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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018 막6강(3:7-35) 열 둘을 세우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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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2회 작성일 18-04-22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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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마가복음 제 6 강
말씀 | 마가복음 3:7-35
요절 | 마가복음 3:14,15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이 하신 일은 말씀을 전하시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며 제자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본을 보이셨고 제자들로 하여금 따라오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키우는 일, 지도자를 세우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역사를 계승시키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세우고 훈련하신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우리도 그의 좋은 제자가 될 뿐만 아니라 제자 양성가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한 손 마른 자를 고치신 후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셨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평온하고 쉼을 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선한 일,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한 사람을 도운 일들이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멀리 멀리 퍼져나갔습니다.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왔습니다. 이 큰 무리들은 각종 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었고 귀신에 들려 고통 했습니다.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방황했습니다. 도움을 받을 곳이 마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한 목자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본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의탁할 분으로 알고 동서남북 사방에서 몰려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선한 말과 행동이 얼마나 빨리 소문을 타고 퍼져나가는가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그는 배 위에서 해변에 있는 무리를 향하여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실 뿐만 아니라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을 사람들에게서 쫓아내셨습니다. 귀신들이 예수님을 보면 어느 때든지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시고 자기가 하는 일을 선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참된 정체성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완전히 드러나게 됩니다. 그 전에 예수님이 해야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방해받지 않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로서 길을 가시는 것이고, 그리스도로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리들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다윗 왕처럼 힘 있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지도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힘으로 다스리는 권력자가 아니라 희생과 섬김으로 인간의 죄와 연약함을 감당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당할 제자들을 키우기를 원하셨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밤새워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문제와 죄사함을 주신 일로 인해서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아셨습니다. 죽음 앞에  자신이 일할 시간이 많지 않음을 인지하셨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무리들은 셀 수 없이 많이 그에게 몰려들었습니다. 그는 밤새워 기도하신 후에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을 세우신 것입니다. 무리들이 많이 몰려올수록 제자 양성에 집중하셨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계속하고자 하십니다. 제자 양성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지도자를 키우는 것이야말로 한 나라나 공동체나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지원서나 그들의 경력을 보고 뛰어난 자들을 부른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되는대로 세운 것도 아닙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이는 그의 주권에 속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일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이기도 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6-29절에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의 특징이 나와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많이 배우거나 지혜롭거나 능력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 미련한 자들을 택하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십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제자들을 핍박하였지만 그들이 성령이 충만하여 지혜롭게 말함을 보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행 4:13)” 제자들은 겸손하게 배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배우면서 성장하였습니다. 배우기를 멈추면 성장도 멈춥니다. 그들이 성장하여 당시 사회의 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부끄럽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감독의 자격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지도자는 먼저 자신을 잘 가르치고 다스릴 수 있어야합니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또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성공한 후에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과 공동체를 파멸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그런 대표적인 사람이 솔로몬입니다. 그가 처음에는 겸손하였지만 나중에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우상숭배가 편만해지고 나라는 둘로 쪼개지고 말았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한 사람 한 사람 인격적으로 부르셨습니다. 그의 부르심은 불가항력적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의리나 눈치 때문에 제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인격적으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장점과 단점, 약점을 잘 아셨습니다. 그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시고 하나님의 사람들로 빚으셔서 귀하게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그는 부르신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며 책임을 지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은혜입니다. 그들이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문제 삼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에도 소망을 두고 키우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무슨 목적으로 부르셨으며 어떻게 훈련하셨습니까? 14,15절을 보십시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첫째,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셔서 3년 동안 공동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그의 사상과 삶을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삶 가운데서 예수님을 배움으로 작은 예수들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함께 있음으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가지만 제자들은 남아서 예수님 곁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초대 교회의 리더들이 되었고 교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제자들과 공동생활을 하지 못하더라도 함께 있는 시간을 질적으로 깊이 있게 가질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신뢰하면서 인생 문제들을 깊이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섬기는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여행을 하고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일을 하면서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이 때로는 부담을 느끼고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가 되면 함께 있기를 사모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과 함께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매일 일용할 양식을 먹고 기도에 힘씀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은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서로 배우고 선의의 경쟁도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동역자가 되어서 함께 역사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제자 양성을 할 때 팀 훈련을 함으로 일생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9-12).”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즐거움과 고난을 함께 나누는 동역자들로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둘째, 보내사 전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려고 하는 곳에 제자들을 보내사 전도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전도 여행을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병든 자들을 고쳤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배우고 성장했습니다. 그들은 메신저로, 인생 소감 강사로, 소감 강사로, 심포지움 강사로 쓰임을 받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무거운 직분이 사람을 키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어렸지만 사도로 세움을 받고 소망 가운데 성장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하지 말고 훈련을 해야 합니다. 훈련이 된 사람이 쓸모가 있습니다. 훈련이 되지 않으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시련의 날이 오면 날아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믿음의 사람들이 되도록 강하게 훈련하셨습니다. 전도 훈련, 말씀 훈련, 섬기는 훈련, 강풍 훈련, 배척 훈련, 기도 훈련 등등 예수님의 훈련은 지속적이었고 강했습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무시를 받으며 자기가 깨어지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도우심을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제자는 전도하고 말씀을 전하면서 성장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배우고 순종할 때 그 말씀은 힘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말씀을 전하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자립적으로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사람들로 성장합니다. 각 가정 교회들이 제자를 키움으로 12명 이상씩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귀신을 내어 쫓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권능을 주셨습니다. 권능이 있을 때 역경을 극복하면서 사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권능은 예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여 제자들이 권능을 받고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문화권에 나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내어 쫓는 권능을 받음으로 이 세상의 어두움과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려면 그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귀신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영적 권능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한 영혼을 귀신의 세력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 대한 사랑에 기초한 헌신이 있어야합니다. 기도의 싸움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기도 외에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9:29).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신자들에게 주신 권능의 통로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주님께서 들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성전 미문에 앉아 있어 날 때부터 못 걷게 된 채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구걸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보고 말했습니다. “우리를 보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행 3:1-8).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하시며 구원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가 낙망하지 말고 항상 기도에 힘쓰기를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제자의 길을 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열 두 제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입니까? 열 두 제자는 구약의 열 두 지파를 대신하여 새 이스라엘을 이루게 됩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통해서 새 이스라엘인 교회 공동체를 이루십니다. 열두 명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성 속에서 함께 하며 배울 수 있는 적당한 인원입니다. 우리의 소그룹인 가정 교회와 팀 모임은 가장 친밀하게 교제하며 배울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섬기고 자라도록 격려할 수 있습니다. 열 두 제자들은 구체적으로 누구누구였습니까?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습니다. 이 세 사람은 수제자 그룹이었습니다.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입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는 돈 때문에 예수님을 배신한 배은망덕한 자입니다.

  제자들은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었고 허물과 실수가 많았습니다. 의심도 많았고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적인 야심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점차 내면이 변화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결국에는 예수님의 소망대로 사도행전의 역사를 이루는 계승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제자 양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계승시켜야 합니다. 훈련없이 영적 전쟁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군대로 빚어집니다. 또 내면이 성숙하게 됩니다. 일생 한 사람이라도 제자로 세운다면 그의 삶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이 모여들자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병자들을 치료하시고 제자를 양성하시느라 식사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친족들은 그가 하는 일에 대해 소문을 듣고 붙들러 나왔습니다. 이는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악담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러다가 그들의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우치셨습니다.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예수님은 사탄보다 강하시기 때문에 귀신을 쫓아내실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로 이런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함부로 말하는 자들에게 경고하십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죄를 회개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를 거부하니 구원의 길이 사라집니다. 명백한 진리를 고의로 부정하기 때문에 스스로 용서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은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지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말씀 앞에 두려워 떠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무리가 예수님을 둘러 앉아있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예수님의 형제들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영적 가족관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생활을 할 때 가족들로부터 배척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러한 경험은 제자들에게도 하나의 모본이 됩니다. 우리가 제자로 살고자 할 때 가족들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그 아픔을 감당할 때 가족들도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며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그들도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된 사람들을 가족처럼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제자들을 가족으로 여기셨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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