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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14년 신년2강(행 19:8-21)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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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83회 작성일 14-01-0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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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신년 2 강
말씀 | 사도행전 19:8-21
요절 | 사도행전 19:9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지난 주 우리는 묵은 땅을 갈아라는 말씀을 통해서 마음 밭을 갈아엎고 새롭게 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외적인 면에서 우리의 수고를 어디에 집중해야 할 것인가 또 어떻게 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 배우고자 합니다. 요즘은 복음을 전하는 것, 일대일 성경 공부를 할 양을 얻는 것, 제자 양성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말씀은 좋은 방향이 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개척 역사를 어떻게 섬겼는가를 살펴보고 제자 양성과 말씀의 능력에 대해 잘 배우기를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강론하며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중적인 복음전파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빌리그래함과 같이 말씀을 전하여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회심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기대와 자신감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는커녕 비방하는 그들로 인해 바울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과 변론을 하고 싸우는 논쟁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논쟁에서 이겨봐야 사람을 얻지 못합니다.

  바울은 사역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9b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바울은 반발하는 자들에게서 일단 떠났습니다. 그들과 갈등하며 인간적으로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석달 동안 회당에서 강론하며 쏟아 부은 정성이 얼만데 하면서 미련을 갖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대중적인 방법 대신에 소수 제자 양성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제자들을 따로 세웠습니다. 소수의 제자들을 선발해서 이들을 집중적으로 돕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순수하고 소원있는 몇 사람을 따로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자란 disciple로서 그 어원이 discipline이라는 훈련의 의미에서 나왔습니다. 즉 제자란 누구인가? 말씀으로 훈련된 사람을 가리켜서 제자라고 말합니다. 훈련이 없이는 결코 제자가 탄생될 수 없습니다. 말씀을 공부한다고 금방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듭난다 할지라도 우리의 인격은 여전히 죄악된 과거의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모습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성품과 내면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가장 좋은 제자훈련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집중적으로 말씀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중적인 말씀공부를 통해 내면을 깨끗케 할 때에 가치관이 변화되고 성품이 변화되어서 예수님의 내면을 닮은 제자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몇 사람이라도 영적인 소원이 있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할 때 성령의 그릇이 이루어집니다. 복음 역사에서 제자 공동체가 먼저 형성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 길을 가려고 하면 혼자서는 안 됩니다. 팀을 이루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아직 연약하고 부족해도 멀리 내다보고 팀을 이루어 키워야 합니다. 그러면 동료들 간에 서로 사랑하고 배우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두란노 서원’은 도서관 내지는 강연장으로 쓰여졌는데 바울은 이곳을 이용해서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도왔습니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바울이 이용했다고 전합니다. 이 시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쉬고 낮잠을 즐기는 시간입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이 일할 때 같이 천막을 만들어서 팔고 이 시간을 이용해서 제자양성에 힘을 썼습니다. 그는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2년 동안 날마다 강론했습니다. 그는 일방적으로 말씀을 선포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토론을 하면서 공부했습니다. 소수의 제자들을 붙들고 집중적으로 성경공부하며 복음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이런 집중적인 공부와 훈련을 통해서 제자들은 지도자의 면모를 갖추어갔습니다. 그들은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제자들을 세워나갔습니다.

  20:31절에서 바울은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사람을 깊이 돕다보면 문제가 하나 둘 드러나게 됩니다. 죄악된 부분, 연약한 부분, 과거의 상처들이 드러납니다. 바울은 각 사람의 문제에 직면하고 이를 극복하도록 투쟁하면서 그들과 함께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려면 자기부인을 해야 합니다. 이때 반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는 이런 사람을 순종하도록 돕기 위해서 많은 인내와 기도의 시간을 가지면서 함께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 사람을 온전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키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바울은 고전4:15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느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식에게 갖는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해산의 수고를 감당했습니다(갈 4:19).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애를 태우며 수고를 했습니다.

  이렇게 두 해 동안 했을 때 소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제자양성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적인 투자를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나 후에 아시아 일곱 교회가 탄생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웬만한 도시에는 리더가 파송되고 교회가 서게 되었습니다. 몇 개의 장작개비가 타오를 때 마침내 들판을 태우는 것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골로새 교회를 개척한 에바브라도 이때 은혜 받은 제자이거나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대단한 역사를 이루고자 욕심을 부리기보다 소수의 사람들을 잘 양육하면 이들이 나가서 성경을 가르치는 성경선생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충성스러운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는 또 다른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생명을 걸게 될 것입니다.   
  말씀 역사가 흥왕하게 일어나자 부수적인 일들이 뒤따랐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습니다. 말씀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날 때 성령의 치료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말씀역사와 치유역사는 서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마귀의 역사도 있습니다.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 삼아 악귀 들린 자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였습니다.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그러자 악귀가 대답합니다.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그들은 바울의 흉내를 내다가 톡톡히 창피를 당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말씀도 없고, 믿음도 없는데 방법만 배워서 흉내 낼 때 아무런 능력도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마귀도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고 바울도 압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말씀으로 무장했을 때는 사단이 꼼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을 때는 오히려 휘둘리기 쉽습니다. 마귀를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적인 기술이나 마술적 비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통치하시는 예수님의 권세를 믿을 때 마귀가 굴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역사를 섬길 때 겉모양만 취하고 흉내를 내고 있는가? 아니면 정말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말씀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가? 진짜와 가짜는 결국 다 드러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영에 사로잡히기까지 말씀을 연구하고 회개하며 한 영혼을 사랑하는 수고를 하다보면 열매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복음에 기초해서 양들을 사랑하여 성장하는 역사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에베소에 말씀 역사, 성령의 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나자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렸습니다.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랐습니다. 마술 기초,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마술, 마술의 바다에서 헤엄을 쳐라 등등 수많은 종류의 마술 서적들이 있었습니다.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었습니다. 이 돈을 환산하면 70억원에 해당이 됩니다. 에베소 지역은 마술이 성행하고 귀신이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마술로 먹고 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우상과 거짓 신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귀신을 숭배하던 자들까지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상문화가 거대한 타격을 받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문화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그 시대를 사로잡고 있는 죄악된 관습과 전통과 악을 뿌리 뽑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오늘날에도 이 시대를 사로잡고 있는 각종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음란의 영, 물질의 영, 게임의 영, 미신과 각종 문화병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거룩한 영에 사로잡히게 되면 스스로 죄악된 매개들을 불사르고 제자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복음의 능력은 사람들의 내면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 지역 사회에 문화변혁까지도 이끌어 내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1907년도에 평양 대부흥운동의 결과로 평양에는 기생집과 술집이 많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와서 노름과 점집, 우상숭배 등 각종 미신적이고 죄악된 세력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그렇습니다. 에베소 역사의 핵심은 말씀역사입니다. 말씀 자체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말씀의 힘은 각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문화의 변혁운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이 가진 파괴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고 전파하고 순종하기를 힘씀으로써 이 사회가 살기 좋은 나라로 변화되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원합니다. 오랫동안 만연했던 죄악된 문화, 악령의 문화, 사탄의 문화가 일소되고, 각 곳에 교회가 세워지는 놀라운 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 말씀 자체는 겨자씨와 같이 작지만 점점 성장하여서 온 세상을 뒤덮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사역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어떤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바울이 처음부터 로마를 바라보고 꿈꾼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시아의 로마라 불리우는 에베소가 복음으로 개척되는 것을 보고 로마도 도전해 볼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가진 능력을 체험하고 나서 세계선교의 큰 비전을 갖게 된 것입니다. 말씀은 어떤 지역도 어떤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비전을 에베소 역사를 통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서 1:16절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복음을 믿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 말씀의 능력을 체험했을 때 로마 선교를 위해 끈질기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마더 배리 선교사님도 처음에 학생 복음 운동을 작게 시작했지만 말씀이 가진 능력을 체험했을 때 국내는 물론이요, 선진국과 공산권과 이슬람세계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비전의 열매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도 2014년을 시작하면서 거룩한 야망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야망은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고 그 말씀을 공부하고 순종하는 가운데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의미있게 살 수 있는 힘은 내 자신이 먼저 선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체험한 은혜가 분명할 때 다른 사람도 변화시키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모든 변화는 관계에서부터 옵니다. 먼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 가운데 변화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말씀과 제자 양성 역사를 통해서 홍익대학이 변화되고 신촌이 변화되고 이 나라가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주의 청년들이 많이 일어나서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행동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말씀의 능력을 덧입고 열 두 제자양성에 도전하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서 캠퍼스 개척과 새로운 나라 개척의 비전을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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