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7년 눅30강(19:11-27) 장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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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제 30 강
말씀 | 누가복음 19:11-27
요절 | 누가복음 19:13
장사하라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임할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이런 기대를 무너뜨리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에 장사를 해야 합니다. 장사를 잘하는 핵심은 하나님께 충성입니다. 충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자 할 때 어려울 때나 열매가 없을 때에도 변함없이 충성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구원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충성해야 하는지 배우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은화 한 므나는 백 데나리온이고 한 데나리온은 어른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하루 품삯을 10만원으로 잡으면 천만 원 정도 입니다. 이것을 종자돈으로 해서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장사를 하라고 명했습니다. 귀인이 먼 나라로 갔기 때문에 주인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종이지만 모든 자유가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장사를 하는 분들을 보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일할 뿐만 아니라 항상 긴장된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다 드려서 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장사를 하라고 종잣돈과 자유를 준 것은 그들이 행복하게 일하도록 한 주인의 배려였습니다.
종들과 달리 그 백성은 그 귀인을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습니다. 주인에 대해 좋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종들이 장사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불렀습니다. 주인은 자신이 준 은화 한 므나로 종들이 얼마나 이익을 남겼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 첫째가 나아와 주인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그 둘째가 나아와 보고했습니다.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첫째 종에 대한 주인의 평가는 착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아 마음이 부드럽고 순종을 잘 하는 사람을 착하다고 말합니다. 종들은 주인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고 열심히 장사를 했습니다. 그는 시장조사도 철저하게 하고, 판매 전략도 세웠습니다. 고객 관리에 온 마음을 다했습니다. 고객들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 상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객들의 필요에 맞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했습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어떻게 하면 고객들을 행복하게 하고 그 댓가로 이익을 남길 수 있을까 궁리했습니다. 애프터서비스(AS)도 신속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장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천만 원으로 시작하여 일억 원이 되었습니다. 열 배의 이익을 남긴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습니까? 주인에 대한 충성이었습니다. 충성이란 국어사전에서는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고, 성경에서 말하는 충성(忠誠)은한자로 보면 잘 보입니다. 즉 마음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자기의 뜻과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충성’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페이쏘(πειθω)’입니다. 이는 ‘믿음’이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충성과 믿음은 한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충성과 믿음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충성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충성도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믿음이고, 그 들은 바를 행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충성할 수 없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이 그분을 믿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충성인지 아닌지 알려면 ‘내가 이렇게 하는 동기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자신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진정한 충성은 어려움이 오면 사람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고 지금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다스리시므로 하나님께 물어보고 그 분만 계속 의지하는 것입니다.
첫째 사람과 둘째 사람은 장사하라는 주인의 명령에 절대적인 자세로 순종했습니다. 어찌하든지 많은 이익을 남겨, 주인을 기쁘게 해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랬을 때 지혜가 생기고, 온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장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하듯 하면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충성은 우리를 위험에서 보호해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충성을 다해야 하는데 나중에 쓸모없다고 나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내에게 충성을 다하는 남편은 아내의 존경을 받습니다. 남편에게 충성을 다하는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받습니다. 충성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의 하나입니다. 즉 충성은 하나님을 믿고 그 안에 거할 때 생기는 열매입니다. 장사를 오직 이익을 위해서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사회적인 책임과 높은 윤리의식을 가지고 할 때 신뢰를 받고 오래 동안 할 수 있습니다. 일확천금을 벌고자 하는 욕심으로 하는 장사는 금방 표가 나고 오래 할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마음을 다해 하나님과 사람에게 유익을 드리고자 할 때 많은 유익을 남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충성해야 할 영역은 하나님과 사람과 물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맡겨준 재물에도 충성하기를 원하십니다. 물질에 대한 충성이란 낭비하지 않되 주님이 원하시는 것에 합당하고 규모 있게 쓰는 것입니다. 줄이고 안 쓰는 것이 아니라 쓰되 올바르게 지혜롭게 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충성해야 할 대상은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작은 일에 충성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16세기 이탈리아에 한 성실한 젊은 정원사가 있었습니다. 어찌나 자기 일에 충실했는지 자기가 맡은 화분에 일일이 꽃 모양까지 조각해 넣는 정도였습니다.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까지 공을 들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묻는 주인에게 젊은 정원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돈이 아니라 정원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정원을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입니다.” 이 말에 감동받은 주인은 정원사에게 미술 공부를 시켜주었고, 훗날 그는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미술가 겸 조각가로 성장했습니다. 이 정원사의 이름은 미켈란젤로입니다.
미국 시골의 작은 피자집에서 고아 출신의 사고뭉치 소년이 밀가루 반죽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우직하게 반죽에만 매달리던 그는 결국 한 판을 11초 만에 반죽하는 경지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작은 피자 회사를 세운 그는 피자를 빨리 만들어내는 것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피자가 늦게 나오는 경우에는 주문한 피자를 공짜로 주는 기상천외한 전략 덕분에 그의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도미노 피자의 창업주 토머스 모나한입니다.
다윗은 양의 우리에서 젖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 큰 어미 양이 아니라 젖양을 키울 때 충성을 다했습니다.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그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그를 해하고자 하면 그는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습니다. 다윗은 양 한 마리도 끝까지 가서 되찾아 왔습니다. 이런 다윗을 보고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을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충성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열매가 없기 때문에 낙담하고 지칠 수가 있습니다. 장사가 항상 잘 되면 좋지만 불황기를 지날 때도 있습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한국 기업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모든 것을 놓고 내려와야 했습니다. 중국에 투자했던 사업가들은 사드 배치로 인해서 많은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하박국도 메마른 무화과나무에 잎사귀조차 나지 않고, 포도 농사는 망하고, 감람나무 열매는 너무 부실해서 내다 팔수도 없고, 밭농사도 실패하고 먹고 살기 힘들어서 양과 소까지 팔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삶이 초토화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충성스러울 수 있는가? 충성의 열매와 보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충성할 수 있을까요? 허튼 짓 한 번 하지 않고 성실하게 달려왔는데 열매가 없습니다. 믿음대로 될 줄 알고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결국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는데도 상황과 주변 반응은 더 악화될 뿐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 지루하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했는데 인정과 칭찬은커녕 무시만 당합니다. 이런 때 우리는 충성이 시험을 받습니다. 이런 시험은 감추인 것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게 합니다. 이런 시험을 통해서 충성이 진품인지 유사품인지 드러납니다. 고통은 죽기 직전까지 갑니다. 이런 시험을 통해서 내가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이런 시험을 허락하실까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비법을 알려주고자 하십니다. 우리 힘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직 믿음으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갈 때 우리는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종들에게 각양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먹이고 입히고 채우는 분이십니다.
주인은 그 종을 어떻게 칭찬했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9절도 보십시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주인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한 자에게 열 고을, 다섯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차지하도록 축복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주인이 종들에게 한 므나씩 주며 장사하라고 한 것은 단순히 돈을 벌려는 욕심에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더 큰 것을 맡기기 위해서 그 충성심을 테스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극히 작은 것을 맡기시고 충성심을 지켜보시는 이유는 더 크고 영원한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복음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복음으로 자기 한 사람만 구원 받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 각종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 은사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온전하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은 사랑을 나누어 다섯배 열배의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시고 세상 만민을 제자 삼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맡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세 번째 종은 앞의 두 종과 달랐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그는 한 므나를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자신이 일하지 않은 이유를 변명했습니다. 그는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게으름과 안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가 주인의 명령에 순종치 않은 것은 주인에 대한 불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은 주인을 높이고 경외하는 것 같지만 실은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인을 무서워했습니다. 주인이 불로소득을 취하는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점에서 악한 종입니까?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대개 악하고 게으른 사람들일 수록 말이 많습니다. 핑계가 많고, 불평이 많습니다. 그가 주인을 엄한 사람으로 알았다면 은행에라도 맡겼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도적맞을 위험도 없고, 이자라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이 종은 이익을 남겨 주인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생각하는 것이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주인은 곁에 섰는 자들에게 그에게서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곁에 섰는 자들은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열 므나가 있는 사람에게 왜 더 주시는가? 주인은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주님께 은혜 받는 원리입니다. 처음 받은 은사가 많든지 적든지 그것을 가지고 성실하게 활용하면 더 많은 은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때 그 은사는 날로 날로 커집니다. 그러나 은사를 사용하지 않고 묻어두면 결국 그 은사는 사라져버립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끌어다가 심판하십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의 왕권을 인정치 않으려는 복음의 원수들을 의미합니다. 요즘도 온갖 합리적인 말로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거절해도 주님께서는 반드시 세상을 심판하실 공의로운 왕으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그 날에 저들은 모두 진멸당할 것입니다. 왕되신 예수님을 경외하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충성을 다 해도 내가 충성된 종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럽습니다. 나 자신의 평가는 후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외람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께 다시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했지만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가 다시 주님께 충성했을 때 초대 교회의 수장이요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고 그 이름이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왕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왕 되신 주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을 해야 합니다. 받은 바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 사랑을 나누어 주고 기도해 주고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께 유익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면 가장 큰 상급이 될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더 크고 중한 일을 맡겨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충성된 일꾼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누가복음 19:11-27
요절 | 누가복음 19:13
장사하라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임할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이런 기대를 무너뜨리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에 장사를 해야 합니다. 장사를 잘하는 핵심은 하나님께 충성입니다. 충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자 할 때 어려울 때나 열매가 없을 때에도 변함없이 충성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구원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충성해야 하는지 배우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은화 한 므나는 백 데나리온이고 한 데나리온은 어른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하루 품삯을 10만원으로 잡으면 천만 원 정도 입니다. 이것을 종자돈으로 해서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장사를 하라고 명했습니다. 귀인이 먼 나라로 갔기 때문에 주인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종이지만 모든 자유가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장사를 하는 분들을 보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일할 뿐만 아니라 항상 긴장된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다 드려서 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장사를 하라고 종잣돈과 자유를 준 것은 그들이 행복하게 일하도록 한 주인의 배려였습니다.
종들과 달리 그 백성은 그 귀인을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습니다. 주인에 대해 좋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종들이 장사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불렀습니다. 주인은 자신이 준 은화 한 므나로 종들이 얼마나 이익을 남겼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 첫째가 나아와 주인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그 둘째가 나아와 보고했습니다.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첫째 종에 대한 주인의 평가는 착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아 마음이 부드럽고 순종을 잘 하는 사람을 착하다고 말합니다. 종들은 주인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고 열심히 장사를 했습니다. 그는 시장조사도 철저하게 하고, 판매 전략도 세웠습니다. 고객 관리에 온 마음을 다했습니다. 고객들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 상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객들의 필요에 맞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했습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어떻게 하면 고객들을 행복하게 하고 그 댓가로 이익을 남길 수 있을까 궁리했습니다. 애프터서비스(AS)도 신속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장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천만 원으로 시작하여 일억 원이 되었습니다. 열 배의 이익을 남긴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습니까? 주인에 대한 충성이었습니다. 충성이란 국어사전에서는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고, 성경에서 말하는 충성(忠誠)은한자로 보면 잘 보입니다. 즉 마음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자기의 뜻과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충성’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페이쏘(πειθω)’입니다. 이는 ‘믿음’이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충성과 믿음은 한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충성과 믿음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충성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충성도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믿음이고, 그 들은 바를 행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충성할 수 없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이 그분을 믿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충성인지 아닌지 알려면 ‘내가 이렇게 하는 동기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자신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진정한 충성은 어려움이 오면 사람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고 지금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다스리시므로 하나님께 물어보고 그 분만 계속 의지하는 것입니다.
첫째 사람과 둘째 사람은 장사하라는 주인의 명령에 절대적인 자세로 순종했습니다. 어찌하든지 많은 이익을 남겨, 주인을 기쁘게 해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랬을 때 지혜가 생기고, 온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장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하듯 하면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충성은 우리를 위험에서 보호해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충성을 다해야 하는데 나중에 쓸모없다고 나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내에게 충성을 다하는 남편은 아내의 존경을 받습니다. 남편에게 충성을 다하는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받습니다. 충성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의 하나입니다. 즉 충성은 하나님을 믿고 그 안에 거할 때 생기는 열매입니다. 장사를 오직 이익을 위해서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사회적인 책임과 높은 윤리의식을 가지고 할 때 신뢰를 받고 오래 동안 할 수 있습니다. 일확천금을 벌고자 하는 욕심으로 하는 장사는 금방 표가 나고 오래 할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마음을 다해 하나님과 사람에게 유익을 드리고자 할 때 많은 유익을 남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충성해야 할 영역은 하나님과 사람과 물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맡겨준 재물에도 충성하기를 원하십니다. 물질에 대한 충성이란 낭비하지 않되 주님이 원하시는 것에 합당하고 규모 있게 쓰는 것입니다. 줄이고 안 쓰는 것이 아니라 쓰되 올바르게 지혜롭게 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충성해야 할 대상은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작은 일에 충성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16세기 이탈리아에 한 성실한 젊은 정원사가 있었습니다. 어찌나 자기 일에 충실했는지 자기가 맡은 화분에 일일이 꽃 모양까지 조각해 넣는 정도였습니다.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까지 공을 들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묻는 주인에게 젊은 정원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돈이 아니라 정원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정원을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입니다.” 이 말에 감동받은 주인은 정원사에게 미술 공부를 시켜주었고, 훗날 그는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미술가 겸 조각가로 성장했습니다. 이 정원사의 이름은 미켈란젤로입니다.
미국 시골의 작은 피자집에서 고아 출신의 사고뭉치 소년이 밀가루 반죽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우직하게 반죽에만 매달리던 그는 결국 한 판을 11초 만에 반죽하는 경지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작은 피자 회사를 세운 그는 피자를 빨리 만들어내는 것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피자가 늦게 나오는 경우에는 주문한 피자를 공짜로 주는 기상천외한 전략 덕분에 그의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도미노 피자의 창업주 토머스 모나한입니다.
다윗은 양의 우리에서 젖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 큰 어미 양이 아니라 젖양을 키울 때 충성을 다했습니다.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그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그를 해하고자 하면 그는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습니다. 다윗은 양 한 마리도 끝까지 가서 되찾아 왔습니다. 이런 다윗을 보고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을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충성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열매가 없기 때문에 낙담하고 지칠 수가 있습니다. 장사가 항상 잘 되면 좋지만 불황기를 지날 때도 있습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한국 기업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모든 것을 놓고 내려와야 했습니다. 중국에 투자했던 사업가들은 사드 배치로 인해서 많은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하박국도 메마른 무화과나무에 잎사귀조차 나지 않고, 포도 농사는 망하고, 감람나무 열매는 너무 부실해서 내다 팔수도 없고, 밭농사도 실패하고 먹고 살기 힘들어서 양과 소까지 팔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삶이 초토화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충성스러울 수 있는가? 충성의 열매와 보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충성할 수 있을까요? 허튼 짓 한 번 하지 않고 성실하게 달려왔는데 열매가 없습니다. 믿음대로 될 줄 알고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결국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는데도 상황과 주변 반응은 더 악화될 뿐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 지루하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했는데 인정과 칭찬은커녕 무시만 당합니다. 이런 때 우리는 충성이 시험을 받습니다. 이런 시험은 감추인 것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게 합니다. 이런 시험을 통해서 충성이 진품인지 유사품인지 드러납니다. 고통은 죽기 직전까지 갑니다. 이런 시험을 통해서 내가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이런 시험을 허락하실까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비법을 알려주고자 하십니다. 우리 힘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직 믿음으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갈 때 우리는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종들에게 각양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먹이고 입히고 채우는 분이십니다.
주인은 그 종을 어떻게 칭찬했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9절도 보십시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주인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한 자에게 열 고을, 다섯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차지하도록 축복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주인이 종들에게 한 므나씩 주며 장사하라고 한 것은 단순히 돈을 벌려는 욕심에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더 큰 것을 맡기기 위해서 그 충성심을 테스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극히 작은 것을 맡기시고 충성심을 지켜보시는 이유는 더 크고 영원한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복음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복음으로 자기 한 사람만 구원 받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 각종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 은사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온전하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은 사랑을 나누어 다섯배 열배의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시고 세상 만민을 제자 삼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맡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세 번째 종은 앞의 두 종과 달랐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그는 한 므나를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자신이 일하지 않은 이유를 변명했습니다. 그는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게으름과 안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가 주인의 명령에 순종치 않은 것은 주인에 대한 불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은 주인을 높이고 경외하는 것 같지만 실은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인을 무서워했습니다. 주인이 불로소득을 취하는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점에서 악한 종입니까?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대개 악하고 게으른 사람들일 수록 말이 많습니다. 핑계가 많고, 불평이 많습니다. 그가 주인을 엄한 사람으로 알았다면 은행에라도 맡겼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도적맞을 위험도 없고, 이자라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이 종은 이익을 남겨 주인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생각하는 것이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주인은 곁에 섰는 자들에게 그에게서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곁에 섰는 자들은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열 므나가 있는 사람에게 왜 더 주시는가? 주인은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주님께 은혜 받는 원리입니다. 처음 받은 은사가 많든지 적든지 그것을 가지고 성실하게 활용하면 더 많은 은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때 그 은사는 날로 날로 커집니다. 그러나 은사를 사용하지 않고 묻어두면 결국 그 은사는 사라져버립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끌어다가 심판하십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의 왕권을 인정치 않으려는 복음의 원수들을 의미합니다. 요즘도 온갖 합리적인 말로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거절해도 주님께서는 반드시 세상을 심판하실 공의로운 왕으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그 날에 저들은 모두 진멸당할 것입니다. 왕되신 예수님을 경외하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충성을 다 해도 내가 충성된 종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럽습니다. 나 자신의 평가는 후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외람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께 다시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했지만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가 다시 주님께 충성했을 때 초대 교회의 수장이요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고 그 이름이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왕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왕 되신 주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을 해야 합니다. 받은 바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 사랑을 나누어 주고 기도해 주고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께 유익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면 가장 큰 상급이 될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더 크고 중한 일을 맡겨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충성된 일꾼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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