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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년 눅6강(4:16-44)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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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74회 작성일 17-03-26 10:17

본문

2017년 누가복음 제 6 강
말씀 | 누가복음 4:16-44
요절 | 누가복음 4:43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우리는 지난 주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C.S. 루이스가 신앙의 본질을 다룬 책, 스크류테이프의 편지에 사탄이 작은 악마들을 훈련시키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탄이 이런 말을 합니다. “기독교인들을 실패시키는 방법은 아주 쉽다. 깃발을 쳐다보지만 않게 만들면 된다. 땅의 것과 육의 것에 재미와 흥미를 갖게 해서 땅만 내려다보며 정신없이 살게 만들어 깃발만 쳐다보지 않으면 그들은 가까운 기간 안에 썩어 시들 것이다.” 여기서 깃발이란 예수님이 높이 쳐든 부활과 영생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것에 재미와 흥미를 느끼기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마음을 쏟으면 신앙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전하게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본격적으로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증거하시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탄의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힘있게 역사하여 사람들이 변화가 되고 치료가 일어나고 인생들이 회복되었습니다. 이렇게 인기가 많은 예수님을 사람들은 자기 동네에 붙잡아 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왜 이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십니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첫째, 자유하게 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예수님은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셨습니다. 회당에서 드리는 예배는 주로 성경을 낭독하고, 이어서 기립하여 기도하고(마 6:5), 그 후, 성경해석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형식이 거의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가 강대상에 서자 사람이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자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셨습니다.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은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셨습니다.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는데 예수님께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 말씀이 주인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해는 희년을 말하는데 안식의 해를 7회 거듭한 후에 오는 제50년째의 해를 말합니다. 희년은 자유와 해방의 해입니다. 이해에는 팔렸던 토지를 원소유주에게로 돌리고, 노예는 모두 해방됩니다. 참된 희년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 나라가 저희 것임이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필요를 채움 받게 됩니다. 주님은 오병이어로 굶주린 오천 명을 배불리 먹여 주셨습니다.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기도 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영존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물질에 대한 근심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양식으로 주신 것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암 8:11,12)” 예수님이 오시기 전 400년 동안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시자 가뭄에 단비가 내리는 것 같이 사람들이 말씀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이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알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전해 주시는 말씀을 듣고 영혼의 만족을 누렸습니다.

  또한 죄와 마귀의 포로 된 자들이 그의 권세 있는 말씀을 통해 자유를 얻었습니다. 두려움의 포로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평강을 누리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게임의 포로된 자가 거기서 자유를 얻고 음란의 포로된 자가 자유롭게 되어 경건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몰라 미신과 거짓에 매여 있던 사람이 자유하게 되어 믿음의 사람이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어두움에 있던 자들이 빛을 보았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젊었을 때 어느 날 빈민굴 어두운 방에 사는 환자를 발견했습니다. 더러운 방에 냄새가 지독했고 그 방에 램프가 있는데도 켜지 않고 있었습니다. 테레사가 방 청소를 끝내고 램프를 켜자 환자는 램프를 던져버렸습니다. “난 등불이 없는 것이 좋아, 1년 내내 램프는 켜지 않았어”하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는 육체의 질환뿐 아니라 마음의 병이 더 심했습니다. 이튿날 테레사 수녀는 새 램프를 사다가 불을 켜주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 10년이 지났습니다. 젊은 수녀들이 빈민굴의 사나이에 대한 보고를 했습니다. 그는 빈민굴 집에 살지만 깨끗이 개조된 집이요 의젓한 직업을 가졌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키 작은 수녀님께 전해 주시오. 당신의 등불이 지금도 내 생활 속에 불타고 있다고 …”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큰 빛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눈 먼 자들이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눌린 자들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율법의 의무에 눌린 사람들이 율법의 요구에서 해방되어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켜 의로운 삶을 살고자 했지만 자신 속에 있는 탐욕을 극복하기 어려웠습니다. 또 율법을 지키고자 애를 쓰면 쓸수록 자신의 죄악된 내면을 발견하고 괴로웠습니다. 나중에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풀어 주리요 탄식했습니다. 이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죄 사함을 받고 사도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능히 죄와 사탄의 포로된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 생명의 성령의 권세가 우리를 해방시켜 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죄의 노예된 상태에서 죄사함을 받고 자유를 얻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받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하며 그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아는 목수의 아들이 이렇게 은혜로운 말씀을 증거하다니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하십니다(23). 그리고 또 이르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24). 그리고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오직 시돈 땅의 사렙다의 한 과부가 엘리야의 도움을 받은 사실과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듣고 있던 그들은 화가 크게 나서 그를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잘 아셨습니다. 사람을 잘 아셨기 때문에 사람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에 좌우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대적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변화되어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합니다. 말씀을 배척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목자는 자신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도 듣는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변화되지 않으면 낙심이 됩니다. 말씀을 열심히 전해도 성장이 되지 않으면 피곤해집니다. 예수님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서 낙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담담하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그들의 선입관과 교만,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예수님을 배척하고 결국은 그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알고 영접하기 위해서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이런 오해와 편견들을 없애려면 진리를 알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직접 말씀을 공부해보고 행하신 일들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이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회개할 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목자는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 새 사람이 되기까지 양육하는 해산의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둘째,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이제는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셨습니다. 지도상으로는 가버나움이 북쪽인데 내려왔다고 하는 것은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가르치시자 사람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랐습니다.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권위가 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의 가르침이 서기관들과 같이 규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과 본질을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의 확신과 인격에서 나오는 것이었기에 힘이 있고 감동이 있었습니다.

  마침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렀습니다.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권세 있게 증거되자 사람들 속에 숨어 있던 귀신들이 발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와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훼방하였습니다. 귀신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신 줄 알고 떨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어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이 거룩하신 예수님의 권세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왔지만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했습니다. 사람들은 다 놀랐습니다.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라며 감탄하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졌습니다.

  예수님이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심으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그들에게 임하자 근심과 두려움, 시기와 미움이 물러나고 평강과 기쁨이 충만해졌습니다. 사람들은 회당에 모여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찬양소리가 회당에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버나움은 활기가 넘쳤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이십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 속에 있는 더럽고 악한 영을 몰아냅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사람들에게서 더러운 생각과 악한 말들이 떠나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담대하게 선포되는 곳에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던 악한 영들이 떠나고 그 영혼이 깨끗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깨끗한 양심은 자신감을 회복하게 됩니다. 우리의 일대일 성경공부와 말씀선포, 그리고 양들을 위한 간절한 중보기도로 악한 영이 떠나가고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 가버나움은 베드로의 고향입니다. 예수님은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 시몬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가보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님께 치료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들었습니다. 또한 안식일이 끝나고 해 질 무렵이 되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고 고쳐주셨습니다. 인술이 최고라고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인격적으로 터치하시며 치료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치료는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렀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이는 아직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공개적으로 나타낼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이 귀신의 역사와 관계있는 것으로 오해를 살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귀신의 증거를 금하셨습니다.

  넷째, 전도하러 오신 예수님. 밤늦도록 병자들을 일일이 치료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몹시 피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사 기도하셨습니다. 42,43절을 보십시오.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예수님은 습관적으로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예수님이 바쁘신 중에서 힘있게 사역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른 아침 시간에 예수님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붙들어 두고 싶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병도 낫고 은혜로운 말씀도 듣고 여러 인생 문제가 해결되니 그를 꼭 붙들고 싶었습니다. 이들의 신앙은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그의 뜻에 동참함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다른 동네들에서도 전해야 하십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온 유대에 전하기 위해서 오셨고 제자들을 통하여 전 세계에 전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곳에 계시면서 사람들의 존경과 대접 받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곳에서 그를 환영하니 고향에서처럼 배척받지 않으시고 여기서 여러 이적을 베푸시며 안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접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안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역사가 갈릴리 가버나움에 국한되지 않고 온 세상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원하십니다(마28:19,20, 행1:8).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 심판은 영원한 지옥에서 영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죄사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다른 복음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복된 소식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우리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당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제 마귀가 지배하는 각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캠퍼스를 개척하고 선교를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십니다. 말씀을 가르치시고, 귀신과 싸우시고, 열병을 꾸짖으시고, 각종 병든 자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도우셨습니다. 치열한 영적 전쟁이고 섬세한 케어입니다. 오늘날에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고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어디든지 나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사람을 붙잡고 사랑을 실천하고 악한 영과 싸워야 합니다. 내가 체험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죄와 여러 모양의 인생 문제로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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