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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14년 마14강(10:1-33) 두려워하지 말고 전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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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14회 작성일 14-06-0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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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태복음 제 14 강 
말씀 | 마태복음 10:1-33
요절 | 마태복음 10:26,27

  두려워하지 말고 전파하라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여행을 보내시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말씀을 전파하라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추수할 일군이 적은 시대에 일군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친히 제자들을 추수할 일군으로 훈련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키우는 일에 힘을 쓰셨습니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어 진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대를 탓하지 않고 열심히 제자들을 훈련하셔서 일군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도 추수하는 일군들로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열 두 사도를 세우심.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은 마가복음 3:13-15절에 나와 있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제자들은 먼저 예수님을 잘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사상, 그의 가르침을 배웁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권위를 위임 받아서 나아가 전도하며 병을 고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합니다. 예수님이 권한을 위임하고 일을 맡길 때 제자들은 현장 감각이 뛰어난 사역자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아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대신합니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님을 판 자였습니다. 가나나인 시몬은 누가복음에서는 셀롯이라 하는 시몬으로 소개됩니다. 이는 그가 과거 셀롯당에 속했었는데 그들은 외국인 통치자를 증오하면서 로마 정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바돌로매는 돌바위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그는 요한복음의 나다나엘이 분명합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출신의 평범한 어부들, 세리, 열심당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약의 열두 지파를 본 따서 신약의 열두 지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새 이스라엘의 대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내보내시면서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방향을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를 통해서 한 민족을 이루시고 그 민족을 통해서 세계 만민에게 복을 주고자 하셨던 전략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택하심을 받은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빛이 될 만한 공동체를 먼저 만드시고 그 공동체를 통해서 말씀을 전파하며 섬기며 사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면 사람들은 그 빛을 보고 몰려오는 것입니다. 입소문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자 나아오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가라는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우리는 캠퍼스 양들부터 그것도 내가 속한 가까운 캠퍼스 학생부터 전도하라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캠퍼스 양들과 자녀들에게,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동심원을 그리면서 점점 바깥으로, 세계로 전도해 나가야 합니다. 이번에 남리브가, 이은경목자님들이 새롭게 전도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여름 수양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전도의 열정을 불태우기를 바랍니다. 목자님들은 양들을 데리고 나가서 전도 훈련을 시키며 제자 훈련을 하기를 기도합니다. 한 사람의 제자는 또 다른 제자를 낳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수고의 대가를 바라지 말라고 하십니다. 천국 복음을 전해도 예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권능을 행했다고 해도 자신들의 권능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이것들을 거저 받은 것이지 돈 주고 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캠퍼스 양들을 섬길 때 수고에 비해 열매가 적습니다. 섬겨도 양들은 아무 말도 없이 떠나기를 잘 합니다. 이로 인해 실망이 되고 손해의식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필요한 것들은 복음을 영접하고 제자들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헌신하는 것을 받아서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선교를 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전도를 하면서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물질도 필요하고, 옷, 신발도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것들을 위해 돈을 가지지 말고, 두 벌 옷도 필요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일군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십니다. 이는 구약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신 25:4).” 신약에서도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고전 9:7).”,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4).”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딤전 5:18).” 제자들은 전도 여행을 할 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돈이 많으면 돈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제로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또 어떤 성이나 마을에서 합당한 자를 찾아내라고 하십니다. 합당한 자는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환영하고 영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집에 머물면서 섬김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거기서 필요한 것을 공급받으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섬기는 그들도 평안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도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된 사람들을 통해 공급해 주십니다. 이를 믿고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환영을 받을 때도 있지만 배척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14,15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복음을 전했는데 배척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복음이 문제라거나 자신이 문제인 것처럼 의기소침해지지 쉽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자긍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복음을 거부하는 양들을 우리는 최대한 인내하며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거부하거나 악의를 품고 거절하면 단호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둘째, 두려워하지 말라. 16절부터는 전도할 때 받게 되는 고난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어린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면서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복음을 환영하고 성경을 공부하겠다는 사람을 만나면 신이 납니다. 지치지도 않습니다. 이런 양들을 만나면 전도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러나 전도 현장이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거부하는 사람, 무시하는 사람, 심지어 미워하고 핍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고난 앞에서 당황하지 말고 올바로 대처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순한 양과 같습니다. 양은 공격 무기도 없고 약합니다. 제자들은 아직 훈련과 연단이 부족합니다. 반면에 이리는 사나운 동물입니다. 양들을 잡아먹습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리와 같이 공격합니다. 잘못하다가는 제자들이 상처를 받고 세상에 먹힐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위험성이 있는데도 왜 그 어린 제자들을 보내실까요? 첫째로,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구원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늘 영광을 버리고 험한 세상에 오신 것은 세상을 사랑하여 구원코자 하심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을 구원하고자 위험해도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둘째로, 제자들을 훈련하기 위함입니다. 약한 훈련만 받으면 사람이 강해질 수 없습니다. 강한 훈련이 제자들을 강하게 만듭니다. 제자들은 뱀같이 지혜로워야 합니다. 뱀은 성경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제자들은 사탄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뱀은 지혜가 뛰어납니다. 그 지혜가 잘못 이용되어 간교하게 되었습니다. 간교하기까지 한 뱀의 지혜가 제자들에게 필요합니다. 뱀의 지혜는 이리의 소굴에서 자신을 지켜 나갈 수 있는 신중한 분별력입니다. “뱀의 지혜는 주변 환경에 대한 통찰력 즉 사람과 물건에 대한 상황 분석과 민감성, 합당한 때에 합당한 것을, 합당한 방법으로 행하는 지혜입니다.” 그러나 이런 뱀 같은 지혜는 악이나 세상과의 타협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 선교사님은 교장 선생님이셨던 부친을 전도해야 했습니다. 그 누나가 아버님께 복음을 전하면 유교 선비이신 그 분은 “네가 감히 나를 가르치느냐”면서 화를 내셨습니다. 그래서 이 분은 아버님께서 좋아 하시는 약주를 권해서 기분이 좋게 만들고 나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아버님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죄악되고 타락한 세상으로 나가지만 순결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곳에서도 거룩, 진실을 지켜야 합니다. 특히 복음의 순수성을 타협하지 말고 지켜야 합니다. 

  제자들이 당하게 될 핍박은 더욱 심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자들을 공회에 넘겨줄 것입니다. 이는 종교적인 핍박입니다. 유대교에 의해서 자행될 핍박으로 인해서 제자들은 회당에서 채찍질을 당할 것입니다. 또 제자들은 정치적인 핍박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경배한다는 이유로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갈 것입니다. 특히 로마는 다신교 사회로서 황제 숭배를 강요했기 때문에 제자들은 정치적인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할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할 말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말할 것을 생각하며 고민한다면 제자들은 골머리를 앓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할 말을 주실 것이니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정말로 견디기 힘든 것은 사랑하는 가족으로 인한 핍박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가족은 가장 가깝고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공동체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가족이 있음으로 인해 거기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형제들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될 때 그 고통은 매우 클 것입니다. 실제로 지금도 모슬렘 지역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가족에게서 살해 위협을 받고 사회에서 추방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사 문제로 인해서 가족이나 일가친척들로부터 상놈 소리를 들으면서 핍박을 받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핍박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가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5-37).” 또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님들의 사랑은 여러 모양의 핍박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핍박을 받는 가운데서 믿음은 인내로 나타납니다. 힘들어도 이미 고난을 받으시고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견뎌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핍박을 받는 가운데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에 대한 소망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이 동네에서 핍박하면 저 동네로 피해야 합니다. 피해서 다른 동네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핍박을 하는 동네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핍박을 통해서 다른 곳을 개척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핍박이 심해지자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안디옥과 세계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핍박은 바람이 불을 들판으로 번지게 만드는 것과 같이 개척 역사에 불을 붙였습니다. 핍박은 끝이 있습니다. 우리가 박해를 견디며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다 보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합니다.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합니다. 집 주인이신 예수님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야 말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즉 우리는 핍박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드러난다는 것일까요? 먼저 제자들이 어떤 자들이고,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았고, 왜 핍박을 받았는지 모든 것이 다 드러날 것입니다. 그들의 의로움과 무죄성이 드러날 것입니다. 반면 핍박자들이 누구이고, 하나님 편에서 어떤 악한 일을 했는지 다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을 믿을 때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다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제자들은 복음을 숨기지 말고 밝히 드러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 은밀히 어두운 데서 들었던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고,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해야 합니다. 복음이 다 드러나기에 숨기지 말고 공개적으로 밝히 증거해야 합니다. 두려워하면 숨게 됩니다. 복음도 숨기고 밝히 증거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이기고 복음을 공개적으로 밝히 드러내어 전파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까? 28절을 보십시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몸은 언젠가는 죽을 것이지만, 영혼은 영원합니다. 몸은 보이지만 영혼은 보이지 않습니다. 핍박자들이 행할 가장 무서운 일은 죽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순교를 당해도 우리 몸만 죽는 것이지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습니다. 정말 두려워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 29:25).” 진정으로 두려워 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 즉 5천원 정도에 팔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합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합니다. 핍박을 받을 때 우리는 무가치한 존재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핍박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사람 취급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핍박이 두려워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면 예수님도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움을 이기고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면 예수님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실 것입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우리를 모른다고 하면 우린 끝장입니다. 로마 시대 수많은 신자들은 굶주린 사자의 위협 앞에서, 또 화형의 위협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순교를 했습니다. 그들은 순교했지만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대적 하는 사람이나 핍박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 강도가 더 강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들을 두려워하면 우리는 위축되고 말 것입니다. 피하고자 한다거나 어디 숨고자 한다면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핍박을 많이 받다보면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해집니다. 전도는 두려움과의 싸움입니다. 전도를 거꾸로 하면 도전입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는 가운데 끝까지 제자를 양성하며 사명인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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