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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018막2강(1:14-28)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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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4회 작성일 18-03-1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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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마가복음 제 2 강 
말씀 | 마가복음 1:14-28
요절 | 마가복음 1:17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선포하셨습니다. 어부들을 부르셔서 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드십니다. 고기에 웃고 울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람을 얻기 위해서 울고 웃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들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으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제자들을 사랑하심으로 그들을 얻으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예수님을 통해서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4-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님은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라는 이 말씀은 그 시대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당시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의 분봉왕이었습니다. 그는 간사하고 잔인하고 음란하였습니다. 그의 이복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에 빠져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헤로디아를 취했습니다. 요한이 이 일로 책망을 하자 옥에 가두었습니다. 요한은 당시 어두운 시대를 비추는 등불이었습니다. 그는 공의를 외치다가 체포되어 옥에 갇혔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분노와 절망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했음을 아셨습니다. 자신이 건설하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는 공의와 인애가 충만한 나라이지만 지금은 사회의 구조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싸울 때가 아님을 아셨습니다. 그는 먼저 각 개인의 삶에 회개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성결과 사랑이 회복되어야 함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갈릴리로 물러나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큰 비전을 품으셨지만 멀리 보시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전파하신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때가 찼다”는 말은 하나님이 오랫동안 준비하신 구속 역사의 때가 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의 시대가 도래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서 그의 통치 아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사탄이 다스리는 곳은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지옥입니다. 이런 세상에 예수님이 오셔서 사탄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도록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회개’는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의 방식을 따르던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회개는 지금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깨달을 때 바로 해야 합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은 제안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자신이 지은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고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서 피를 흘리셨고 그 대가를 치루셨고 깨끗하게 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회심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사람 안에 역사하사 새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전해야 할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캠퍼스에 나아가 이 같이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기쁨을 누리며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일대일로 마가복음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할 수 있는 제자들을 얻기를 바랍니다. 

  둘째, 제자들을 부르심(16-20).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어부는 고기를 잡아서 시장에 내다 팔아서 그것으로 식량을 구입하고 자녀들을 교육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부는 고기를 언제 잡아야 하는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고기 종류에 따라서 어떤 그물을 사용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그는 고기를 잡는 노인의 허무한 삶을 그렸습니다. 고기를 잡는 어부의 삶은 그날 잡은 고기의 양에 따라서 울고 웃는 삶이었습니다. 시몬과 안드레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지만 잡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 허무하고 피곤하고 지루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좀 더 의미 있고 즐겁고 가치 있는, 정말 비전이 넘치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그물 던지는 것을 유심히 보셨습니다. 사람을 알려면 정확하게 보고 깊이 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어부들인데 고기를 따라 울고 웃는 삶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고민합니다. 대개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살고자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청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이 많습니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발견한 청년들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런 고민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인생 목적을 깊이 발견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들에게 어떤 소망을 두고 부르셨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을 따라오라는 말씀은 그의 제자가 되라는 부르심입니다. 당시 제자는 스승과 함께 살면서 스승의 사상과 인격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시몬과 안드레가 그와 함께 살면서 그의 사랑을 받고 말씀을 배우도록 초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고민을 듣고 대화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격적으로 배우고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다가가기 어려운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친근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가르치십니다. 율법의 요구가 너무 많아서 힘든 신앙생활이 아니라 율법의 본질이 사랑임을 알고 은혜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있는 죄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를 위해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혼자서 건설하지 아니하시고 제자들을 부르심으로 그들과 함께 일하십니다. 제자들의 모습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사람들을 다 품을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의 각양각색의 재능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입체적으로 이루어가십니다. 누구든지 어떤 일을 하려면 먼저 사람을 얻어야 합니다. 보통 세상에서는 재능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은 평범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실하게 자기가 맡은 바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제자들로 부르셨습니다. 그들 중에는 형제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형제들이었고 친구들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세리 마태와 열심 당원 시몬과 같은 전혀 다른 사람들도 부르셨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일할 때 즐겁고 능률적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있지만 서로 사랑하며 섬기도록 하시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랐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사람을 낚는 어부들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란 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얻는 제자를 뜻합니다. 사람을 죄와 사망의 바다에서 건져내어 구원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제까지 고기를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고기를 따르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사람을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알고 사람을 배우는 삶입니다. 사람을 얻기 위해서 많은 방법과 연구를 해야 하지만 핵심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할 때 그가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의 말을 듣게 되고 그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주게 되고 그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되도록 일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고 조금 더 가시다가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보셨습니다.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그물을 깁는 것은 다음 조업을 위해서 그물을 고치고 깨끗하게 정리하는 작업입니다. 그들이 배와 품꾼들을 둔 것을 보면 집안이 부유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곧 그들을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결단이 분명하였고 준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사람을 깁는 제자들로 만들고자 한 것 같습니다. 즉 사람을 고치고, 깨진 질서를 잡아주고,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을 치료해 주고, 이리 저리 뒤틀린 사람을 바로 잡아 주는 것입니다. 또 생각이 고장 나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사람, 비정상적인 사람을 정상적인 사람이 되도록 바로 잡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각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물 깁던 사람이 사람을 깁게 됩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2월 21일 천국에 입성하였습니다. 그는 185개국 2억 명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1973년 여의도 집회를 이끌며 한국교회를 일깨워 부흥을 일으키는데 귀히 쓰임 받았습니다. 그는 북한에도 두 번 방문하였고 김일성에게 성경을 선물하였습니다. 그는 신비스러운 은사는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성경을 전적으로 믿으며 한 번 선택한 사람은 끝까지 신임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성실성과 진실성, 정직함과 검소함이 그의 결정적인 은사였습니다. 빌리그래함도 위대하지만 그를 쓰신 하나님은 더 위대하십니다.

  수년전 스탠퍼드 경영학자들에 의해 이런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지도자가 지나치게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는 경우, 지도자 의존성이 높아지면서 장기적으로 건강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향을 100년 이상 지속된 단체들과 기업들의 심층 연구를 통해서 밝혀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우리를 통해서 말씀을 전하고 구원하는 일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예수님은 평범하다 못해 허접해 보이기까지 한 제자들을 부르시고 훈련하셔서 구원 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을 부르셔서 세계 만민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21-28). 예수님과 네 제자가 가버나움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습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랐습니다.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서기관들과 달리 왜 권위가 있었을까요? 권위는 선악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는 권위가 예수님을 통해서 잘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성육신하신 분이십니다. 원본 즉 오리지널이 권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겸손과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전하신 말씀이기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듣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체험한 것을 전하셨기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율법의 정신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의 본질이나 율법에 담긴 정신보다는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만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율법적인 가르침은 진부하고 들으면 졸리고 사람들의 어깨에 짐만 지우고 있었습니다. 힘이 없는데 이것저것을 하라고 요구만 하니 사람들은 서기관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에 담겨있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셨고 그의 가르침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죄사함을 주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은 마음이 가볍고 시원해졌습니다. 그의 말씀은 진리를 밝히 드러냈습니다. 그의 말씀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어두움을 다 몰아냈습니다. 그의 말씀은 듣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생명을 주었습니다. 이런 차이점은 안식일(2:23-3:6)에 대한 가르침, 정결법(7:1-23), 이혼법(10:2-12) 등에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어린 아이도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비유의 천재이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를 통해서 보이도록, 손에 잡히도록 쉽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은 사람들에게 율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게 되었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묵상하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영생을 얻고 죄사함을 받으며 자유를 누리고 기쁨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24).” 예수님이 말씀을 권위있게 전하자 귀신 들린 사람 안에 있던 악령이 견디지를 못하였습니다. 빛이 비추이자 어둠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어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왔습니다.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놀라서 서로 말했습니다.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이 사건 이후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졌습니다.

  예수님은 과연 누구십니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심판하실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그의 말씀 한마디에 더러운 귀신이 순복했습니다. 더러운 귀신은 사람 속에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으로 채웁니다(막 7:21,22). 이런 마음의 생각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고 깨끗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시 119:9).”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지킬 때 거룩한 행실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미투 운동을 통해서 유명 인사들의 성추행과 성폭력이 폭로되고 있습니다. 이 사회의 음란이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폭로 앞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는 유교의 가르침을 들었지만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음란을 제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남성이나 여성의 인권이 평등함을 깊이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라야 합니다(딤후 2:22).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은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보시고 더럽고 악한 것을 쫓아내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우리는 깨끗하게 되고 의롭게 되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얻고, 각 사람의 무너지고 파괴되고 상처 난 마음을 회복하는 일을 힘써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나의 가정 안에, 캠퍼스에, 직장에, 이 나라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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