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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018 막1강(1:1-13)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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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4회 작성일 18-03-04 13:48

본문

2018' 마가복음 제 1 강
말씀 | 마가복음 1:1-13
요절 | 마가복음 1: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새 학기가 되어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신입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를 위해서 수능 시험을 치뤘고 수시와 정시를 통해서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이러한 시험들은 대학에서 공부를 하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준비가 잘 될수록 목표한 것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습니다. 운동을 하기 전에 준비 운동을 하고, 밥을 먹기 전에 그릇을 씻어 놓고 음식을 준비합니다. 예수님은 복음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복음 역사를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 준비하셨는지를 보여줍니다. 세례 요한을 보내서 그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시험을 받으심으로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번 학기에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해서 철저히 준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시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이는 마가복음 전체의 제목이자 내용의 요약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어떻게 그리스도요 그가 왜 복음인지를 말해줍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란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서 구약에서 특별히 선택한 종들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세웠습니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는데 기름을 붓는 것은 하나님이 택하여 세웠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능력의 원천인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합니다. 당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선포는 폭탄선언과 같았습니다. 높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거룩하신 분이 죄인들과 함께 하실 수 있겠습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뜻인데 여호와 하나님만을 유일신으로 믿는 그들에게는 신성모독이라고 여겼습니다. 또한 마가복음은 로마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록했습니다. 로마 세계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은 죄인 중에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라는 죄인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정말 충격적인 선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십자가 형을 집행한 백부장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증거들을 기록하였고 이방인 백부장이 확증하였습니다. 이후 초대 교회 모든 성도들로부터 오늘날 우리까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의 구원자이십니다”라고 신앙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시작이라”고 했는데 복음은 ‘기쁜 소식’(good news)을 뜻합니다. 세상에는 어떤 기쁜 소식이 있습니까? 신입생들은 대학에 합격했을 때 얼마나 기뻤습니까? 처녀 총각들이 결혼을 했을 때 매우 기쁩니다. 직장에서 진급을 하여 월급이 올라간 소식도 기쁩니다. 그러나 이런 소식은 일시적인 기쁨만을 줍니다. 로마제국에서 ‘복음’은 로마 황제의 출생이나 등극하였을 때 사용하였습니다. 나팔을 불고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황제의 출생이나 등극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아니라 항상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취임할 때는 큰 기대를 갖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실망을 합니다. 그래서 황제의 출생이나 등극은 참된 복음이 아닙니다. 세상의 진정한 왕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이 진정한 복음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를 어디로부터 구원해 주십니까?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불행은 죄와 죽음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정죄합니다. 사람은 율법으로 인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심판을 받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헛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은혜로 살도록 하십니다. 그의 피로 값없이, 은혜로 우리의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죄사함을 받는 것은 가장 큰 행복입니다. 영생은 최고의 선물입니다. 죄와 죽음 문제로 심각한 고민을 하다가 죄사함을 받으면 만물이 새롭게 보입니다. 율법 아래에서 살던 사람이 은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겉으로 드러난 행동으로 판단을 받던 사람이 마음으로부터 시작된 동기와 가치로 행동을 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요 복음입니다.

  복음의 시작이란 말씀이 1절 뒤에 나오는데 헬라어 원문에서는 ‘시작(아르케)’라는 단어가 맨 처음에 나옵니다. 또 시작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시작은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뜻입니다. 시작은 기대와 설레임을 줍니다. 시작을 선언하기 전에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복음을 준비해오셨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직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준비하기 시작하셨습니다(창3:15).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말라기 선지자 때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보였던 약속이 점차적으로 뚜렷하고 구체적으로 계시되었습니다. 예수님 탄생 700년전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의 모습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말라기와 신약 사이에는 400년 간의 신구약 중간기가 있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시대는 매우 악하고 타락하여 사람들은 더욱 간절하게 메시아 탄생을 고대하였습니다. 이런 기다림 속에서 준비되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마침내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는 그 시작을 웅장하게 선포합니다. 

  둘째, 세례 요한의 준비. 2-8절은 예수님의 등장에 앞서서 세례 요한이 먼저 등장하여 그의 길을 준비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준비’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세례 요한이 주의 길을 준비하고 우리도 주의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준비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그는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입니다. 제사장의 아들로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안정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타락하여 어둠의 소굴로 생각을 했고 경건하고 깨어 있는 사람들은 광야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율법 연구와 경건한 생활에 힘을 썼습니다.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에 힘쓰고 거룩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왜 그는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말씀을 외쳤을까요? 광야는 고독한 장소입니다. 광야에 나가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밤에 총총히 빛나는 별들과 자신만 남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한마디로 광야는 하나님과 깊이 교제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광야는 그런 점에서 빛의 자녀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였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광야는 어디일까요? 광야라는 히브리어가 ‘벳트다마르’입니다. 이것을 분해하면 ‘말씀 + 안에서’가 됩니다. 광야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가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이사야 40:3절이었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여기서 외친다는 것은 간절한 심령으로 때로는 울면서 부르짖고 외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신 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절박한 심정으로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이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께 여쭈면서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말씀 안에서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속히 응답하십니다.

  우리도 주의 오실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은 낮추고, 꼬여진 마음은 펴고, 패인 마음은 돋움으로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주님이 내 안에서 일하실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는데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죄로 인해서 고통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광야에서 말씀을 외쳤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몰려들었을까 의문이 듭니다. 세례 요한의 권위가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고 그를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동시에 세례 요한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성령이 성령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메시지는 평소 그의 삶과 일치했기 때문에 권세가 있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낙타털 옷은 요즈음 밍크코트와 같이 부드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친 옷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잘 찢어지지 않는 청바지를 오래도록 입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습니다. 이는 일을 하고자 준비하고 긴장하고 깨어 있는 삶입니다.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는 것은 검소한 삶을 살았음을 말해 줍니다. 그는 광야에서 단순하고 검소하게 청빈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아들로서 화려한 성전에서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서 부유하게 살 수 있었지만 이를 버리고 광야에서 거칠고 청빈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생명력 넘치는 메시지는 이런 삶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합니까?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예수님은 지극히 크신 능력을 가지고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십니다. 물세례가 죄를 회개한 사람에게 주는 외적인 표시라면 성령 세례는 죄와 함께 옛 사람이 죽고 새로 태어나도록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를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5-27).” 물 세례가 물 속에 잠기는 것이라면 성령세례는 성령 안으로 잠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이를 간장에 재워놓으면 오이 장아찌가 되듯이 사람이 성령 안으로 들어가 감기게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변화됩니다. 제가 고관절에 통증이 있어서 병원에 갔는데 당장 강한 약을 쓰지 아니하고 조금씩 조금씩 약을 오래 동안 써서 통증 부위를 절이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렇게 했더니 실제로 통증이 점차 사라지고 회복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성령 안에서 죄로 인한 상처가 치료가 되고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이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다고 해서 한 번에 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 안에 거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포도나무와 가지와 같은 생명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 잠길 때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서 죄 사함의 역사를 이루시고 주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는 능력이 자라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셋째, 세례와 시험을 통한 예수님의 준비. 예수님이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실 때 먼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게 하는 세례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한 인간이 되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사역을 인정하고 계승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역사를 계승하여 신약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셋째는 예수님이 자신을 죄인들과 동일시하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즉 모든 인간을 대신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궁극적으로 세례는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고자 결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하늘이 갈라졌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에 성전 휘장이 찢어졌다는 단어와 같습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혔던 하늘이 갈라지고 하나님 곧 성령께서 이 땅 가운데 내려오셨습니다. 이제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예수님을 통해서 열린 것입니다. 동시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께 내려오셨습니다. 비둘기는 온유와 순결의 상징입니다. 공격성이 없는 평화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성령의 사역과 일치합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순결하고 겸손하게 일하십니다. 이사야 61:1,2절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됩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 선포와 치유와 포로를 자유하게 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는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치시는 메시야 대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음으로 십자가에 죽고 구속 역사를 이루고자 결심하신 것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영광과 권세를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배척을 받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십니다. 자신을 아낌없이 죄인들을 위해 내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님을 가장 존귀한 분으로 높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제 그를 통해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나갑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성령께서는 메시야 대관식을 치루신 예수님을 곧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몰아내셨다는 뜻은 내던졌다, 쫓아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확실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대관식을 마치자마자 사탄의 시험을 받도록 내쫓으셨습니다. 시험이 혹독할수록 그의 사역을 강하게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해병대나 특전사들이 받는 훈련은 매우 강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철저하게 시험을 받으심으로 사역을 준비하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고 쓰러졌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게 되었고 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려면 먼저 사탄의 시험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메시야로서 입증이 됩니다. 광야 생활은 매우 힘든 곳입니다. 이스라엘 광야에는 들짐승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수퇘지, 재칼, 여우, 늑대, 표범, 하이에나, 전갈 등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머무시면서 인간이 겪어야 하는 온갖 시험을 다 받으셨습니다. 먹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자신이 누구인가, 어떻게 메시야의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 누구에게 경배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해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는 이 시험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보여주십니다. 또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십니다. 쉽고 편한 방법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십니다.

  시험은 우리도 받습니다. 시험은 그의 마음이 어떠한지, 능력은 어떠한지를 점검합니다. 아브라함도 아들을 번제로 하나님께 바치도록 시험을 받았습니다. 이 시험을 통과하자 진정한 믿음의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항상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시험을 통해 철저히 준비되어 하나님의 역사에 귀히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는 동안 천사들이 수종들었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이 시험을 받는 동안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지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어 특별한 도움을 주십니다.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십니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내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일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된 만큼 우리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감당해야 합니다. 시험을 통해서 더욱 연단된 종으로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성령 안에 잠김으로 치료와 회복을 경험하고 강건해져서 능력있게 구원 역사를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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