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누가복음 2017년 눅13강(8:4-18) 말씀을 듣고 결실하는 자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68회 작성일 17-05-14 13:51

본문

2017년 누가복음 13강
말씀 | 누가복음 8:4-18
요절 | 누가복음 8:15

말씀을 듣고 결실하는 자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오늘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그의 다스림을 받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음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백배의 열매가 맺히기도 하고 쭉정이만 남기도 하고 꽃만 피우고 말기도 하고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좋은 마음 밭이 되어 듣고 지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는데 복음을 전하실 때에 많은 비유로 하셨습니다. 비유는 한 물건을 다른 물건 곁에 두고 비교함으로써 그 실체를 정확하게 아는 방법입니다. 비유는 하나님 나라와 같이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비유는 이미 알려져 있는 내용을 이용하기 때문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알기 쉽게 만들어줍니다. 또한 한번 들으면 잘 잊어먹지 않고 곰곰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듣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줌으로써 심오한 진리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가방 같은 자루에 담아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렸습니다. 중동에서는 씨 뿌리는 것이 우리와 다릅니다. 우리는 밭을 일구고 씨를 밭에 거의 심듯이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정말로 뿌립니다. 그래서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 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귀가 있는 사람은 다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소리는 정말로 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 듣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클래식을 들으면 저와 가까운 어떤 분은 시끄럽다고 끄라고 합니다. 영어로 말하면 아는 사람만 듣습니다. 알아도 듣기 수준이 낮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지루해 하고 어떤 사람은 뭐 저런 시시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고 어떤 사람은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와서 인사를 합니다. 듣고자 하는 소원,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힘을 쓰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편에서 바른 자세를 갖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들을 귀가 없는 무리들이 돌아가고 난 후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비유의 뜻을 여쭈었습니다. 제자들은 비유의 뜻을 몰랐지만 알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기에 그들은 예수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이해하고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허락되었으나’라는 말씀을 볼 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내가 알고 싶다고 무조건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밀을 알려 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로만 하시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입니다. 하나님은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보아도 보지 못하게 하시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심으로 심판을 받게 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을 비롯해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으로 듣기보다 꼬투리를 잡아서 고소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심으로 그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배우는 마음이 없고 겸손하지 못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특권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깨닫지 못하고 믿지도 않고 순종하지 않으니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도 없고, 그 나라의 풍성하고 영원한 복에도 참여하지 못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비밀이라고 하면 기를 쓰고 알고자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로 하시는 이유도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이 듣도록 하고자 하심입니다. 그 말씀을 더 빨리 확산시키고 더 많이 알도록 비유로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씨는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씨 속에 유전인자가 있어서 씨가 땅에 심겨지면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를 또 심으면 엄청난 열매를 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인내와 자비하심, 그가 기뻐하시는 것과 미워하시는 것 등등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 목적은 사람들이 그를 믿고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선포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고자 하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역사하십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순종함으로 그의 성품에 이르기까지 자라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격을 만나게 되고 그의 사랑을 알게 되고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말씀을 받는 마음을 나타내는 네 가지 밭에 대한 해석이 어떠합니까?

  첫째, 길 가. 12절을 보십시오.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길 가에 씨가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었지만 마귀가 가서 말씀을 마음에서 빼앗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말씀을 빼앗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훼방을 합니다. 들은 바 그 말씀을 믿지 못하게 거짓 사상을 심습니다. 마귀는 에덴 동산에서 하와에게 한 것처럼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적으로 보도록 유혹합니다. 사람들은 교만과 무지와 편견과 선입견으로 가득해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진화론과 무신론, 인본주의 사상 등으로 하나님을 부정하게 합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분주한 마음을 조장하여 말씀을 듣고자 하는 여유를 빼앗아 가버립니다. 고린도후서 4:4절은 말씀합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이 영적인 전쟁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주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전날은 일찍 자는 것도 좋습니다. 맑은 마음으로 깨어서 말씀을 듣는 것이 좋습니다. 졸린 상태에서 말씀을 듣고자 하면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마귀가 말씀을 빼앗아 가지 않도록 말씀을 들을 때 기도를 하면서 듣는 것이 좋습니다. 일대일로 말씀을 미리 공부하고 주일 메시지를 듣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 팀의 일대일 말씀 공부를 할 때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기를 기도합니다. 마귀는 말씀을 빼앗고자 하니 우리는 반대로 말씀을 붙들고자 애를 써야 합니다. 반복해서 말씀을 듣고 암송하고 행하는 것만큼 말씀을 잘 붙드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둘째, 바위 위에 있는 씨. 13절을 보십시오.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바위가 태양열을 받아서 따뜻해 져 있기에 그 위에 뿌려진 씨는 다른 밭보다 빨리 싹을 티웁니다. 바위 위에 있는 씨와 같은 사람들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없어서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입니다. 그들은 핍박이나 여러 어려운 일들이 생기면 견디지 못하고 주님과 복음의 말씀을 배반하고 떨어져 나갑니다. 그들은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 나라의 비밀보다 현재의 안락한 삶을 좋아하고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적을 보면서 흥분했던 다수의 군중들 중에 바리새인 등 종교 지도자들의 핍박을 두려워하여 믿음을 버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맹인의 부모도 처음엔 아들이 눈을 떠서 기뻤을 텐데 출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을 회피했습니다. 그러나 시련이나 핍박은 때로 신자들의 믿음을 성장시키고 강하게 하고 불순물을 없애는 역할도 합니다. 마치 태양이 식물의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고난과 핍박도 믿음의 성장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의미를 배우고 핍박에 대한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위장된 축복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받는 고난은 내가 신자라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고난의 때에 더욱 깨어서 기도하고 주님께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박해가 있을 때 믿음을 포기하지 말고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말씀을 붙잡으면 뿌리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인격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 가시떨기. 14절을 보십시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가시떨기 밭은 말씀을 들었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대한 기운이 더 강한 것이 문제입니다. 힘을 분산시켜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대한 염려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취직에 대한 염려, 결혼에 대한 염려, 건강에 대한 염려, 자녀교육에 대한 염려, 노후 준비에 대한 염려 등.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항상 염려할 거리들이 생깁니다. 이런 것들이 가시가 되어서 계속해서 마음을 찌릅니다. 재물의 유혹을 받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6:9,10절을 보면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많이 소유할수록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에 끊임없이 재물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재물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자족하는 사람, 나누는 사람은 참으로 마음이 부유한 사람입니다.

  향락에 사람들은 마음을 다 빼앗깁니다. 향락은 술 취함과 음란을 비롯하여 말씀에서 멀어지게 하는 모든 종류의 쾌락을 말합니다. 향락에 빠져 있는 사람은 육체의 쾌락이 주는 재미에 빠져서 말씀을 들을 귀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붙잡고 이런 유혹들을 쳐내야 합니다. 8:1-3절에 나오는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자들은 어려운 가운데 말씀을 간직한 좋은 예입니다. 그들은 주님과 제자들을 자기의 재물로 섬겼습니다. 이생의 염려가 들어올 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모든 것을 더해 주십니다.

  넷째, 좋은 땅. 15절을 보십시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씨가 좋은 땅에 있는 사람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요6:68). 말씀 속에 담긴 비밀을 어찌하든 알고자 질문을 합니다(10).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신다고 했다가 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모순되어 보이지만 말씀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는 죽은 것 같은 자기 몸에서 아들을 낳게 하신 하나님은 죽은 이삭도 부활시키실 줄로 생각했습니다(히11:19). 착하고 좋은 마음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추론하는 마음입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말씀을 경외심과 기쁨으로 들을 뿐만 아니라 사탄이 말씀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지킵니다. 당장 좋은 결과가 안 보이더라도 선지자 시므온과 안나처럼 오랫동안 인내합니다. 고통스런 핍박도 참아내고 달콤한 유혹들도 견뎌내면서 끝까지 끈기 있게 말씀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그 결과 마음에 심겨진 말씀이 결실을 하게 됩니다. 그 열매는 구원의 열매, 성령의 열매, 생명의 열매들입니다. 열두 사도들은 비록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갓난아이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벧전2:2).”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칭찬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살전 2:13).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심겨지고 결실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많은 실패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의 전능하심을 믿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 기도와 양식을 통해서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 그 진실됨과 진리임을 입증합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말씀에 영감을 불어넣으신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말씀을 믿고 사는 사람들을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로 변화시킵니다. 거룩하고 사랑이 많고 의로운 사람들로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루터는 종교개혁을 이루었고 엄청난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마더 배리 선교사님과 고이사무엘 선교사님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많은 생명의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고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어려울 때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을 만 번을 썼다고 합니다.
 
  등불을 켜서 등결 위에 두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입니다. 여기서 등불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담긴 복음을 말합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것 때문에 예수님이 빛을 감추고자 하신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복음의 빛을 감추려고 하시는 분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그 빛을 보게 하려고 애쓰시는 분이십니다.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17). 진리가 잠깐 동안은 숨겨질 수 있고 감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는 드러나게 되고 알려지고 나타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예수님이 육체로 살아계신 동안은 숨겨진 진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은 지 삼 일 만에 살아나시자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가 드러났습니다. 그 속에 담긴 죄 사함과 죽음으로부터의 해방과 영광스러운 소망들이 알려지고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그 속에 담긴 비밀들이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합니까?
  1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은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더 깊은 맛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말씀을 들을 때 내가 뭔가 알고 있는 줄로 알고 방심하고 있으면 결국 빼앗깁니다. 우리가 맹렬하게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고 붙들지 않으면 말씀의 샘이 말라버려 황량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말씀의 샘을 파야 합니다. 말씀의 생수가 흘러넘치기까지 공부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의 등불을 밝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생을 공부해도 다 밝힐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한 진리의 광맥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어도 한 부분만 알고 있습니다.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밝히는데 매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길 가에 있는 사람처럼 완악하게 대하면 안 됩니다. 말씀이 바위 위에 있는 사람처럼 얕게, 처음에만 기쁨으로 받으면 안 됩니다. 뿌리를 깊이 내리고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이 가시떨기에 떨어진 사람처럼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마음을 내주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말씀만을 깊이 받아들이고 결실하기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스스로 삼가 말씀을 듣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있는 자’입니다. 말씀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복과 은혜들을 풍성히 받고 누리게 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기쁨과 번영을 누리며 나누고 전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여 성서 한국, 세계 선교를 이루어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 말씀을 좋은 마음으로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게 도우시길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23건 30 페이지
주일메시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888 누가복음 이엘리야 88 06-25
887 누가복음 이엘리야 70 06-19
886 누가복음 이엘리야 91 06-11
885 누가복음 이엘리야 78 06-04
884 누가복음 이엘리야 85 05-28
883 누가복음 이엘리야 88 05-21
열람중 누가복음 이엘리야 69 05-14
881 누가복음 이엘리야 86 05-07
880 누가복음 이엘리야 75 04-30
879 누가복음 이엘리야 83 04-23
878 누가복음 정베드로 79 04-16
877 누가복음 Sumgim 94 04-11
876 누가복음 이엘리야 82 04-02
875 누가복음 이엘리야 75 03-26
874 누가복음 이엘리야 83 03-19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