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2014년 봄맞이 특강(겔 47:1-12) 되살아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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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봄맞이 특강
말씀 | 에스겔 47:1-12
요절 | 에스겔 47:8
되살아나리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성령의 역사는 한 개인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서 성령의 역사를 통한 영적 부흥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부흥을 사모하면서 오늘 말씀을 듣기를 기도합니다.
에스겔은 환상 중에 성전 문에 이르렀습니다. 동쪽을 향하여 있는 성전 문의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렸습니다. 에스겔을 인도한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척을 측량한 후에 그 물을 건너게 하는데 물이 발목에 올랐습니다.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건너게 하는데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건너게 하는데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하니 그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었습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2:19-2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로마 군병이 그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그때 물과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피는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한 것이요 물은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배’는 예수님의 배를 말씀합니다. 그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성령을 받습니다. 성령께서는 믿는 자 속에 내주하십니다. 고린도전서 3:16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또한 성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 성령의 물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적실만한 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거대한 로마 제국을 휩쓸고 지나갈 만큼 큰 강이 되었습니다. 로마는 잔인하게 복음 역사를 핍박했지만 결국에는 기독교를 공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엄격한 법률과 강력한 군대로 세계를 정복했지만 도도하게 흐르는 복음의 강물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생수의 강은 도리어 로마의 죄악을 삼켜버렸습니다. 그리고 더 깊고 큰 강을 이루며 유럽으로, 미국으로, 한국과 중국 등 전 세계로 흘러갔습니다.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온 생수는 처음에는 스미어 나왔지만 점점 불어나서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큰 강을 이루었습니다.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며 온 세상을 회복하고 치유하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생명의 역사에 대한 비전을 보여줍니다. 성령을 받은 신자들, 성령이 거하시는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될 생명의 역사에 대한 비전입니다. 이 비전은 하나님 나라 역사에 대한 비전이기도 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충만하게 됩니다(사11:9). 우리가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생수는 강처럼 흐르게 됩니다. 깊이 기도할 때 성령의 생수가 흐릅니다. 이때 그 강물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소생케 하는 놀랍고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
우리나라는 110년 전만해도 은둔의 나라, 미신과 온갖 인습의 어둠 속에 죽어있었습니다. 이 조선 땅에 복음이 들어오자 이 나라가 되살아났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부흥 운동의 결과 변화된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복음신앙을 가진 선교사들에 의해서 전해진 복음은 한국의 젊은이들의 마음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그 중에 이승만은 기독교에 기초해서 이 나라를 세우고자 결심했습니다. 법 아래에서 평등하고 자유를 누리며 사는 나라를 꿈꾸었습니다. 자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합니다. 성령께서는 이승만을 변화시키시고 그를 연단하시고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셨습니다. 유영익 교수는 그가 이룩한 업적을 일곱 가지로 꼽았습니다. ① 미국식 대통령제의 확립, ②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 ③ ‘70만 대군’ 육성, ④ 농지개혁, ⑤ 교육기적, ⑥ 양반제도의 근절 및 남녀평등의 구현, ⑦ 기독교의 확산 등은 그가 아니면 실현될 수 없었던 그 나름의 고유한 업적이요 그가 현대 한국에 남긴 유산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역사는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도하에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은 조선일보와 공동으로 정책 심포지엄을 열고 주요 20개국을 대상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국방 등 13개 부문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국력을 세계 아홉째로 평가했습니다.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민주주의에 의거해서 경제를 도약시킨 사례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후발산업화국가들과 그 이후에 본격적인 산업화를 추진한 국가들로 한정시킬 경우 그 예는 거의 없다고 해야 합니다. 운명적인 약소국 대한민국이 건국을 하고 부국이 되고 민주화를 시키고 오늘날 이처럼 번성하게 된 것은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영적인 기초인 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건너지 못할 만큼 큰 강이 되자 그가 이번에는 에스겔을 데리고 강가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습니다. 그만큼 강가는 비옥하고 풍요했습니다. 나무가 우거지니 공기도 맑고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은 이 강가에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였습니다.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아라바’는 ‘황량한 평지’를 뜻합니다. 요단 유역의 저지대, 사해와 연결되는 저지대를 의미합니다. ‘아라바 바다 곧 염해와..’(신3:17) ‘아라바의 바다’(신4:49)라고 했는데 아라바는 본래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아라바는 우리가 잘 아는 사해입니다(신3:17, 수3:16). 사해는 남북이 80Km, 동서가 18Km, 면적이 1020Km²이며 최대 수심이 396m에 달하는 큰 호수입니다. 사해에는 요단강에서 매일 평균 약 500만톤의 물이 흘러 들어오고 또 그 외 몇 개의 강으로부터 물이 흘러 들어오는데 흘러나가는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물이 넘치기는커녕 항상 고여 있습니다. 이는 사해가 지중해의 수면보다 395m나 낮기 때문입니다. 지표로 사해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있습니다. 또 사해는 연중 기온이 40°C로서 들어오는 물의 양만큼 그대로 증발해 버린다고 합니다. 사해의 물은 지중해보다 5-6 배가 짭니다. 사해의 염분 농도는 표면수가 20%, 심층수는 30%나 되기 때문에 비중이 워낙 커서 사람이 물에 누워서 신문이나 책을 읽는 것이 특별한 묘기가 아닙니다. 사해의 물이 너무 짜기 때문에 거기서는 수영은 할 수 있지만 물을 마시거나 눈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사해에서는 고기가 한 마리도 살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해의 주변 지역은 그 짠 소금기가 배어서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합니다.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성전에서 흘러나온 생수의 강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물이 흘러 들어가자 그 바다가 되살아났습니다. 생수는 사해의 짠물을 흘려 보내버리고 살아 있는 물이 되게 했습니다. 사해는 더 이상 죽음의 바다가 아니라 생명의 바다가 될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성령의 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번성하고 고기가 심히 많게 됩니다. 상어, 고래, 숭어, 농어, 연어 등등 물고기들이 떼 지어 다니게 됩니다. 이 물이 사람의 마음에 흘러 들어가면 모든 사람이 소성합니다. 세상은 거대한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어디 육신적인 죽음뿐이겠습니까? 영적인 죽음이 더 심각합니다. 세상의 죄악은 사해보다도 짜고 시궁창의 물보다 더 더럽습니다. 세상은 거룩함은 증발해 버리고 욕심과 정욕이 배어있습니다. 사랑이 증발해 버리고 이기심과 미움만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절대 진리가 증발해 버리고 거짓된 인간들의 지식과 정보가 바다를 이루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모두가 무의미, 무기력 등 죽음의 병을 앓습니다. 또 치열한 경쟁 때문에 짜디짠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다가 모두들 그 마음이 짠돌이, 짠순이가 됩니다. 사람은 이렇게 세상이라는 죽음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결국에는 모두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의 강물이 들어와 우리 속에 있는 짠 물을 희석시키고 소생시켰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강물은 아무 값없이 우리에게 흘러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흘러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도 살아나면서 번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이 이르는 곳마다, 성령의 역사가 흘러가는 곳마다 이러한 생명의 역사, 되살아나는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이처럼 살아나는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죽어있던 사마리아 여인이 되살아났습니다. 정오에 우물가에 물 길러 왔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되자 그녀의 배에서 영생하도록 샘물이 솟아났습니다. 외롭고 고독하고 무기력하던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자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 예수님을 전하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원망과 불평과 운명의 자리에 누워있던 38년된 병자가 살아났습니다. 관속에 누워있던 청년이 살아났습니다. 무덤에 사흘이나 누워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뉴스를 보면 죄악이 넘쳐납니다. 성공과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음란물로 인해 청소년 어른 할 것 없이 정신과 영혼이 썩고 병들어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생각할 때 절망적인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이러한 세상을 정화시키고 살게 할 것인가? 교육인가? 사회복지로 해결되는가? 정치인가? 이런 것들은 지극히 한계적인 방법입니다. 오직 하나, 성전에서 나오는 이 생수의 강물만이 죄로 죽은 영혼들을 살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 2천년이 흘렀는데 이 세상이 정말로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 않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사람의 죄성은 변함이 없지만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야만족들이 문명화되고 법치가 이루어지고 인간의 자유가 증진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적 부흥이 일어날 때 그 사회가 변화되는 것을 영국과 미국과 우리나라의 사례에서 보았습니다. 영적 부흥이 다시 한 번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성령의 생수가 강물같이 흐르도록 기도해야합니다. 홍대 1/3이 회심하고 한국교회 부흥의 진원지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12절을 보십시오. 사해가 살아날 때 사해 주변의 황무한 땅들도 살아납니다. 그 땅에서 각종 실과나무들이 자라납니다. 나무들은 그 잎이 시들지 않고 끊임없이 열매를 맺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열매를 맺히는지, 모든 나무가 달마다 새 실과를 맺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12절 마지막을 봅시다.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피곤 할 때 이 잎사귀를 끓여 마시면 피로가 싹 가십니다. 이 잎사귀의 약효는 특히 영혼의 병에 잘 낫습니다. 무기력, 무의미, 허무 등 죽음에 이르는 병도 낫고 시기심 교만 정욕 등의 마음의 병도 낫고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도 낫고 은혜 망각증 등 구신자 병도 낫게 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이렇게 남을 치료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11절을 봅시다.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계속 소금 땅으로 남게 됩니다. 진펄은 공동 번역에는 수렁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개펄은 물웅덩이를 말합니다. 이들의 특징은 물이 고여 있는 것입니다. 특히 썩은 물이 고여서 온갖 병균이 득실거리고 파리 모기들이 병을 퍼뜨립니다. 진펄과 개펄은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사람, 은혜를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사람, 물이 고여 있듯이 한 가지에 집착하고 갇혀 있는 사람, 더러운 생각을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 배우지 않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불순종의 자녀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있던 은혜도 까먹고 마침내는 소금 땅과 같이 되어 생명이 살 수 없게 되고 버려지게 됩니다. 그들은 마침내 영원한 심판에 처하게 됩니다.
1938년 9월 9일 북한 평양에서 장로교단이 신사참배를 결의합니다.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하던 평양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일본천황에게 절을 하고 그를 신으로 받아들였습니다. 1948년 9월 9일 북한에 김성주라는 사람이 김일성으로 가장하여 공산괴뢰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거짓에 기초한 김일성 우상숭배가 시작됩니다. 3대에 걸쳐서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독교를 모방한 주체사상이 시작됩니다. 그 결과 6.25사변을 일으키고, 양측에서 250만 명이 죽었습니다. 최근에는 북한에서 300만 명이 굶어죽고 나무껍질로 연명하는 사람들까지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결과 북한의 상황은 너무나 비참합니다. 기독교 탄압이 세계에서 가장 심하고, 세계의 비난을 받는 인권을 유린하는 집단이 되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얼마나 위대한 물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생수는 모든 것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수의 강은 항상 흐릅니다. 항상 흐를 뿐 아니라 점점 더 큰 강이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영적인 환경이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환상과 비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생수가 그렇게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성전 되신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그 성령의 강물이 홍대 캠퍼스와 이 나라와 온 세계로 흘러 들어가기를 기도합니다. 그 강물이 미치는 곳에서 생명이 되살아나고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에스겔 47:1-12
요절 | 에스겔 47:8
되살아나리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성령의 역사는 한 개인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서 성령의 역사를 통한 영적 부흥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부흥을 사모하면서 오늘 말씀을 듣기를 기도합니다.
에스겔은 환상 중에 성전 문에 이르렀습니다. 동쪽을 향하여 있는 성전 문의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렸습니다. 에스겔을 인도한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척을 측량한 후에 그 물을 건너게 하는데 물이 발목에 올랐습니다.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건너게 하는데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하고 건너게 하는데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하니 그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었습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2:19-2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로마 군병이 그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그때 물과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피는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한 것이요 물은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배’는 예수님의 배를 말씀합니다. 그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성령을 받습니다. 성령께서는 믿는 자 속에 내주하십니다. 고린도전서 3:16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또한 성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 성령의 물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적실만한 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거대한 로마 제국을 휩쓸고 지나갈 만큼 큰 강이 되었습니다. 로마는 잔인하게 복음 역사를 핍박했지만 결국에는 기독교를 공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엄격한 법률과 강력한 군대로 세계를 정복했지만 도도하게 흐르는 복음의 강물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생수의 강은 도리어 로마의 죄악을 삼켜버렸습니다. 그리고 더 깊고 큰 강을 이루며 유럽으로, 미국으로, 한국과 중국 등 전 세계로 흘러갔습니다.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온 생수는 처음에는 스미어 나왔지만 점점 불어나서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큰 강을 이루었습니다.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며 온 세상을 회복하고 치유하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생명의 역사에 대한 비전을 보여줍니다. 성령을 받은 신자들, 성령이 거하시는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될 생명의 역사에 대한 비전입니다. 이 비전은 하나님 나라 역사에 대한 비전이기도 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충만하게 됩니다(사11:9). 우리가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생수는 강처럼 흐르게 됩니다. 깊이 기도할 때 성령의 생수가 흐릅니다. 이때 그 강물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소생케 하는 놀랍고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
우리나라는 110년 전만해도 은둔의 나라, 미신과 온갖 인습의 어둠 속에 죽어있었습니다. 이 조선 땅에 복음이 들어오자 이 나라가 되살아났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부흥 운동의 결과 변화된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복음신앙을 가진 선교사들에 의해서 전해진 복음은 한국의 젊은이들의 마음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그 중에 이승만은 기독교에 기초해서 이 나라를 세우고자 결심했습니다. 법 아래에서 평등하고 자유를 누리며 사는 나라를 꿈꾸었습니다. 자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합니다. 성령께서는 이승만을 변화시키시고 그를 연단하시고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셨습니다. 유영익 교수는 그가 이룩한 업적을 일곱 가지로 꼽았습니다. ① 미국식 대통령제의 확립, ②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 ③ ‘70만 대군’ 육성, ④ 농지개혁, ⑤ 교육기적, ⑥ 양반제도의 근절 및 남녀평등의 구현, ⑦ 기독교의 확산 등은 그가 아니면 실현될 수 없었던 그 나름의 고유한 업적이요 그가 현대 한국에 남긴 유산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역사는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도하에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은 조선일보와 공동으로 정책 심포지엄을 열고 주요 20개국을 대상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국방 등 13개 부문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국력을 세계 아홉째로 평가했습니다.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민주주의에 의거해서 경제를 도약시킨 사례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후발산업화국가들과 그 이후에 본격적인 산업화를 추진한 국가들로 한정시킬 경우 그 예는 거의 없다고 해야 합니다. 운명적인 약소국 대한민국이 건국을 하고 부국이 되고 민주화를 시키고 오늘날 이처럼 번성하게 된 것은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영적인 기초인 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건너지 못할 만큼 큰 강이 되자 그가 이번에는 에스겔을 데리고 강가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습니다. 그만큼 강가는 비옥하고 풍요했습니다. 나무가 우거지니 공기도 맑고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은 이 강가에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였습니다.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아라바’는 ‘황량한 평지’를 뜻합니다. 요단 유역의 저지대, 사해와 연결되는 저지대를 의미합니다. ‘아라바 바다 곧 염해와..’(신3:17) ‘아라바의 바다’(신4:49)라고 했는데 아라바는 본래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아라바는 우리가 잘 아는 사해입니다(신3:17, 수3:16). 사해는 남북이 80Km, 동서가 18Km, 면적이 1020Km²이며 최대 수심이 396m에 달하는 큰 호수입니다. 사해에는 요단강에서 매일 평균 약 500만톤의 물이 흘러 들어오고 또 그 외 몇 개의 강으로부터 물이 흘러 들어오는데 흘러나가는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물이 넘치기는커녕 항상 고여 있습니다. 이는 사해가 지중해의 수면보다 395m나 낮기 때문입니다. 지표로 사해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있습니다. 또 사해는 연중 기온이 40°C로서 들어오는 물의 양만큼 그대로 증발해 버린다고 합니다. 사해의 물은 지중해보다 5-6 배가 짭니다. 사해의 염분 농도는 표면수가 20%, 심층수는 30%나 되기 때문에 비중이 워낙 커서 사람이 물에 누워서 신문이나 책을 읽는 것이 특별한 묘기가 아닙니다. 사해의 물이 너무 짜기 때문에 거기서는 수영은 할 수 있지만 물을 마시거나 눈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사해에서는 고기가 한 마리도 살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해의 주변 지역은 그 짠 소금기가 배어서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합니다.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성전에서 흘러나온 생수의 강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물이 흘러 들어가자 그 바다가 되살아났습니다. 생수는 사해의 짠물을 흘려 보내버리고 살아 있는 물이 되게 했습니다. 사해는 더 이상 죽음의 바다가 아니라 생명의 바다가 될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성령의 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번성하고 고기가 심히 많게 됩니다. 상어, 고래, 숭어, 농어, 연어 등등 물고기들이 떼 지어 다니게 됩니다. 이 물이 사람의 마음에 흘러 들어가면 모든 사람이 소성합니다. 세상은 거대한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어디 육신적인 죽음뿐이겠습니까? 영적인 죽음이 더 심각합니다. 세상의 죄악은 사해보다도 짜고 시궁창의 물보다 더 더럽습니다. 세상은 거룩함은 증발해 버리고 욕심과 정욕이 배어있습니다. 사랑이 증발해 버리고 이기심과 미움만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절대 진리가 증발해 버리고 거짓된 인간들의 지식과 정보가 바다를 이루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모두가 무의미, 무기력 등 죽음의 병을 앓습니다. 또 치열한 경쟁 때문에 짜디짠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다가 모두들 그 마음이 짠돌이, 짠순이가 됩니다. 사람은 이렇게 세상이라는 죽음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결국에는 모두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의 강물이 들어와 우리 속에 있는 짠 물을 희석시키고 소생시켰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강물은 아무 값없이 우리에게 흘러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흘러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도 살아나면서 번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이 이르는 곳마다, 성령의 역사가 흘러가는 곳마다 이러한 생명의 역사, 되살아나는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이처럼 살아나는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죽어있던 사마리아 여인이 되살아났습니다. 정오에 우물가에 물 길러 왔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되자 그녀의 배에서 영생하도록 샘물이 솟아났습니다. 외롭고 고독하고 무기력하던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자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 예수님을 전하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원망과 불평과 운명의 자리에 누워있던 38년된 병자가 살아났습니다. 관속에 누워있던 청년이 살아났습니다. 무덤에 사흘이나 누워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뉴스를 보면 죄악이 넘쳐납니다. 성공과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음란물로 인해 청소년 어른 할 것 없이 정신과 영혼이 썩고 병들어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생각할 때 절망적인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이러한 세상을 정화시키고 살게 할 것인가? 교육인가? 사회복지로 해결되는가? 정치인가? 이런 것들은 지극히 한계적인 방법입니다. 오직 하나, 성전에서 나오는 이 생수의 강물만이 죄로 죽은 영혼들을 살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 2천년이 흘렀는데 이 세상이 정말로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 않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사람의 죄성은 변함이 없지만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야만족들이 문명화되고 법치가 이루어지고 인간의 자유가 증진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적 부흥이 일어날 때 그 사회가 변화되는 것을 영국과 미국과 우리나라의 사례에서 보았습니다. 영적 부흥이 다시 한 번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성령의 생수가 강물같이 흐르도록 기도해야합니다. 홍대 1/3이 회심하고 한국교회 부흥의 진원지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12절을 보십시오. 사해가 살아날 때 사해 주변의 황무한 땅들도 살아납니다. 그 땅에서 각종 실과나무들이 자라납니다. 나무들은 그 잎이 시들지 않고 끊임없이 열매를 맺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열매를 맺히는지, 모든 나무가 달마다 새 실과를 맺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12절 마지막을 봅시다.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피곤 할 때 이 잎사귀를 끓여 마시면 피로가 싹 가십니다. 이 잎사귀의 약효는 특히 영혼의 병에 잘 낫습니다. 무기력, 무의미, 허무 등 죽음에 이르는 병도 낫고 시기심 교만 정욕 등의 마음의 병도 낫고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도 낫고 은혜 망각증 등 구신자 병도 낫게 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이렇게 남을 치료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11절을 봅시다.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계속 소금 땅으로 남게 됩니다. 진펄은 공동 번역에는 수렁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개펄은 물웅덩이를 말합니다. 이들의 특징은 물이 고여 있는 것입니다. 특히 썩은 물이 고여서 온갖 병균이 득실거리고 파리 모기들이 병을 퍼뜨립니다. 진펄과 개펄은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사람, 은혜를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사람, 물이 고여 있듯이 한 가지에 집착하고 갇혀 있는 사람, 더러운 생각을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 배우지 않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불순종의 자녀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있던 은혜도 까먹고 마침내는 소금 땅과 같이 되어 생명이 살 수 없게 되고 버려지게 됩니다. 그들은 마침내 영원한 심판에 처하게 됩니다.
1938년 9월 9일 북한 평양에서 장로교단이 신사참배를 결의합니다.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하던 평양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일본천황에게 절을 하고 그를 신으로 받아들였습니다. 1948년 9월 9일 북한에 김성주라는 사람이 김일성으로 가장하여 공산괴뢰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거짓에 기초한 김일성 우상숭배가 시작됩니다. 3대에 걸쳐서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독교를 모방한 주체사상이 시작됩니다. 그 결과 6.25사변을 일으키고, 양측에서 250만 명이 죽었습니다. 최근에는 북한에서 300만 명이 굶어죽고 나무껍질로 연명하는 사람들까지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결과 북한의 상황은 너무나 비참합니다. 기독교 탄압이 세계에서 가장 심하고, 세계의 비난을 받는 인권을 유린하는 집단이 되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얼마나 위대한 물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생수는 모든 것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수의 강은 항상 흐릅니다. 항상 흐를 뿐 아니라 점점 더 큰 강이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영적인 환경이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환상과 비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생수가 그렇게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성전 되신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그 성령의 강물이 홍대 캠퍼스와 이 나라와 온 세계로 흘러 들어가기를 기도합니다. 그 강물이 미치는 곳에서 생명이 되살아나고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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