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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년 눅18강(10:1-24)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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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69회 작성일 17-06-19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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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제 18 강 
말씀 | 누가복음 10:1-24
요절 | 누가복음 10:2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할 때 직접 전도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 후에 열 두 제자를 세우시고 이들을 둘씩 짝을 지어 전도 여행을 보내셨습니다. 또한 70명의 제자들을 전도 여행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 전파자들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보내심을 받고 나아가 말씀을 전파하고 병든 자들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제자들의 전도와 섬김과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었습니다. 복음의 수용성이 떨어지는 이 시대에 추수하는 일꾼의 삶을 산다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영광스럽습니다. 천사들은 이 역사에 참여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 전도는 우리 신자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복음 전도를 위해서 받는 고난이 영광스러운 것임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칠십 인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대사로서 그가 하시던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병든 자들을 고치고 제자를 양성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할 일이 많았습니다. 조금만 도와주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에 이를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는 말씀은 추수할 일꾼들을 우리에게 보내달라는 말이 아니라 현장으로 보내 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이는 일에 힘쓸 뿐만 아니라 나가는 일에도 힘을 써야 합니다.

  추수는 때가 있습니다. 곡식이나 과일이 바싹 익었을 때 1,2주 사이에 수확을 해야 합니다. 이때를 놓치면 떨어져 썩어 버립니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추수 때에 부족한 일군을 얻기 위해서 학생들, 군인들, 공무원들까지 총동원 되어서 추수를 합니다. 추수 때를 놓치면 태풍 등으로 다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절박한 심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대학 캠퍼스는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계절 학기를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또 우리 주변은 여기저기서 몰려오는 젊은이들로 넘칩니다. 학생들이 장래문제, 취직문제, 가정문제, 성격문제, 죄문제로 고통하고 있습니다. 목자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복음을 전함으로 생명 구원 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사람은 방법을 찾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신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로 그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빌립은 예루살렘에서 핍박을 피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랐습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길은 광야였습니다. 빌립은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성령이 빌립에게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말씀하셨고 그는 순종하여 내시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여 세례까지 주었습니다. 에디오피아는 이 한 사람에 의해서 복음을 받아들였고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한 전도자가 말씀을 항상 전하는 자로 거듭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 중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스튜어디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부담을 주었습니다. 그는 이 성령의 음성을 외면했습니다. 비행기 타고 여행하면서 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 게다가 바빠 보이는 스튜어디스를 붙잡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오버이며 주위 승객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자꾸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할까 말까를 망설이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중간 기착지인 미국에서 내렸는데 좀 찜찜했습니다. 그 비행기는 종착지인 멕시코로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신문에 그 비행기의 그 스튜어디스가 그 비행이 끝난 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충격적 소식이 실렸습니다. 이 기사를 본 복음전도자는 정말 크게 회개의 심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안나 선교사님은 열심히 복음을 전하여 일대일 양을 얻고자 합니다. 밤늦게까지 술에 취한 학생을 붙잡고 복음을 전하다가 남편이 찾아 헤매기도 하지만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저께도 신윤지라는 법학과 학생에게 복음을 전하여 일대일 성경공부와 그림을 가르칠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칠십 인의 제자들에게 진격 명령을 내리십니다. “갈지어다. Go!” 전도 명령은 우리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반드시 순종해서 감당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생명 구원 역사는 순종해서 가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가만히 앉아서 계산하고 생각만 해서는 아무 일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일단 순종해서 가야 합니다. 가서 현장에 들어가 볼 때 심정이 생기고 지혜도 주님이 주시고, 투쟁 정신도 덧입게 됩니다. 분석과 연구도 중요하지만 복음전파자들은 캠퍼스 현장으로 올라가는 순종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여름 수양회 초청 역사에 힘을 씁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내어 보내는 것이 어린양을 이리에게 보내는 것처럼 염려스럽습니다. 제자들이 연약하고 미성숙하고 무장된 상태가 아닙니다. 여러 대적들이 있습니다. 이리 속에 있는 양은 물리고 찢겨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리는 복음의 원수들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며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본주의자들, 무신론자들, 세속적인 사람들, 이단들이 복음을 대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못하면 제자들을 잃어버릴 것 같은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도 양들을 캠퍼스에 전도하러 내보내거나, 선교지에 단기 선교를 내보내고자 할 때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내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만큼 복음전파가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또 모험이지만 복음전파를 통해서 제자들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참 믿음이 좋으십니다. 나중에 사도행전에서 믿음이 어린 제자들만 놔두고 승천하십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기적의 역사를 이룹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온실의 화초로 키우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도전하고 모험을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믿음의 역사를 체험하기 원하십니다.

  제자들은 여행을 위하여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말하라고 하십니다. 복음을 전할 때 먼저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입에서 말을 떼어야 복음 전도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첫 말은 그들에게 평안을 빌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진 평안은 평화, 조용함, 번영, 건강 등의 개념이 있습니다. 평안은 샬롬이라는 인사이기도 합니다.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제자들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제자들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를 볼 때 복음전파가 절대로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전달 받는 사람만의 것이 아닙니다. 전하는 사람에게 얻어지는 복도 큽니다. 상대방이 안 받아들여도 그 은혜와 축복이 내게로 돌아옵니다. 영접하면 그에게 복이 임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복이 내게로 돌아오고, 언젠가 때가 되면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고 하십니다.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미안한 마음이나 자의식을 갖지 말고 당당하게 사명인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대신에 먹을 것을 위하여 또는 평안한 잠자리를 위하여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아야 합니다. 전도할 때나 일대일 할 때에 한 사람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람으로 영접하고 끝까지 꾸준히 도와야 합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제자들을 영접하거든 그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고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의 목적은 복을 받고 만사형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역에 힘쓰다 보면 사업적으로 흐르고 능력이 나타나면 자기 이름과 영광을 드러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자랑하고 드러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요,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제자들을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발에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은 이제 내 책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심판의 음성이 되는 것입니다.

  12-15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복음 전도자는 예수님의 대리자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 자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능력을 많이 베푼 지역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소경 치유, 중풍병자 치유, 백부장의 하인과 신하의 아들, 야이로의 딸을 고친 곳입니다. 이렇게 많은 이적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교만했습니다. 반대로 두로와 시돈은 이방지역인데 오히려 회개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능력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영접하는가, 그렇지 않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병을 치유 받고 영생을 얻지 못하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병을 앓다가 죽더라도 영생을 얻는 것이 더 복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방인일지라도 구원과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영접하지 않는 자는 유대인일지라도 심판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제자들의 말을 듣는 자는 곧 예수님의 말을 듣는 것이요 제자들을 저버리는 자는 곧 예수님을 저버리는 것이요 예수님을 저버리는 자는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할 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절망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배척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배척을 받고 상처를 받는 것은 영광의 흔적인 줄 믿습니다.

  칠십 인이 복음을 전하고 기뻐하며 돌아와 보고를 하였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17).” 그들은 자신들이 귀신의 세력을 물리친 것에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권세에 놀랐습니다. 한편 그들은 뭔가 된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자신들이 힘이 있고 권세가 있는 것 같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교만해지는 것을 경계하십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들이 행한 능력의 근원은 예수님에게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선한 일을 한다면 얼마나 기쁘고 복된 일입니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4,5)”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세력들과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권세 앞에 사탄이 힘을 쓰지 못하고 굴복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전도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사탄의 영역이 침범당하고 그를 굴복하게 합니다. 뱀과 전갈은 사탄을 상징합니다. 우리 복음의 종들에게는 사탄 마귀의 권세를 제압하는 권세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주신 권세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갖고 싸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보다 더 기뻐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2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우리에게 귀신이 항복했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하나님 나라에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이제부터는 제자들의 이름이 하늘의 일꾼 명부에 기록이 되었으니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일을 잘 해야 명부에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러 나갈 때 이름이 명부에 올라갑니다. 이름이 명부에 기록되었으니 앞으로 계속해서 일을 시킬 것입니다. 이제는 그들이 정식으로 추수하는 일꾼으로 등록이 되었습니다. 또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은 생명책에 기록된 것이요,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일보다 우리의 생명이 구원을 받은 것이 더 기쁜 일입니다. 직분을 얻고 쓰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된 것이 기쁜 것입니다. 일은 잠시이지만 이름이 기록된 것은 영원합니다.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그 자체로 엄청난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뻐하는 제자들을 보시면서 함께 기뻐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우시는 장면이 세 번 나오는데 비해서 기뻐하시는 장면은 여기 한 번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1,22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에베소서 3:3절은 말씀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계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아서 하나님 아버지를 인격적으로 아는 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교만한 자는 대적하십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배워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는 것이 복입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구약의 선지자와 임금들이 메시아 보기를 원했으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듣고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요! 오늘날 우리도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또 복음 전파를 통해서 양들이 변화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정말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감히 영적인 세계의 비밀을 체험하고 하나님 역사의 동역자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 확장 역사에 쓰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결론적으로 추수할 것이 많은 때에 우리를 추수할 일꾼으로 부르시고 쓰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추수하는 일꾼의 기쁨을 누리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복음 전도와 함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 한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키우는 것에서 큰 기쁨과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벌고 자기 시간을 갖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신령한 복을 누리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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