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특강 2017년 룻기3강(4:1-22) 기업을 무른 보아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77회 작성일 17-03-05 13:59

본문

2017년 룻기 제 3 강
말씀 | 룻 4:1-22
요절 | 룻 4:10

기업을 무른 보아스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룻기는 아름다운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텅 빈 손으로 베들레헴에 돌아온 룻이 보아스를 만나 결혼을 하고 오벳이 탄생함으로 그의 인생이 채워지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소망을 봅니다.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사람이 어떻게 회복되는지 볼 수 있습니다. 룻기는 보아스와 룻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개인적인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의 후손 가운데 메시야가 탄생할 것입니다. 메시야는 베들레헴과 이스라엘과 온 인류를 회복하십니다. 룻기의 회복의 주제는 다윗을 이어 그리스도에게로 연결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룻기의 영향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룻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저와 여러분도 관계된 것입니다. 우리가 나의 기업을 무르시는 예수님을 깊이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보아스는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았습니다. 당시 성문은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 일을 하기 위해서 들판으로 나가거나 성 밖으로 출타할 때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만나려면 성문에서 기다리면 되었습니다. 보아스도 룻과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한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성문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기 때문에 장사하기가 좋은 길목이었습니다. 또한 어떤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거나 성읍의 대표들인 장로들이 율법 상의 판결을 내리는 곳이었습니다.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갔습니다. “어이 아무개, 나좀 보세. 여기와 앉아 보세. 긴밀히 할 이야기가 있네.” 보아스가 기업 무르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증인으로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곁에 앉으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말하였습니다. “모압 지방에서 나오미가 돌아온 거 알지. 글쎄 남편도 잃고 두 아들도 다 죽고 며느리 혼자 데리고 돌아왔잖아. 참 안 됐어.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고 그래. 그런데 등기부에 보니 자네가 일 순위더라구. 자네가 무르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은 나야. 그 다음은 무를 자가 없다네.” 그러자 그는 자신이 무르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가 도장을 찍으려고 할 때 보아스는 잠시 뜸을 드리더니 말했습니다. “이것은 패키지야. 자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는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도 사서 결혼을 해야 해. 그리고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면 기업을 그에게 주어야 해.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한다고.” 모압 여인 룻과 결혼을 해야 하고 또 아들을 낳아서 기업을 그에게 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는 발뺌을 하였습니다.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여기서 손해는 단순한 손해가 아니라 파산할 지경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기업만 무르면 자기에게 엄청난 유익입니다. 왜냐하면 50년이 지나도 그 땅을 돌려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영원히 자기 것이 되지만 룻과 결혼을 하고 그 아들이 태어나서 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면 자기에게 남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망했다고 말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기업을 무르기 위해서는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기업 무름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첫째, 기업을 무를 사람은 혈육 관계가 있는 친척이어야 했습니다. 둘째, 경제력이 있어야 되었습니다. 셋째,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즉, 기업을 무르는 것은 곤궁에 빠진 친족을 구하기 위해 손해를 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었습니다. 사랑의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자원하여 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자원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무개는 룻을 사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는 땅을 사겠다고 하더니 룻을 사야 한다고 말하니 거부한 것입니다. 그는 물질적인 사람이요 율법의 근본정신인 친족에 대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친족 나오미가 굶어죽든 말든, 젊은 룻이 과부로 평생을 살든 말든, 자기 친족 엘리멜렉의 대가 끊기든 말든 자기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던 사사시대 사람들의 일반적인 신앙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사람의 이름이 끝까지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아무개’로 남아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무명씨’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는 물질에만 관심이 있었고 룻이 얼마나 귀한 믿음의 여인인지 깨닫지 못한 자로 그 이름도 기억될 만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그가 기업을 무를 것인가 말것인가의 문제는 사실 룻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보아스는 룻을 귀하게 여기고 있는데 아무개는 자신의 재산을 말아 먹을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룻이냐 소유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보아스의 집안은 룻 때문에 잘나가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베레스의 뒤를 잇게 되고 왕족의 족보에 들어가게 됩니다. 보아스는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자 했을 때 큰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룻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하나님을 택한 사람입니다. 또 시어머니 나오미를 섬기기 위해서 희생을 감당했습니다. 그의 아름다운 성품이 인생의 승리자요 복덩이가 되게 하였습니다. 믿음의 여인을 얻는 사람은 복을 받은 자입니다. 형제들은 복을 받으려면 믿음의 여인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보아스가 복을 받게 된 것은 기업 무를 자의 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업을 되찾아 주는 사람을 히브리어로는 고엘이라고 합니다. 고엘 제도는 친족들 사이에 지켜야 할 권리와 의무에 관한 제도입니다. 그래서 고엘은 친족의 의미로도 쓰였습니다. 가난한 형제가 빚 때문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을 경우 가까운 친족이 그 빚을 갚아줌으로 그를 해방시켜 주어야 했습니다(레25:45-55). 형제가 토지를 팔았을 경우 가까운 친척이 일정 기간 그 값을 치룸으로 그 토지를 돌려받게 해야 합니다(레 25:23-28). 형제가 죄를 지었을 경우 가까운 친족이 그 죄 값을 무를 의무를 지게 됩니다(민5:8). 이러한 고엘 제도는 땅과 관련해서는 기업을 무를 자로, 결혼과 관련해서는 계대 결혼으로 나타났습니다(신25:5-10). 어떤 형제가 자녀가 없이 죽었을 경우 다른 형제가 죽은 형제의 아내와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기업을 잇게 했습니다. 고엘 제도에는 이스라엘 가문이 분배받은 기업 즉 땅을 영구히 보존하고 가문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기업 무를 자의 사상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하나가 되게 하였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형제가 사업을 시작하면 그를 도와 성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가난한 자가 없도록 서로 사랑하기를 힘씁니다. 선교사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유대인뿐만 아니라 인도인, 중국인은 외국에서 사업을 하다보면 서로를 도와서 잘 살도록 도와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그런 점에서 약합니다. 우리 속담에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회개하고 서로를 돕고 세우는 일에 힘쓰는 거룩한 백성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기업 무르는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되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죄 값을 지불하고 희생하심으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습니다. 죄로 인해 끊어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하여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의 텅 빈 인생이 생명과 은혜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을 회복해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고자 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나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잘 되고 나와 동역하는 상대방이 잘 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희생하며 섬기는 자세로 동역을 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물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함께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는 근본 자세도 ‘내가 배우자를 섬겨야겠다, 하나님이 이 분을 나에게 일생동안 섬기라고 보내주신 것이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저를 포함해서 한국 형제들은 아내를 섬기기보다 섬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습니다. 많은 섬김을 받고도 감사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아내된 분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힘들어 합니다. 맞벌이 부부를 시작하면 남편이 처음 일이년은 잘 섬기는데 3년이 지나면 아내가 집안 살림과 자녀 교육까지 다 책임을 져서 고생을 한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25절에서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28b).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대속 제물로 즉, 고엘로 주기 위함이셨습니다. 동역이나 결혼에 있어서 고엘의 정신이 부족하여 서로 요구하고 탓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가 감사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이웃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그럼 나는 뭐야? 내게는 남는 게 뭐지?”라고 말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으로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귀한,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얻었습니다. 심판에서 영원히 벗어나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런 우리는 세상의 것을 다 잃어도 이미 최고로 복된 자들입니다. 인생의 승리자들이 된 것입니다. 또한 그런 자세로 남을 섬기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하늘의 복을 쏟아 부어주십니다.  우리가 이를 믿고 특별히 우리가 부름 받은 캠퍼스 양들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나의 목숨을 내어주는 자세로 섬기길 기도합니다.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되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신을 벗기는 것은 낮아지는 것, 더러운 자로 취급받는 것입니다. 신을 벗음으로 밖에 돌아다닐 자격이 없는 자가 됩니다. 하여간 신을 벗는 것은 굴욕과 수치를 의미했습니다. 신을 벗기운 자의 집이란 이기적인 자로 공인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아무개는 엘리멜렉의 친척이지 형제가 아니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기업 무르는 제도를 통해서 자손이 없이 죽은 형제에 대한 존중과 그의 기업을 잇고자 배려를 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당시 연약한 사람의 대명사였던 과부를 구제하는 길을 열었던 것입니다.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고했습니다.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그러나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며 축복했습니다. 룻은 이방 여자요 모압 여자인데 라헬과 레아의 반열에 들어가도록 축복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 여인 룻의 믿음을 보고 하나님의 역사에 귀히 쓰임 받도록 축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룻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셨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룻은 모압 땅에서 말론과 결혼하였어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결혼 후 말론이 바로 죽었든지, 아니면 그가 너무 병약해서 자녀를 갖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룻은 매우 어려운 시기를 지나서 보아스와 재혼을 했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룻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몰려와서 축하를 해 주었습니다.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14,15).” 룻이 나은 아들은 나오미의 생명의 회복자이며 노년의 봉양자가 될 것입니다. 또 룻은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입니다. 룻으로 인해서 나오미는 그의 인생이 온전히 회복되고 텅 빈 삶이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나오미의 인생을 회복하신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오미는 남편이 죽고, 아들 둘 다 죽었습니다. 아들들은 후손도 두지 못했습니다. 그의 인생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재를 뒤집어 쓴 것 같은 나오미의 인생을 바꾸어 그 위에 화관을 입히는 분이십니다. 봄이 오면 죽은 것 같았던 나무에 순이 돋고 잎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듯이 룻과 나오미의 인생을 회복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인생도 회복하사 풍성하게 하십니다. 어둡고 혼란했던 사사 시대에도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인애의 사람들을 통해 다윗의 탄생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새 시대를 준비하셨습니다. 오늘날 시대가 매우 혼란합니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도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 인애의 사람들을 통해 준비하시는 새 역사가 있음을 소망합니다. 룻은 모압 여인입니다. 모압 사람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신23:3,4). 그러나 믿음과 인애의 여인 룻은 다윗의 고조모가 될 뿐 아니라 메시아의 족보에도 오릅니다. 메시아의 시대에는 믿음을 가진 자면 제한 없이 누구라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업 무를 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하셨기에 우리는 슬픔과 텅 빈 손에서 벗어났습니다. 죄의식과 죄의 형벌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복을 나눠주는 복덩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기업 무르는 정신으로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새 학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캠퍼스 양떼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품고 섬기길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23건 31 페이지
주일메시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873 누가복음 이엘리야 107 03-12
열람중 특강 이엘리야 78 03-05
871 특강 이엘리야 72 02-26
870 특강 이엘리야 82 02-19
869 베드로서 이엘리야 103 02-12
868 베드로서 이엘리야 95 02-05
867 베드로서 이엘리야 94 01-29
866 베드로서 이엘리야 103 01-22
865 요한123서 이엘리야 102 01-15
864 디모데서 이엘리야 110 01-08
863 디모데서 이엘리야 116 01-01
862 누가복음 임요한(종수) 73 12-26
861 누가복음 이엘리야 84 12-19
860 누가복음 이엘리야 94 12-11
859 베드로서 이엘리야 111 12-04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