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018 막 25강(14:1-26) 언약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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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마가복음 제 25 강
말씀 | 마가복음 14:1-26
요절 | 마가복음 14:24
언약의 피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번 미국 국제 수양회의 주제는 “그의 왕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나라에 들어갔고 그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고 우리는 죄인으로서 심판받아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죄인된 우리가 그의 백성이 되고 그의 나라에 들어가 그의 통치를 받을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 때문입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를 주고, 구원을 가져오고, 교제를 가능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맺은 언약으로 인해서 우리는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주님의 머리에 향유 옥합을 깨뜨려 부은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 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여자는 나사로의 누이 동생 마리아였습니다. 그녀는 평소에 예수님께 말씀을 듣고 배운 믿음이 좋은 여인이었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을 섬기는데 마음을 쏟고 있었지만 그녀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언니로부터 불평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로부터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오빠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을 때 예수님이 늦게 오시자 원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무덤 앞에서 돌을 옮겨 놓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죽은 지 나흘이 지났으매 냄새가 난다고 불신의 말을 하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을 옮겨 놓자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고 “나사로야 나오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왔습니다. 마리아는 부활의 권세자 되신 예수님이 죽은 오빠를 살려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감사가 넘쳤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결혼을 위해서 준비해 두었던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 향기가 방 안에 가득하였습니다. 마리아의 진심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못 말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진심이 딸리는 사람들이 마음이 불편하여 한 소리를 했습니다.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였습니다. 이들의 말은 현실적이었습니다. 이들은 마리아의 마음에 넘쳐나는 감사와 은혜를 볼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타산과 돈으로 계산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한 어머니의 희생을 돈으로 계산할 없습니다. 어려운 자녀를 돕기 위한 어머니의 희생을 어리석은 투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양들을 섬기기 위해서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는 목자님들의 삶을 허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남미의 한 선교사님은 20년 동안 사업에 연속해서 실패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선교를 위해서 그 험한 고생길을 인내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들의 삶을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볼 때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가는 무엇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마리아의 헌신을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 일이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가 힘을 다하여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어 그의 장례를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8). 예수님은 이 여인이 알지 못하고 행했지만 자신의 장례를 위한 준비로 영접하시고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기에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면 육신으로는 뵐 수가 없습니다. 이 여인 외에 다른 여인들이 예수님의 죽음 이후 그 시신에 바르기 위해서 향품을 준비했지만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볼 때 예수님께 헌신하는 것도 다 때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지 중에 섬겼는데 천사를 대접하였습니다. 우리가 젊은 때, 힘이 있을 때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우리의 마음과 성품과 뜻과 힘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헌신을 얼마나 귀히 여기셨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이 여자가 행한 일은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말하여 그녀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또 마리아의 행동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드린 헌신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58에서도 사도 바울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가 수고해도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나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주님이 나의 수고를 아십니다. 주님이 인정해 주시면 족한 것입니다. 또 우리가 주님의 일에 힘쓴 것만이 영원히 남을 것임을 알고 힘을 내야 합니다.
미국 엘에이 다우니 센터의 지부장이신 젼권(John Kwon)선교사님은 30년 동안 김이삭 선교사님과 동역하며 선교 역사를 섬겼습니다. 그는 한 알의 썩는 밀알로써 엘에이 센터 역사에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5년 전에 김이삭 선교사님을 이어 역사를 계승하였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역사에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의 믿음의 향기가 로스엔젤레스 지역에 퍼지고 있습니다. 그는 센터의 어려운 문제들이 있을 때 28일간 금식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받으시고 센터의 문제들을 잠재우시고 이번에 비전 캠프와 미국 국제 수양회에 참석한 선교사님들을 마음을 다해서 섬길 수 있었습니다.
웨스트 엘에이 센터의 폴진 선교사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학생 제자 양성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는 이번에 식당을 오픈하고자 합니다. 목적은 학생 제자 양성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원룸을 많이 만들어 학생들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신앙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9년 전에 방문했을 때보다 훨씬 더 내용이 있고 성장해 있었습니다. 새 학기에 5주간 동안 300명의 학생들에게 전도하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을 쏟아 부어 헌신하는 선교사님들을 볼 때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마리아와 대조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민란이 날까 두려워 명절에는 하지 말자고 말했습니다. 이 명절은 유월절로서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 양의 피를 통해서 심판에서 벗어나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 다음에는 7일간의 무교절이 시작됩니다. 이 절기는 이스라엘이 빵을 부풀릴 시간이 없어서 누룩 없는 빵을 만들어서 급히 애굽에서 탈출해야 했던 날을 회상하는 날입니다. 사람들은 이 절기에 어린 양, 포도주, 쓴 나물, 무교병 등을 포함한 특별한 식사를 하기 위해서 세계 각국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때 약 200만 명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종교지도자들은 민란이 날까 두려워 이 날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과 달리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그 날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반전이 일어난 것입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고 돈궤를 맡고 있는 신뢰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돈에 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자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그의 기대는 세상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고 사람들의 인기를 얻을 때 그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꾸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보다는 사람의 일을 더 앞세웠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고 그녀의 사랑과 감사를 표현할 때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께도 화가 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생각과 행동이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더 이상 따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결국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가서 자기의 스승이신 예수님을 노예의 몸 값을 받고 팔아버렸습니다. 결국 종교지도자들은 유월절 절기가 끝난 후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했지만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유월절에 체포하여 죽이게 됩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게 됩니다. 그 후 유다는 자책감 때문에 목매어 죽었습니다(마27:5). 사람이 어떻게 죽는가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평가가 됩니다.
무교절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짜왔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사 성내로 들어가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 그를 따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은 마가였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집 주인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그러자 그는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여주었고 제자들은 예수님과 열 두 사도들을 위하여 유월절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묻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오직 단 한 사람만 배반의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6:25을 보면 유다가 “랍비여 내니이까?” 물었고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제자 중에 하나가 예수님을 배반한다는 말씀은 마음 아프고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예수님은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말씀하시고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슬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기록된 대로 간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하고 성경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 죽어야만 하십니다. 예수님은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 곧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죽으십니다. 이는 영광스러운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먹을 때에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셨습니다.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살을 생명의 떡으로 우리에게 떼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를 위한 것임을 믿을 때 우리는 영생을 얻습니다.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만민을 위한 대속제물이 되는 것을 감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포도주 잔을 주시며 다 이를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잔의 의미를 설명하십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 포도주는 나의 피를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언약을 맺게 합니다. ‘언약’은 한 번 맺어지면 변경할 수 없습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으로 인간은 다만 그것을 수용하든지 거절할 수 있습니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고 언약을 맺을 때 모세도 피를 뿌려서 언약을 확증했습니다. 율법은 지킴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 언약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새 언약을 맺고 인치셨습니다. 옛 언약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동물을 희생 제물로 드리면 그들의 죄를 용서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동물 제사는 인간의 모든 죄를 없앤 것이 아닙니다. 일시적이었고 참된 것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해마다 반복해서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은 그 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단번에 제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되풀이 될 수 없습니다. 이 희생은 한 번으로 영원히 그 효력을 발휘합니다(히9:23-28).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죄 없는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하사 성육신하셨습니다. 그는 율법을 다 지키시고 죄가 없으십니다. 이 예수님의 피 만이 우리의 죄를 속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됩니다. 예수님의 피는 어떤 죄든지 깨끗하게 씻겨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아무리 더러운 죄라도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눈보다 더 희어지게 됩니다. 히브리서 9:13,14절은 말씀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예수님께서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신의 피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릴 때 영원하신 성령께서 영원한 속죄의 피를 가지고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정결케 하시며, 구원받은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항상 우리 마음에 속죄의 피를 뿌려주심으로 우리를 정결케 해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없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힘입어 예수님을 믿음으로, 믿기 전 죄악 가운데 살던 죽은 양심이 그의 피로 씻음 받고 다시 살아나게 되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지 않은 채 신앙 생활을 하고 성결한 생활을 하겠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간의 의지나 윤리나 규범으로 구원에 이르겠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거룩하게 살 수 이는 능력은 예수님의 피와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맺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를 믿는 사람들은 사망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안전하게 지키십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마음에 거룩한 소원을 불러일으키고 죄를 이기게 합니다. 예수님의 언약의 피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시켜 줍니다. 또한 우리의 연약한 마음을 굳게 잡아줍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인하여 감사하고 날마다 찬양하는 가운데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가니라.” 예수님은 임박한 죽음에 대한 승리와 하나님 나라에서 맞이할 영광을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질적으로 새로운 포도주를 마시며 기뻐할 때까지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영원한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그 날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언약의 피로 인해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언약의 피를 믿고 영접한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드려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인해서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 주님의 은혜를 간직하고 양들을 사랑하고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가을 학기에 우리가 더욱 견고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며 다음 세대들을 리더로 키우는 일에 헌신하길 기도합니다.
말씀 | 마가복음 14:1-26
요절 | 마가복음 14:24
언약의 피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번 미국 국제 수양회의 주제는 “그의 왕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나라에 들어갔고 그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고 우리는 죄인으로서 심판받아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죄인된 우리가 그의 백성이 되고 그의 나라에 들어가 그의 통치를 받을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 때문입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를 주고, 구원을 가져오고, 교제를 가능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맺은 언약으로 인해서 우리는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주님의 머리에 향유 옥합을 깨뜨려 부은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 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여자는 나사로의 누이 동생 마리아였습니다. 그녀는 평소에 예수님께 말씀을 듣고 배운 믿음이 좋은 여인이었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을 섬기는데 마음을 쏟고 있었지만 그녀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언니로부터 불평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로부터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오빠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을 때 예수님이 늦게 오시자 원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무덤 앞에서 돌을 옮겨 놓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죽은 지 나흘이 지났으매 냄새가 난다고 불신의 말을 하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을 옮겨 놓자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고 “나사로야 나오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왔습니다. 마리아는 부활의 권세자 되신 예수님이 죽은 오빠를 살려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감사가 넘쳤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결혼을 위해서 준비해 두었던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 향기가 방 안에 가득하였습니다. 마리아의 진심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못 말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진심이 딸리는 사람들이 마음이 불편하여 한 소리를 했습니다.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였습니다. 이들의 말은 현실적이었습니다. 이들은 마리아의 마음에 넘쳐나는 감사와 은혜를 볼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타산과 돈으로 계산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한 어머니의 희생을 돈으로 계산할 없습니다. 어려운 자녀를 돕기 위한 어머니의 희생을 어리석은 투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양들을 섬기기 위해서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는 목자님들의 삶을 허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남미의 한 선교사님은 20년 동안 사업에 연속해서 실패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선교를 위해서 그 험한 고생길을 인내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들의 삶을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볼 때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가는 무엇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마리아의 헌신을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 일이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가 힘을 다하여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어 그의 장례를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8). 예수님은 이 여인이 알지 못하고 행했지만 자신의 장례를 위한 준비로 영접하시고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기에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면 육신으로는 뵐 수가 없습니다. 이 여인 외에 다른 여인들이 예수님의 죽음 이후 그 시신에 바르기 위해서 향품을 준비했지만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볼 때 예수님께 헌신하는 것도 다 때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지 중에 섬겼는데 천사를 대접하였습니다. 우리가 젊은 때, 힘이 있을 때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우리의 마음과 성품과 뜻과 힘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헌신을 얼마나 귀히 여기셨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이 여자가 행한 일은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말하여 그녀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또 마리아의 행동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드린 헌신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58에서도 사도 바울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가 수고해도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나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주님이 나의 수고를 아십니다. 주님이 인정해 주시면 족한 것입니다. 또 우리가 주님의 일에 힘쓴 것만이 영원히 남을 것임을 알고 힘을 내야 합니다.
미국 엘에이 다우니 센터의 지부장이신 젼권(John Kwon)선교사님은 30년 동안 김이삭 선교사님과 동역하며 선교 역사를 섬겼습니다. 그는 한 알의 썩는 밀알로써 엘에이 센터 역사에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5년 전에 김이삭 선교사님을 이어 역사를 계승하였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역사에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의 믿음의 향기가 로스엔젤레스 지역에 퍼지고 있습니다. 그는 센터의 어려운 문제들이 있을 때 28일간 금식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받으시고 센터의 문제들을 잠재우시고 이번에 비전 캠프와 미국 국제 수양회에 참석한 선교사님들을 마음을 다해서 섬길 수 있었습니다.
웨스트 엘에이 센터의 폴진 선교사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학생 제자 양성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는 이번에 식당을 오픈하고자 합니다. 목적은 학생 제자 양성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원룸을 많이 만들어 학생들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신앙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9년 전에 방문했을 때보다 훨씬 더 내용이 있고 성장해 있었습니다. 새 학기에 5주간 동안 300명의 학생들에게 전도하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을 쏟아 부어 헌신하는 선교사님들을 볼 때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마리아와 대조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민란이 날까 두려워 명절에는 하지 말자고 말했습니다. 이 명절은 유월절로서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 양의 피를 통해서 심판에서 벗어나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 다음에는 7일간의 무교절이 시작됩니다. 이 절기는 이스라엘이 빵을 부풀릴 시간이 없어서 누룩 없는 빵을 만들어서 급히 애굽에서 탈출해야 했던 날을 회상하는 날입니다. 사람들은 이 절기에 어린 양, 포도주, 쓴 나물, 무교병 등을 포함한 특별한 식사를 하기 위해서 세계 각국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때 약 200만 명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종교지도자들은 민란이 날까 두려워 이 날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과 달리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그 날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반전이 일어난 것입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고 돈궤를 맡고 있는 신뢰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돈에 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자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그의 기대는 세상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고 사람들의 인기를 얻을 때 그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꾸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보다는 사람의 일을 더 앞세웠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고 그녀의 사랑과 감사를 표현할 때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께도 화가 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생각과 행동이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더 이상 따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결국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가서 자기의 스승이신 예수님을 노예의 몸 값을 받고 팔아버렸습니다. 결국 종교지도자들은 유월절 절기가 끝난 후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했지만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유월절에 체포하여 죽이게 됩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게 됩니다. 그 후 유다는 자책감 때문에 목매어 죽었습니다(마27:5). 사람이 어떻게 죽는가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평가가 됩니다.
무교절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짜왔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사 성내로 들어가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 그를 따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은 마가였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집 주인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그러자 그는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여주었고 제자들은 예수님과 열 두 사도들을 위하여 유월절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묻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오직 단 한 사람만 배반의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6:25을 보면 유다가 “랍비여 내니이까?” 물었고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제자 중에 하나가 예수님을 배반한다는 말씀은 마음 아프고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예수님은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말씀하시고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슬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기록된 대로 간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하고 성경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 죽어야만 하십니다. 예수님은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 곧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죽으십니다. 이는 영광스러운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먹을 때에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셨습니다.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살을 생명의 떡으로 우리에게 떼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를 위한 것임을 믿을 때 우리는 영생을 얻습니다.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만민을 위한 대속제물이 되는 것을 감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포도주 잔을 주시며 다 이를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잔의 의미를 설명하십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 포도주는 나의 피를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언약을 맺게 합니다. ‘언약’은 한 번 맺어지면 변경할 수 없습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으로 인간은 다만 그것을 수용하든지 거절할 수 있습니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고 언약을 맺을 때 모세도 피를 뿌려서 언약을 확증했습니다. 율법은 지킴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 언약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새 언약을 맺고 인치셨습니다. 옛 언약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동물을 희생 제물로 드리면 그들의 죄를 용서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동물 제사는 인간의 모든 죄를 없앤 것이 아닙니다. 일시적이었고 참된 것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해마다 반복해서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은 그 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단번에 제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되풀이 될 수 없습니다. 이 희생은 한 번으로 영원히 그 효력을 발휘합니다(히9:23-28).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죄 없는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하사 성육신하셨습니다. 그는 율법을 다 지키시고 죄가 없으십니다. 이 예수님의 피 만이 우리의 죄를 속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됩니다. 예수님의 피는 어떤 죄든지 깨끗하게 씻겨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아무리 더러운 죄라도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눈보다 더 희어지게 됩니다. 히브리서 9:13,14절은 말씀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예수님께서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신의 피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릴 때 영원하신 성령께서 영원한 속죄의 피를 가지고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정결케 하시며, 구원받은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항상 우리 마음에 속죄의 피를 뿌려주심으로 우리를 정결케 해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없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힘입어 예수님을 믿음으로, 믿기 전 죄악 가운데 살던 죽은 양심이 그의 피로 씻음 받고 다시 살아나게 되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지 않은 채 신앙 생활을 하고 성결한 생활을 하겠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간의 의지나 윤리나 규범으로 구원에 이르겠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거룩하게 살 수 이는 능력은 예수님의 피와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맺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를 믿는 사람들은 사망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안전하게 지키십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마음에 거룩한 소원을 불러일으키고 죄를 이기게 합니다. 예수님의 언약의 피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시켜 줍니다. 또한 우리의 연약한 마음을 굳게 잡아줍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인하여 감사하고 날마다 찬양하는 가운데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가니라.” 예수님은 임박한 죽음에 대한 승리와 하나님 나라에서 맞이할 영광을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질적으로 새로운 포도주를 마시며 기뻐할 때까지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영원한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그 날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언약의 피로 인해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언약의 피를 믿고 영접한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드려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인해서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 주님의 은혜를 간직하고 양들을 사랑하고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가을 학기에 우리가 더욱 견고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며 다음 세대들을 리더로 키우는 일에 헌신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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