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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16년 행 12강(13:1-52) 이방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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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1회 작성일 16-07-03 13:55

본문

2016년 사도행전 12 강
말씀 | 사도행전 13:1-52
요절 | 사도행전 13:47

이방의 빛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하나님은 깊은 흑암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기 위해 큰 빛으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요 생명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세상의 빛으로 보내셨습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빛으로 인식할 때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시작하게 된 경위와 1차 전도 여행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의 선교 전략은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그들의 거절과 비방, 핍박을 당하게 되자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방인 전도로 방향을 전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시는 뜻을 영접하였습니다. 이 시간 사도 바울과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섬겼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성장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 안디옥 교회(1-3). 안디옥 교회에는 쟁쟁한 성경 선생들이 있었습니다. 바나바와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사울이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다국적 모임이었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로마, 유대인으로 국적이 다양했습니다. 성경 선생들이 중심이 되어 열심히 성경을 가르쳤을 때 말씀이 흥왕하여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교회가 안정되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리더들은 이때 교회를 어떻게 더 키울 것인가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이렇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았습니다. 축복의 때에 자기만족에 빠져서 교회 자랑을 하거나 자기들끼리 교제에 힘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금식까지 하였습니다. 그들은 교회 내부의 필요에 집중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았습니다. 그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것입니다. 

  이때 성령께서 방향을 주셨습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이에 안디옥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의 기둥과 같은 인물들입니다. 그들을 분리시켜 이방 세계를 향한 도전을 하도록 성령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기를 원하십니다. 제자 양성은 혼자서 하기 어렵습니다. 팀을 이루어서 해야 합니다. 각자가 가진 시간과 재능을 오병이어로 드려서 제자양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전도의 은사가 있는 분들이 앞장서고 모두가 합심해서 동참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역동적인 생명 구원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선교보고대회를 잘 치룬 지금은 여름 수양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각자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좋은지 묻고 헌신할 때입니다.

  둘째, 복음의 원수를 대적한 구브로 전도(4-12).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렀습니다. 구브로는 동부 지중해에 있는 폭 100Km, 길이 225Km의 섬으로서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습니다.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났습니다.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었는데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마술사 엘루마는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을 썼습니다. 그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마술사요 율법을 악용하는 거짓 선지자요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사울을 대적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신비한 체험을 강조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이에 비해 사울은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게 된다고 주의 바른 길을 전했습니다. 서기오 바울 편에서 볼 때 두 가르침이 부딪치며 자신을 혼란스럽게 했을 것입니다. 이때 이 문제를 사울은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9,10절을 보십시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사울의 이름이 이때부터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사울은 큰 자인데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가 사역을 하면서 겸손의 중요성을 배웠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성육신하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을 닮고자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마술사 엘루마를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영적인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영적인 분노를 하였습니다. 원수를 대적하였습니다. 그는 성령을 의지하여 악령을 내쫓았습니다.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11).” 바울이 믿음으로 그를 책망하고 저주하자 엘루마가 맹인이 되었습니다.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한국 최고의 주먹으로 알려졌던 시라소니(이성순)는 40:1의 싸움에서도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는 믿고 있던 이정재에게 린치를 당하고 복수를 하고자 권총을 차고 다녔습니다. 이런 그를 누가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귀신의 세력에 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복음 전도를 듣고 예수님을 믿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렇지만 악령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와 가족들과 믿음의 사람들이 50일 동안의 영적인 싸움을 하고 기도 한 후에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영락교회의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정재를 전도하지 못한 것이 끝내 한”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이기고 지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며 오직 사랑만이 진실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이 복음이 처음 전파될 때 저항하는 세력, 대적의 힘에 부딪히게 됩니다. 믿지 않는 친구나 애인, 가족 등이 믿지 못하게 옆에서 훼방합니다. 세상에는 악한 영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서 복음을 믿지 못하게 훼방하는 것입니다. 졸업과 취직이 어렵기 때문에 성경 공부를 하면 시간을 빼앗긴다고 생각하여 그만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직장 일이 바쁘기 때문에 성경 공부와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병원에 보내야하고 양육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예배를 자주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을 압도하며 굴복시킬만한 스피릿과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이 충만하여 바울과 같은 스피릿과 능력있는 전도자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시대의 도전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제자 양성하는 것이 쉬운 때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만이 시대에 도전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성령의 권능을 의지해야 하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진리의 말씀을 양 손에 들고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실제적인 문제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면 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결국 세상의 정신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배들이 고생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고 목자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이 역사를 지켜왔습니다. 우리가 이런 자세를 배워야겠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셋째, 온 시민이 말씀을 듣고자 모인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와 이방의 빛으로(13-52).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마가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떤 학자는 바나바에서 바울로 리더쉽이 바뀌자 이에 불만을 품은 마가 요한이 돌아갔다고 말합니다. 마가 요한의 태도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 차이는 매우 컸습니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은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회당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권했습니다. 이때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다고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선지자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님을 정죄하여 십자가에 죽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고 증거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루셨다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38,3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바울의 증거는 명백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죄사함을 얻고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그러면서 경고합니다.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바울은 반어법을 사용하여 그들에게 믿음을 갖도록 촉구했습니다. 사람들은 믿음의 길을 멸시합니다. 사람의 노력을 강조하고 사람 자체를 강조하고 싶어 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얻고자 했는데 그것이 헛되다고 하니 멸시합니다. 자기 의가 강한 사람들은 거저 주시는 은혜를 말하면 받아들이기를 어려워합니다. 자신들이 뭔가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합니다. 사람들은 실패자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싫어합니다.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으로서 자신을 인정하기를 꺼려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다 죄인입니다. 다 부패한 존재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도 성령의 은혜입니다. 바울의 메시지의 결론은 부활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사함과 구원을 얻는다는 것과, 이 복음의 메시지를 멸시하고 믿지 않으면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두 가지의 메시지를 확신있게 전해야 합니다. 듣기 좋도록 은혜와 구원만 전하지 말고 구원과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습니다. 그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습니다. 두 사도는 그들과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했습니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였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 가운데 놀라운 말씀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설교를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였습니다. 이때 바울과 바나바는 어떤 방향을 잡았습니까? 46,47절을 보십시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는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다음에 이방인에게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구원하여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부르심을 거부하자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는 이런 방향을 잡을 때 이사야 49:6절 말씀을 근거로 결정했습니다. “내가 너로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이방의 빛은 이방인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이방은 어둡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하여 어둡습니다. 진리가 없기 때문에 죽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흑암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빛이 필요합니다. 이방의 빛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입니다. 진리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흑암 가운데 비추는 큰 빛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하나님은 이방의 빛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도록 보내셨습니다. 이 시대 캠퍼스는 참으로 어둡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기보다 취업센터와 같이 변화되었습니다. 진리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이들에게 빛이 필요합니다. 진리의 빛, 생명의 빛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땅 끝까지 이르게 하고자 부르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이제부터 이방인에게만 전도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후에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전례대로 먼저 유대 회당에 들어가서 전도하는 것을 계속했습니다. 현재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에서 유대인들이 배척하고 비방하므로 믿지 않는 이방인들의 전도에 힘쓰겠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방인들에게 전도를 계속했고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게 되었습니다(49).  어쨌든 이런 일들을 통하여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정체성을 굳게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바울의 결정을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었습니다.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한 바울을 통해서 배우는 바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의 반박과 비방에 부딪히면서 바울은 올바른 방향을 잡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를 올바르게 깨닫고 방향을 잘 잡았습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들, 복음을 전해야 할 영혼들이 온 세상에 가득한데, 극렬히 반대하는 유대인들을 붙잡고 전도해보려고 싸우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실 바울도 유대인이었고 동족을 사랑했기에 먼저 구원의 복음을 유대인들에게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이방의 빛으로 삼으신 부르심을 깨닫고 붙잡게 되었습니다. 이방의 빛이 되어 땅 끝까지 구원하겠다는 소원과 비전을 붙잡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캠퍼스 선교를 통해서 세계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신다는 비전을 붙잡고 있습니다. 캠퍼스는 젊은 지성인들로 가득 하고 이들은 미래의 지도자들입니다. 젊은이들은 항상 사회 변화를 주도해왔습니다. 젊은 시절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사람들이 성장하여 세계 선교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캠퍼스 지성인들이 복음을 영접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방향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현재 사역의 열매가 적기 때문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전도해야 할까요? 이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캠퍼스 전도가 어려울 때일수록 부르심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도 캠퍼스 전도에 우리를 부르셨고 쓰고 계신 하나님을 믿고 전도 방법을 개선하여 이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아직도 캠퍼스에는 복음을 듣지 못한 젊은이들이 매우 많습니다. 웨스트 엘에이 센터는 점심에 함께 모여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도전 전도를 하여 많은 양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이 있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믿음으로 캠퍼스 선교를 힘써 감당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역사가 강력하게 있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냈습니다. 두 사람은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습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바나바와 바울의 전도로 믿게 된 비시디아 안디옥의 제자들입니다. 사도들은 쫓겨났지만 이미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한 공동체를 이뤄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땅 끝은 내가 섬기는 나라로부터 중동과 북한까지입니다. 지금 가장 복음을 전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곳이 땅 끝입니다. 국내에서 사역하는 우리에게 홍대 복음화는 작은 일이요 전 세계를 품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려울 때에 우리를 이방의 빛으로 삼으시고 진리의 빛을 비추도록 하신 그 부르심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어두운 세상에,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한 줄기 희망의 빛, 생명의 빛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이방의 빛으로 삼으시고 만민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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