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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년 눅4강(3:1-22)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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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6회 작성일 17-03-1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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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제 4 강
말씀 | 누가복음 3:1-22
요절 | 누가복음 3: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새 학기가 되어 누가복음을 새롭게 공부하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메시야의 길을 준비했던 세례 요한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과 신약을 잇는 가교와 같은 인물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도왔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돌 직구를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에게 말씀을 들으러 몰려왔습니다. 그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선구자 세례 요한의 사역과 그가 전한 예수님을 깊이 배우기를 원합니다.   

  첫째, 회개와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누가는 의사요 역사가이면서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의 사역을 전하기 전에 그가 사역한 시대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누가가 당시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소개하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했다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실제 세상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당시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에서 일하고 있던 대제사장인 안나스와 가야바에게 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시 성전은 강도의 소굴과 같이 부패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빈 들에서 성경을 필사하고 연구하며 기도와 청빈한 삶을 살고 있던 세례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시대를 뒤집어 엎었습니다. 빈 들은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사막에서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자신에 대한 성찰을 깊이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인터넷과 스마트 폰 등 마음을 산만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빈 들에서는 조용하게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던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그가 사람들을 찾아다닌 것이 아니라 말씀에 갈급한 사람들이 광야로 몰려나왔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빈들에서 들려온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내가 사무실이나 골방이나 들판을 거닐면서 혼자 하나님 앞에서 찬송을 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가운데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회개는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설 때 회개가 됩니다. 먼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인식해야 합니다. 내가 주인의 생각에서 얼마나 벗어났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기준이나 일반적인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을 알아야 자기발견을 하고 돌이킬 수 있습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전파했습니다(마3:1,2).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을 왕으로 영접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고 그가 주시는 복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구원입니다. 또 영원한 생명이요, 죄사함이요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사람은 그와 친밀해지고 그에게 구하는 것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떤 죄를 회개해야 합니까? 먼저는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4-6절을 보십시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된 상태에 있을 때 소망의 말씀으로 주신 것입니다. 고대 시대 왕이 행차하게 되면 마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미리 가서 그 길을 평탄하게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왕으로 오시는 길을 준비합니다. 이를 위해 모든 패인 골짜기가 메워져야 합니다. 열등감, 낮은 자존감 대신에 자신이 하나님이 앞에서 얼마나 귀한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섭섭한 마음을 갖고 불신하는 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생각과 사상을 낮추어야 합니다. 굽어진 생각을 펴야 합니다. 이리저리 꼬인 생각들을 평탄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요한의 사역을 통해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주님이 사람들의 마음에 임하시도록 준비시켜야 합니다. 아무 준비가 없이 갑자기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라고 하면 사람들은 소동할 것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를 사랑하고 말씀을 전해주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말씀 공부를 통해 나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준비를 시킬 수 있습니다. 캠퍼스의 학생들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될 영광을 바라보며 이들과 대화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친밀한 관계가 맺어질 때 그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을 준다면 당황하고 슬슬 피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심기 위한 사랑의 수고를 감당하길 바랍니다.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를 어떻게 도왔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세례 요한의 책망을 들은 사람들은 그를 피해 도망을 가지 아니하고 도리어 충격적인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의 책망 속에서 영적 권위와 사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독사의 자식이라는 말은 사탄의 자식이라는 심한 책망입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이런 그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이라고 말을 하니 자존심을 철저히 부수어 버리는 말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자기에게 배우러 나온 서울대 학생들에게 “이 석두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당연히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례를 받은 자 중에 지옥 갈 자는 없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요한은 이런 그들에게, 그런 헛된 자부심을 가지지 마라,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혈통이 그들의 구원을 보장해주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길가의 흔해빠진 돌맹이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말로만 회개할 것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들이 맺어야 할 열매는 그들의 삶에서 십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성품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나 종교지도자들도 신앙생활 하며 말로 회개는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로 회개하고 눈물까지 흘린다고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 후에 삶의 변화를 보일 수 있습니다. 뉘우치고 결심하는 것만으로 다가 아닙니다. 회개를 한 증거로 행동에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러자 무리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요한은 그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었습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11).”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한은 내가 귀하게 여기는 소유를 어려운 이웃과 나누라는 방향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어려운 사람에 대한 배려요, 사랑의 열매입니다. 나의 욕심만 채우며 더 많이 소유하고자만 애쓸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불우한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다른 환경에 대하여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잘 관찰하여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중국 속담에 ‘한 시간 행복하려면 낮잠을 자고, 하루 행복하려면 낚시를 하고, 한 달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일 년 행복하려면 유산을 받아라. 그리고 평생 행복하려면 네 주위의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받았는데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가운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일생토록 겸손한 마음으로 실천하고자 힘써야 할 덕목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욕심이 많은 게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공부를 남보다 잘 하여 좋은 점수를 받고 쭉 그렇게 남을 밟고 일어서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서 많은 연봉으로 풍족하게 사는 것이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성적지향적인 교육방침에 의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청소년 자살률이 1위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것이 먼저 필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하려고 하는 이기적인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을 키워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누는 것에 대한 기쁨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그러자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일정한 금액만 로마에 바치면 되었고, 기타 수출입에 대한 관세나 상품의 통과세에 대한 징세권을 가졌습니다. 이를 통해 세금을 부과하여 자기 주머니를 채웠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세무 공무원 몇 년 하면 평생 먹고 살 돈을 모은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힘을 이용해 부당하게 세금을 거두고 부자가 되면 성공을 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기업에서는 세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세무 공무원들에게 돈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들은 모르는 척 하고 받아 챙겼습니다. 기업들은 회계사들을 동원하여 분식회계를 하였습니다. 회계사들은 분식회계를 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이런 세계에서 공정하고 정직한 삶을 살고자 하면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좌천되기도 합니다. 후진국에서는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의가 용납이 되면 그 사회에서 누가 정직하게 사업을 하고자 애를 쓰겠습니까? 사회가 부패하게 되면 부익부 빈익빈은 더욱 심화되고 양육강식이 일반화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잘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관행을 깨고 정직하고 신뢰할 만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군인들도 물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세례 요한은 이들에게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말했습니다. 강탈은 위협하여 돈을 탈취하는 것이요 거짓으로 고발하는 것은 공갈을 쳐서 돈을 강탈하는 것입니다. 식민지에 주둔한 군인들에게는 그들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위협하고 공갈하며 돈을 뜯어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힘 있는 그들이 백성들을 보호하고 안전을 지키는 쪽으로 써야 하고 받는 급료에 족한 줄을 알라고 말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둘 다 물질과 관계된 것입니다. 실제 삶 속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라는 것이요 정직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세상 가운데 사랑의 실천과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강같이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호5:24). 지난 주에 대통령이 탄핵되어 그 직을 파면하였습니다. 헌법 수호의지가 부족했고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제까지 권력의 힘으로 위에서 찍어 누르던 죄악된 것들이 청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각 사람이 자기가 처한 곳에서 직업에서 공의롭게 또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가 맺어야 할 회개의 열매들입니다. 물론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의 전부는 아닙니다. 상인이라면 정직한 저울로 물건을 파는 것이 될 수 있고, 정치인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위해, 정의를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 될 수 있고, 의사라면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환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병자를 살리는 것에 가치와 보람을 갖는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맺어야 할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무엇일까요? 우리 모두는 직업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일에 부름을 맡은 복음의 일군이요 사역자들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로서 합당한 열매를 맺기를 힘써야겠습니다.

  둘째, 성령 세례를 주시는 예수님. 사람들은 요한에 대해 그가 혹시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했습니다. 그의 사역이 온 유대 지역을 넘어 이방인들에게 까지 확장되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요한은 사람들의 생각을 간파하고 말했습니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16.17).” 요한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내 뒤에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의 능력에 놀랐으나 요한은 그리스도는 자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있고 높은 분이심을 증거합니다. 당시 신발끈을 푸는 것은 종들이 하던 일인데 자신은 그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리스도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의 물세례는 회개했다는 인증샷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그것은 의지적인 결단일 뿐 우리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반면 성령의 세례는 무엇입니까? 성령의 역사로써 우리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는 예수님이 주시는 것인데 우리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 새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죄악된 소원과 행실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이 할례를 받아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신30:6).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죄사함을 주시며, 새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으로 나의 영혼이 거듭나고 나의 삶이 근본적으로 새롭게 되며 변화되는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불로 세례를 베푸신다’는 뜻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과 같은 능력으로 우리의 죄를 불태워 정결케 하며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신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하나는 믿지 않는 자에게 임하는 심판의 불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메시아의 오심은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는 성령의 축복이,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불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고난 받는 전도자. 세례 요한은 그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는 회개하기는커녕 노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은 헤롯처럼 복음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악을 행하며 심판받을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고자 할 때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복음 전도자로 살고자 할 때 핍박을 각오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일에 본이 되셨습니다.

  21, 22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에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러나 그가 세례를 받은 것은 죄인과 같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자 결심하신 증거입니다. 그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자 결심하시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가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렸습니다. 이제 새로운 메시아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님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받고 메시아의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비둘기 같이 평화롭게 순결하고 겸손하게 들내지 않고 사역을 행하십니다. 이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하나님이 친히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가 하늘 영광을 버리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험한 십자가 고난의 길을 시작하십니다. 이러한 결단을 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본받아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고난의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고난은 회개하는 것이요, 회개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회개의 열매로 예수님의 성품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앞에 깊이 회개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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