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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년 눅37강(24:1-53) 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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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4회 작성일 17-11-0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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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제 37 강
말씀 | 누가복음 24:1-53
요절 | 누가복음 24:6

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그가 십자가를 지신 일은 어리석음이고, 그는 고통을 당하다가 헛되이 죽은 것이 됩니다. 죄의 결과 사망이 왔고 죽음은 가장 큰 비극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대신 죽으셨고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죽음을 이긴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복음으로서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만나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부활(1-12).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 12절을 볼 때 세마포만 무덤에 놓여있었습니다. 마치 고치가 되었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빠져나간 것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왔던 여인들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고 누가 시신을 훔쳐갔는지 근심이 되었습니다. 어떤 도둑이 시체를 훔쳐 가는데 세마포를 벗기고 가져갈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서있었습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일러주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예수님의 부활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이미 말씀하셨습니다(눅9:22, 눅18:32,33). 예수님의 부활은 말씀의 성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할 때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죄 사함의 길도 여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의롭게 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죽음으로 인생을 마치는 마침표 인생을 살지 않고 이음표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우리 인생이 죽음으로 끝난다면 아무리 화려한 인생을 살아도 의미가 없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버나드 쇼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합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인생은 너무 허무합니다. 이 허무함 때문에 장례식에 가는 사람들은 슬픔을 느낍니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15:20).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마지막 나팔소리가 날 때에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할 것입니다(고전15:52). 우리는 부활의 소망 가운데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 또 이 세상을 살아갈 때도 부활의 소망 가운데 힘차게 십자가를 지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열 한 사도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입니다.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렸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먼저 자기들에게 나타나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에 귀신들린 경력 있는 여인도 포함되었기 때문에 헛것을 본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믿지 않았고 또 여인들에게 전해 들었기 때문에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그는 즉시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었습니다(요20:7). 몸통 부분은 몸이 빠져나간 채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는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베드로는 아직 삼일 만에 살아나겠다고 했던 예수님의 말씀과 자신이 목격한 무덤과 부활을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고정관념이 참 무섭습니다. 예수님이 여러 번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여인들이 분명히 빈 무덤에 대해서 보고했고 천사의 말을 들은 것에 기초해서 말해주었지만 제자들도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그 만큼 믿기 힘든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빈 무덤과 세마포와 증인들과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셔서 그의 임재를 누리며 믿음을 갖게 하십니다.     

  둘째, 엠마오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13-35).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죽은 사람은 우리를 찾아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을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우상을 만들어 팔던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를 찾아오셨던 주님은 우리에게도 찾아오십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육신의 눈을 뜨고 있어도, 예수님이 바로 옆에 있어도 영적인 눈이 가리어져 있으면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하시는데도 목소리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울은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던 지독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핍박자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에게 찾아가셨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만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의 눈을 밝히셔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두 제자에게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두 사람은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섰습니다.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혹시 간첩 아녀? 그러나 예수님은 능청스럽게 “무슨 일이냐?” 물었습니다. 글로바가 대답합니다. “나사렛 예수의 일인데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였어요.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는디.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아 부렀네.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능겨.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당께. 허허.” 그들은 허망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충격을 받았는데 여인들이 무덤에 갔다가 시체는 보지 못하고 살아나셨다는 천사의 말을 듣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역사에 일어난 사실을 보고하지만 해석이 되지 않았습니다. 해석의 열쇠는 하나님의 말씀인데 말씀을 깨닫지 못하니 오리무중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들은 장래에 대한 두려움과 현실에 대한 실망으로 낙향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소시민으로 살아가려는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먼저 찾아와 동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25-27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은 먼저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더디 믿는 그들의 완악함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그리고 구약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말씀(시편22장, 사53장), 부활에 대한 말씀(시16:10,11; 시110:1,2), 그리스도의 약속과 구원의 성취(창3:15)등등. 예수님은 무조건 믿으라고 억지를 쓰지 않고 그들의 수준에 맞게 천천히 하나하나 다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음에 깨달음이 오기까지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3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분사수동태로서 ‘계속해서 타오름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감동이 지속되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이 열릴 때 우리 마음이 불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을 깊이 있게 공부할 때 주님께서 내 곁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씀이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말씀을 공부할 때 주님이 내 마음을 환히 알고 계시는 것을 알게 되고 내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분명하게 제시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God-breathed)으로 되었기 때문에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영감을 받고 교훈과 깨달음과 바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권면했습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 말씀이 있을 때 심령이 뜨거워지고 공동체는 살아나고 사랑과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찬양은 힘이 있고 기도하는 소리가 확신에 차 있고 행동은 거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공부를 통해서 마음이 뜨거워질 때 영적인 눈을 떠서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음의 세계를 배워가게 됩니다. 마음이 뜨겁게 될 때 하나님을 향한 헌신,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이 불타오르게 됩니다.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이르자 예수님은 더 가려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강권하여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았습니다. 이는 성만찬의 신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만찬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의식인데 성령께서 역사하사 그와 하나됨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말씀의 교제, 식탁 교제를 통해서 마음이 열리고 영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들은 곧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제자들과 합류하였습니다. 낙향하던 데서 돌이켜 사명의 땅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동역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함께 부활의 감격을 나누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그들 안에 생기가 돌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두 제자가 돌아왔을 때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두 제자들이 베드로의 증언을 더 확고하게 해 주었고 제자들은 부활신앙의 감격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서영주 전 산업자원부 차관보는 그의 딸 서민정의 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서민정은 MBC의 ‘거침없이 하이킥’에 출연한 연예인입니다. 서영주님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는 불교신자였고 니체의 글을 실존주의 철학에 심취해서 기독교에 대해 강한 저항심과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2006년 9월 4일부터 일주일간 있었던 특별새벽기도회에 가야 하는데 거기에 데려다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딸의 요청이니 안 들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갔는데 어색하게 로비에 있다가 엉겁결에 본당 뒷자리에 가 앉았습니다. 난생 처음 ‘내가 주인 삼은’ 복음 성가를 들었습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 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 해. 주 사랑 내 영혼의 반석 그 사랑 위에 서리” 이 찬양을 듣는 순간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는 “오 하나님! 오! 하나님! 오! 하나님 …” 감탄사만 계속 되풀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먼저 찾아와 주셔서 그를 만나주신 것입니다. 그는 이후 믿음이 성장하였고 「찾아오심」이라는 책을 써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이지혜 자매가 다니는 케이씨대학교 신학박사과정 중에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찾아오십니다.

  셋째, 열 한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36-49). 이 말을 할 때에 예수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샬롬!”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읽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38,39).”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의 부활만이 아니라 육체로 부활하셨음을 증명해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손과 발을 만져 보라고 하셨고 직접 구운 생선 한 토막을 그들 앞에서 맛있게 잡수셨습니다. 이는 장차 우리 신자들도 육체가 부활할 것을 예시해 주고 있습니다(고전15:35-39,51,52). 그때 변화될 우리 몸은 강하고 영광스럽고 썩지 아니할 것입니다. 또 신령한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충만한 사랑과 기쁨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직접 보게 하시고 음식을 잡수시고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그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줄기차게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게 도우셨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셔야 성경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데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반복해서 십자가와 부활을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앞에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내용을 똑같이 다른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일년에 한 번씩 반복해서 공부함으로 예수님을 깊이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신앙의 성숙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시고 또 깨닫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사명을 주셨습니까? 47,48절을 보십시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모든 사람들이 죄로 병들어 있고 죄로 인해서 고통하며 살다가 죽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합니다.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니 우리나라 안에 있는 젊은이들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세속의 물결에 휩쓸려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 다시 한 번 영적인 부흥이 있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나부터 회개하고 부활의 능력을 덧입고 증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49).” 성령충만을 통해서 제자들이 능력을 덧입을 때 비로소 증인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성령의 능력을 덧입혀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회개하게 하시고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사랑할 힘을 주십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능력입니다. 우리도 성령이 자유롭게 역사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드리고 순종하기를 기도합니다.

  넷째, 승천하신 예수님(50-53). 예수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예배한 것입니다. 그들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을 시작하십니다. 사도행전을 예수님의 천상행전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고 말씀을 깨우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성령으로 말씀을 가르치시며 회개케 하시고 치료하시고 구원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누가복음 주일 메시지를 축복하시고 풍성한 은혜를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말씀을 통해서 자기를 발견하고 구원 역사, 성숙해지는 역사를 이루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인격적인 만남을 이루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계속해서 우리를 캠퍼스와 세계에 복음의 증인으로 써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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