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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024년 막13강(막 8:27-38)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여름수양회주제1강)-조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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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67회 작성일 24-07-29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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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동교화랑 여름수양회 주제 1강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말씀 / 마가복음 8:27-38                                         
요절 / 마가복음 8: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안녕하십니까? 저는 화랑센터 조야곱 목자입니다. 이번 동교 화랑 여름수양회에 참석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오늘 여름수양회 주제 1강 말씀의 제목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이고, 말씀은 마가복음 8:27~38절까지이고, 요절 말씀은 마가복음 8:29절입니다. 요절말씀인 마가복음 8:29절 말씀을 저와 여러분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시작!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제가 잠시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수양회를 통해 저희가 예수님을 진정한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성령님께서 이 시간을 주관하시고,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열어주시어 주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여전히 지상 메시아로만 생각하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참된 의미를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하고 참 자유와 영생을 주시는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지만, 그가 생각한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의미와는 달랐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시고, 그 약속대로 보내주신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모든 죄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참된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요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부활 신앙을 덧입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영적 투쟁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감당하며 주님의 제자로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1.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27~30)
 
 예수님과 제자들은 빌립보 가이사랴의 여러 마을로 향했습니다. 빌립보 가이사랴는 로마 황제 가이사르의 이름과 분봉왕 헤롯의 아들 빌립의 이름을 합쳐 지어진 큰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로마 황제의 동상과 제우스 같은 우상을 섬기는 신전들로 가득했습니다.
 빌립보 가이사랴로 가는 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누구라고 하는지 물어보셨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을 듣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아,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해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여기 저기 다니면서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예수님께 앞다투어 이야기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28절 말씀을 김사라 목자님께서 제자들처럼 읽어주시겠습니다.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예수님! 사람들은 당신을 세례 요한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또 엘리야라고도 합니다. 예수님! 선지자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을 보고,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던 세례 요한, 엘리야, 또는 선지자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정적인 평가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상반된 평가 중 긍정적인 것만 예수님께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좋고 어깨가 으쓱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듣고자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으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29절 전반절을 보십시오. 29절 전반절 ‘누구라 하느냐’까지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시작!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번에 예수님은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셨지만, 이번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셨습니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질문은 간단하고 명료했습니다. 왜 이러한 질문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어떤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각자가 예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제자들 중 베드로가 예수님의 질문에 즉각적으로 대답했습니다. 29절 하반부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베드로는 예수님이 던진 간단한 질문에 명쾌하게 정답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답은 바로 답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인 ‘메시아’를 헬라어로 번역한 말로, 그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왕, 제사장,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어 그들을 거룩히 구별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그리스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을까요? 베드로는 예수님이 다윗과 같은 위대한 ‘왕’이 되어 로마의 압제를 물리치고, 이 땅에서 다윗 왕국의 영광을 재현할 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이스라엘 민족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라고 확신했습니다. 이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적과 원수를 물리치고, 흩어진 유대 민족을 하나로 모아 예루살렘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고 완벽한 통치를 이루는 지도자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로 이 지상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고 생각했고, 그분을 따름으로써 고난 없이 영광을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생각했던 그런 ‘지상 메시아’가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범죄 이후 죄로 인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진정한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이로 인해 죄가 생겼습니다. 죄의 결과로 인해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었고, 죽음은 인간들에게 막강한 권세를 행사했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이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인간은 비참함 속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며 고통받다가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영적 실족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며, 이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은 영원히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인간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그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인간은 완전한 절망 속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비록 인간이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인간을 사랑하셔서 죄에서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시고 약속하시고 실행하시고 완성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핵심에는 ‘그리스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때에 이 땅에 보내시고, 그의 생명을 죄의 대가로 대신 지불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더 이상 죄의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괴롭히던 사망의 빚을 갚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모두 흘려 죽으신 예수님은 성경대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죄의 결과인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셨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죄와 사망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이 죄와 사망에서의 참된 자유를 주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보내신 그분,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에게서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그 답에 대해 다른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고, 오히려 베드로의 고백을 절대 언급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30절을 유 메리 목자님께서 읽어주시겠습니다.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왜 예수님은 제자들의 대답을 비밀로 하라고 하셨을까요? 이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소문날 경우, 로마 황제가 아닌 또 다른 왕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방해가 될 수 있었으므로 그렇게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누구라고 고백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예수님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점에는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류 역사의 4대 성인 중 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슬람 교에서도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은 이러한 일반적인 견해와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군인 교회는 민간 교회와 다른 특수한 점이 있는데, 지휘관이 교회를 다니면 대부분의 간부들이 함께 교회에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급 시즌이 되면 새벽기도회에 사람이 넘쳐나지만, 진급 발표가 나고 나면 열심히 교회에 나오던 분들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이분들은 교회에 나와서 ‘종교 행사’를 하는 걸까요? 이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제가 올 해 꼭 진급하게 해 주세요.’, ‘주님, 이번에 우리 딸이 대입 시험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종종 우리는 ‘주님, 이번 기말고사 잘 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이는 본문의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영적 메시아가 아니라, 자신의 실질적인 유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지상 메시아로 바라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에게도 이런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과연 우리가 예수님을 지상 메시아로 이용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만약 그런 삶의 부분이 있다면 회개하고 예수님을 진정한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가야 할 길(31~33)

 예수님은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는 대답을 들으신 후, 비로소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그리스도로서 가셔야 할 길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31절과 32절 전반절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까지를 형제님들이 읽어주시겠습니다. 시작!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가셔야 할 길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길입니다. 이는 즉흥적으로 정하신 것이 아니라,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지은 직후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의 계획입니다. 창세기 3:15절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메시아를 보내실 계획을 세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말씀대로, 사탄은 예수님을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사탄의 머리, 곧 사망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 이후에 이 복음 진리, 즉,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길이 바로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가셔야 할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시기 위해 험한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죽으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을 우리 대신 징벌과 고난을 당하도록 미리 계획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에는 이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53:4-6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징계를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양처럼 각기 제 길로 갔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감당하셔야 했던 십자가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고난을 통해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치료하고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제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 세상에서 대접받고 영광을 누리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고난 받고 비참하게 죽으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그리스도임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결코 죽어서는 안 되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셔야 이 땅에서 왕국을 건설할 수 있고, 자신들도 한 자리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는다’라고 하시니 제자들은 혼란스러웠고, 그 뒤에 이어진 부활에 대한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32절을 보겠습니다. 자매님들께서 읽어주시겠습니다. 시작!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여기서 ‘항변하매’는 영어 성경에 'rebuke'로 되어 있는데, 이는 ‘혼을 내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흥분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고 펄쩍펄쩍 뛰며 화를 냈습니다. 불과 잠시 전까지만 해도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는 온데간데없이, 예수님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습니다.
 왜 베드로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행동했을까요? 예수님을 지상 메시아로 믿고 있던 베드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가셔야 할 길을 듣자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마 이렇게 이야기했을지 모릅니다. “그리스도가 죽을 리 없잖아요!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이 왜 죽는다는 이야기를 하세요! 그리스도가 왜 죽어요? 죽는 게 어떻게 그리스도에요? 예! 제 말이 틀렸어요? 대답해 보세요!”
 이어서 예수님은 항변하는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33절을 유 여호수아 목자님께서 책망의 목소리로 읽어주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그저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부르시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관되게 십자가를 지고자 하셨지만, 사탄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가야 할 길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시면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완성되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죽을 수 없고, 죽지 않으면 부활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인간은 여전히 죄 아래서 신음하며 영원히 멸망받게 됩니다. 사탄은 이를 원하기 때문에, 집요하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도록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지상 메시아적 관점을 가진 베드로의 입을 통해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분별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는 사탄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도 십자가를 지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고,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셨기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끝까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은혜에 감사 찬송을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삯을 갚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우리의 죄의 마이너스 통장은 이제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 예수님의 죄 사함의 은혜와 능력을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가셔야 할 길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 시간,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영접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3.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34~38)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어떤 길을 가야 할까요? 예수님은 제자도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34절을 김 아브라함 목자님께서 읽어주시겠습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을 지상 메시아로 믿고 있었던 제자들은 고난 없는 영광을 받기 원했습니다. 고생한 만큼 보상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35절에서 37절을 보십시오. 35절에서 37절 말씀을 편이삭 목자님께서 읽어주시겠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그 목숨을 잃게 된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목숨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헌신할 때 구원을 받는다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길을 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를 인격적으로 경험한 제자는 예수님의 크신 사랑과 부활의 산 소망 가운데, 주와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를 인격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자기 목숨보다 예수님과 복음을 더 귀하게 여기는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38절을 보십시오. 38절 말씀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 속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제자는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휩쓸려 가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참 자유하게 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말씀을 굳게 붙드는 영적인 투쟁을 감당해야 합니다.

 1993년 6월 9일 인천에서 태어난 저는 믿음이 없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어렸을 적 또래들과 잘 어울리며 건강하게 자랐지만,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사관학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두 번의 도전 끝에 2013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육사 3학년 때, 간호사관학교 3학년 생도이자 동기인 지금의 동역자를 하나님의 인도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2015년 5월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했는데, 동역자는 모태신앙으로 신실한 주님의 자녀였습니다. 당시 믿음이 없던 저는 동역자의 믿음이 왜 그렇게 강한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매 주일은 아니었지만, 동역자를 따라 교회 청년부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에게 교회는 다니면 착해지는 곳, 성경 구절은 인생에 도움이 되는 정도로만 여겼습니다.
 모든 것이 막힘 없었던 생도생활을 보내고 있던 중 4학년 2학기에 생일 장난으로 인해 중징계를 받게 되었고, 생도 생활이 급속도로 삐뚤어졌습니다. 반복된 규정 위반으로 또 중징계를 받아 퇴교를 결심했으나, 학교에서 유일하게 자유롭게 허락된 교회 예배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날 예배에서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 23:10 말씀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징계를 억울하게 여기며 반항심을 가졌습니다. 저에 대해 잘못됬다고 지적하는 학교 훈육요원의 통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나를 알아주지도 이해주지도 못하는 꽉 막혀 있는 선배 훈육요원들을 정죄하곤 했습니다. 규정을 대놓거 어기는 저를 보며 몇몇 육사 동기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때로는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교만했던 저는 그러한 동기들을 되려 ’너희들이 뭘 알아, 징계는 받아나 봤어? 학교를 위해서 뭘 해봤어?“ 라는 막말로 대답을 했습니다. 나 자신을 앞세우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저 자신이였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저는 연천 25사단 수색대대 소대장으로 배치되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믿음의 지휘관인 편이삭 목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삭 목자님과 UBF 1:1 성경공부를 시작하면서 성경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성경공부를 하며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점차 해결되고, 말씀을 공부할수록 풀리지 않았던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저에게 흩어진 퍼즐로만 보였던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도록 주님께서 인도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성경공부는 저에게 신앙의 마중물이 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대를 옮기고 광주에서 군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저를 계속해서 훈련하시고 사랑해주셨습니다. 맡는 보직마다, 은혜를 부어주셔서, 모시는 지휘관을 기쁘게 하도록 저에게 업무성과를 허락하시고, 저의 업무방식이 타 부대에서 벤치마킹이 되어 저의 이름을 알리도록 하셨습니다. 또 모든 교육과정에서 표창을 수상하도록 지혜도 더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는 차 후 제가 유리한 보직을 얻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군에서 커리어에 가장 중요한, 좋은 평정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교만함에 빠진 나머지, 이러한 성과와 복만 은혜이고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사단에서 참모보직을 맡고 있을 때 였습니다. 업무 중에 인접 부서의 4년 선배 장교가 저의 업무 방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매번 감정적으로 저를 말로 공격하였습니다. “너가 뭘 알아, 니가 뭔데 건방지게 그런 판단을 해, 너가 사단장이야, 참모장이야”라며 남들이 보는 앞에서 인격 모독을 했습니다. 너무나도 기분이 나빴습니다. 마음속에서 ‘나보다 능력도 없고 인성도 덜되고 못 한 사람이 뭔데 나한테 지적질이야’ 라는 교만한 생각이 쌓여갔습니다. 그렇게, 선배장교의 감정적인 말이 계속 저에게 반복됬고, 저는 참을 인자를 세 번 새기다가 결국, 감정이 폭발했습니다. 선배 장교가 또 말을 거칠게 하자 저는 그 선배의 직속상관이 있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선배에게 소리치며 맞섰습니다. 그리고 평소 알고 있었던 그 선배의 약점을 되려 꼬집고 비틀며 날카롭게 맞받아쳤습니다. 선배는 흥분해서 저에게 ‘후배가 선배한테 이래도 되는거냐?’라고 물었지만 저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선배가 선배대접 받고 싶으면 후배한테 대접받을 만한 예의를 갖춰라’ 라고 맞받아쳤습니다. 그 선배 장교가 분을 삭이지 못하는 것을 보며, 저는 속으로 시원했습니다. 이내 그 상황을 지켜보시던 작전참모님이 저를 진정시키셨고, 그래도 후배이니, 먼저 사과하라고 말씀하셔서 형식적인 사과를 정말 마지못해 했습니다. 그 날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와서 다시 생각하니, 내가 왜 사과를 해야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당하고 산건 난데, 왜 내가 억울하게 사과를 해야하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억울했습니다. 너무 억울한 나머지, 이삭 목자님과 통화하며 펑펑 울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 다 참아야 하나요? 다 넘어가야 하나요?"라는 억울함에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의 교만함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나 자신이 잘났고 업무능력, 커리어, 평정 모든것이 완벽하기에 이 부분에서 만큼은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잘해서 내 능력으로 성취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잠29:23 저는 점차 교만에 의해 낮아지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셔서 2023년에 정기 군 위탁교육생으로 선발이 되었고, 저는 카이스트에서 석사과정을 도전했습니다. 군생활 간에 막힘없이 모든 업무와 교육을 내 능력으로 잘해내왔기에, 카이스트에서 석사과정도 ‘내가 하면되지, 일단 들이대 보자, 주님께서도 또 은혜를 주시겠지’라는 1차원적인 생각을 넘어서, 주님의 은혜를 도히려 제가 이용하려는 교만한 생각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러나 이내, 저에게도 주님의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카이스트의 위탁교육 생활은 군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군에서는 제가 익숙한거 잘하는거 위주였지만, 카이스트에서 하는 모든 것들은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것, 제가 익숙하지 않은것 투성이였습니다.
 연구실에서 하는 자체적인 Training과, 수업, 코딩, 논문리뷰, 세미나 등등, 석사과정을 진행하는 동안 무척이나 어려움을 겪었고, 공부로 인해 한겨울에도 머리 뒤통수가 뜨거울 정도였습니다. 이뿐만 아니었습니다. 군에서도 있던 선배장교와 트러블이 있었던 관계 문제와 비슷하게, 주님께서는 또 다시 저를 훈련시키셨습니다. 같은 연구실에 93년 동갑내기 박사과정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박사과정 친구가 저의 사소한 실수에, 군에 있었던 선배장교처럼 감정적인 말로 공격해 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없는 자리에서 저의 뒷 얘기를 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습니다. 또 분노가 올라왔습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멱살을 잡을 기세였습니다. ‘뭔데 교수님도 아닌 너가 군위탁생인 나에게 건방지게 이런 말을 하지?’ 라는 교만한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또 제가 가진 지위를 이용해 교만한 생각을 했던 것이 었습니다. 그러한 저를 동역자인 조레베카 목자님이 참으라고, 주님의 자녀로서 제발 좀 참으라고 권면해주셨습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11:2 ,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4:23
 동역자의 권면을 듣고 말씀을 읽고 기도했습니다. 묵상을 하고나니, 분노가 조금씨 가라앉았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을 고쳐먹기 힘들었습니다. 이러한 힘든 과정에서 주님께 불평도 많이 했습니다. "왜 저를 이곳으로 보내셨습니까? 포기하고 다시 군으로 돌아가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불평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위탁교육은 베드로가 처음 주를 거짓된 ‘메시아’로 고백했던 것처럼, 그 동안 군생활 고생했으니까 보상받자, 좀 편하게 적당히 수업듣고 논문쓰면서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삶이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냥 연구 이런거 다 못하겠다고 교수님께 면담을 신청할까 하는 그 찰나에, 카톡 프로필로 했었던 말씀이 다시 한번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 23:10 육사에서 징계를 받던 시절, 이 말씀을 보고 단순히 그냥 제가 억울해서 징계를 받은 거라고 제 스스로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같은 말씀이었지만, 과거와 다르게 지금은 이러한 어려운 환경 또한 주님의 복이자 은혜라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또 교만한 저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공부와 연구가 도저히 안풀리고 막힐때면, 이어폰을 꽂고 연구실 건물 앞 잔디밭을 눈을 감고 걸어다녔습니다. 연구실 동생들은 “형 잔디밭에서 뭐하세요? 미친사람 같아여~ 팔은 왜 흔드세요? 형 어디 아프신거 아니시죠?”라고 농담을 할 정도 였습니다.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시25:7 주님께서 찬양을 통해 말씀을 묵상하고 온전히, 저를 드러내고 회개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나의 능력, 나의 거만함으로 해결하는 과거의 제가 아니라, 온전히 주님의 능력을 통해 주님의 계획을 실현하도록 쓰임 받길 원하는 진정한’그리스도‘로 고백하기도록 성령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저에게 기적을 허락하셨습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수학 공식들과 코딩이 갑자기 술술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연구주제 발표를 이틀 앞두고 코딩이 구현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후에도 주님께서 구현해주신 몇몇의 코딩이 하나도 남김없이, 지금의 논문을 쓰는데 모두 이용되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기적을 보여주신 주님께 감사 찬양을 드립니다. 제가 더욱 주님을 믿고 따르고 겸손해지기를 소망합니다.
 논문이 마무리되고, 여유가 생기니 그제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들이 지금 이 시각에도 연구와 논문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카이스트 캠퍼스는 거의 대부분, 예수님을 그저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거나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연구실에서는 저만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이곳으로 보내신 이유는 고통받는 연구실 대학원생들과 카이스트 캠퍼스의 영혼 한 명이라도 구원하기 위함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19:10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카이스트 캠퍼스에서 한 사람의 영혼 구원을 위해 저를 도구로 기꺼이 사용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음 학기를 끝으로, 카이스트 캠퍼스에서 위탁교육이 종료가 됩니다. 다시 어떠한 보직, 장소로 갈지 결정하는 선택에 놓여있습니다. 이러한 선택을 놓고 여전히, 저는 제가 선택해야 하는 것이고, 제가 가진 것, 제가 바라는 것을 이루겠다라는 교만한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수양회 메시지와 소감작성을 통해서 주님께서 내가 또, 예수님을 거짓된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어떠한 보직이던간에 나의 커리어, 나의 성과, 가족이 살기편한 장소 등 세속적인 욕망을 앞세워 생각하고 있는 제 자신을 회개합니다.
그 어떤 것도 제가 결정을 내릴 수 없음을 주님께 고백합니다. 베드로가 처음 거짓된‘그리스도로 예수님의 존재를 고백했던 것처럼, 나를 위해서 삶의 방향을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진정한 ‘그리스도’로 고백하기를 허락해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온전히 주님께서 저의 삶의 방향을 결정해주시고 순종하는 제가 되기를 주님께서 붙들어주십시오. 나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삶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목적과 계획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진정한 ‘그리스도’로 고백함으로써 저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항상 기억하게 해주시고,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고,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살아가도록 주님께서 인도해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마음 깊이 새기며,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지혜와 은혜로 가득 채워주셔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주님의 길을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나의 약함을 주님께 의탁하며, 주님의 강함으로 채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시기 위해 험한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물과 피를 다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치료하시고 용서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고난받고 비참하게 죽으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그리스도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주요 나의 그리스도로 인격적으로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같이 요절 말씀인 마가복음 8:29절 말씀을 같이 읽고 제가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시작!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곳 충주 동교화랑 여름수양회에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삶이 거짓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그리스도이신 주님을 따르며 살아가도록 인도해주십시오.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며,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되도록 축복해주십시오.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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