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3년 창세기 19강(27:46-28:22)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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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창세기 제 19 강
말씀 | 창세기 27:46-28:22
요절 | 창세기 28:16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빌립보서를 끝내고 새롭게 창세기로 돌아왔습니다. 리브가는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작정한 줄을 알고 야곱을 피신을 시키려고 합니다. 자기의 친정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야곱을 보내면서 믿음의 결혼을 하도록 돕습니다. 야곱의 나그네 생활이 시작됩니다. 아무도 의지할 수 없는 막막한 나그네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은 부모의 품을 떠나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고 믿음의 조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야곱이 어떻게 나의 하나님을 만나는지 살피는 가운데 우리도 나의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내면서 어떤 부탁을 합니까? 이삭과 리브가는 에서가 헷 족속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며느리와 갈등을 일으키면서 마음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배도 드리지 않고 쇼핑을 다니고 에서를 세속적인 삶과 우상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는 믿음이 있는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부탁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을 그와 그 후손에게 주어 그가 거류하는 땅을 차지하도록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전에는 속아서 축복했지만 이제 이삭은 야곱을 자신의 상속자로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 별미를 먹고 야곱에게 베푼 축복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요 인간적이고 즉흥적인 행동이 아니었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이삭은 야곱을 멀리 길을 떠나보내면서 믿음의 계승자요, 축복의 계승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자 해가 졌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벧엘까지는 약 100킬로미터 정도로서 도보로 약 3일 길입니다. 하란까지 걸어가려면 약 800킬로미터를 더 가야 합니다. 한 달 이상 걸리는 여행입니다. 그가 벧엘에서 돌 베개를 베고 누웠습니다. 야곱은 처음으로 혼자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외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주변에 사람이 많고 적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고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히 병들거나 사업이 부도가 나거나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외로움을 느낍니다. 혼자 아파하고 홀로 죽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무도 도움이 되지 않는 외로운 때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외로운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을 때, 내가 의지하던 것을 다 내려놓고 가난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만이 우리 곁에 남습니다. 저도 고향을 떠나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하면서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신론자의 괴수였던 이어령 교수는 딸과 손자의 병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했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야곱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만든 사닥다리는 높이 올라가 봐야 20층, 몇 백미터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그 사다리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봐도 만족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사닥다리는 하늘에 까지 닿아서 우리에게 참 만족을 줍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사닥다리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은 하나님과 인간이 역동적으로 교제하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이는 야곱으로 하여금 하늘의 것을 추구하도록 도우시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랑, 물질, 명예보다 정말 위엣 것을 찾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따라서 그의 삶의 내용이 결정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소망하고 위엣 것을 추구한다고 해서 종말론자들처럼 세상 일에 무관심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 이루어지도록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통치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사닥다리 환상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들은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야곱은 이제 아버지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이 꿈을 통해서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본문에는 ‘보라’는 감탄사가 여러 번 반복되어 야곱의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라! 사닥다리가’ ‘보라! 하나님의 사자가’ ‘보라! 여호와께서’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사닥다리는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의 연결 통로로서 신약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요1:5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죄사함과 영생과 하나님 나라의 복을 넘치도록 내려 주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이 때 야곱에게 꿈을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야곱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이었습니다. 사람은 세 번의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어머니와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 만남으로 은혜를 받고 비전을 보게 됩니다. 지금 그가 누워 있는 곳은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귀중한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함으로써 이제 그는 어디서나 단독자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그를 보고 계시고 도와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을 때 현실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2).” 세상에서도 자신감이 있어야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나는 홀로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어려운 인생의 고난도 능히 감당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십니다. 13a절을 보십시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이제 너 야곱의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인생들과 교제하시는 분이십니다. 야곱의 인생 여정 속에 순간순간 그와 함께 하시며 그를 도우시며 위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라반에게 속아서 노동 착취를 당할 때 그와 함께 하사 필요한 재물을 주십니다. 라반을 떠나 집으로 돌아와야 할 때를 아시고 알려 주십니다. 라반이 그를 멸하고자 위협할 때 라반에게 나타나 야곱을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에서를 만나기 위해서 올 때에 두 군대를 보내셔서 호위해주십니다. 때마다 그의 사자들을 보내셔서 하늘과 땅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야곱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은 이제 야곱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조상들과 함께 하셨고 조상들을 위기 가운데서 보호하시고 승리를 주셨던 하나님이 이제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무엇입니까? 13b-15절을 보십시오.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땅과 땅의 티끌 같은 자손과 열방에 대한 복의 근원으로 쓰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동일한 축복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를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밧단아람에서 20년간 훈련하시고 믿음의 연단을 시키십니다. 그리고 믿음의 조상으로 빚으십니다. 이를 이루기까지 그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는 것도 큰 복이지만 더 좋은 것은 그가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만사형통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기까지 그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이 약속을 받았을 때 야곱은 마음 속에 강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목자가 되사 푸른 풀밭과 맑은 시냇가로 인도하시며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또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목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그의 잔이 넘치게 됩니다. 이제 야곱은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그의 앞에는 새로운 모험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늘 그와 함께 하실 때 어떤 어려움도 두렵지 않고 담대하게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현재 내게 주신 약속과 그를 위해 내가 감당할 사명은 무엇입니까? 개개인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힘을 쓰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들을 돌보고 제자를 양성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할 때 내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필요한 권세를 주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큰 힘을 얻어 맡겨주신 일들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0)”는 격려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궁핍에도 처할 능력, 부에도 처한 능력을 주십니다. 양을 돌볼 때 필요한 능력, 자립을 위해서 필요한 능력, 학업과 직장 일을 감당할 능력, 가정을 이끌어갈 능력, 인간관계를 잘 맺어갈 능력, 물질을 관리할 능력 등 목자로서 필요한 모든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나의 하나님을 믿고 지혜롭고 담대하게 맡은 바 사명을 잘 감당해내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은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바가 무엇입니까? 16,17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야곱이 하나님의 임재를 이토록 가깝게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하나님은 특정한 장소에만 계시는 분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곳 루스에도 계시는 분임을 발견하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경외심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생길 때 그를 예배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소원은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열망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서 예배할 때 인간은 참된 만족을 느낍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이곳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베게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벧엘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그 하나님을 인식하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또 그는 그곳을 하늘에 이르는 통로라는 의미로 ‘하늘의 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늘과 땅이 통하게 된 것입니다. 하늘의 문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말한 하늘의 문은 참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요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갑니다.
야곱은 이제 하나님께 서원을 하며 몇 가지 결단을 합니다. 20-22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은 자신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도록 서원 기도합니다. 자신을 이 여행길에서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고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소박한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그가 구한 것은 작지만 구체적이었습니다. 이것이 꼬투리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체적인 결단을 하고 약속을 합니다.
그는 먼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겠다고 합니다. 그는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믿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결단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평생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삽니다. 신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중심으로 삽니다. 명절에도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고향에 내려갔다가도 새벽에 4시간, 5시간 걸려서라도 예배 드리러 옵니다. 또한 친척들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먼저 예배를 드리고 나중에 고향에 내려갑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잘 예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투쟁하며 애씁니다. 야곱은 평생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셋째,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내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임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자기 것을 챙기고 뺏고 쟁취하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 하나님께 드리고 바치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드리는 자들에게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결론적으로 우리는 야곱이 나그네 생활을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사닥다리 꿈을 통해서 그를 만나주시고 그의 하나님이 되심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져서 외로움을 느낄 때 하나님은 나를 찾아오시고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소망의 말씀, 비전의 말씀,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장래를 위해 갖고 계신 생각은 참으로 크고 놀랍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배할 수 있게 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묵상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더욱 인격적인 만남을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창세기 27:46-28:22
요절 | 창세기 28:16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빌립보서를 끝내고 새롭게 창세기로 돌아왔습니다. 리브가는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작정한 줄을 알고 야곱을 피신을 시키려고 합니다. 자기의 친정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야곱을 보내면서 믿음의 결혼을 하도록 돕습니다. 야곱의 나그네 생활이 시작됩니다. 아무도 의지할 수 없는 막막한 나그네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은 부모의 품을 떠나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고 믿음의 조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야곱이 어떻게 나의 하나님을 만나는지 살피는 가운데 우리도 나의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내면서 어떤 부탁을 합니까? 이삭과 리브가는 에서가 헷 족속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며느리와 갈등을 일으키면서 마음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배도 드리지 않고 쇼핑을 다니고 에서를 세속적인 삶과 우상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는 믿음이 있는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부탁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을 그와 그 후손에게 주어 그가 거류하는 땅을 차지하도록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전에는 속아서 축복했지만 이제 이삭은 야곱을 자신의 상속자로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 별미를 먹고 야곱에게 베푼 축복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요 인간적이고 즉흥적인 행동이 아니었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이삭은 야곱을 멀리 길을 떠나보내면서 믿음의 계승자요, 축복의 계승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자 해가 졌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벧엘까지는 약 100킬로미터 정도로서 도보로 약 3일 길입니다. 하란까지 걸어가려면 약 800킬로미터를 더 가야 합니다. 한 달 이상 걸리는 여행입니다. 그가 벧엘에서 돌 베개를 베고 누웠습니다. 야곱은 처음으로 혼자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외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주변에 사람이 많고 적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고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히 병들거나 사업이 부도가 나거나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외로움을 느낍니다. 혼자 아파하고 홀로 죽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무도 도움이 되지 않는 외로운 때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외로운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을 때, 내가 의지하던 것을 다 내려놓고 가난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만이 우리 곁에 남습니다. 저도 고향을 떠나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하면서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신론자의 괴수였던 이어령 교수는 딸과 손자의 병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했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야곱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만든 사닥다리는 높이 올라가 봐야 20층, 몇 백미터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그 사다리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봐도 만족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사닥다리는 하늘에 까지 닿아서 우리에게 참 만족을 줍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사닥다리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은 하나님과 인간이 역동적으로 교제하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이는 야곱으로 하여금 하늘의 것을 추구하도록 도우시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랑, 물질, 명예보다 정말 위엣 것을 찾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따라서 그의 삶의 내용이 결정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소망하고 위엣 것을 추구한다고 해서 종말론자들처럼 세상 일에 무관심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 이루어지도록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통치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사닥다리 환상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들은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야곱은 이제 아버지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이 꿈을 통해서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본문에는 ‘보라’는 감탄사가 여러 번 반복되어 야곱의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라! 사닥다리가’ ‘보라! 하나님의 사자가’ ‘보라! 여호와께서’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사닥다리는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의 연결 통로로서 신약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요1:5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죄사함과 영생과 하나님 나라의 복을 넘치도록 내려 주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이 때 야곱에게 꿈을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야곱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이었습니다. 사람은 세 번의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어머니와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 만남으로 은혜를 받고 비전을 보게 됩니다. 지금 그가 누워 있는 곳은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귀중한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함으로써 이제 그는 어디서나 단독자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그를 보고 계시고 도와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을 때 현실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2).” 세상에서도 자신감이 있어야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나는 홀로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어려운 인생의 고난도 능히 감당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십니다. 13a절을 보십시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이제 너 야곱의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인생들과 교제하시는 분이십니다. 야곱의 인생 여정 속에 순간순간 그와 함께 하시며 그를 도우시며 위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라반에게 속아서 노동 착취를 당할 때 그와 함께 하사 필요한 재물을 주십니다. 라반을 떠나 집으로 돌아와야 할 때를 아시고 알려 주십니다. 라반이 그를 멸하고자 위협할 때 라반에게 나타나 야곱을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에서를 만나기 위해서 올 때에 두 군대를 보내셔서 호위해주십니다. 때마다 그의 사자들을 보내셔서 하늘과 땅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야곱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은 이제 야곱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조상들과 함께 하셨고 조상들을 위기 가운데서 보호하시고 승리를 주셨던 하나님이 이제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무엇입니까? 13b-15절을 보십시오.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땅과 땅의 티끌 같은 자손과 열방에 대한 복의 근원으로 쓰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동일한 축복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를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밧단아람에서 20년간 훈련하시고 믿음의 연단을 시키십니다. 그리고 믿음의 조상으로 빚으십니다. 이를 이루기까지 그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는 것도 큰 복이지만 더 좋은 것은 그가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만사형통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기까지 그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이 약속을 받았을 때 야곱은 마음 속에 강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목자가 되사 푸른 풀밭과 맑은 시냇가로 인도하시며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또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목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그의 잔이 넘치게 됩니다. 이제 야곱은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그의 앞에는 새로운 모험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늘 그와 함께 하실 때 어떤 어려움도 두렵지 않고 담대하게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현재 내게 주신 약속과 그를 위해 내가 감당할 사명은 무엇입니까? 개개인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힘을 쓰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들을 돌보고 제자를 양성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할 때 내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필요한 권세를 주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큰 힘을 얻어 맡겨주신 일들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0)”는 격려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궁핍에도 처할 능력, 부에도 처한 능력을 주십니다. 양을 돌볼 때 필요한 능력, 자립을 위해서 필요한 능력, 학업과 직장 일을 감당할 능력, 가정을 이끌어갈 능력, 인간관계를 잘 맺어갈 능력, 물질을 관리할 능력 등 목자로서 필요한 모든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나의 하나님을 믿고 지혜롭고 담대하게 맡은 바 사명을 잘 감당해내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은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바가 무엇입니까? 16,17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야곱이 하나님의 임재를 이토록 가깝게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하나님은 특정한 장소에만 계시는 분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곳 루스에도 계시는 분임을 발견하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경외심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생길 때 그를 예배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소원은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열망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서 예배할 때 인간은 참된 만족을 느낍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이곳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베게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벧엘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그 하나님을 인식하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또 그는 그곳을 하늘에 이르는 통로라는 의미로 ‘하늘의 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늘과 땅이 통하게 된 것입니다. 하늘의 문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말한 하늘의 문은 참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요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갑니다.
야곱은 이제 하나님께 서원을 하며 몇 가지 결단을 합니다. 20-22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은 자신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도록 서원 기도합니다. 자신을 이 여행길에서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고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소박한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그가 구한 것은 작지만 구체적이었습니다. 이것이 꼬투리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체적인 결단을 하고 약속을 합니다.
그는 먼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겠다고 합니다. 그는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믿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결단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평생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삽니다. 신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중심으로 삽니다. 명절에도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고향에 내려갔다가도 새벽에 4시간, 5시간 걸려서라도 예배 드리러 옵니다. 또한 친척들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먼저 예배를 드리고 나중에 고향에 내려갑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잘 예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투쟁하며 애씁니다. 야곱은 평생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셋째,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내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임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자기 것을 챙기고 뺏고 쟁취하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 하나님께 드리고 바치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드리는 자들에게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결론적으로 우리는 야곱이 나그네 생활을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사닥다리 꿈을 통해서 그를 만나주시고 그의 하나님이 되심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져서 외로움을 느낄 때 하나님은 나를 찾아오시고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소망의 말씀, 비전의 말씀,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장래를 위해 갖고 계신 생각은 참으로 크고 놀랍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배할 수 있게 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묵상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더욱 인격적인 만남을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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