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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년 눅32강(21:1-38)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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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2회 작성일 17-10-0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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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제 32 강
말씀 | 누가복음 21:1-38
요절 | 누가복음 21:36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내면을 보시지만 사람은 외모를 보고 판단합니다. 우리는 현대 과학 문명이 성취한 모습을 볼 때 감격하여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인류의 앞날이 밝게 보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인간의 지성과 과학으로 풀어낼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밝은 면이 있지만 또한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과학 문명의 발전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파괴력을 생각할 때 적지 않은 염려가 됩니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서 우리는 생활의 편리를 얻게 되지만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문명은 화려하게 꽃을 피워가지만 인간 내면의 부패는 여전합니다. 그 죄가 파멸을 초래합니다. 성경은 천지 만물의 시작과 발전을 이야기 하면서 역사의 종말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종말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시작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의 역사관은 낙관적이고 희망적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세상 역사의 종말을 생각하면서 시대를 분별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깨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성전에서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남들이 보라는 듯이 자랑스럽고 당당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 소리가 쫘르르, 쫘르르하고 들렸을 것입니다.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넣는 것도 보셨습니다. 이 과부가 동전 두 렙돈을 드릴 때에 땡그랑, 땡그랑 두 번 소리가 났을 것입니다. 이 과부는 적은 돈을 드리는 것이기에 쑥스러운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3,4).” 어떻게 자신이 가진 전부를 드릴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친히 공급해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도우심을 신뢰할 때 여인처럼 전적으로 헌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헌금을 할 때 감사함으로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슨 마음으로 드리는가도 다 아십니다.

  또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이 얼마나 장엄하고 굉장한지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당시 성전은 헤롯이 유대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확장공사를 시행하던 중이었습니다. 성전의 규모나 아름다움에서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탁월한 건축물이었습니다. 모든 기둥이 흰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서 요세푸스에 의하면 멀리서 볼 때는 눈에 덮인 산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성전 건물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고 믿었고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은 영원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참 성전으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맹목적으로 성전 건물을 하나님처럼 의지했습니다.

  성전 건물의 위용에 감탄하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충격적인 예언을 하셨습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6).” 어떤 사람들이 성전의 겉모습을 보고 자랑할 때 예수님은 성전의 부패를 보셨습니다.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어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가증스러웠고 그들이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파괴될 수밖에 없음을 보셨습니다. 두 렙돈을 헌금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냈다고 하신 예수님은 성전의 화려함보다 그 부패를 보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 권력을 잡은 사람들, 인정을 받는 사람들에게 주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한 사람, 충성스러운 사람, 정직한 사람, 겸손한 사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주목하십니다. 그들에게 능력을 부어 주시고 구속 역사를 이끌어 나가십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한다는 말씀을 듣자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인지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징조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시고 때에 대해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징조는 미혹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로 행세를 할 것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는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고 할 것입니다. 사탄은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합니다. 사기꾼들의 특징은 우리를 위해서 일한다고 확신을 주기 위해서 말을 합니다. 그들은 겉과 속이 다르고 결국은 자기 유익을 추구하고 우리에게는 손해를 끼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많은 거짓 메시아들이 나타났습니다. 66년 갈릴리 유다스의 아들 메나헴은 마치 왕인 것처럼 예루살렘에 입성했습니다. 69년 시몬 바기오리가 메시아처럼 행세했습니다. 두려운 소식들이 들릴 때에 불안한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 그리스도들이 등장하는 현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합니다. 전쟁위기설 등으로 불안이 가중될 때마다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나 자신이 그리스도라 하며 또 때가 가까이 왔으니 자신을 따르라고 미혹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벗어나는 말과 여기에 미혹을 받으면 안 됩니다. 그들을 따라가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번개가 번쩍이듯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오실 것입니다.

  둘째 징조는 난리와 소요의 소문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난리와 소요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여러 상황들을 말합니다. AD66년에 유대인들의 반란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1,2차 세계 대전을 겪었습니다. 북한의 핵 위협과 전쟁설이 끊이지 않고 들립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해서 곧바로 인자가 재림하고 세상 전체가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입니다. 6.25 전쟁에는 전국민과 25개국에서 200만에 가까운 군인이 참전하여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당시 세계 독립국가 93개국 중에서 60개국이 남한에 병력이나 군수물자를 제공했고 소련과 중국이 북한에 공군 및 지상군을,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는 의료지원을 했습니다. 몽고와 동독도 추가 원조를 했습니다. 전쟁의 폐허와 절망의 끝자락에서 다시 일어선 우리는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징조는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을 것입니다(11). 우리는 얼마 전에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 메르스의 전파, 사스의 전파로 전염병이 얼마나 짧은 시간에 세계로 퍼지는가를 보았습니다. 지진과 기근에 대한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핍박이 있게 됩니다.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이유로, 제자들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갈 것입니다(12).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공회에 끌려가 심문 받고 채찍에 맞았습니다. 이방인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서 심문을 받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핍박은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에는 로마의 황제숭배를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핍박을 받았고, 현대에서는 공산주의, 이슬람국가에서 자신들의 이념을 거부한다고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세속주의가 판을 치는 지금은 인본주자들에게서 어리석은 자라고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이런 핍박 가운데 도리어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재판을 받으면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 복음을 증거한 수많은 성도들로 인해서 복음은 세계에 퍼졌습니다. 핍박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제자들은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해야 합니다(14).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15).” 핍박을 받게 하시는 목적이 증언이기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을 풀어주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복음을 잘 증거 할 수 있도록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주십니다. 이 약속이 있기에 제자들은 핍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 안이숙 여사, 주기철 목사 등등 수많은 순교자들이 핍박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프랑스의 혁명 때, 스탈린, 나치 시대, 공산주의 시대에 가족 파괴가 일어났습니다. 전체주의의 최대의 적은 가족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족에 대한 충성보다 국가와 최고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기 위해서 자녀가 부모를 밀고하고 배신하도록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 자녀들은 나중에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가장 사랑하고 신뢰하는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크리스천들이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는 핍박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아무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 온갖 박해 속에서도 교회는 안전하게 보호될 것입니다. 당장은 고난을 받을지라도 예수님의 제자들과 교회는 영원히 상하지 않는 복을 얻습니다. 굳은 의지와 결심만으로는 핍박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믿을 때 극심한 핍박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인내의 결과 구원을 얻게 됩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19).”

  예루살렘의 멸망이 가까울 때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당시 예루살렘 성이 요새중의 요새였기 때문에 성전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군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여 3년 동안 물과 식량 공급을 막았고 결국 110만명이 참혹하게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신자들은 성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살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큰 화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칼날에 죽음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갔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고 있습니다. 97000명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예루살렘은 약 이천년 동안 이방인들에게 유린을 당했고 유대인들은 나라 없이 방황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일월성신에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입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볼 것입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처음에 오실 때는 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다시 오실 때에는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쥐시고 생명과 사망의 열쇠를 지닌 심판주로 오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불신자들에게는 공포와 두려움의 날입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신자들에게는 희망의 날입니다. 그 날 제자들은 죄와 허물과 죽음과 사탄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것입니다. 만물이 구속되고 육체까지 부활의 영광을 얻는 완전한 속량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으며 머리를 들지 못하고 위축되어 살던 신자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과 그가 가져오실 속량을 바라보며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제 어느 때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인지 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29-31절을 보십시오.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우리가 시대의 징조를 보면 자연스럽게 말세가 가까이 온 줄을 알게 됩니다. 지금 이 나라는 동성애가 죄가 아니고 그것을 옹호하는 법을 만들고자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확산되면서 멸망이 온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런 것들이 심화되면서 심판이 오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고 오직 구속받은 자들이 주님의 완벽한 통치를 받으며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애초에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에 대해 물었습니다. 즉 세상의 멸망이나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 시기에 대해 말씀해주십니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32).” 이 세대는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의 세대를 말하고, 모든 일은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예언들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하신 때가 대략 33년쯤이라고 할 때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나가기 전인 AD70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천지는 없어지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100%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생의 기초로 삼아야 합니다. 결국은 없어질 것을 인생의 기초로 삼으면 그 위에서 행한 나의 모든 삶도 허무하게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코 없어지지 않을 말씀에 기초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제멋대로 나아가려 해도 모든 것은 결국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 지면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시대를 분별할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와 양들을 공격하여 믿음을 무너뜨리고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할 때 사탄의 공격과 시험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게 될 그 주간에도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는 산에서 쉬셨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은 깨어 있는 사람의 모범이 어떤 것인지 보여 줍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면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죄인이 멸망할 세상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도 사랑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비참한 것입니까? 나는 사랑한다고 하는데 정작 상대편이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내가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의 언어를 바꾸어야 합니다. 자기만족적인 사랑이 아니라 타인 중심의 사랑을 해야 합니다. 상대편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번 열흘간의 연휴에 무엇을 할 계획이십니까? 우리가 한 사람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기고 그가 구원의 풍성함을 누리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말세를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항상 기도하고 깨어서 정말 해야 할 일을 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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