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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14년 마19강(13:1-23) 말씀이 열매를 맺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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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5회 작성일 14-06-22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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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태복음 17 강
말씀 | 마태복음 13:1-23
요절 | 마태복음 13:23
  말씀이 열매를 맺는 사람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우리는 누구나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한 번 뿐인 인생을 참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열매 맺는 삶을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 씨를 심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씨와 같습니다. 씨 속에는 생명이 담겨 있어서 그것이 땅에 묻히면 싹을 틔우고 줄기를 내고 자라서 마침내 열매를 맺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심기면 30배에서 100배까지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심기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입니다. 본문은 사람의 마음을 네 가지 밭으로 분류하면서 어떻게 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나의 마음 밭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분별하고 이를 어떻게 가꾸어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예수님은 집에서 나가 바닷가에 앉으셨습니다. 갈릴리 바다가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말씀을 듣기에 좋았습니다. 이따금 새들이 오고가며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고기들은 하얀 비늘을 드러내며 물 위로 튀어 올라왔습니다. 바닷가 근처에 있는 밭에서는 농부가 씨를 뿌리고 있었습니다. 큰 무리가 월드컵 응원하러 광화문에 모이는 사람들처럼 하나 둘 예수님에게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밀려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병풍처럼 서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앉고 학생은 서 있는 것이 당시의 교실 풍경이었습니다. 마이크 시설이 없던 야외 강의동에서 예수님은 우렁차고 큰 목소리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로 말씀을 전하면 사람들이 기억하기가 좋습니다. 비유는 말씀을 묵상하기가 좋습니다. 또 비유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명을 입체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진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천재이십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귀와 머리와 가슴으로 듣는다고 합니다.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것은 이해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귀는 할례 받은 귀로서 영적인 진리를 알아듣는 것입니다(렘 6:10).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는 것은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로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듣습니다. 또한 자기에 관한 말은 귀를 쫑긋하게 세우고 잘 듣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영접하고 새겨들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깨닫는 은혜를 주시도록, 성령의 빛을 비추어 주시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판단과 경험으로 걸러냅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기 쉽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말하는 사람의 뜻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들을 때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들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고 들어야 합니다. 그와 하나가 되어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씨에 비유하셨습니다. 씨는 작고 보잘 것이 없어서 그 위력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씨 자체에는 생명력과 유전 인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씨가 땅에 심겨져서 싹을 틔우고 줄기를 내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면서 자라다 보면 열매를 맺습니다. 그 씨 속에 담긴 유전인자가 모든 것을 펼쳐 보이면 놀라운 모습을 띠게 됩니다. 그 아름다움과 영광은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과 신비를 담고 있지만 어떤 마음 밭에 심겨지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천차만별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11-13).” 천국의 비밀은 ‘닫아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아무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이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천국의 비밀을 깨달아 알게 되면 고구마 줄기를 캐내듯이 줄줄이 보배로운 비밀이 쏟아집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감격과 기쁨은 무궁무진합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참된 만족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은 처음 예수님을 만날 때 경험한 것이 다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풍성해집니다.

  반면에 교만과 불신과 무지로 인해서 천국의 비밀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만과 불신에 찬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은 더 완악하게 되고 미궁에 빠져 심판을 피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들은 가지고 있던 지식마저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눈은 봄으로, 그들의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습니다.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제자들이 보고자 하는 것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제자들이 듣는 것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다 이루어진 복음을 듣고 믿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스승이 되셔서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듣고 묵상하며 진리의 보화를 풍성히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현재의 것에 만족을 누리는 것으로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보화를 더 깊이, 더 높이, 더 풍성하게 알아가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길가. 악한 자를 대적하면서 들어야 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길가에 씨가 뿌려진 자는 말씀을 듣지만 깨닫지 못합니다. 길 가는 단단해서 씨가 뚫고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교만과 선입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이 가득 합니다. 의심과 인간적인 생각으로 말씀을 대하기 때문에 아예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쁜 일상으로 인해서 말씀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악한 자 사탄이 와서 말씀을 들을 때에 빼앗아가 버립니다. 고린도후서 4:4절은 말씀합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서 말씀의 영광의 빛이 비추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같은 모국어로 말씀을 전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딴 나라 사람들이 하는 말과 같이 여깁니다.

  아무리 좋은 땅도 오래 동안 방치해 두면 딱딱해 집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생활을 게을리 하면 마음이 딱딱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죄인들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도록 하십니다. 마음이 딱딱해 질 때 우리는 회개하고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아서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과 기도로 사탄을 대적해야 합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교회에 오래 다니지만 체험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먼저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귀가 열리고 은혜 속에서 자라게 됩니다. 한 사람은 30년 동안 아내를 따라 교회에 다녔는데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사업에 어려움을 당하자 아내를 보호하려고 함께 새벽 기도를 나가서 은혜를 받고 다음 주일에 말씀을 들을 때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그의 삶은 사업을 하면서 예수님께 받은 은혜를 증거하는 삶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셋째, 돌 밭. 20,21절을 보십시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돌밭은 흙이 얇습니다. 햇볕이 쪼이면 온도가 상승하기 때문에 즉시 발아를 하고 싹을 틔웁니다. 잘 자라나는 것 같지만 뿌리가 약해서 말라버리거나 바람이 강하게 불면 뿌리가 뽑혀버립니다. 이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 곧 넘어지는 자입니다.

  이들은 길가와는 달리 어느 정도 소원은 있어서 처음에 은혜를 잘 받습니다. 자기 혼자 은혜를 다 받는 사람처럼 말씀에 대한 반응이 빠르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감정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심지가 약합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 받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속으로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말씀을 깊이 상고하고 마음에 새기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면화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인생 전반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말씀이 생활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돌밭과 같은 사람의 문제는 환란과 박해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과 박해를 통해서 우리를 강하게 연단하십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채찍을 맞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지당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습니다. 유대 당국자들은 사도 야고보가 순교한 다음에 베드로를 사형시키려고 했습니다. 무교절에는 사형을 시키지 않기 때문에 베드로를 옥에 가두되 사슬에 묶고 군인들이 좌우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내일 사형을 당할 사람인데 베드로는 아주 평안한 가운데 잠을 잤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혔는데 두려움에 떨기보다 밤에 찬송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뿌리가 깊은 신자들은 환난과 박해를 당할 때 더욱 진가를 나타냅니다. 또한 환난과 박해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비하면 잠시 잠간입니다. 우리가 장차 받을 영광에 비하면 환난과 핍박은 아주 가벼운 것입니다. 환난과 박해는 신자들에게서 세상에 속한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십니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일시적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또한 신앙생활은 예수님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보이지 않는 가운데 부단한 영적 투쟁을 하는 사람은 뿌리를 깊이 내립니다. 말씀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주님과 깊이 연합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나무가 비바람 속에서 스스로를 지탱하고 양분을 빨아들이기 위해서 맹렬하게 뿌리 내리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성경다독, 소감쓰기, 일용할 양식, 기도생활, 말씀실천은 말씀의 뿌리를 내리기 위한 내적투쟁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때로는 손해를 보고 희생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착한 일을 하고 욕먹을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악한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당한다고 실망하거나 낙담해서는 안 됩니다. 오래 참고 견고하게 서서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 것이 나중에 우리의 자랑거리가 됩니다.

  넷째, 가시떨기 밭. 22절을 보십시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가시떨기 밭은 토양은 좋은데 곡식과 가시가 함께 자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즉 세상의 염려, 재물의 유혹, 여러 가지 세상 욕심이 마음의 에너지를 빼앗아가 버립니다. 세상의 염려와 근심은 하지 않아도 될 생각과 준비로 인해서 시간과 물질과 에너지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염려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데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염려가 지나치게 되면 효과적인 에너지 사용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돈은 우리 생활에 요긴한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 부하려 하는 사람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돈을 탐내는 사람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찌르게 됩니다.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힌다는 것은 말씀을 질식시킨다는 뜻입니다. 욕심과 염려는 영적인 소원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염려하기보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욕심을 내기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면 경건에 큰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일용할 양식과 일상에 필요한 것들이 끊임없이 생깁니다. 한 분은 자신이 기도하는 것을 자세히 검토해 보니 매일 하나님께 용돈을 달라는 것이더란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현실적인 문제들을 기도로 구하고 응답을 받을 때 영적인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더 큰 목표를 갖고 구하게 됩니다. 그때 믿음의 담대함을 갖게 됩니다. 또 내적 외적으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다섯째, 좋은 땅. 23절을 보십시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좋은 땅은 나무에 필요한 산소 공급과 영양분이 많고 흙이 부드럽습니다. 좋은 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 깨닫습니다. 말씀을 잘 받아들입니다. 말씀을 실천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그와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애와 공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런 일을 행하도록 지혜를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깨달을 때 믿음이 자라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받는 입장에서 말씀을 깨닫기까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떠오르기까지 공부해야 합니다. 진리의 핵심에 다다르기까지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에 힘입어서 회개하고 행동을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지속적으로 신실하게 감당할 때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 중에 오래 참음,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런 인격적인 특성들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뒷받침 될 때 사랑, 희락, 화평과 같은 열매들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저의 일대일 목자이신 김이삭 선교사님은 경상도 상주 산골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가 둘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둘째 부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힘들 때마다 김이삭 선교사님에게 “내가 왜 널 낳았는지 모르겠다, 산에서 호랭이가 내려와서 확 물어가 버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푸념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그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는 운명적인 집안을 탈출하기 위해서 악착같이 공부했고 서울법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허무하고 슬펐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고시 공부하는데 자신은 인생의 의미를 알지 못해 이러저리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름에도 겨울 오바를 입고,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데 장화를 신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우철이라는 친구가 그를 UBF 창세기 성경학교에 초청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마음이 냉냉했지만 창세기 1:31절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 한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전혀 영적 기초가 없었지만 그 한 말씀이 그의 마음에 심기자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항상 어머니가 ‘내가 왜 너를 낳았는지 모르겠다’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었습니다. 말씀은 그에게 살 힘을 주었습니다. 그 힘으로 열심히 고시공부를 했는데 순전히 하나님 은혜로 그 이듬해 고시합격을 허락하시고 그 보다 더 영광스러운 요회 목자 직분도 허락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1983년 LA 선교사로 나아가서 많은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는 올 봄에 권요한 선교사님께 책임을 넘기고 은퇴했습니다. 지금 LA센터에 150명이 넘는 예배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CBF만 해도 15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정말 한 사람의 마음에 심긴 말씀이 100배의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때마다 말씀을 주시고 깨우쳐 주시며 자라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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