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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14년 마8강(6:19-34)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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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98회 작성일 14-04-1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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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태복음 제 8 강 
말씀 | 마태복음 6:19-34
요절 | 마태복음 6: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지난 주 신자의 경건생활을 은밀하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경건생활이라고 하면 영적인 생활로서 물질적인 생활과 분리하여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경건생활과 물질생활을 분리하지 아니하십니다. 살아 있는 동안 영과 육을 분리할 수 없듯이 신앙과 물질생활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관리하는가 하는 문제는 경건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생각하는 것의 70%가 돈과 관련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돈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가지고 물질을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영원한 삶을 생각하며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 주식을 투자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단기투자를 하면 대부분 망한다고 합니다. 처음에 얻는 유익에 마음이 빼앗겨서 큰 흐름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대신에 장기투자를 해야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워렌  버핏 같은 사람들은 장기 투자를 하고 기부를 많이 하기로 유명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투자의 원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보물은 값 비싸고 귀중한 금, 은, 다이아몬드, 비단, 금화와 같은 것입니다. 은행이 없던 시대, 팔레스틴 사람들은 보물을 땅에 묻어두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보물은 좀과 동록이 해합니다. 좀은 옷이나 음식을 해치는 벌레입니다. 동록은 금속의 부식을 이르는 말입니다. 당시 팔레스틴 가옥은 흙벽돌로서, 도둑이 구멍을 뚫고 훔쳐갈 수 있었습니다. 좀과 동록과 도둑으로 인해서 땅은 우리의 보물을 쌓아 두기에 불안전한 곳입니다. 은행이 발달된 요즈음도 은행이 도산되는 일이 있습니다. 주식이 폭락하면 하루아침에 수많은 돈이 휴지조각이 되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돈을 쌓고자 하는 사람들은 헛수고를 하는 낭패를 당하기 쉽습니다. 보물을 땅에 쌓는 것은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땅에 재물을 쌓고 자기만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저축과 보험에 가입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대책 없이 살아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진정 우리 자신을 위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우리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권면하십니다.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합니다. 내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내 마음도 있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은 구제하는 삶(마6:2-4)을 말합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선하고 의로운 일(마10:42,마25:40), 주와 복음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는 것입니다(마5:12,고후4:17). 타인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는 것입니다(딤전6:17-19). 선한 사업을 위해서 물질을 쓰는 것입니다. 우리의 장래 안전보장을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바늘 가는 곳에 실 따라 가는 것과 같이 보물 있는 곳에 마음이 갑니다. 보물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짓는 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19,20절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보물을 어디에 쌓느냐에 따라, 나의 생각과 마음과 가치관과 행동이 좌우됩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으면 마음도 하늘로 향하고 보물을 땅에 쌓으면 마음도 땅으로 향합니다. 그래서 존 칼빈은 ‘명예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자는 야망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고, 돈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자는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고 쾌락을 제일 좋아하는 자는 필연코 방탕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도록 돕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도록 돕는 것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면 영원한 삶을 준비하게 됩니다. 우리가 오래 살아야 90세, 100세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에 가면 주와 복음을 위해서 드린 시간과 물질과 보물들이 놀라운 상급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을지, 땅에 쌓을지 선택하도록 하신 예수님은 이제는 누구를 섬길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하십니다. 24절을 보십시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영어 성경에는 하나님과 재물 즉 돈이 둘 다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돈은 오늘날 신의 위치에까지 올라가 있습니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돈의 힘 앞에 사람들이 무릎을 꿇습니다. 돈을 받고 치대 교수가 제자들의 논문을 대신 써주고, 돈 있는 사람들이 재판에서 감형되거나 집행유예가 되는, 유전무죄가 되는 세상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돈으로 인해서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돈으로 인해서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돈으로 인해 형제들끼리 싸우고 미워하고 고소하기까지 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합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돈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돈은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에 둘 다를 섬길 수 없습니다. 둘 다 절대 헌신, 절대적인 사랑을 요구합니다. 재물은 우리가 목적을 두고 추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수단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에 질서가 잡히고 분별력이 생깁니다.

  둘째, 염려하기보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먹고 입는 문제로 염려하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바가 무엇입니까? 2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예수님은 땅보다 하늘에 보화를 쌓고,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때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문제가 ‘하나님만을 추구하면 나의 먹고 사는 현실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특히 제자들은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먹지,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음식과 의복은 본질이 아닙니다. 부수적인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본질은 목숨이고, 생명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풍성한 생명을 누리고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염려하면 몸과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염려라는 헬라어 ‘메림나오’는 분열되다, 나뉘다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지나친 근심 걱정으로 인해 마음이 여러 갈래로 분열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염려의 늪에 빠지게 되면 삶의 목적을 상실하게 됩니다.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다 더 중요한 목숨과 몸을 해치기 쉽습니다. 염려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새는 염려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합니다. 백합화도 염려하지 않고 열심히 물을 빨아올리고 탄소동화작용을 합니다. 오늘날은 지식사회이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기보다 스마트하게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조건 열심히 일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을 사용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학문, 직장 생활, 가정 생활, 목자 생활에 적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자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되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많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기르시는 것처럼 그 자녀들을 기르십니다.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를 책임져 주실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훨씬 더 중요한 목숨과 몸을 주셨는데 어찌 덜 중요한 음식과 의복을 마련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생각하여 보라는 말은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 성장을 면밀히 관찰해 보라는 뜻입니다. 목숨과 몸을 주신 하나님이 나에게 필요한 음식과 의복을 당연히 주실 것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입히시거든 하물며 우리이겠습니까? 하찮은 잡초와 같은 들풀을 최고의 영광을 누린 솔로몬의 옷보다 더 아름답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제자들을 얼마나 더 영광스런 것으로 입히시겠습니까?

  “믿음이 적은 자들아!” 결국 염려하는 것은 믿음이 적은 문제입니다.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이방인들은 오직 세상의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만 관심 갖고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을 지칭합니다. 그들은 공급해 주시는 하늘 아버지를 모르기 때문에 염려 가운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필요를 스스로 채우는 데 삶의 목표를 둡니다. 그러나 믿는 자녀들은 목숨과 몸에 대해서 생각하고 본질적인 일을 위해서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먹고 마시는 일, 우리에게 필요한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십니다. 그는 아실 뿐만 아니라 넉넉하게 채워주는 분이십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선택했다면 세상에서 먹고 입고 사는 문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염려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구해야 합니다. 빌 4:6,7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 마음과 생각을 염려로부터 지키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몸도 건강해지고 목숨도 오래 유지가 됩니다. 우리는 염려하는 대신에 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3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내일 해야 할 염려는 내일 주시는 은혜로 극복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내일을 미리 앞당겨 염려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고 해결도 없습니다. 내일의 주인은 염려하는 내가 아니라 은혜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염려할 내일 문제까지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며, 그때 닥치게 되면 감당할 힘과 은혜도 공급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미래까지도 다 알고 다스리시는 분으로 미래에도 나를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미리 앞당겨서 염려하는 것이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그 날 괴로움은 그 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써 감당하고  내일 일을 미리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장래 염려를 하나님에게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해를 지나놓고 보면 모든 필요했던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인생의 괴로움을 인정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잘 살아야 합니다. 행복은 오늘 하루를 잘 사는 데 있습니다. 미래를 행복하게 살려면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셋째,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3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은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덤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그의 나라’란 예수님에 의해 이미 시작된 나라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을 때 성령을 받습니다. 성령을 받을 때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맺힙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제자의 더 나은 의를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과 내적인 관계성을 바르게 맺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이 본래 율법을 주신 목적대로 사는 것입니다. 칭의의 의나 하나님의 성품으로서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소비하는데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먼저’의 의미는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는 우리의 삶에서 최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중심 주제는 삶의 우선순위 문제입니다. 구체적으로 예배를 드리기 전에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형제를 비판하기 전에 나 자신을 성찰하고 그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먼저 대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그 다음이 이웃, 마지막으로 자신의 것을 추구할 때 기쁨이 오고 행복이 옵니다.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주님은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주님은 ‘모든’을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 영적인 것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 필요한 것들, 즉 의식주, 결혼, 자녀 교육, 노후 준비 까지 그야말로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입니다. ‘더 하신다’는 것은 현실적 필요에 대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완벽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인생에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저는 졸업을 하고 제대를 했는데 동생이 대학에 들어갈 때였습니다. 제가 직장을 잡고 동생 뒷바라지를 하고 어머니를 모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전요한목자님은 종로에 와서 인턴 훈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장 동생 등록금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붙잡고 순종했습니다. 어머니는 빚을 내서 동생의 등록금을 해결하셨고 동생은 졸업을 하고 취직도 하고 늦게나마 결혼도 하였습니다. 또한 저는 목자 생활을 하다가 신장병에 걸렸습니다. 2년 동안 누워 있고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나이는 32살인데 아파서 결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결혼을 할 수 있는 돈도 한 푼 모아 놓은 것이 없었습니다. 단지 마태복음 6:33절 말씀을 붙잡고 목자로 결단을 하고 오직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하나님께서는 결혼도 하게 해 주시고, 네 자녀를 낳고, 교육시키며 귀한 동역자님들, 선교사님들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염려할 문제들은 계속해서 때마다 생기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사명을 감당하면서 복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지키시며 축복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내가 왜 살고 있습니까? 내가 죽은 다음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돈을 많이 벌고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병들어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일생 돈을 모으기 위해서 염려하고 근심하며 살다가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죽을 때에 돈을 많이 벌지 못해서 한스럽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물질과 시간을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해서 드리는 것이 귀하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더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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