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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14년 마4강(4:1-11) 사탄아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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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55회 작성일 14-03-16 15:14

본문

2014년 마태복음 제 4 강 
말씀 | 마태복음 4:1-11
요절 | 마태복음 4:10

사탄아 물러가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봄이 시작되자 이를 시샘하듯 꽃샘추위가 이어졌습니다. 꽃샘추위를 이기고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잎사귀를 내고 열매를 맺습니다. 마귀도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싫어해서 이를 방해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사탄은 이 땅에 천국을 이루고자 오신 예수님에게 다가가 유혹합니다. 마귀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의 존재를 우습게 여기거나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마귀가 있기는 한 건가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분명히 존재하고 인간을 타락으로 이끈 장본인입니다. 또한 현재도 마귀는 예고 없이 우리를 찾아와서 시험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성장을 하려면 반드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물질 시험. 예수님은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셨습니다. 사람이 사흘만 굶어도 참기 어렵습니다. 광야는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춥기 때문에 예수님의 체력 소모도 컸을 것입니다. 마귀는 간교하여서 언제나 약점을 이용하여 공격합니다. 예수님의 육신이 가장 연약해져 있을 때 다가와서 시험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 시험의 목적은 이 시점에서 떡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도,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보다도 떡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집어넣고자 한 것입니다. 정말로 떡이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뜻보다 더 중요한가? 떡이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한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마귀의 시험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가진 능력으로 돌들을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고 배고픔을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이것이 시험이 됩니다. 시험이 끝나고 나중에 예수님은 굶주린 오천 명을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심으로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으나 고기를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명하셨고 이에 순종한 베드로는 두 배 가득 고기를 잡았습니다. 예수님은 배고픈 사람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구하기 전에 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에게 지금은 시험의 때이고 시험에는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먹는 문제에 올인하라는 것입니다.

  빵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인생문제가 된 것은 인간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 저주받은 인간은 하루 세끼 먹고살기 위해 몸이 녹초가 되기까지 밤낮으로 염려하며 일하게 되었습니다. 한창 비전에 불타야할 젊은이들조차도 장래 먹고사는 문제로 근심한 나머지 자기 시대에 두신 하나님의 뜻이나 남북통일 같은 것은 생각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밤낮으로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우선 먹고살아야 할 것이 아니냐. 먼저 삶의 안정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니냐.” 마귀는 사람의 행복이 소유에 있는 것처럼 소유를 위해 매진하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행복은 결코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위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우리를 먹고사는 문제에 얽매이게 하여 물질의 노예로 만들어 동물의 차원으로 전락시키려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인간은 육신과 함께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육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이 단순히 육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영혼을 가진 존재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혼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인간이란 얼마나 고상하며 가치 있고 위대한 존재입니까? 인간의 위대성은 땅에 살지만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을 멈추고 육의 양식만을 위해 살 때 동물의 수준으로 사정없이 전락해 버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라는 미명 아래 육의 양식만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을 보실 때 심히 슬퍼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6:27).”

  사람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을 먹고 사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셨는데 마침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고 예수님은 우물 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그 여인은 배부름을 얻고 동네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 가지고 와서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그 말씀을 실천할 때 진정한 배부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우리가 밥심으로 사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힘으로 살아갑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밥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를 믿음으로 생명의 양식을 취하는 사람은 참된 만족을 누립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은 사람에게 떡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과 함께 떡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증거를 떡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보다 네 힘을 믿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사람은 떡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영적인 존재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는 신명기 8:3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40년 광야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사람이 당장 배가 고프다고 해서 친히 먹이시는 하나님을 불신하면 안 됩니다. 사탄은 “성경공부 할 시간이 어디 있어? 그 시간에 공부하고 취업 준비를 해야지. 일용할 양식 먹을 시간이 어디 있어? 그 시간에 돈을 벌어야지” 생각을 하게 하면서 유혹합니다. 사탄은 우리 스스로 물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온 마음과 시간과 열정을 다 쏟도록 유혹합니다. 믿을 것은 너 자신 밖에 없다고 부추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좇아 산다고 할 때 세상일은 소홀히 하고 기도하고 찬송만하고 성경공부만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고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고 명하셨습니다(출 20:8,9).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명하였습니다. 삶의 목적과 우선순위를 하나님과 그 나라에 두고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분별력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극한의 굶주림 속에서 다급한 마음으로 돌로 떡을 만들어 먹고자 하는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믿으셨고 말씀대로 살고자 하셨습니다. 그의 믿음대로 마귀의 시험을 이겼을 때 천사들이 나아와 그에게 수종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 필요한 양식과 물과 필요들을 채워주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도록 하는 시험. 마귀가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가장 거룩한 곳에서 마귀의 유혹이 왔습니다. 마귀는 광야에서 시험할 뿐만 아니라 성전에서도 우리를 시험에 빠뜨리고자 유혹을 합니다. 직장에서 시험할 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시험하는 것입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험을 해 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성전 꼭대기에 예수님을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명령했습니다. 육체와 영혼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마귀는 이런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마귀의 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 소리가 하나님의 말씀인지 마귀의 속이는 말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보면 미친 소리입니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마귀는 그럴듯한 이유를 말씀에서 찾았습니다.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시편 91:11,12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리고자 하였듯이 신자들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사람이라고? 그렇다면 말씀대로 순종해 보아라. 여기 말씀에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천사를 보내 지켜주신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제 말씀대로 뛰어내려봐. 그래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입증해 보라구. 무엇을 망설이느냐? 얼른 뛰어내리지 않고, 뛰어내려!”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히 알던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유혹한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갔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은 회의에 빠져 사탄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고단수를 분별해내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어려운 말씀으로 우리를 교훈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어린아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볼 수 있는 방법으로 시험해보라고 유혹했습니다. 마귀는 오늘날도 교묘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시험합니다. “여기 말씀대로 살면 이렇게 이렇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다고 기록되어 있지? 그런데 너는 왜 이 모양 이꼴이야? 네가 잘못되었든지 기록된 말씀이 잘못되었든지 둘 중의 하나는 잘못된 거 아냐?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든지, 아니면 신앙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든지 할 것 아냐” 이런 식으로 마귀의 시험을 받고 나면 마음 속에 갑자기 믿음이 사라지고 감사가 사라지게 됩니다. 의심의 구름이 먹구름처럼 일어나고 원망과 불평의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교묘한 마귀의 시험에 다시 기록된 말씀으로 대응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신6:16).” 하나님은 믿어야 할 존재이지 시험할 존재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대로 움직일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거룩하신 자신의 뜻대로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사람이 감히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이렇게 하시라 저렇게 하시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와 판단에 따라 일하시는데 우리의 지혜로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이시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분명 말씀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했는데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이 정도는 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의 표현 방식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표현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내 기준과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지 하나님의 생각과 기준을 바꾸라고 요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내가 하나님을 보좌에서 끌어내리며 내가 기준이 되고 내가 하나님이 되겠다는 교만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불신이요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으면 구태여 시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때로 신앙생활이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신앙의 생명력은 믿음과 그 믿음에서 오는 확신과 기쁨과 감사에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의 시험을 받아 이 믿음을 잃어버릴 때 원망과 의심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신앙의 모든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독화살을 맞은 사람처럼 비실거리게 됩니다.
 
  우리는 2000년대부터 최근까지 교회의 외적 성장이 둔화되고 퇴보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며 섬겼는데 떠나버린 양들을 생각할 때 “이제 전도는 그만 해, 그 시간에 자기 계발에 힘을 써, 자녀들이나 잘 키워” 하고 사탄은 유혹합니다. 사탄은 전도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말합니다.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꼭 양을 쳐야 하는가, 꼭 제자 양성을 해야 하는가? 전도는 꼭 해야 하는가 회의하게 만들며 비웃습니다. 많은 분들이 돈이나 벌자, 자녀나 잘 양육하자는 생각을 하고 복음역사에 대한 열심들이 시들어졌습니다. 어떤 분은 믿음으로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자기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에 문제가 생긴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셨습니다. 변함없이 기도하고 캠퍼스에 올라가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 양성에 도전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공의 정의를 다시 내리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교인수가 늘어나고 큰 교회건물을 짓는다고 목회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해 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나에게 열매가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사람들을 인도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선하시며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여 하나님을 시험하기보다 신뢰함으로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세상 명예에 대한 시험. 마귀는 연속해서 패하자 이번 한 판으로 역전승을 하고자 비장의 카드를 꺼냈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귀는 예수님께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했습니다. 마귀는 자신의 속마음을 뻔뻔하게 드러냈습니다. 아주 담대하고 노골적인 시험이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 대신 자신을 경배하면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서류에 사인만 해라. 그러면 종신 교수직을 주겠다. 홍대 근처의 노른자 땅에 있는 여러 채의 빌딩을 주겠다’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세평 정도 밖에 안 되는 다모아 김밥 집의 월세가 300만원이었습니다. 이 주변에 빌딩 몇 채만 있어도 평생을 돈 걱정 없이 즐기면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영혼을 파는 내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거절해야죠. 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까? 얼마 전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 10억을 줄테니 감옥에 가 전과자가 되어도 좋다는 학생이 초등학생 16%, 중학생 33%, 고등학생은 47%였다고 합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퍼센테지가 높아집니다. 몇해 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책 제목이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였습니다. 어떤 종교학자에 의하면 한국 기독교인들은 복만 준다면 기독교를 버리고 다른 종교로 얼마든지 개종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분석을 하였습니다. 진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복을 얻는 것이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오늘날의 닥터 파우스트들이 자신의 영혼을 팔아서 세상의 명예와 지식과 영광을 사고자 마귀와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자기에게 엎드려 절하라는 마귀의 제안에 분노하시며 대적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사탄의 교만을 드러내며 쫓아내는 말씀입니다. 사탄과 친구하면 안 되고 내보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탄을 대적하심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보다는 나의 성공, 나의 출세를 더 앞세우도록 유혹합니다. 이것은 마귀를 경배하도록 하는 유혹입니다. 우리는 자기 영광을 구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결국 마귀는 예수님을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들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험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말씀을 붙들기보다 실패한 경험을 붙들도록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보다 나에게 도움을 줄 것 같은 세상 사람들의 말을 따르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음으로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떡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고, 스스로 떡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믿고 경배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보호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경배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천하만국과 그 영광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 결국은 질병과 늙음과 죽음이란 사실을 알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경배해야 합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고 말씀을 붙잡음으로 사탄의 역사를 분별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선한 일을 힘씀으로 승리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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