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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024년 부활절 특강(막16장) 그가 살아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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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0회 작성일 24-03-3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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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부활절 특강
말씀 | 마가복음 16:1-20
요절 | 마가복음 16:6

그가 살아나셨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질병이 생기고 고난을 받고 죽음에 직면하는 일이 많아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런 우리에게 영생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죄와 심판에서 구원을 받게 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연약하고 한계가 많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으로 살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를 형성하게 합니다. 즉 우리의 구원과 교회의 존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기초해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들은 제자들의 특징이 나타나 있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들은 여자들은 놀라서 떨고 도망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부활의 소식을 들은 제자들도 믿지 못했다는 표현이 네 번이나 반복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고 그의 사역에 놀랐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시간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성령으로 함께 하시고 이 예배 가운데 임재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부활의 증인으로 살 수 있도록 사랑과 능력을 넘치게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부활의 첫 증인들(1-8).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가서 예수님께 바르기 위한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말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형제들과 사도들은 두려워서 다 숨거나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자매님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모습을 다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고 무덤에 안치하는 것도 다 보았습니다. 일요일 아침이 되자 무덤을 막고 있는 큰 돌을 옮길 사람도 없이, 정말 대책 없이 무덤으로 갔습니다. 여인들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여인들이 눈을 들어보니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컸습니다.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우편에 앉았다’는 것은 통치와 위엄을 상징합니다. 흰 옷을 입은 청년은 생명력이 왕성하고 희고 빛나는 옷을 입은 천사였습니다. 흰 옷은 순결함과 승리를 상징합니다. 여자들은 무덤에서 죽은 시체 대신 살아 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죽음에 패배한 인간의 무력함을 상징하는 무덤 속에서 여자들은 그와 정반대로 생명이 충만한 위엄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인들은 예상하지 못한 일로 인한 충격과 두려움으로 떨었고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청년은 놀라는 여자들에게 더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청년은 그들이 찾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입니다(행 2:24). 그는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썩음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의 죄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었습니다(창 3:6,10). 죽음은 분리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함으로 먼저 영적인 죽음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죄를 범할 때 네가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범했어도 금방 죽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3:6절에 보면 그가 죄를 범하고 10절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분리된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아내와의 관계가 파괴되었습니다(창 3:12). 이는 사회적인 분리입니다. 마지막으로 죽음은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킵니다. 아담은 구백삼십세를 살고 죽었습니다(창 5:4,5). 이와 같이 죽음은 죄의 결과요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일생 섬기는 삶을 사시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죽으셨습니다. 그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그는 죄가 없는 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증명되었습니다. 그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의 구주요 왕이 되셨습니다. 제자들이 고난의 길을 갈 때에 죽음은 헛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서 증인으로서의 삶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는 죽으실 때에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이 땅에서 고난을 받으며 증인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증인의 모범이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하늘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자들에게 경배를 받으시며 주라 칭함을 받게 되셨습니다. 여기서 주라 함은 그가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는 부활승천하사 모든 권위와 위엄을 가지고 이 세상을 통치하시며 구원 역사를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둘째, 마리아에게 나타나심(9-11). 막달라 마리아는 전에 일곱 귀신이 들려 폐인과 같았는데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 받은 바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가 너무 커서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복음 역사를 섬겼습니다. 이런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9).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여자들과 함께 무덤에서 도망쳤다가 마음이 다소 안정된 다음에 아마 다른 여인들과 함께 사도들에게로 갔습니다. 무덤이 비었다는 소리에 요한과 베드로가 벌떡 일어나 무덤으로 서둘러 갔습니다. 이때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몇 여인이 그들과 함께 다시 무덤으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두 사도는 무덤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안내자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무덤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 두 사도는 더 이상 여인들을 따르지 못하고 뛰어갔습니다. 그들이 빈 무덤을 보는 동안이나, 아니면 그들이 돌아간 다음에 빈 무덤 앞에 서서 울고 있다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살아나신 후 최초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만을 기록했습니다. 그것은 이른 새벽이었고 막달라 마리아는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슬퍼하고 울고 있었으며 누구도 마리아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들은 우리와 같이 보이는 것을 믿고 들리는 것을 인정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불신이 강조되어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을 역설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장군이면서 동시에 문학의 천재인 윌레스는 그의 친구인 무신론자 로버트 잉거솔(Robert Ingersoll)과 기독교 신화를 영원히 없애 버릴 책을 써서 인류를 그리스도에게 매어있는 굴레로부터 벗겨주고자 다짐했습니다. 윌레스는 유럽과 미국의 유명한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깊이 연구하여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허위라는 것을 주장하는 책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책의 제1장을 마치고 제2장의 첫 페이지를 쓰다가 그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앞에 무릎을 꿇고 "당신은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확실성에 더 이상 대항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그 사건이 있은 지 2주 후에, 소설(벤허)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부제는 "그리스도의 이야기(A tale of the Christ)"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1880년 출판과 동시에 200만부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여러 차례 연극과 영화화 되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많은 신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욕을 먹고 고난도 받고 때로는 순교하는 것을 볼 때 무력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문을 가지고 제자도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의 생애보다 비극적이고 불행한 삶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신자들에게 고난과 죽음의 길이 실패나 끝이 아니라 진정한 승리의 길이라는 소망과 확신을 줍니다. 끝까지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갈 수 있는 큰 힘이 됩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끝까지 섬김과 희생의 길을 갈 힘을 줍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증인은 순교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자기를 부인하고 죄악된 자아가 죽음으로 부활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증인의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시는 장소까지 따라가지 못하고 도중에 도망쳐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씻기 어려운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시 이런 제자들 앞서 갈릴리로 가십니다. 제자들은 완전히 실패한 것 같은데, 예수님은 그들이 다시 제자의 삶을 시작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이 말씀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처음 제자의 길로 부르신 분도 예수님이시고, 실패한 제자들을 다시 부르시는 분도 예수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연약한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사도들은 요한 빼놓고 모두가 다 순교함으로 증인의 삶을 마쳤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영광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제대로 드러낸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신 사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계시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롬1:4). 나아가 자신이 이 땅에서 가르치신 교훈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절대적인 진리임을 드러내셨습니다. 마가복음은 여자들의 반응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시작하신 복음이 그의 부활을 통해 완성되었음을 역설적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서 안에서 놀라고 떨고 무서워하는 여자들이 나중에 위대한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믿지 못했습니다. 부활을 아무에게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부활의 소식에 대한 여자들의 첫 반응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거나 미약한 신자들에게 역설적으로 큰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위협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죽음의 위협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죽음보다 더 무섭고도 사람을 압도하는 소식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신자들은 구원을 경험한 후에도 왜 계속 세상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실제로 죽음을 경험해야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왜 신자들을 그런 처지에 내버려 두시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 무섭고 강력한 부활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죽음이 더는 신자들에게 최후의 적이 아닙니다. 죽음이 가벼운 일은 아니지만, 더는 사람을 일어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권세는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죽음은 정복되었기 때문에 신자들은 이제 죽음의 경험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신약 교회와 로마교회가 그처럼 거세고 오랜 박해를 견딜 수 있었던 비밀이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박해였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에게 박해를 떨치고 일어날 힘을 주고도 남았습니다. 

  셋째, 두 제자에게 나타나심(12-13). 제자들은 슬퍼하며 울고 있었고, 예상대로 마리아로부터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고, 두 사람은 예루살렘에 남은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역시 믿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율법에서 증언의 확실성을 보장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제자들은 누가 말해도 믿지 않을 기세입니다. 그들은 왜 이렇게 믿지 않았을까요? 죽음은 끝이라는 생각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넷째, 열 한 사도에게 나타나심(14-18). 예수님은 여자들에게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고자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믿음없는 것을 보고 만남을 미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열한 제자가 음식을 먹을 때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을 만나자마자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이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이었습니다. 완악함과 믿지 아니함은 같은 말입니다. 딱딱하고 고집스러운 마음은 책망을 통해서 깨뜨려야 합니다. 완악한 마음을 사랑으로 녹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일지라도 증인들의 증거를 통해서 믿기를 원하셨습니다. 증인을 통한 부활의 증거는 오늘날 주님이 우리와 교회에 주신 사명입니다.
 
  15-18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믿음과 비전을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선교사로 보내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요 목자로 보내셨습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를 삼고 세계 선교를 감당하여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회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만민은 ‘κτίσις’(크티시스)로 온 세상 혹은 모든 피조물(all creation, the whole creation, all the world)을 의미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까지도 포함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사람을 죄와 사망 권세에서 구원할 뿐만 아니라 식물과 동물, 환경까지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습대로 우주 질서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다섯째, 제자들과 함께 일하시는 주님(19,20).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계속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켜 세우고, 하루에 삼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에게 명하자 귀신들이 떠나가고 죽은 자들이 살아났습니다. 마가는 사도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을 갔다가 힘들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후일에 사도바울의 좋은 동역자가 되었고, 마가복음을 저술했습니다.

  또한 오늘날 구원역사는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사 친히 이루어 가시는 역사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1:16). 나아가 복음은 심판과 정죄를 나누는 기준입니다. 예수님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이 되십니다(딤후4:1).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들은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증명해주는 초자연적인 사건들입니다. 우리 청년들을 통해서 주님은 일하고 계시고 그가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이들을 통해서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세계 선교가 더욱 힘있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소식보다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를 두렵게 하고 놀라게 하는 죽음의 권세를 압도하는 권위로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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