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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024년 잠 1강(1:1-33)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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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3회 작성일 24-09-1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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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잠언 1강
말씀 | 잠언 1:1-33
요절 |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은 가르쳐서 훈계가 되는 말, 짤막한 지혜의 말을 가리킵니다. 한문으로는  바늘 잠, 말씀언으로 ‘잠언(箴言)’ 바늘로 찌르듯이 콕 찌르는 말씀입니다. 잠언은 ‘지혜의 말을 묶은 책’입니다. 성경을 율법서, 역사서, 예언서, 시가서 또는 지혜서로 구분하는데 잠언은 욥기, 시편, 전도서, 아가서와 함께 시가서에 해당이 됩니다. 성경의 다른 책들은 한 장 또는 단락을 읽고 중심 주제를 찾습니다. 하지만 잠언은 장마다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찾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1-9장은 그나마 괜찮은데 나머지는 다양한 주제의 지혜를 열거한 경우가 많습니다. 무시간적 진리도 있고 상황적 진리도 있기에 잘 분별해서 읽어야 합니다. 잠언은 믿음의 사람들이 오랜 세월 축적해 온 세상사와 인간사의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집단 지성이 빚어낸 보물입니다. 우리가 잠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배우고, 선과 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다양한 삶의 상황에 적용하여 승리를 경험하고 성숙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잠언의 목적(1-7). 잠언의 저자는 솔로몬 왕입니다. 하지만 솔로몬 외에 지혜 있는 자(22:17), 지혜 있는 자들(24:23), 아굴(30:1), 르무엘 왕이 저자로 나옵니다. 솔로몬이 지혜의 왕으로 인정받기에 대표 저자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잠언을 쓴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7절에 나와 있는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섬기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눈초리를 의식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사랑을 내면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그의 선하심과 아름다우심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나타내는 것입니다. 모든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시작합니다.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 중심적입니다. 우리가 지혜를 얻기 위해서 관찰과 경험, 전통, 실수에서 배우는 것, 계시 등이 있는데 이것도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입니다(20:12).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경건한 태도에서 지혜가 시작되고 우리의 경건한 태도를 더 심화시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번제로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무엇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세상 만민의 구원자, 그리스도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두렵고 떨림으로 그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우리는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반대로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는 태도는 불신앙에서 나오고, 불신앙을 강화시키는 어리석음으로 하나님을 등지고 죄악을 따르게 합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은 지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지난 주에 배운 대로 빌라도와 대제사장 가야바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지혜 중의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모든 지혜는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믿음이 잠언의 세계관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자명한 이치이고 인생의 진실인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자기 욕망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혜로운 일로 여깁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큰 어리석음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잠언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동기부여를 잘 하는 방법은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잠언을 공부하면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2절을 보십시오.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는 이스라엘 현자들에게서 전해진 인생사와 세상사에 대한 통찰을 가리킵니다. ‘훈계’는 지혜에 따른 삶의 방법을 의미합니다. 지혜가 통찰력이라면, 훈계는 지향해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명철의 말씀은 선대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 담긴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데 깨닫는다는 ‘깨쳐서 이른다’는 뜻입니다. 말씀의 외피를 깨뜨리고 그 안에 담긴 진실을 깨닫게 함이 이 책의 목적입니다.

  지혜를 얻게 되면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합니다. 지혜, 공의, 정의, 정직은 인격과 성품에 맺혀지는 열매입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이죠. 잠언은 훈계를 통해 인격의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성화의 교과서입니다. 잠언은 영적 훈련과 성숙을 위한 매뉴얼입니다. 잠언이 31장으로 되어 있기에 어떤 사람은 매일 한 장씩 잠언을 묵상한다고 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교만합니다. 교만한 사람이 신앙을 갖게 되면 자기 의가 충만하게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영적 교만이죠. 예수님은 모든 죄 중에 ‘자기 의’를 가장 심각하게 여기셨습니다. 이미 충분히 의롭다는 착각이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히 구하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에 가득한 사람들의 대표가 바리새인들입니다. 성장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늘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배울 것이 없는지 주변을 살핍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고개를 숙이고 그 분의 지혜를 구하게 됩니다. 그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어리석은 자와 젊은 자는 동의어로, 인생사와 세상사의 경험이 부족해서 지식도 지혜도, 근신(분별력)도 미흡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젊은 자는 힘과 에너지가 많지만 자기를 과신하여 그릇된 길로 가기 쉽고 무절제와 방탕의 유혹에 약합니다. 잠언은 어리숙한 사람과 젊은이를 깨우쳐서 성숙하게 만듭니다. 슬기로움은 사려 깊은 태도를 의미합니다. 지식과 분별력은 지혜로운 처신을 위해 필요한 두 기둥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5).” 잠언은 어리석은 자뿐 아니라 지혜로운 자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신앙의 성장은 한 순간에 완성되는 것 아닙니다. 평생 배워가며 깊이가 더하여 가는 것이죠. 잠언을 배울수록 삶이 더 풍요하고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같은 말씀이라도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고난의 깊이, 경험의 다양함 속에서 더 깊은 진리와 지혜를 얻어가게 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잠언은 다양한 양식으로 전해진 지혜의 전승을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줍니다. 여기서 잠언은 선대의 지혜가 농축된 경구들을 의미하고, 비유는 수수께끼를 말합니다. 수수께끼는 옛날부터 지혜를 전수하는 유익한 도구로 사용됐죠. 이 책에 담긴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잠언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위에 열거한 유익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누가 어리석은 자인가(8-19)?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8,9).” 잠언은 부모가 자녀들이 행복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따뜻한 사랑으로 권면합니다. 아버지는 훈련을 담당하고 어머니는 토라를 담당합니다. 부모의 밥상머리 교육, 가족기도모임에서의 교육은 자녀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을 줄 것입니까?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주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훈련하는 것이 가장 귀한 사랑입니다.

  그 부모의 훈계가 무엇입니까?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10).” 악한 자들은 훈계와 하나님의 법에서 멀어지도록 유혹합니다. 특히 이렇게 유혹을 합니다. “함께 가서 숨어 기다렸다가, 이유를 묻지 말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자. 스올(무덤, 죽음)처럼 그들을 산 채로 삼키고, 무덤이 사람을 통째로 삼키듯이, 그들을 통째로 삼키자. 우리는 온갖 값진 것을 얻게 될 것이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의 집을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일확천금을 얻자고 유혹합니다. 온갖 보화, 재물에 대한 탐심을 채우자고 합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고 합니다. 그들은 공평과 평등을 내세우지만 이는 악한 자들이 겉으로 내세우는 속임수입니다. 그들과 함께 하면 악의 중독과 충동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새가 안 볼 때 그물을 던져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새가 보고 있는 데 안 보겠지 생각하며 그물을 던집니다. 잠시 희생자들을 삼켜 탐욕의 배부름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들을 지켜보는 이로 말미암아 그들의 악한 시도는 결국 자기 피를 흘리고 자기 생명의 희생으로 끝이 나게 될 것입니다. 이익을 탐하는 모든 길의 결국은 자기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탐심은 폭력과 살인을 낳는데, 그 마지막 희생자는 자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익을 탐하는 유혹이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쉽고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이 있습니다. 수익률 높다는 말에 전 재산 뿐 아니라 대출 받아 투자했다가 사기 당해 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에 목을 매야 합니까? 목자는 돈을 버는 일에 목숨을 걸지 말고 말씀에 목을 매야 합니다. 저는 매주 주일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서 넥타이를 맬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말씀에 목숨을 걸자. 지혜의 말씀을 구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얻습니다.

  셋째, 지혜의 초청을 거절한 자들이 당할 일(20-33). 지혜는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합니다. 지혜는 히브리어로 ‘호크마’인데 여성 명사입니다. 옛날 히브리 사람들은 지혜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았습니다. 인격체인 지혜는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은 지혜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요한은 그 지혜를 ‘로고스’라고 불렀습니다.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지혜 여인은 여호와의 지혜를 의인화한 것이며, 하나님 자신을 나타냅니다.

  ‘지혜 여인’이 성을 두루 다니며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찾습니다. 지혜는 우리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 있고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그런데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어리석은 사람, 미련한 사람은 지적 결함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삐뚤어진 사람이라고 이미 말했습니다. 그가 미숙하고 도덕적으로 부패해진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안다’는 교만에 빠진 사람들은 지혜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지혜 여인’은 어리석고 거만하고 미련한 자들을 포기하지 않고 지혜의 영과 말씀을 받도록 책망하고 훈계합니다. 하나님의 영과 지혜 사이에는 이런 연관이 있습니다. “주님의 영이 그에게 내려오신다.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권능의 영, 지식과 주님을 경외하게 하는 영이 그에게 내려오시니,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사 11:2,3a 새번역).”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의 죄에 분노하시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선지자를 통해 돌이키도록 말씀을 주시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듣기를 싫어하였고 지혜 여인이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그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그의 책망을 받지 아니합니다. 그들은 왜 ‘지혜 여인’의 초청에 응하지 않고 무관심하고, 심지어 멸시를 나타냈을까요? 지혜가 얼마나 좋은 여자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들의 유혹이 더 매혹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뒤에 나타날 음녀의 유혹이 더 좋아 보입니다. 사실 ‘지혜 여인’은 음녀들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리 높여 부르는 초청에 거절과 멸시를 당하니 지혜 여인의 상심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결국 그들은 어떻게 됩니까? 26,2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지혜의 초청을 거절한 결과는 재앙과 두려움, 근심과 슬픔이고 지혜는 그런 그들을 보며 웃고 조롱합니다. 지혜를 거절한 대가로 받는 심판이 얼마나 큰지요? 지혜는 사람에게 외면과 거절과 멸시 받을 대상이 아닙니다. 겸손하고 간절하게 초청하니 무슨 아쉬움이 있어 보였지만 사실은 심판자입니다. 자기 말 안 듣는 인생들에게 광풍 같은 두려움, 폭풍 같은 재앙을 보낼 수 있는 엄중한 주권자이십니다. 광풍과 폭풍을 만나면 한 방에 훅 가버립니다. 폐허가 됩니다.

  그들이 재앙의 날에 지혜를 찾아도 만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8-30절을 보면 “그 때에야 나를 애타게 부르겠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겠고, 나를 애써 찾을 것이지만, 나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너희가 깨닫기를 싫어하며, 주님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않으며, 내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내 모든 책망을 업신여긴 탓이다.(새번역)”  재앙의 날에 여기서 벗어날 지혜가 필요한데, 지혜를 찾아가도 만나주지 않으니 어리석음 속에 어찌해야 할 바 몰라 절망이 클 것입니다. 지혜를 거절한 대가를 제대로 치르는 것입니다.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않으며 지혜의 교훈을 받지 않고 지혜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긴 대가로 받는 심판입니다. 지혜가 부를 때 응답하지 않는 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인생에 회개의 기회가 오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지혜 여인의 초청이 한없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지혜가 부를 때 응답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지혜가 곁에 있을 때, 부를 때 듣고 응답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과 계획대로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혜가 주는 배부름이 있는데 그것을 거절하고 자기 꾀가 주는 배부름을 얻고자 합니다. 그들은 결국 재앙, 두려움, 슬픔, 근심으로 배부르게 됩니다. 어리석은 자의 퇴보와 미련한 자의 안일은 지혜의 초청을 거절하는 자들의 삶의 열매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퇴보는 ‘멀어지고 떨어짐’, 안일은 나태에서 오는 태평함입니다. 지혜는 사람을 성장시키며 근신하게 하지만 훈계를 거절해서 지혜를 얻지 못하면 성장하지 못하고 구원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더 안 좋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안일한 삶을 즐기는 결과는 죽음입니다.

  3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1장 말씀은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로 시작해서 “내 말을 들으라”로 끝이 납니다. 지혜의 초청을 경히 여기지 않고 그 간절함과 열정적인 부르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지혜를 외면하지 말고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가 뜨거운 열정으로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듣는 마음, 경청이라고 했습니다. 들으려면 선입견, 편견을 버리고 말 속에 담긴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듣는 것은 쉬운 일 아닙니다. 마음을 다해서 듣고자 하면 힘이 듭니다. 하지만 지혜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을 때 평안과 두려움 없는 안전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어야 할 지혜의 초청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경외함을 가르쳐 주는 성경 말씀입니다. 우리가 잠언 말씀을 공부하는 가운데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아픔,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로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감당해주고 섬기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불쌍한 사람들을 행복하고 풍성한 사람들로 변화시킵니다. 악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킵니다. 교만한 자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십니다(고전 1:24). 예수님은 지혜의 말씀으로서 우리를 간절히 부르십니다. 잠언 안에서 우리를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열정, 우리를 향해 소리를 높여 부르시는 지혜의 목소리를 듣고 응답하며 순종하고 실천하는 지혜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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