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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024년 막6강(4:1-34) 하나님 나라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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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67회 작성일 24-05-12 21:22

본문

2024년 마가복음 6강
말씀 | 마가복음 4:1-34
요절 | 마가복음 4:11

하나님 나라의 비밀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오늘 우리는 네 가지 비유를 배웁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등경 위의 등불 비유, 자라는 씨의 비유, 겨자씨 비유입니다. 이 비유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다른 비유들을 해석할 수 있는 기초가 됩니다(13). 이 비유의 핵심적인 소재는 ‘말씀하심’과 ‘들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그의 말씀을 어떻게 듣는가에 따라서 하나님 나라와 멀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비밀을 앎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에 속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유들로’ 말씀하심은 하나님 나라의 진리가 체험적인 진리임을 말해 줍니다. 깨달음 속에서 그 나라에 속하는 사람이 가지는 기쁨과 변화 속으로 사람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머리로 이해하는 귀만을 가지고 말씀을 듣고자 해서는 안 되고, 온 마음과 영혼의 귀를 동원해야 합니다. 온 삶이 따르는 반응으로 듣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씨 뿌리는 자의 비유(1-20). 예수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떠밀려 바다에 빠질 수 있었기 때문에 배에 올라앉으시고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비유로 가르치면 형이상학적인 진리를 그림을 그리듯이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유로 가르치면 쉽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또 비유는 기억하거나 묵상하기가 좋습니다. 비유는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감추인 진리를 드러내고 (22), 관심이 없거나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깨닫지 못하게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12). 3장에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탄의 나라와 동일시하며 공격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와 더 멀어지고 멸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호하고 제자양성에 집중하고자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주의를 집중하도록 하십니다. 들으라! 예수님의 가르침은 ‘들으라’로 시작해서(3a)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로 끝납니다(9). 원어에 보면 예수님은 듣는 사람의 주목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들으라’와 ‘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두 가지 말은 마가복음에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단순히 귀만이 아니라 마음의 눈까지 열어서, 듣는 가운데 또한 보고 깨닫고 변화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어떤 자세로 들어야 할까요? 

  첫째로, 말씀을 듣는 것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릴 때에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는데 새들이 와서 먹어버립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사람이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입니다. 왜 말씀을 전해도 때로 씨도 안 먹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즉 사탄 때문입니다. 말씀을 전할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빼앗는 것을 보면 말씀 역사가 있는 곳에 사탄이 대기하고 있다가 말씀을 채가고자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 역사는 보이지 않는 싸움 즉 사탄과의 영적인 전쟁입니다. 전쟁을 할 때 땅을 빼앗느냐 지키느냐가 목표인 것처럼 영적인 전쟁은 말씀을 빼앗기느냐 지키느냐의 싸움입니다. 보통 길가 같은 사람들은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무시하거나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사람이 사탄의 영향력 속에 있고 사탄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인본주의 사상이나, 진화론, 세상의 철학 등으로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말씀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정답이 뻔한 질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답하지 않는 종교지도자들과 이혼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하는 종교지도자들을 보시며 마음이 완악하다고 하셨습니다(3:5). ‘완악한’ 상태는 딱딱한 길가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따뜻한 사랑으로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하고 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마음의 문을 열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을 때 깨닫지 못했지만 다시 생각하고 알려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비록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듣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모르면 묻고 배워야 합니다. 알고자 하는 소원을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로, 말씀을 들으면 인내심을 가지고 예수님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나가서 뿌릴 때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습니다. 씨는 적당한 수분과 햇빛이 있어야 싹을 틔우고 광합성 작용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들을 때 즉시 기쁨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넘어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예수님을 열렬하게 환영하는 큰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았죠. 그러나 조금만 어려움이 생겨도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환난이나 박해가 ‘말씀으로 인하여’ 일어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말씀은 기존의 가치와 충돌하거나 갈등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시자 귀신이 나가고 병자들이 나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고 바리새인들이 핍박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이를 신성모독이라 생각하고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를 볼 때 말씀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이는 마치 해가 돋은 후에 식물이 타서 말라버리는 상황과 같습니다. 햇빛은 식물 성장에 필수적입니다. 햇빛과 같이 환난이나 박해는 영적인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즉 어려움을 당할 때 말씀을 인격적으로 깨닫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이나 박해는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잘 견디면서 예수님과 그 말씀에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려면 단순, 반복, 지속적인 공부를 통해서 말씀의 맛을 체험해야 합니다. 말씀 공부와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성이 맺혀져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경험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에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말씀에 뿌리를 내릴 때,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셋째로, 세상 염려와 탐욕의 잡초를 뽑아내야 합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나가서 뿌릴 때에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졌습니다. 씨가 싹을 틔우고 자라자 가시도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시 못하였습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도 역시 말씀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서 말씀을 막습니다. 환난이나 박해가 외부적인 공격이라면 염려,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은 내부적인 공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막는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식물 주위에 잡초가 아주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도 사방에 사람으로 둘러싸여 있으면 질식하거나 압사 당할 수 있습니다. 또 심한 긴장이나 압박을 느낄 때 ‘숨이 막힌다’고 말합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말씀의 은혜를 에워싸고 압도해 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일이나 재물을 불필요하다거나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문제는 세상과 재물을 대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염려와 탐욕과 정욕은 밭에 잡초가 늘 자라는 것처럼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밭에서 잡초를 뽑아 주듯이 염려와 탐욕을 회개함으로 뽑아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염려거리들, 탐욕을 채울 거리들을 보는 대신에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눈을 들어 믿음의 주를 바라볼 때에 이런 것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염려 대신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더하여 주십니다. 또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됩니다. 염려와 탐욕에 힘을 쓰지 않으면 정말로 필요한 일에 힘을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가진 것에 자족하고 감사할 때에 염려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말씀을 듣고 받아야 결실할 수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나가서 뿌릴 때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 씨가 싹을 틔우고 자라 결실하였습니다.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습니다. 세 번의 실패와 대조적으로 세 번의 점증적인 성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깨닫고, 변화되고, 죄사함의 은혜를 받습니다. 여기서 ‘듣는다’, ‘받는다’, ‘결실한다’는 동사의 시제는 모두 현재입니다. 앞에서 언급된 세 부류의 사람들이 말씀을 ‘듣는다’고 할 때는 부정과거로서 한 번에 끝나버렸습니다. 세 부류의 사람들이 말씀을 듣지만 내외적인 방해가 오면 중단해 버리는 것과 달리, 좋은 땅에 비유된 사람은 지속적으로 말씀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과거에 말씀을 듣고 받았고 현재도 말씀을 듣고 받습니다. 결실하는 사람들은 말씀을 받고 이전의 생각이나 행동이 틀리면 이를 고칩니다. 삶에서 만나는 장애물과 싸우면서 반복적으로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가운데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말씀에 대한 갈급함, 소원이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열정이 있습니다. 이미 여러 번 공부한 말씀이지만 들을 때마다 늘 새롭게 깨닫고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말씀을 받음으로 깨닫고 돌이키고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음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격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덧입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길 힘을 얻습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함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택함 받은 자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요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지 않으시면 사람이 절대로 알 수 없는 지식입니다. 비밀은 아무하고나 공유하지 않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공유하죠. 또 가족에게는 비밀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면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여러분은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그의 말씀을 듣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알고자 하는 소원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외인들이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주목해 보면 사실 그들은 말씀을 들음으로 자신들이 변화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지 않고자 한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전한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루터기와 같은 남은 자들을 통해 메시야를 보내셔서 회복하실 소망을 주셨습니다(사6:10). 하나님의 약속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는 궁극적인 목표는 돌이켜 즉 회개하여 죄 사함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는 최종 목적은 영혼구원이나 교회설립이 아니라 전 우주에 하나님의 주권을 세우는 것입니다.
 
  밭이 어떤 종류인지는 처음에는 모릅니다. 씨가 뿌려졌을 때 심각한 구분이 생겨납니다. 아예 싹을 내지 못하는 땅, 싹을 내어도 곧 말라 죽는 땅, 어느 정도 자라기는 하지만 결실에 이르지 못하는 땅도 드러납니다. 이런 땅들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풍성한 결실을 내는 땅과 확연히 구별됩니다.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씨앗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말씀의 씨앗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런 말씀을 전하는 자이며 또한 말씀 자체이십니다. 비록 그 씨앗이 땅 속에 가만히 파 묻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때로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구별된 좋은 밭 속에서는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상상치 못한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이것이 씨앗의 운명입니다. 말씀의 비밀입니다. 예수님 자신의 길입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을 받아야 합니까? 감추어진 메시아의 길, 그것은 결코 작은 결과를 낳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이 되고 큰 것이 허무하게 허물어지는 반전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하나님 나라가 그러합니다. 

  둘째, 등불 비유(21-25).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자세로 듣는지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예수님은 등불 비유를 통해서 비유로 가르치시는 궁극적인 의도는 드러내고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어떤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자기 기준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예수님이 제시하시는 새로운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죄 사함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이성과 경험을 기준으로 말씀을 판단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전통을 기준으로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셋째, 자라는 씨의 비유(26-29).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리면 싹이 나고 이삭이 자라고 곡식이 되면 추수하게 됩니다. 이 비유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씨앗의 생명력과 그 활동의 현재성입니다. 이미 약동하고 있는 그 놀라운 생명력은 결실의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땅 위에 임한 하나님 나라는 그와 같은 생명력으로 스스로 자라날 것입니다. 그 자라나는 것이 사람의 눈에는 드러나 보이지 않을지 모르나, 그것이 다 자라난 뒤에는 피할 수 없는 추수의 낫이 다가옵니다. 그것이 드러날 때의 갑작스러운 결과 앞에 놀라지 않기 위해서는 뿌려진 씨앗이 현재 자라나는 것을 지켜봐야 합니다. 농부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도 매일 매일 거기서 거기 같습니다. 아무 변화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으로 관찰할 수 없을 뿐이지 자라고 있습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습니다. 내가 할 수 없고 하는 일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하십니다.

  넷째, 겨자씨 비유(30-34).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수 있을까요?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지만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냅니다.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커집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출신의 어부 네 명으로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셨습니다. 3년 동안 열두 명의 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한 나라의 시작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조금 있다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보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마침내 로마 제국보다 커지고 모든 나라를 통치하게 될 비전을 보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복음역사가 어렵게 보입니다. 성장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고, 마침내 온 세상을 뒤덮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빈약한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원대하고 영광스러운 완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보물과 같은 생명의 말씀을 가진 사람들이요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혼자만 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 나라를 소유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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