 시키는 가운데 성취되어 갑니다. 우리가 사랑의 공동체를 잘 이루어 나가는 꿈을 꾸고 있지만 이를 성취하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연약함과 죄로 인해서 좌절을 경험합니다. 인생의 여러 가지 시련과 시험을 당하면서 꿈이 시들어갑니다.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하기 때문에 꿈을 붙잡지 못하고 놓쳐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다시 기억하고 마음에 품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 꿈을 이루어주십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맡은 바 일들에 충성해 나가면 반드시 그 꿈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다 못 이루면 우리의 자녀들을 통해서, 또 그 자녀들을 통해서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실의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을 말씀을 꼭 붙잡고 살아야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꿈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옵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비전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 비전이 나의 삶 가운데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며 현재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들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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