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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024년 잠3강(5-7강) 지혜를 내 누이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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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6회 작성일 24-09-2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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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잠언 제3강
말씀 | 잠언 5-7장
요절 | 잠언 7:4,5

지혜를 내 누이라 하라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오늘 나누게 될 5-7장은 지혜와 음녀를 비교하면서 지혜를 누이와 같이 친밀히 하라고 교훈합니다. 세 장에 걸쳐서 음녀에 대한 교훈을 집중해서 주고 있습니다. 요사이 AI를 이용한 딥페이크 음란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과 더불어 가장 심화되는 것이 성적 타락입니다. 이 음란하고 타락한 시대에 곳곳에 숨어 있는 음녀의 유혹을 이기고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을까요?

  첫째, 자기의 샘을 복되게 하라(5:1-23). 5:1,2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지혜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가 깨달은 것에 귀를 쫑긋 세우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음녀에 대한 지혜와 깨달음, 분별이 무엇인지 말해줍니다. 음녀에 대한 진리의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럽습니다. 음녀의 입술은 매우 달콤합니다. 사랑의 밀어를 속삭입니다. 또 속이는 아첨의 말은 기름처럼 미끄럽습니다. 음녀의 말들은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입에 찰싹 달라붙습니다. 7장 13-21절을 보십시오. “그 여인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내 침상에는 요와 애굽의 무늬 있는 이불을 폈고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 날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음녀의 말을 듣고 있으면 믿음이 깊은 여인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화목제는 제사 중에 제물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은혜로운 제사입니다. 서원한 것이 이루어졌기에 오늘 화목제로 갚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만난 것처럼,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그와의 만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밀회 장소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시각, 후각, 촉각을 동원하여 즐거움을 약속합니다. 남편이 두둑한 돈 주머니를 가지고 나가서 보름  날에나 돌아올 것이니 안심하고 아침까지 흡족하게 사랑을 나누자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환락의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죽음의 안방으로 나아갑니다. 그의 생명이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하지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양날 가진 칼은 단 한 번으로 치명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쑥과 칼은 모두 재앙과 죽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음녀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의 집 문에도 가지 말아야 합니다(8).

  두렵건대 그 존영을 남에게 잃어버리게 됩니다. 평생 쌓아온 영예와 존귀와 영광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게 됩니다. 또 음녀에게 빠져들게 되면 아까운 젊음과 세월을 탕진하게 됩니다. 음녀와 어울리면 몸과 마음이 점차 무너져 ‘쇠약’해져 갈 것입니다. 평생 걸려 모은 재산과 수고한 결실을 모두 탈탈 털리게 됩니다. 또한 성병이나 에이즈나 원숭이 두창 같은 치명적인 병에 걸려 일찍 죽게 됩니다. 나중에 후회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그 때 가서 ‘내가 어찌하여 아버지의 훈계를 싫어하며 꾸지람을 가볍게 여겼는가, 스승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았는가,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가?’ 하며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는 개인적인 고통을 넘어 공동체의 구성원들로부터 존엄성을 잃게 됩니다. 음녀와 어울려 쾌락을 즐기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나 큽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 죄를 짓고 아들을 잃고 압살롬을 잃어버렸습니다. 암논은 다말을 겁탈하고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솔로몬은 말년에 천명의 후궁들을 들여서 우상숭배를 하고 그 후대에 나라를 두 쪽 내버렸습니다. 이런 일들은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음녀로 인해 입을 해와 간음하는 자가 받게 될 형벌에 대해서 6:26-35은 말씀합니다. 정욕은 그녀의 아름다움, 그 눈꺼풀에 홀리게 함으로 시작합니다. 정욕의 불꽃은 눈의 접촉을 통해서 쉽게 일어납니다.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그를 만지는 자마다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도둑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둑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하지는 아니하려니와 들키면 칠 배를 갚아야 하리니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주게 되리라.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남편이 투기로 분노하여 원수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어떤 보상도 받지 아니하며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 간음하는 영혼에게 하나님의 심판, 공동체의 심판, 남편의 심판으로 매장당하고 영육간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연모해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15-19절을 보십시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하나님은 결혼 제도를 통해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행복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남편들은 아내가 원하는 사랑의 언어가 무엇인지 알고 섬겨야 합니다. 사랑의 언어가 대화인 분이 있고, 실제적인 섬김과 봉사를 원하는 분이 있고, 선물과 이벤트를 원하는 분이 있고, 스킨십에서 사랑을 느끼는 분이 있습니다. 부부는 서로에 대해서 배우고 맞추어야 합니다. 오래 참아야 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지켜보시며 살피십니다. 창세기의 요셉은 보디발 여사의 무서운 정욕의 유혹 앞에서, 바로 이 하나님을 의식했습니다. 창39:9은 말씀합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그는 음녀의 유혹을 피하고 애굽의 총리에 올라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둘째, ‘좀 더’ 라는 유혹(6:1-19). 이 부분은 크게 해로워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조심해야 할 일들을 경고합니다. 먼저 다른 사람을 위해 재정 보증을 서는 일입니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어려운 상황에 있는 지인을 도우려는 순수한 의도가 악한 자에게 오용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돈이 나쁘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돈은 중립입니다. 그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보증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일단 보증을 섰으면 채무자의 심정으로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한 두 번이 아니라 들어줄 때까지 계속해서 구해야 합니다.

  6-11절은 게으른 자에 대한 교훈입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게으른 사람들의 핑계는 ‘좀 더’입니다. 약간의 게으름은 무해할 것 같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면 가난이 도둑처럼 덮칩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죄는 작고 가볍게 시작하지만 그것이 중독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습니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할 때에 쓰레기가 쌓이고 우범지역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죄의 유혹부터 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좀 더 기도하고, 좀 더 말씀을 보고, 좀 더 전도합시다. 십자가를 조금씩 더 지도록 합시다.

  12-15절은 가벼운 악행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불량하고 악한 자는 건달에 해당이 되는데 히브리어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절대 가치를 부여 받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부여된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가치 없는 일로 인생을 허비해 버립니다. 그들은 헛된 말을 하고 다니며 갈등과 분열을 일으킵니다. 인생 허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록펠러에게 “돈을 얼마나 가지면 만족하겠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조금만 더 있으면 됩니다”라고 대답을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죄의 욕망이 우리를 타락과 멸망으로 이끄는 과정에서 자주 넘어가는 속임수가 바로 “좀 더”입니다. 우리는 작은 악 앞에서 “이 정도야 뭐”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손을 댑니다. 그러나 이 작은 악이 거대한 악으로 끌어들이려는 미끼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언제라도 손을 떼면 되지 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야 뭐” 하는 생각이 들 때 화들짝 깨어 죄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일곱 가지의 죄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교만, 거짓말, 폭력, 악의, 악행, 거짓 증인은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죄 즉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행동을 합니다. 무심코 한 작은 악들이 쌓이면 가정, 사회, 나아가 교회와 국가를 분열시키는 불행을 초래합니다. 나 하나쯤이야 모임에, 예배에 빠지면 어때 하고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이 모이기를 폐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셋째, 지혜를 연인 삼아(7:1-27). 7:1-5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지혜를 누이처럼, 친구처럼 여기며 친밀하게 사귀라고 권면합니다. 누이는 엄마처럼 잘 챙겨줍니다. 누나는 같은 세대이기에 공감대가 잘 형성됩니다. 누나의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지혜 여인과 친밀하게 지내면 지혜가 음행하는 여자에게서 그 사람을 지켜 줄 것입니다. 지혜는 히브리어로 호크마인데 여성 명사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지혜는 인격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혜를 연인삼아 친밀하게 사귀라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사람을 만나 사귐을 가질 때 치료가 일어나는 것처럼 지혜 여인과 사귐을 가질 때 우리는 좋은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명철은 이해력과 분별력, 통찰력을 말합니다. 지혜 여인과 사귐을 가질 때에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됩니다. 모든 것을 동원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앞에서 살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지혜와 친밀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혜의 말씀을 통해서 음녀의 유혹을 분별하고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기본적으로 ‘일용할 양식’을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해져야 합니다. 주일 메시지를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 성령은 기이한 상담자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사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서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 자신과 자녀들과 양떼를 지키기 위해서 지혜를 누이로 삼고 사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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